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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다 Oct 30. 2020

호스피스는 수업 중

호스피스도 매주 정해진 시간마다 수업이 있고 특별한 절기마다 이벤트가 있었다.

봉사자 선생님들과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고민하고 준비해준 프로그램들이 참으로 다양하고 정성스러웠다.

그동안 받았던 수업에 대한 수업료 한 푼 내지 않았지만 호스피스를 졸업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글을 적게 된다.   


그중에 가장 좋았던 건, 엄마의 일생을 정리할 수 있게 병원 측에서 제공한 노트 한권.

"나를 담다- 나의 기록 노트"

엄마가 직접 쓸 수 없을 때는 가족이 대신 인터뷰하듯 써보시라고 하며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건네어주셨다.

나중에 환자가 직접 들려주지 못하는 본인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이 되어 후대에게 전해질수 있다며..


탄생부터 가장 행복했던 기억 소중한 사람.. 목차처럼 주제가 정리되어 있어 그냥 따라서 쓰기만 해도 저절로 완성이 되는 형태였다. 

당장 엄마에게 질문을 해댔다. 

"엄마, 엄마가 가장 행복했을 때는 언제야?"
"엄마, 엄마 어디서 태어났지? 할아버지 이름도 얘기해봐..." 
아직 기력이 있고 정신이 말짱하실 때 많이 적어야 한다고 해서 틈날 때마다 엄마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엄마가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며 웃으며 나에게 이야기해준다.

의외의 순간들.. 그리고 엄마의 깊은 기억 속에 추억이 솔솔 나온다. 받아 적는 나도 너무 즐거웠다.

 

"늬 오빠가 전학을 갔는데 선생님들이 서로 데려가려고 해서 어깨가 으쓱했지.. 없는 형편에 공부를 잘해줘서 참 고마웠어.."
"서진이가 통통하니 건강하게 자라줘서 고마웠고, 기뻤어.."

행복한 추억에는 자식 자랑과 손주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우린 이렇게 엄마의 인생을 함께 정리했다.

이 노트는 이제 가장 소중한 엄마의 유산이 되었다.


호스피스의 생활이 무료하지 않고 매일이 새로운 건 매주 때마다 다양한 봉사로 찾아오시는 선생님들을 만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침이면 향기 좋은 차를 우려내서 밝은 미소로 차를 권해주시는 봉사자님들을 만난다.
"따뜻한 차 한잔 하세요~오늘은 국화차 하고 얼그레이예요.. 어떤 거 드릴까요? 
"한잔 한잔~두 잔씩 다 드셔 보세요~~"

향긋하고 따뜻한 차 한잔이 답답한 마음을 싸악 어루만지며 내려간다. 

봉사하시는 분들의 따뜻하고 밝은 웃음이 차와 더불어 위로가 되어 준다.


차 한잔 마셨나 싶은데 발 마사지와 목욕봉사하시는 분들이 오신다.

발마사지나 목욕은 미리 예약을 해둬야 하는데, 발마사지는 누워있는 엄마에게 따뜻한 스팀타월로 혈액순환도 시켜드릴 수 있고 봉사자 분들이 마사지를 하며 이런저런 얘길 걸어주시니 꼭 신청을 잊지 않았다.

침대에서 점점 내려올 일이 없어지는 엄마의 발은 깨끗하고 뽀얗다. 


목욕봉사.. 이게 정말 거나한 행사이다.

먼저는 간호사 선생님께 목욕하러 간다고 말씀을 드리면 팔뚝에 심긴 주사 포트에 겹겹이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방수포를 감싸주시고 수액줄을 제거한다. 콧줄 연결된 배액관도 공기가 역류하지 않도록 중간밸브를 잠그고 배액 주머니와 분리를 해주신다. 그 뒤에 목욕봉사자 선생님들이 오시면 침대와 목욕 침상을 붙여놓고 엄마를 시트채 이동하고 엄마가 봉사 선생님들과 목욕하러 간 사이, 침대 시트며 이불이며 새 걸로 싹~갈아놓고 또 후다닥 엄마 목욕하는 곳으로 뛰어들어간다. 아무래도 선생님들이 잘해주시려고 해도 딸만한 손길이 있을까 싶고 엄마의 구석구석은 내가 더 시원하게 씻겨드릴 수 있어서 이다. 

