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생긴 일 ep29
♪ ♫ 무덤 문이 열리고 마른 뼈 살아나네 주로 인해
거짓은 무너지고 진리가 선포되네 이곳에
오- 생기가 불어오네
오- 성령이 일하시네
오- 회복이 일어나네
부흥이 시작되네
성령의 바람 여기 불어와 권능으로 임하시네
거룩한 세대 여기 일어나 주님의 뜻 이루시네~ ♩ ♬
- [성령의 바람_ Wind of the Holy Spirit] -
“야! 아마리! 너 왜 이래!”
“내가 뭘!”
“마리야, 잠깐만 따라 나와 볼래?”
여자 메인 보컬이 찬양 연습 중에 마리에게 소리를 질렀다. 메인 보컬은 마리를 째려봤다. 이런 상태에서 연습이 재개되긴 힘들어 보였다. 존은 찬양 연습을 하다 말고 마리의 손을 잡고 예배당 밖으로 나왔다. 찬양 연습이 잠시 중단되었다.
“왜 이래? 이 손 좀 놔!”
존은 교회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마리의 손을 놔주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넌 정말 왜 그러니? 마리야”
“내가 뭘?!”
“넌 서브 보컬이야”
“근데?”
“그런데 라니? 네가 메인 보컬처럼 찬양을 하면 어떻게 하니?”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벌써 여러 번 연습이 멈췄다. 메인 보컬 여자애와 마리는 서로 이미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 있는 상태였다. 마리는 존의 끈질긴 권유에 플루트를 연주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서브 보컬로 찬양팀에 합류했다. 하지만 또다시 그 안에서 불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마리는 찬양이 시작되고 리듬과 분위기에 심취하기 시작하면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고 몸짓 또한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이 찬양을 이끌어가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아니 메인 보컬이 소울도 없이 노래를 부르잖아. 존 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건 네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잖아 마리야, 사람마다 자신만의 스타일과 방식이라는 게 있는 거잖아”
“너희들이 말하는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영적인 존재 아냐?”
“그런데?”
“그런데라니? 소울도 없이 영적인 존재를 향해 노래를 부르는 게 말이 되니? 난 아직 너네들이 말하는 성령이라는 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를 때 느끼는 소울은 이런 게 아니거든… 무슨 학교 교가 부르는 것도 아니고”
“….”
마리는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사실 존은 마리가 하는 말이 틀리지 않아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랐다. 존도 사실 메인 보컬이 그런 부분에는 좀 부족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가면 조금씩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이끌어오던 찬양팀이었다. 하지만 변화란 그냥 시간만 흐른다고 생기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곳에 사람들은 그런 변화의 바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 곳이었다.
호주 이민 1세대들이 세운 한인 교회는 한국의 80~90년대의 교회를 그대로 옮겨온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때 시간이 멈췄다. 이민 교회 구성원은 주로 가족과 친척들이 모이고 뭉치면서 커져왔다. 먼저 이민 온 가족이 자리를 잡으면 한국에 다른 친척들과 가족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이고 그 가족들이 이곳에서 가정을 이루고 하면서 교회가 커져갔다. 교회가 마치 씨족 공동체 같았다.
“여긴 무슨 가족들끼리 다 해 먹는 곳이니?”
“무슨 소리야?”
“몰라서 묻니? 다들 뭐 목사 가족 아니면 친척 그리고 친척에 친척들이 다 해 먹고 있잖아 안 그래?”
“…”
그들은 ‘가정교회’라는 타이틀을 달고 예수가 살던 시대의 초기 교회로 돌아가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마리가 보기엔 그들이 말하는 가정교회는 마치 ‘가족교회’처럼 비쳤다. 가족들끼리 뭉치는 교회 같았다. 가족 구성원, 즉 혈연으로 엮이지 않은 구성원은 그 교회에서 소외 아닌 소외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외부인이 이 교회를 찾아왔다가도 얼마 가지 못해 교회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이방인을 내치진 않지만 그들이 머물긴 쉽지 않았다. 처음엔 여느 교회처럼 환대와 관심에 마음을 열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그들이 정말 챙기고 아끼는 사람들은 그들의 가족들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마치 혈연과 지연 없이 오는 외부인과 이방인은 그들 가족의 성전을 꾸미는데 이용되는 도구 같다고나 할까?
시대가 변하고 세상도 급격하게 변해가고 있었지만 이곳의 교회는 이민 1세들이 한국을 떠나올 때 그때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그 향수를 느끼고 싶어서 교회를 세웠고 또 매주 그 향수를 찾아 이곳으로 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민 1.5세대(중고등학교 때 부모를 따라온 세대)와 이민자 2세대(호주에서 태어난 세대)가 자라고 또 한국에서 오는 이방인들이 섞이면서 이런 과거의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그들만의 세계에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나 같은 이방인들 말은 조금도 관심이 없잖아, 안 그래?”
하지만 교회를 이끄는 1세대들은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교회를 이끌고 나가가는 사람은 모두 1세대의 목사와 장로 권사들이었다. 그들이 교회의 규칙과 방향을 결정하고 그들의 말이 진리이고 또한 도덕이고 윤리였다. 살아갈 날이 많은 자들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자들이 원하는 데로 가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서로 간의 토론과 협의가 없어 보였다. 마리가 보기엔 이곳도 그저 탑다운(Top-down) 방식의 권위적인 한국 사회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너희들은 맨날 새로운 영혼을 구원한다면서 영혼구원! 영원구혼! 외쳐대지만 정작 너희들 영혼도 제대로 드려다 보지 못하는 거 같은데…”
“그게 무슨 말이야?”
