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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다 Oct 13. 2020

호스피스 병동에서의 첫날

2019. 10. 9


호스피스 병동에서의 하루가 지났다.

새벽녘 울부짖으며 엄마를 외치던 중년 여성의 울음이 여기가 죽음과 맞닿아있는 공간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호스피스 병동에 누워있는 엄마의 손을 다시 부여잡았다.

여름날 헤어질 때 모습보다 수척해져 있는 모습이지만 날 잡아주는 엄마의 손은 여전히 보드랍고 따뜻하다.

이젠 엄마의  빈 뱃속에선 자꾸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  추석 이후 먹은 음식이 하나도 없고 수액으로만 버티는 가운데 불룩해진 뱃속의 가스를 뺀다고 콧줄을 연결해서 기계장치까지 동원되었다. 

엄마의 주름진 손에 지난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다.

작은 키에 비해 손이 큰 엄마, 마디가 굵어져 반지가 안 맞는다고 하던 때가 생각난다. 

그간 엄마를 봐주던 간병인 아주머니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엄마 옆에 가장 편한 옷차림으로 자릴 잡고 본격적으로 호스피스에서 엄마와 함께 지낼 준비를 이것저것 하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주는 파란 담요가 까시러워 집에서 내가 덮던 이불을 한채 가져다 놓고 세면도구와 스킨로션이면 더 필요한 게 없다.  


수액을 체크하고 바꿔주러 오신 간호사 분께 따라 나가  프라하에서 가져온 과자를 전달하며 딸이 왔노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땐 처음이라 간호사가 교대로 이렇게 많이 자주 바뀌는지 몰랐다.
하여튼 눈에 띄는 대로 간호사들을 만날 때면 주머니에 있는 간식이라도 챙겨주게 되었다. 주사라도 좀 정성껏 놔주시길 하는 맘이 없지 않은 소심한 촌지다. 

그날은 모든 게 낯설었다.


앞 병상에는 의식이 없어 보이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안 가는 모습의 환자를 둘러싸고 가족들이 마지막 인사가 한창이었다.  

'엄마.. 엄마.. 사랑해요. 걱정 말고 편히 가셔요. '

딸이 셋인가 보다. 찾아오는 사람들과 대화로 그 가족의 신상이 대충 파악이 된다.


딸들이 열심히 팔다리를 주물러도 앞 병상 어머니는 끝내 거친 숨결 외엔 뱉어내는 말 한 자락이 없었다.

호기심 어린 눈빛도 차마 그들의 이별에 누가 될까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침상 발치에 빼죽이 보이는 발끝이 멍든 것처럼 어두운 빛이 들어가는 것만 눈에 들어왔다.


얼마 되지 않아. 앞자리 병상이 비었다.

병상이 비어지고 이 분들이 어디로 가신 건지 이날은 몰랐다.

상태가 안 좋으셔서 중환자실로 가신 건가? 어디 가서 조치를 받으시나?..


나중에 알고 보니 임종이 가까워져 올 땐, 1인실로 옮겨 가족들과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방을 바꿔준다고 한다. 12층 병동의 가장 끝방..

죽음의 사신이 매일 밤 거둬갈 생명을 훑어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껏 긴장하고 위축되었던 첫날밤이 이렇게 지났다.


그다음 날 앞 병상에서 엄마를 부르며 울던 중년의 세 자매가 병실에 인사를 하러 올라왔다.

어젯밤 잘 보내드렸노라고, 저희가 그간 시끄럽게 해서 잘 못 주무셨죠.. 죄송해요.. 하신다.

마지막에 호흡기가 힘든 분들은 가래에 석션을 해줘야 할 때가 있고 산소공급기를 쓸 때가 있어 그때는 조용한 병실에 소음이 한가득이다. 하지만 잠시라도 그 순간의 소음으로 그 어머니가 편안하실 수 있다면 못 들어줄 게 없다. 이곳은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걸 서로 알고 있는 호스피스 이기에..

바로 침대가 붙어 있던 옆 병상 어머님은 몸을 일으켜 울고 있는 딸을 안아서 위로해 주신다.


슬픔을 이겨낼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시뮬레이션을 이렇게 시작했다.


ⓒ h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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