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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다 Nov 01. 2020

이웃집 남편 이야기

호스피스에서 있다 보면 한 집안의 가정사가 순식간에 읽혀진다.

환자와 보호자의 모습을 보면 그동안의 삶이 어떠했을지 감히 짐작이 되어버릴 때가 많다.

찾아오는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그리고 환자와 보호자의 마지막 인사 속에서..

누워있는 엄마들마다 하나하나 아깝지 않은 인생이 없다.


호스피스에서 여자 환우 방과 남자 환우 방이 별도로 분리되어있다.

여자 방의 보호자들은 남편이 24시간 간병을 도맡아 하는 경우도 있고 나이 드신 어머님들께는 간병인이 붙기 마련인데, 남자방의 보호자들은 거의 간병인이 아닌 아내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 


내가 만난 병실의 이웃은 지극한 정성의 남편분들이 많았다.

첫 번째 이웃인 50대 위암 말기의 아내를 6개월째 보듬던 아저씨는 단정한 매무새에 아침이면 자고 일어난 이불을 들고나가 깨끗이 털어 개어오시곤 했다. 창가에 오종종한 화초에도 물 주기를 놓치는 법이 없으시다.

하던 생업도 모든 걸 내려놓으시고.. 장성한 아들, 딸.. 며느리가 있어도 모든 수발을 남편 된 아저씨가 처리했다.


"배 하나 드셔 보세요. 이 사람 친정에서 자꾸 보내네요."
나이 든 노모가 아픈 딸을 위해 이것저것 자꾸 챙겨 보내신단다. 아저씨가 보호자 침대에 맛있는 배를 하나씩 놔주고 가신다. 같은 병실 식구들도 살갑게 챙기신다. 오랜 병원생활 속에 잘 적응된 모습이셨다. 

아저씨네 창가엔 아주머니의 젊을 적 사진도 액자로 걸어놓으셨다. 미모가 대단하신 분이셨는데.. 처음 본 많은 사람들은 아저씨가 '어머니'를 봉양하고 있는 줄 안다. 오랜 항암치료에 머리도 없고 살집 하나 없기에 남자처럼 보이기까지 하니 아저씨를 보며 "어머니 아들이신가 봐요.." 한다. 

 아무 소리 없는 아주머니 대신 아저씨가 "아뇨 남편이에요~" 하고 사람 좋은 미소로 웃어주신다.  

그런 소릴 들을 때마다 아주머니가 얼마나 속이 상할까 싶다.

시간이 좀 지나 내가 프라하에서 살고 있다고 하니, 아프기 직전 부부동반으로 유럽여행 갔던 이야기를 신나게 하신다. "이제 좀 살만하니 재미있게 여행 다니자고 했었는데..." 

뒷말을 하지 않아도 그 맛이 쓰다.


두 번째, 바로 그 맞은편 침상을 지키는 보호자도 역시 남편이었다.

40대 후반쯤 되었을까.. 아직 어려 보이는 20대 초반의 아들 딸과 셋이 번갈아가며 엄마 옆을 지켰다.

아들이 아침에 오면 아빠가 출근 준비를 하고 서둘러 일하러 가신다.

오후 나절 딸이 병실에 들어서며 모든 병상에 인사를 하며 퇴근했음을 알린다. 딸이 옷을 갈아입고 엄마 옆을 지키다가 아빠가 퇴근해서 오면 집으로 가며 남편이 아내의 밤을 지켜낸다.

아들과 딸들이 오가며 밝은 얼굴로 인사하고 아저씨의 얼굴 또한 밝았다. 쉬는 날이면 엄마 옆에 셋이 붙어서 같이 먹고 주무르고 쓰다듬는다. 보기만 해도 사랑이 넘쳐 보인다.

아이들이 결혼 전이라 아픈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애달플까 싶었다.. 이때만 해도 더 젊은 환자가 호스피스에 있을 거라 생각을 못했다. 

젊은 어머니는 췌장암에 복수가 차올라 작은 체구에 누워있는 것도 고통스러워하셨다. 

췌장암의 고통은 심하기로 유명하다. 줄 수 있는 최대의 진통제를 다 써도 그 어머니는 통증으로 오그린 몸을 제대로 펴질 못하셨다.

민머리에 앙상한 모습은 화학적인 약품이 얼마나 몸을 더욱 아프게 한 걸까 라는 생각에 상대적으로 역시 엄마가 항암치료를 안 한 건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세 번째 또 한 명의 남편은 70대 아저씨다.