“소울도 없이 찬양하면서 교회는 왜 오는 거야? 이곳은 소울이 가득한 곳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게 너희들이 해야 할 일 아닌가? 그런데 무대 위에서 무슨 마른나무 토박처럼 서서 교가를 부르고 있는 데 있던 소울도 다 달아나겠다. 단상에 올라온 자들이 그러는데 밑에 대중들은 오죽하겠니?”
“…”
교회는 이제 나이가 지긋해진 이민자 1세대와 그들의 자녀인 1.5세대와 2세대 그리고 그들이 낳은 3세대의 어린아이들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교회는 여전히 1세대가 주축이 되고 있었다.
“마리야! 그렇다고 너처럼 이렇게 불평불만만 늘어놓는다고 무슨 변화가 생기겠니?”
“…. 불평이 아니라 의견이야”
“그럼 좀 캄다운(Calm down)하고 말하면 안 되겠니? 의견을 말할 땐 감정은 좀 배제하고 말하면 안 될까? 반항과 불만은 절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어”
“됐고~ 너한테까지 설교 듣고 싶은 마음 없으니까 그럼 니들은 그냥 그렇게 사시던지요. 불만 많고 불화만 일으키는 난 이제 그만 찬양팀에서 빠질 테니. 너희들끼리 열심히 해봐, 됐지? 그럼 난 이만 안녕~”
“와락!”
“야~ 뭐얏!”
그때였다. 존은 등을 돌려 가려는 마리의 팔을 붙잡고는 그녀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그리고 마리를 품에 안았다.
“야~ 너 미쳤어!? 왜 이래 이거 놓지 못해? 야!”
“마리야, 난 네가 필요해, 제발 함께 하자”
“셋 셀 때까지 놔라~ 아님 죽는다~”
“너까지 나가면 어쩌니?”
“놔라~ 하나..”
“같이 바꿔보자, 네가 허락할 때까지 난 널 놓지 않을 거야”
“둘…”
“제발 마리야 부탁이야~”
“셋!”
“퍽!”
“으악~”
그때였다. 두 팔이 묶인 그녀는 순간 무릎을 강하게 들어 올려 존의 낭심에 일격을 가했다. 존은 그 충격에 온몸에 힘이 풀렸고 땅바닥에 널브러 졌다. 그리고 자신의 소중이를 붙잡고 바닥을 떼굴떼굴 구르며 고통스러워했다.
“야~ 너 조심해! 마지막 경고다.”
“으으아아 아”
“한 번만 더 내 몸에 손대었다간 그땐 정말 하나님 만나게 해주는 수가 있어 알겠어?”
마리는 등을 돌려 교회를 떠났다. 그 모습을 멀리서 찬양팀 멤버들이 혀를 내두르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리가 등을 돌려 떠나자 그제야 쓰러진 존을 향해 달려왔다.
“존~ 아 유 오케이?”
“와~ 무슨 저 딴 년이 다 있어 정말 미친 거 아냐?”
“정말 무서운 아이 구만”
“차라리 잘 됐다! 잘 됐어!”
“으으으아아아.. 마아.. 리야~”
존은 그 상황 속에서도 한 손으론 자신의 소중이를 감싸 쥐고 다른 한 손은 떠나가는 마리를 향해 뻗으며 고통 때문인지 슬픔 때문인지 모를 눈물을 흘렸다. 아마도 심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충격이 심했던 모양이었다. 존은 결국 병원으로 실려갔다. 고환이 파열되는 손상을 입었다. 다행히 그 기능을 상실하진 않았지만 한 동안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도 강한 충격을 받았다. 주변에서는 모두가 마리를 폭행죄로 신고해 쳐 넣으라고 했지만 존은 그러지 않았다. 혹여 다른 이들이 자신 몰래 신고할까 오히려 그들의 입단속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저 여자애래요?”
“아 거시기, 니킥으로 거시기를 날려버렸다는?”
“그려~ 와이구매, 생긴 건 곱상하게 생겨가 어이구 무시브라”
“내 그래가, 우리 아들보고는 쟤 근처도 가지 말라고 했다 아임니까?”
소문은 새어나가는 법이다. 교회에서 마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예배가 있는 주일, 마리가 교회에 나타나면 여기저기서 그녀를 흘기며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마리의 주변에는 좀처럼 사람들이 다가오지 않았다. 특히 교회 남자들은 더욱 그러했다. 그들은 교회에서 마리를 보기만 하면 꼭 한 번씩 자신의 소중이를 무의식적으로 내려다봤다.
“이모, 나 이제 교회 그만 나갈까 봐요”
“왜?”
“뭐 그냥 난 하나님과는 별로 안 어울리는 사람 같아 보여”
“그런 게 어딨어? 하나님은 모두를 사랑한단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를 미워하는 거 같은데…”
“아니야 그들도 언젠간 네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녀라는 걸 깨닫게 될 날이 올 거야”
“그게 도대체 언젠데?”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도 시간이 필요하단다. 그리고 사람마다 그때가 다 다른 것뿐이란다.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해.”
“하아~ 이모, 나 정말 안 나가면 안 될까?”
이모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마리를 품에 꼬옥 안아 주었다.
“마리야, 이모는 이제 살아갈 날이 많지 않아 이제 네가 거룩한 다음 세대가 되어야 해, 내가 바라는 건 그것밖에 없단다.”
마리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 눈물은 알 수 없는 감정을 품고 있었다. 이모가 바라는 것과 자신이 바라는 것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환(哀歡)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으로선 자신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길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건 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건 늙어 병들고 연약한 영혼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한 것이었다.
‘거룩한 세대…?!’
그게 이모가 말하는 거룩한 세대가 겪어야만 하는 고통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남자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