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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문

발리에서 생긴 일 ep27

by 글짓는 목수

“Wow, it’s so beautiful, isn’t it?”(우아 너무 멋있다 그치?)

“What is the name of the mountain which is seen between the gate?”(저 문 사이로 보이는 게 무슨 산이야)

“Mt Agung.”(아궁산이야)


나와 카렉도 등을 돌리고 그 문을 바라보았다. 좌우 대칭으로 반듯하게 갈라져 날카롭게 하늘로 뻗어 있는 두 탑 사이로 멀리 아궁산(Mt. Agung)이 보였다. 우뚝 솟은 아궁산 위로 해가 서서히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 석양빛이 천국의 문 사이로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은 천국의 문 앞에 반사되어 우리 얼굴을 환하게 비추었다. 내린 비로 천국의 문 앞에 고인 물은 마치 거울처럼 천국의 문과 뒤에 아궁산을 똑같이 비추었다. 그 모습이 상하좌우가 대칭이 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Peiyun, you just stand there, I’ll take a photo for you. There is the photo zone.”(페이윈 저기 서봐봐 사진 찍어줄게, 여기가 포토존이야”

“Ok ok “ (그래 그래)


나는 천국의 문 사이로 가서 아궁산을 바라보고 서서 포즈를 취했다.


“Wow, Look at this! It’s beautiful.“(찰칵, 이야 완전 멋있는데)

“Really? Please come on here Paul.“(그래? 폴님도 같이 와서 찍어요)

“Well… ok“(음 그럴까요? 하하)


폴이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그와 나는 천국의 문 양쪽의 탑에 등을 기대고 섰다. 연인이었다면 서로 손이라도 잡고 혹은 여러 가지 낯 간지러운 애정행각을 펼쳤겠지만 나와 그 사이에는 아직까지 서로의 신체를 의도적으로 접촉할 만큼의 친밀감이나 감정이 생기진 않았다. 그래서 나와 그는 양쪽으로 떨어진 기둥과 같이 서로 떨어져 포즈를 취했다.


“One, two, three”


카렉이 하나 둘 셋을 외쳤다. 그게 우연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와 나는 카메라를 바라보다 셋과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그건 계획된 것도 아니었고 사실 서로가 고개를 돌려서 쳐다본 것도 아니었다. 그저 고개는 비스듬히 카메라를 향해 있었고 서로가 곁눈질로 시선이 마주친 것이었다.


“띠리리링”


그때였다. 사진을 찍던 카렉에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멀리서 전화를 받던 카렉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그리고 그녀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There is something bad happened, Peiyun!” (어쩌지 큰일이야, 페이윈!)

“What’s wrong?”(왜 그래?!)


카렉의 표정은 심각했다. 그리고 그녀가 나를 보는 눈빛은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방금 웬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Your father got an accident.”(너의 아버지가 사고를 당했데)

“What?”(뭐!?)


그때서야 나는 나의 핸드폰이 꺼져있음을 확인했다. 배터리가 방전되어 꺼져버린 줄도 몰랐다. 나는 카렉의 핸드폰을 빌려 아버지에게 국제 전화를 했다. 아버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웬웬에게 전화를 했다. 웬웬은 상하이에 있는 어느 병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아버지가 지금 응급실에 누워 있으며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라고 했다. 나는 하늘을 바라봤다. 붉은 노을빛으로 물든 하늘이 마치 핏빛으로 번져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붉은 하늘 위로 난데없이 수 십 대의 전투기들이 삼각 편대를 이루어 북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새까맣게 떼를 이루어 이동하는 철새 떼를 연상케 했다. 눈앞이 흐려졌다. 눈에 고인 눈물에 굴절되어 들어온 노을빛이 산란되어 시야를 가렸다.


“Peiyun, what happened?“(페이윈, 무슨 일이에요?)

“My father…“(아버지… 아버지가…)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눈앞을 가린 그렁한 눈물방울 속에 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났다.


----- [과거 플래시 백 - 페이윈] -----


“爸, 你看看, 我把钉子和螺丝都整理好啦“(아빠!, 자~ 봐! 나 못이랑 스크루 종류별로 다 정리했다)

“好啦,那我爸爸看一下,噢!你整理得这么端端正正的呀,那爸爸该给你奖励才好吧?“(어디보자~ 아이고 우리 딸 깔끔하게 종류별로 잘 정리했네, 그럼 아빠가 맛난 거 사줘야겠다.)

“呀呼” (얏호~)


나의 아버지는 목수였다. 오지 티베트의 시골 마을에서 상하이로 상경해 온 민공(民工 :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일하는 하급 이주노동자) 출신 목수였다. 아버지는 시골에 있는 부모와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 홀로 도시로 상경했다.


