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다 Nov 01. 2020

소음

이웃한 옆 침상의 아주머니는 위암으로 모든 걸 절제한 상태셨는데, 먹으면 바로 콧줄로 먹은 게 넘어 나왔다. 

그래도 열심히 커피며 비스킷이며 과일들을 삼키곤 하셨는데,, 보호자들은 무엇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다양하게 먹이고 싶은 게 한 마음인지라..'이것도 좀 먹어봐.." "이거 오늘 참 맛있어 한번 더 먹어봐.." 한다. 
과일냄새라도 진동을 할 때쯤 엄마가 등을 돌려 누우신다.


"..... 사과 한입만 먹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의사는 엄마에게는 물 한 모금 허락하지 않았다.
위가 있어도 장이 막혀있는 상태에서는 내려보내지는 모든 건 장 내 가스와 복통만을 유발할 뿐..

그럴 때면 나는 엄마의 눈에 안대를 대어드리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틀어드렸다. 

음악으로도 닫힌 커튼을 비집고 넘어오는 냄새는 어찌할 수 없다.

엄마도 더 이상 말씀을 하지 않는다.

그럴 땐 어떤 말로도 위로해드릴 수가 없다..

매일 돌아오는 삼시 세끼 식사 시간이면 엄마와 나는 커튼을 닫아놓고 잠을 청할 뿐이다.

호스피스에서도 싸움이 난다.

호스피스라는 병동은 환자와 간호사, 의사와의 인격적인 교제가 있고 따뜻한 배려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지만 예민한 마음은 종종 싸움으로 이어진다. 


그날도 시작은 작은 것에서 출발했다.

새로 들어온 간병인 아주머니가 그간 조용한 병실의 적막을 깨고 쩌렁쩌렁하게 울려대던 목소리로 환자를 돌보며 지나가는 동료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나도 적잖이 시끄러웠지만, 바로 옆 침상이 아니기에 참고 지내던 터였다. 서로 병상이 나란히 붙어있는 쪽에서는 상당히 거슬렸으리라..  20대의 젊은 보호자가 가리어진 커튼을 걷어치우며 얘기했다.

"목소리 좀 낮춰 주세요. 여기 혼자 계신 거 아니잖아요."

병원생활에 오래 단련된 간병인 아주머니가 질세라 큰 목소리에 더 크게 힘을 준다. 

"아유 누가 목소리 크다고 머라고 해.. 이렇게 태어난 걸 어쩌라고.."
"그쪽 엄마가 새벽에 시끄럽게 할 때도 여기 다 참았는데 어디서 되레 큰소리야.."


터줏대감처럼 이 병동에서 오래된 간병인 아주머니는 쉽사리 화를 꺼치지 않고 병실이 떠나갈 듯 센 소리를 낸다. "허이 참.. 어이가 없어서.. 내가 이 나이 먹고 저 젊은것한테.."

70이 가까워 보이는 간병인 아주머니의 강짜에 20대의 젊은 보호자는 상대가 될 리 없다.

듣기 싫은 소리에 커튼을 닫아놓고 감정이 삭길 기다릴 뿐이다.

다시 엄마의 귀에 이어폰을 꽂아 드린다.


 



이곳에서 만난 간병인 아주머니들은 대부분 50대 후반에서 70대가 가까운 연세의 분들이다.  

호스피스의 간병이라는 건 일반 환자의 간병과는 또 다른 숙련됨이 필요해서 젊은 분들보다는 연륜이 있고 나이 드신 분들의 손이 더 필요할 때가 있는 것 같다. 마지막이 정해져 있는 환자를 돌보는 심정은 어떨까.

임종을 함께 맞이하고 돌보던 환자를 떠나보내야 할 때는 그 기간이 짧으나 길거나 그분들에게도 마음의 훈련이 필요할 게다. 

곁에서 가까이 보니 간병인 아주머니들만의 커뮤니티가 있고 위계가 있었다.

 "형님..."으로 시작하는 여자 어른들의 위계. 


돌보던 환자가 돌아가시면 그날 바로 계약이 끝나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곧 다시 병동에서 만날 수 있었다.

환자를 돌보던 보호자가 지쳐 간병인이라도 찾는 자리가 생기면 바로 그녀들의 네트워크가 발동한다. 

서로가 서로를 추천하며 계속 호스피스 병동안을 떠나지 않고 맴돈다. 

이분들은 점심때면 삼삼오오 모여 오랜 병원생활의 짬으로 병원밥보다 더 맛있는 점심을 만들어 먹는다. 

