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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신

발리에서 생긴 일 ep26

by 글짓는 목수

“We are almost there. But the weather is strange.”(이제 거의 다 와 간다. 근데 날씨가 어찌 좀 이상한데…)

“I think so, there is too much dark clould.”(그러게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네)

“크어어어 엉~ 크어어어 엉”

“Look at the face. He looks so comfortable. ”(이 사람은 정말 천하태평 이구만)


폴은 아직도 단잠에 빠져 있었다. 고개가 꺾인 채로 입가엔 맑은 타액이 마르지 않고 계속 흐른다. 무슨 침 샘물 같아 보인다. 이윽고 차장밖에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빗방울은 조금씩 거세졌다. 차창과 차의 보닛을 때리는 빗소리가 요란하게 차 안에 울려 퍼졌다.


“Ahhhh… what is the sound? “(아아아 함, 무슨 소리예요?)


그때 폴이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눈을 비비며 억수같이 쏟아지는 창밖의 비를 올려다보면서 표정이 굳어졌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 같았다. 카렉은 사원의 아래 비탈진 도로를 운전해서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도로 위는 어느새 산 위에서 흘러내려오는 빗물로 개울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Oh No, it’s a mess!”(아놔~ 이거 낭패수만 쩝)


폴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챘는지 창 밖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What should we do? Go back?”(어떡하지? 그냥 다시 돌아갈까요?)

“No. keep going!”(아녜요 계속 올라가요)

“Yeah? What can we do there under this weather condition?”(예?! 이렇게 비가 많이 쏟아지는데 거기 가서 뭘 할 수 있겠어요?)

“I think it’s more dangerous to go down to the bottom of mountain.”(아무래도 지금 산 밑으로 내려가는 건 위험할 거 같아요)

“Yes, I agree with Paul. Look at that, it’s gonna be flood down there within 1~2 hours”(그래, 폴 말이 틀리지 않아, 이 정도의 빗줄기면 1~2시간 안에 아래 마을에 홍수가 날 거야)

“Awe! So what should we do now?”(헉! 정말 어떻게 해 우리 이제?)

“Let’s go up as much as we can”(일단 올라가요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어느새 비탈진 도로의 아스팔트는 물살에 덮여 마치 강처럼 보였다. 우리는 도로 위의 물살을 헤치고 계속 올라갔다. 천둥 번개가 치고 바람까지 거세게 불어 닥치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너무 강해서 창 밖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부르릉부르릉”

“what happen? The car doesn’t move. “ (어 뭐지? 차가 안 움직여 어떻게 해?)


차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카렉은 엑셀레이터를 밟았지만 차는 엔진소리만 크게 울리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때 뒷좌석에 앉아 있던 폴이 뒷 좌석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는 차의 뒷바퀴가 움푹 파인 아스팔트 속 진흙 웅덩이에 빠진 걸 발견했다. 바퀴는 진흙 속에서 공회전을 하고 있었다.


“Do you have Umbrella?“(우산 있어요?)

“Oh, wait! I have one in my bag“(어 잠깐 만요 내 가방에 있을 거예요)

“You gonna go out?“(밖으로 나가려고요?)

“Yes, I should look at it“(한번 밀어 봐야죠)


나는 가방에 있던 작은 우산을 그에게 건넸다. 그때 가방 안에 있던 대나무 피리를 발견했다. 그는 내가 건넨 우산을 받아 들고나가서 차의 상태를 확인했다. 뒷바퀴가 갈라진 아스팔트 사이에 빠졌다. 갈라진 틈으로 밀려든 빗물에 그 사이가 진흙탕이 되었다. 그리고 그 틈은 밀려드는 빗물로 틈이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다. 폴은 우산을 놓고 두 손으로 차를 밀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잠시 뒤 그가 차 안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이미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No way, It falls in too deep and it rained so much that the soil started to get swept away in the mountains “(안 되겠어요, 너무 깊이 빠졌어요. 그리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산속에 흙들이 쓸려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Oh no! What should we do now?“(헐~ 어떡해요? 우리 이제?)