병원에 입원하고 처음으로 씻는 날은 따뜻한 물에 시원하게 때도 밀어드리고 양치질도 개운하게 하셨다. 콧줄에 연결된 배액관을 잠가놓고 하는 목욕이라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언제라도 역류가 될까.. 목욕하다가 찬 바람이라도 들어 감기라도 올까.. 초보 보호자는 마음이 급했다.

드라이로 머리까지 말리고 나서 얼굴에 로션을 발라드릴 때는 한숨이 절로 쉬어졌다. 

매번 누워계시니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등이라도 시원하게 긁어드릴 수 있어 목욕이 참 좋은데 보호자한테는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이것도 나중엔 요령이 생겨 목욕봉사가 없는 한가한 오후 시간에 엄마랑 둘이 한가롭게 목욕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를 혼자 씻기고 닦아 새 옷을 입혀 나온다는 게 쉽지 않지만 수많은 손길보다 내 손이 더 좋으신 엄마니까. 

목욕봉사는 우리가 있었던 가을 겨울보다 여름날엔 봉사자 선생님들이 찜통에서 샤워를 시켜야 하고 늘어진 환자를 옮기고 들고 해야 하니 정말 더 힘들 것 같았다. 함께 해보니까 그 수고가 너무 감사했고.. 일주일에 두 번씩 매번 와주시는 봉사 선생님들이 정말 감사했다. 


음악시간은 엄마가 특히나 좋아했던 프로그램이다.

동요부터 트로트 복음성가, 가요에 팝송까지.. 정말 모든 장르를 환자의 요청에 맞춰 불러 주시기도 하고 함께 연주할 수 있는 간단한 악기로 박자를 맞춰보라고 건네어 주시기도 한다. 음악시간엔 닫혔던 커튼도 서로 열고 같이 웃으며 들으며 병실이 밝은 에너지로 가득 차오른다. 

엄마가 좋아하던 곡 You raise me up을 멋지게 불러 주시던 음악 선생님은.. 목소리도 곱고 노래실력도 빼어나셨다. 엄마를 위해 그다음 시간에 가사까지 따로 출력해 주시고 기억하며 노래해 주시니 그 또한 감동이고 감사했다.  다음 시간에 만나자 약속을 하고 헤어져도 그 일주일새에 세상을 떠나실 수도 있는 분들이 모여있기에.. 그 선생님의 배려가 특별했다. 

음악이 주는 힘은 대단해서 함께 노래를 듣고 있을 땐 모두 진통제를 찾지 않는다. 

수시로 통증과 싸우는 분들이 모여 있어서 서로 경쟁하듯이 진통제를 달아매는데, 음악시간만큼은 보호자나 환자 모두 행복한 진통제를 맞는 느낌이다.


꽃꽂이 수업

매주 싱싱한 꽃으로 꽃냄새도 맡아보라고 하고 화초도 골라 심어 보게 한다. 대부분 환자가 직접 손을 대어 만지기 어렵기에 보호자들이 대신 꽃병을 만들기도 하지만 매주 새로운 꽃과 화초 덕분에 병실엔 늘 꽃이 있다. 

처음엔 꽃을 꽂아 사물함 쪽에 두었는데, 정작 엄마는 얼굴을 돌려 꽃을 감상하기 어렵기에 그 뒤엔 옷걸이에 총총히 걸어 엄마가 볼 수 있는 위치에 꽃을 걸어 드렸다. 

눈떠서 꽃도 보고 옷걸이를 내려서 냄새도 맡아보라고 하고..

감각이 점점 무뎌져 가는 시간에 꽃은 좋은 재료가 되어 준다. 아기에게 촉감책을 읽혀주던 그때처럼..

병실이 건조하니 꽃 말림도 잘돼서 예쁘게 며칠 보고 난 뒤 건조된 꽃으로 꽃꽂이를 다시 하곤 했다.

병실생활이 길어지니 프로그램 속에서 또 다른 프로그램이 생긴다.



미술시간.

환자와 가족의 사진으로 캐리커쳐도 그려서 액자로 담아 주시고 색연필로 컬러링 도안을 채우는 것도 할 수 있다.