이 일은 먹는걸 잘 먹어야 한다며, 탕비실에 모여 집에서 가져온 반찬을 서로 나눠내어 놓고 연배가 비슷한 보호자들과는 스스럼없이 언니 동생이 되어 믹스 커피까지 맛나게 한잔 나눠마신다.

병실 안에서는 취사가 금지지만 탕비실에 있는 전자레인지 하나로 삶은 고구마부터 뜨끈한 국물까지 다양한 요리가 가능했다. 

나이가 드신 그분들 보기엔 엄마 옆에 붙어서 노트북이나 끄적거리는 내가 어설퍼 보였으리라.

 "형님"간병인 아주머니가 식사 때마다 탕비실로 나를 챙겨 부른다. 

한수저를 같이 뜨고 나면 선물로 들어온 과일이며, 주스까지 서로 나눠 먹으며 식구가 되어간다.


그러던 중에 우리 앞쪽에 새로운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며느리와 가족들이 수시로 들락거렸지만 간병인 아주머니가 상주하며 어머니를 돌봐주셨다.

새로 들어오신 간병인 아주머니는 환자 어머니에게 너무 살갑게 다정했다. 새벽 여섯 시 반이면 대야에 물을 떠서 어머니 씻기는 소리가 들렸다. 
"아유 어머니 오늘도 잘 주무셨어요?" "이렇게 해야 개운하지~ 옳지~~"

조용한 아침 병실에 찰박찰박 물로 씻기는 소리와 다정한 아침 인사가 커튼 너머로 들려온다. 


병실에서 세숫대야를 놓고 어떻게 씻기는 건지 궁금했다. 

"저 아침에 어떻게 씻겨드리는 거예요? 저도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간병인 아주머님은 흔쾌히 당신이 맡은 환자는 아침마다 씻겨드리는걸 기본으로 한다며 전문가의 솜씨를 알려주셨다. 며칠 아침을 두고 본 뒤에 나도 화장실에서 따뜻한 물을 떠 오고, 엄마 등 뒤로 방수포를 깔아놓고 마른 수건을 준비해서  침상 목욕을 시켜 드렸다. 
기저귀를 갈 때마다 물티슈로 아랫도리를 닦아 드리지만 따뜻한 물로 씻어드리는 건 더할 나위 없이 개운해하셨다. 적당히 따끈한 물로 엉덩이며 등허리까지 씻겨드리고 새 기저귀에 말끔하니 환자복도 아침마다 갈아입혀 드렸다. 힘들고 번거로운 아침이지만 이렇게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 간병인 아주머니는 늘 찬송가를 입에 흥얼거리시며 밝은 얼굴로 환자 어머니에게 큰딸처럼 살갑게 대하셨다. 환자 어머니가 큰 볼일이라도 보는 날엔.. 

"어머니 향수 냄새나는데? 우리 한번 확인해 볼까? " 하며 농담을 섞은 애교 있는 말로 환자를 편하게 대해주셨고.. 불안해하는 환자 가족들에게도 큰언니처럼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해 천천히 설명도 해주셨다. 

"사람이 숨이 넘어갈 때 얼마나 힘을 쓰나 몰라.. 그래서 진땀을 흘리고 열이 오르거든.."
"속에 있는 거 다 쏟아내시고 가시려나 보네.. 가시기 전엔 거의 그래...."

"소변량이 주는 건 혈압이 떨어 저서 그래.. 이뇨제가 들어가도 소변이 그것밖에 안찼으면..." 
임종전 증상에 대해서 간호사들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신다. 

병실 안 보호자들이 쫑긋 귀를 세우고 듣는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직접 보게 될 일이었으니까.

이렇게 이웃한 간병인 아주머니에게 나는 많은 걸 배웠다.  


호스피스에는 모두에게 석 달이라는 제한시간이 있다.

국가에서 지정한 규칙이라고 한다. 석 달이 되면 방을 빼야 하고 상태가 안정적인 분들은 그전에 다른 호스피스에 입원대기를 걸어둬야 한다.

보통은 석 달 안에 빠르면 입원하자마자.. 일주일 만에.. 짧게 계시다 가시는 분들도 있는데, 평균 한 달 반은 계시는 듯하다. 벌써 우리 앞에 병상은 세 번째 새로 주인이 바뀌었다.

누군가의 엄마가 또 병실에 새로 입실하셨다.


ⓒ hada

이전 10화 호스피스는 수업 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