“Oh, this is my flute.“(어라! 이건 내 피린데?)

“Right? It’s yours?“(맞죠? 당신 거?)

“Yes, it’s mine. How did you get this? “(네! 제 거예요, 어떻게 페이윈님이 이걸?)

“Did you see my e-mail?“(제가 보낸 이메일 안 보셨어요?)

“Oh, my phone is out of control since it fell in the water.“(제 핸드폰이 고장 났어요 물에 빠지는 바람에)

“Ok I see, I got this in Mt Batur.“(아 그랬구나 어쩐지, 제가 이거 바투르 화산에서 주웠어요)

“That’s good, you guys don’t move and stay in the car, OK?“(휴~ 정말 다행이다. 다들 차 안에서 기다려요. 어디 가지 말고, 알겠죠?)


폴은 자신의 피리를 받아 들고 차에서 내려 빗속을 뚫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Where he go? Don't tell me he ran away leaving us in car? “(뭐야 도대체 어딜 간 거야? 혼자 이 빗 속에. 설마 우리만 남겨 두고 도망간 건 아니겠지)

“No way, look! It’s more dangerous the outside of car“(설마, 그리고 지금은 차 밖이 더 위험해 보이는데…)

“피리리리리” (칸타타 147번 Jesus Joy Of Man's Desiring)


그때였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피리소리가 들려왔다. 빗소리에 묻혀 선명하진 않았지만 분명 피리 소리인 것만은 확실했다. 이윽고 빗줄기가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했다. 10분쯤 흘렀을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구름이 걷히고 푸른 하늘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건 무슨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는 하늘의 구름의 움직임이 5~6배속으로 변화하는 듯했다.


“Are you Ok? “(다들 괜찮죠?)


그리고 한참이 지나 폴이 다시 차로 돌아왔다. 비에 홀딱 젖은 그는 아이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공포에 휩싸여 있던 나는 그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그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문득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 거지 하는 때늦은 이성적 판단이 들자 다시 끌어안았던 손을 풀었다. 그도 당황한 표정이다. 그렇게 잠시 어색함이 분위기가 흘렀다.


“What about the car that fell into the pit??”(구덩이에 빠진 차는 어떡하지?)

“I brought some wood board.“(내가 나무판자를 좀 주워왔어요)


폴은 그 긴 나무판자를 웅덩이와 바퀴 사이에 끼어 넣었다. 그러자 바퀴가 판자 위를 구르며 빠져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사원 앞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창하게 변해있었다. 짧은 시간에 지옥과 천국을 모두 경험한 듯했다. 그것도 한순간에 변해 버리는 이 상황이 너무 신기하고 무서웠다.


“I feel like heaven now , it was a hell before a moment, aren’t you?“(좀 전까지 지옥이었는데 이제 천국 같다 그렇지?)

“Yes, it’s a moment. “(그러네 정말, 정말 한 순간이야 하하하)

“Then, Let’s go up to the heave gate in the temple.“(그럼 우리 저 사원 위에 있는 천국의 문으로 한 번 올라가 볼까 큭큭)

“Paul, did you come here before? “(폴, 여기 와봤어요?)

“Well… probably haha“(음... 아마도?! 하하하)


카렉이 폴에게 물었다. 폴은 마치 이곳을 와봤던 사람처럼 사원 위에 뭐가 있는지 알고 있는 듯했다. 사원 안은 조용했다. 폭우가 쏟아져서였을까? 사람들이 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모두 어딘가로 대피한 모양이었다. 매표소에 직원도 자리에 없었다. 덕분에 우리는 공짜로 사원 구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사원 입구에 비치된 사롱을 허리에 걸치고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That is ‘Heaven’s Gate’“ (저게 천국의 문이야)

“Wow awesome! “ (우아 멋있다)

“We call this ‘Candi Bentar’” (우리는 이걸 ‘칸디벤탈’이라고 불러)


우리는 천국의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그 위에는 길게 뻗은 계단 위에 세계의 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Karek, what is that up there?“(카렉 저 세 개의 탑은 뭐야?)