한 장씩 받아서 그리던 그림이 나중엔 바인더에 끼워 볼만큼 많아졌다. 

색칠은 내가 하고 엄마는 평가만 한다.

"이건 어때??"

"저쪽 게 더 이쁘다."

"그래? 다음엔 더 예쁘게 잘 칠해야겠네.." 

또 아빠와 엄마의 손을 포개어 손 석고도 뜨고 문구도 예쁘게 넣어서 선물상자에 정성껏 담아 포장해 주신다. 

모든 것 하나하나에 정성과 배려가 담겨있다. 젊은 선생님들이었지만 늘 예의 바르고 상냥하게 설명해주시고 모든 활동을 해보라고 권유해 주신다. 

엄마와 아빠가 손을 포개고 있던 따뜻한 시간..

덕분에 우리 가족에겐 엄마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많은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중에서 나에게 특별히 감동이 되었던 건.. 보호자를 위한 점심 초대였다.

호스피스 생활에서 보호자는 제때 먹는 것도 쉬는 것도.. 자는 것도 어렵다. 

한 달 여가 지날 때쯤 점심에 보호자를 위한 점심 초대가 있으니 꼭 나오라고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미리 전단지를 주신다. 한 병실에 있어도 서로 각자의 환자를 보느라 얼굴 대고 얘기하기 어려운데 같은 병실 보호자들을 모두 초대해서 한 테이블에서 고급진 도시락을 차려놓고 차와 과일을 준비해서 위로를 해주신다. 

"어머니 보시느라 고생 많으시죠.."

"저희는 췌장암이에요.." "저희도.." "저희는 위암이에요..."

서로의 형편을 잠시라도 나누고 나니 서로에게 더욱 공감을 한다. 같이 밥 먹는데 시간은 채 20분도 안될 거 같은데 그 시간이 참 힘이 되었다.  편하게 맛있는 밥 한번 먹기 힘든 병실생활을 이해하고 배려해준 병원 측이 또 너무 감사했다. 

보호자들은 내적으로는 우울하고 육 제적으로는 고된 시간을 함께 견디고 있었기에 보호자를 위한 클리닉이 별도록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 남는 마음의 상실감도 크지만 오랜 간병 시간은 몸에 무리를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의 도시락은 남김없이 맛있게 다 먹었다.

물 한 모금 못 드시는 엄마를 곁에 두고 나는 그동안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었다. 엄마도 못 먹는데 보호 자식을 따박따박 받아먹기도 싫고.. 그럴 입맛도 아니었다. 끼니때가 되면 간단하게 복도에 나가 초코파이 하나 먹고 커피 한잔 마시고 들어왔다. 그마저도 단내가 엄마의 식욕을 자극할까 싶어 멀찌기 떨어져 앉아 커피만 맹숭맹숭 들이켰던 터다.  그러던 차에 받은 도시락이라서 그럴까.. 밥이 위로가 되었다.  


호스피스의 수업들속에는 수많은 봉사자의 마음이 녹아 있었다.

봉사는 누가 하나 싶었는데 대부분 50대~60대 연령의 어머님들이 많았고 젊은 봉사자 선생님들은 40대도 있으셨다. 머리가 희끗하신 부부가 함께 봉사로 매주 찾아오시기도 하셔서 볼때마다 참 아름다워 보였다.

 께 얘기를 듣다보니 이곳에서 부모님을 떠나 보내보신 분들이 봉사자로 오시거나 당장 같은 병원에 부모님이 입원하고 계신분도 계셨다. 교회에서 봉사를 하러오신 목사님들, 권사님들도 계셨고..

각자의 이야기는 다르지만 한결같이 바라는것 없이 일부러 시간 내어 오셔서 열심으로 따뜻하게 마음을 주고 가시는 분들- 마지막 수업을 하는 환자들에게 밝은 에너지를 주시기에 그 어떤 봉사보다도 큰일을 해주고 계신 분들이다. 


호스피스를 졸업하며 받은 수업을 하나하나 떠올려 볼때 참. 많은걸 받았구나 싶어..감사함이 밀려왔다.

엄마와의 추억 상자에도 소복히 추억이 쌓였다.

 


ⓒ h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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