6. 칼의 전설(1)
6. 칼의 전설 (1)
쑤저우 시내 지도를 들여다보다가 묘한 도로 이름을 발견했다. 동서로 쑤저우 중심 시내를 가로지르는 ‘간장로’와 남북으로 있는 ‘막야로’였다. 나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쑤저우는 춘추시대를 기억하는 도시이고 아직도 춘추시대의 잔재를 소중히 여긴다.
춘추시기 오와 월은 청동 제련술로 유명했다. ‘간장’干將과 ‘막야寞耶’는 오나라에서 청동 검을 만들던 장인名匠 부부였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월나라의 구야자歐冶子도 있다. 이들 세 사람은 밀접한 관계였는데, 막야가 구야자의 딸이고, 간장이 구야자의 사위라는 유력한 설이 있다. 이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고대에 청동 제련술은 고도의 하이테크 기술이어서 아무에게나 함부로 가르쳐 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그러니 자신의 제자 무리에서 가장 유능한 제자를 골라 사위로 삼고, 딸과 사위에게 기술을 전수해 주는 것은 합리적이었다.
춘추시기의 검은 단순한 병장기兵仗器가 아니라 한 나라의 자존심과 왕권을 상징했었다. 오늘날까지도 명성이 전해져 내려오는 춘추시기의 전설적 명검은 모두 구야자와 간장, 막야가 만들었다. 구야자는 담로湛盧, 거궐巨闕, 승사勝邪, 어장魚腸, 순구純鉤 등 5개의 명검을 만들었다. 구야자는 후에 간장과 함께 초나라 왕의 요청으로 용연龍淵, 태아泰阿, 공포工布등을 만들었다. 간장과 막야는 간장검과 막야검이라고도 불리는 한 쌍의 자웅검雌雄剑을 만들었다.
이 검들 중 유명한 것은 어장검魚腸劍과 담로湛盧, 자웅검雌雄剑이다. 어장검에 관한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 ‘자객열전’에 나오는데, 자객, 전제專諸가 오왕 료僚를 죽일 때 사용했다. 전제는 연회에서 물고기 요리 뱃속에 감춰뒀던 칼로 오왕 료를 죽이고, 그는 그 자리에서 호외병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자객 전제를 발탁한 사람은 오자서였다. 당시 오나라에는 왕권 이양을 두고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오자서는 오왕 료의 사촌인 공자 광光의 야심을 알아보고 함께 모사를 꾸몄다. 이 모사를 통해 오자서는 초나라를 탈출한 망명객 신분에서 오나라의 재상이 되고 공자 광은 왕이 된다. 그가 바로 오왕 합려이다.
담로湛盧는 원래 임자는 오나라 합려였고, 합려가 갖고있는 검들 중에 최고의 검이었다. 그런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그 검이 초소왕楚昭王의 손에 들어왔다. 초소왕은 검상을 잘 본다는 풍호자를 불러 그 검을 보여주면서 왜 자신에게 그 검이 왔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풍소자가 말하기를, 검신劍神의 도움을 받는 검은 어떤 강적도 물리칠 수 있는데, 왕이 아니고서는 소유할 수도 없으며, 만일 그 왕이 도의에 어긋난 일을 저지르면 스스로 주인을 떠나 도의가 있는 왕에게로 간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풍호자의 말은 담로湛盧가 무도한 합려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아 초왕의 손에 들어온 것이며, 초왕을 진정한 왕으로 인정했다는 말이었다. 이 사실을 듣고 기뻐한 초소왕은 담로를 항상 차고 다니면서 이 사실을 백성들에게도 알렸다. 오나라는 초나라에 담로를 보내는 이 계략으로 초왕을 오만하게 만드는 것에 성공해 전략상의 우위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국가나 기업 간 싸움에는 음험한 술수가 동원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어쩌면 ‘왕이 도의에 어긋난 일을 저지르면 검이 스스로 주인을 떠나 도의가 있는 왕에게 간다’는 검신에 대한 그럴듯한 신화는 합려 쪽이 만들어낸 것일 수 있다. 합려와 합려의 대신들은 이런 말을 연회 자리에서 슬쩍 흘려서 저잣거리에 흘러 다니도록 할 수 있다. 오늘날 언론이 하는 역할처럼 말이다. 그럴듯한 이야기 뒤에 적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숨겨진 경우는 많다.
자웅검에는 두 갈래로 나눠진 이야기가 전한다. 명검을 제조하기 위해 막야가 인신공양을 했다는 이야기와 간장이 억울하게 죽은 후 아들이 처절하게 복수했다는 이야기이다. 간장의 복수에 대한 이야기만 해보면 이렀다. 간장은 초나라의 왕을 위해 한 쌍의 암수검을 만들었지만 기한을 넘겨 완성했기에 자신이 목숨을 잃을 것을 직감했다. 그래서 암검雌劍만을 초왕에게 바치기로 하고 수검雄劍은 자신의 집 부근에 숨기고 임신 중인 막야에게 아들이 생기면 아들에게 복수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후 간장의 예상대로 초왕은 간장을 처형했고, 막야는 아들 적비를 낳았다. 세월이 흘러 적비는 무술을 연마하며 복수를 노렸으나 초왕이 적비가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는 꿈을 꾸고 전국에 적비를 잡아오라는 방을 내렸고, 이에 적비는 산으로 도망갔다. 산에서 슬퍼하고 있던 와중 적비는 어떤 협객을 만나는데, 그 협객은 적비에게 그의 목을 주면 자신이 원수를 갚아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적비는 자신의 목을 스스로 쳐 수검雄劍과 함께 머리를 그 협객에게 맡기었다. 적비가 자신의 목을 베고 나서도 몸은 여전히 꼿꼿이 서 있었으며 협객이 그에게 반드시 약속을 지키겠다는 맹세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시체가 쓰러졌다고 한다.
협객은 적비의 몸을 묻어준 후, 초왕에게 가서 적비의 목을 내놓으면서 적비를 해치웠다고 말했다. 그리고 원한을 없애야 한다며 솥에 적비의 머리를 끓이게 했다. 그런데 사흘이 지나도 머리가 문드러지지 않고 둥둥 떠있어 협객은 왕이 살펴보아야 한다며 솥에 접근하게 했다. 왕이 솥에 접근한 바로 그때 협객은 몸을 날려 초왕의 목을 쳐 솥에 넣었다. 놀란 군사들이 달려들려 하자 협객은 자신의 머리도 베어 솥에 빠뜨렸다. 그리하여 솥에 세 개의 머리가 둥둥 떠다니며 삶아졌고 곧 누구의 것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엉켰다.
괴기스럽고 끔찍한 이야기이다. 청동검 명장인 간장의 최후가 편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간장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면이 있어서 후세 사람들이 복수의 희망을 새겨넣은 듯하다. 그리고 초왕 입장에서 보자면 언제나 제일 위험한 순간은 자신이 원하는 달콤한 말을 하는 인간들이 접근해 올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