“Well, that 3 statue are meaning of 3 gods who Balinese believe.“(음 저건 발리인들이 믿는 세 개의 신을 의미하는 거야)

“Three Gods?“(세 개의 신)

“Yes, Brahma, the god of creation, Vishnu, the god of maintenance, and Shiva of destruction “ (응 창조의 신 브라흐마와 유지의 신 비슈누 그리고 파괴의 시바, 우리는 이걸 트리무리티(Trimūrithi, 삼주신)라고 말하지.)

“Wow it's amzaing, there are Trinity in Christianity too, I think it’s similar.” (와 신기하다. 기독교에서도 삼위일체를 믿는데, 뭔가 비슷한 거 같은데)


창조의 신인 브라흐만이 세상을 창조하고 잠들었다. 그러자 비슈누가 깨어났다. 그리고 인간 세상을 평화롭고 정의롭게 유지하기 위해 인간의 아바타로 인간 세상에 개입한다. 그 방식은 사랑과 자비의 방식으로 인간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또 하나의 신인 시바는 파괴의 신으로 혁명과 혁신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신이다. 카렉은 우리에게 세 개의 신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Which one do you like the most? “ (넌 어떤 신을 더 좋아해?)

“I like Vihun before, now I like Shiva the most“(예전엔 비슈누를 좋아했었는데 이젠 시바신에게 더 마음이 가는 거 같아)

“Why?“(왜?)

“There are full of inequality and poverty in the world, It didn’t change and wouldn’t be changed, you don’t think so?“(세상에 불평등과 빈곤이 만연하잖아 그런데도 세상은 변하지 않아 앞으로도 크게 변할 거 같지 않고, 그렇지 않니?)

“So…“(그래서?)

“So I think that new things will come after destroying the things existing.“(기존의 것들이 파괴되어야 새로운 것이 탄생하지 않을까?)


실제로 옛날엔 비슈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런데 갈수록 시바의 인기가 더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카렉이 말하는 두 신은 마치 인간 세상을 둘로 나눈 보수와 진보를 말하는 것 같았다. 가진 것이 많고 누리는 것이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이 이대로 온전하게 유지되길 바라기에 비슈누를 섬기고 가진 것이 없고 누리는 것이 없는 고달픈 삶을 사는 자들에겐 시바신이 나타나 세상을 바꿔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옛날의 발리는 다들 못살고 비슷했기에 비교할 것도 없었다. 서로의 물질적인 것들은 서로를 비교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땐 서로 생각의 다른 점을 비교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세상이었다. 너와 내가 다름을 물질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과 정신으로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발리가 관광지로 명성을 알리면서 해외 자본이 급격히 유입되고 외지의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물질의 풍요가 밀어닥쳤다. 그때부터 서로는 서로가 가진 것, 눈에 보이는 것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들을 가지기 위해 점점 바쁘게 살기 시작했으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함께하는 시간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만들고 가지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세상의 불평등과 빈부의 격차는 갈수록 심해졌다. 사람들의 표정에는 미소가 살아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헐벗은 예전의 모습은 이제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의 모습이 되어 버렸다. 그때는 모두가 헐벗어도 웃고 있었는데 이제 그 자들의 표정에는 더 이상 웃음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예전엔 모두가 그런 모습으로 즐거워했는데 이젠 그런 모습이 되지 않으려 더욱 기를 쓰고 이를 악물고 바쁘게 살았다. 그게 과거처럼 미소와 행복을 돌려주는 유일한 길이라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도 과거의 그 미소와 행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비슈누보다 시바를 더 좋아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사람들은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고 만족하기보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갈구하게 되었고 그건 파괴, 즉 혁명과 혁신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은 시바신이 발리인 들에게 가장 많은 인기와 숭배를 받고 있었다.


“It’s because Love and Mercy are gone in people’s heart”(그건 사람들 마음에 사랑과 자비가 사라진 탓이지)


그때 폴이 말했다. 나와 카렉은 그를 바라봤다. 폴은 우리에게서 떨어져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의 앞에는 세 개의 신을 상징하는 탑으로 향하는 계단이 높이 뻗어 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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