전라도 사투리의 진하고 거친 말투의 아저씨는 입실하실 때부터  병상의 아주머니와 싸우기 일쑤였다.

아주머니는 입이 돌아가 있었어도 키도 크고 얼굴이 고운 아주머니였다. 찾아오는 아들 딸들도 키가 훤칠하니 잘 생겼는데, 이 댁이 한방에 들어오고 난 뒤부턴 조용하던 병실이 매일 시끌시끌 해졌다

아주머니는 40대에 시력을 잃고 점자로 다시 공부를 해서 학생을 가르치는 열정까지 넘치던 분이셨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엔 건강하고 식사도 잘하시는 듯했지만 문제가 된 시신경과 뇌 쪽에서 암이 차오르고 있다 했다.

눈이 안보이시니 옆에 보호자가 있어도 큰소리로 불러 젖힌다. 그 어머니의 세상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기에 새벽에 두시든 세시든 아주머니의 큰소리에 병실 사람들이 같이 잠이 깨곤 했다.


아저씨는 훤칠한 키에 유들유들한 한량 같아서 아주머니와 지겹게 싸우시고 말년엔 별거를 하던 차였다고 한다. 그래도 아들, 딸이 직장에 가정에 매어 있으니 자기가 와서 밤에 지켜주고 간단다.

옆에서 보면 정작 밤에 지켜주는 게 아니라 두 분은 서로 붙어있으면 싸우기 바쁘다.

"어허 머시 어쩌타고 자고 그래싸~~" 

"어허 이럼 안된당께.."

아주머니도 한 성질 하신다.

"이럴꺼면 오지 말으야. 시끄러!"


교대시간에 맞춰 오기로 한 자식들이 늦기라도 하면 전화로 성화다.

"으디냐? 잉!  얼른 오니라. 늬 엄마가 너만 찾으야." 

자식들이 오면 뒤도 안돌아보고 휑하니 나가신다. 

어쩜 저렇게 평생을 싸우고도 여기서도 저러실까 싶은데..

모든 가족이 평안하게 마지막을 인사하는 건 아니다.


자식과도 아내와도 불편하게 살았던 그 아저씨도 마지막에 아내의 시간이 한 달 남았다는 의사의 얘길 듣고는 

"우리도 얼마 안남았다요.."하고 지나치시는 얼굴에 눈물이 번져있었다.

아저씨의 눈물 속에 여전히 표현에 서투른 사랑의 감정이 녹아있다.

아내가 이렇게 세상을 뜨고 나면 자식들과도 인연이 다 하게 될걸 알고 있는 듯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걸 몇 달 안에 고칠 수는 없는 노릇.. 삶을 넘어가는 아내의 끝을 부여잡고 있는 아저씨는 외로워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남편은..

나와 동갑인 아내를 돌보던 40대의 젊은 남편.

언뜻 보기엔 30대 초반으로도 보이는 젊은 남편이 호스피스에 보호자로 왔다.

젊은 사람이 호스피스에 온 것만으로도 놀라웠는데 누워있는 환자를 보고는 더 안타까웠다. 

자고 있는 옆모습만 스쳐 봤을 뿐인데.. 예뻤다. 

"아유.. 어떻게.."

침상에 붙은 인적사항으로 나와 동갑친구인걸 알았기에 더 마음이 쓰였다. 

젊은 아내는 친구처럼 "야"하고 남편을 불러 얘기했다. 대부분 진통제를 더 찾거나 수면제로 재워달란 얘기를 해달란 요구였다. 우리 엄마와 바로 커튼을 맞대고 있었지만 그녀는 좀처럼 커튼을 걷지 않았다.

진통이 거세어지고 피부가 괴사가 있어서 봉사자들이 손을 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오직 남편만을 찾았고... 또 그 남편은 모든 걸 웃으며 달래 가며 해결했다. 

젊은 남편은 병원의 아내와 집을 오가며 살림을 처리했다.

병원에 딸들을 호출해 놓고 몇 시간 자리 비운 젊은 남편은 집에 가서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청소까지 하고 아이들 간식까지 챙겨놓고 나오지만 갓 스물이나 되었을법한 딸들은 아빠의 수고에도 심드렁하다. 


우리 엄마가 떠나고 일주일쯤 뒤.. 그녀도 떠났단 소식을 들었다.




ⓒ h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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