그는 아파트 공사장 앞에 민공들을 위해 세워진 간이식당에서 처음으로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는 그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여자였다. 그녀도 시골에서 상경해 온 아버지와 같은 처지의 민공이었다. 의지할 곳 없던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사랑을 키워갔다. 둘은 돈을 모으기 위해 집도 없이 아버지의 트럭 뒤에 천막을 치고 그 안에서 생활했다. 낡고 오래된 트럭이 전 재산이었다. 그러다 둘 사이에 내가 생겼다.


나는 어린 시절 아빠를 따라 공사장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다. 아버지가 공사장으로 일을 하러 들어가면 공사장 주변에서 아버지가 알려준 놀이 같은 숙제들을 하며 아버지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나는 트럭에 실려있는 아버지의 갖가지 목수의 손공구들을 만지면서 이것저것 만들고 고치고 하면서 그것들의 쓰임새를 알아갔다. 그러다가 여기저기 상처가 나기도 했다. 내가 좀 크고 난 후부터는 아버지가 전동 공구를 만지는 법도 하나씩 가르쳐 주었고 어리지만 제법 손을 거들 줄 아는 아버지의 데모도가 되었다. 나와 아버지는 둘도 없는 부녀이자 친구 그리고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다. 그런데 엄마는 왜 빼냐고?


사실 나는 엄마를 본 기억이 없다. 물론 봤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엄마를 봤을 땐 엄마는 이미 동공이 풀려 나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도 나도 서로에 대한 기억이 없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둘을 영원히 갈라놓는 존재로 이 세상에 나왔다. 나는 나중에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야 그 진실을 알았다.


“这丫头嘛。她就是吃掉她妈才生出来的丫头啊” (저년이 지 어미 잡아먹고 태어난 년이야)


내가 처음으로 아버지를 따라 아버지의 고향인 티베트의 산골 마을을 찾았을 때는 그의 어머니 그러니까 나의 할머니의 초상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도 고향을 떠나온 지 10여 년이나 훌쩍 지나서였다. 10년 동안 몸은 가지 않고 돈만 부치던 아버지였다. 고향이 워낙이나 멀고 왔다 갔다만 4~5일씩 걸리는 먼 길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일을 비울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가난은 노동에서 벗어날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 간 아버지의 고향집에서 낯선이들, 아니 혈연적으로 친척이라고 불리는 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고 내가 아주 어린 시절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말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탄생과 동시에 그녀는 죽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생명과 나의 생명을 바꾸었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 다시 상해로 돌아온 후 집을 떠났다. 미안했다. 아버지에게. 그리고 한동안 그와 연락을 끊고 지냈다. 그러다 아버지가 공사장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아버지를 찾았다. 나는 아버지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 아버지는 공사장 간이 승강기의 안전 고장으로 와이어가 끊어지며 2층에서 1층으로 떨어졌고 그때 아버지의 왼쪽 손이 승강기와 건물 프레임 사이에 끼어서 잘려나갔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회사 측에서는 미등록 민공이라는 이유 등으로 아버지에게 치료비 이외에 그 어떤 보상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현실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당시 어린 나로선 그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疼也好啊,能再见到女儿一面。 “(아파도 좋네, 딸년 얼굴도 다시 보고)

“으아아아앙"


나는 손의 형상이 사라진 팔에 피로 물든 붕대를 감고 있는 아버지의 보고는 그의 품에 안겨 울고 또 울었다. 흐르는 눈물이 붕대를 적시며 다시 핏물이 되었다.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나 자신이 너무 미웠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예전보다는 더 간절해지고 절실해졌다. 일을 하고 글을 쓰는 모든 시간 모든 순간이 간절했다. 중국에선 땀 흘려 일을 해선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성공하는 자들은 절대 땀 흘리는 노동을 하지 않더라. 행동하는 자들은 결국 생각하는 자들에게 종속되고 지배된다는 불편한 진실을 그때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정신노동을 멈추지 않았다. 나에게 정신노동은 쓰는 것이었다. 쓰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학벌도 인맥도 지연도 없는 자가 할 수 있는 정신노동은 이것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소설가에서 극작가로 성공했고 이제 아버지가 다시는 목수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霈云,我呀。也得出汗做工才能活下来的人啊 “(페이윈, 아버진 말이다. 땀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란다. 땀 흘리고 일을 해야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어)

“爸爸,这个世界没有一个民工能得到富贵的 , 你就休息啊别干活辛苦,我有在嘛!我养活您”(아빠, 요즘에 누가 이런 일을 해서 돈을 벌어. 그냥 쉬어 돈은 내가 벌 테니깐.)

“女儿啊,人不只是为了赚钱活的, 你不觉得这个世界有很多人像个不活着的呢,“(딸아,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을 하는 건 아니란다, 살아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어 세상에 그렇지 않니?)

“你这什么啥说呀?“(도대체 무슨 소리야?)


그때 나는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난 이제 그를 이해한다. 그건 나도 매일 뛰고 땀을 흘리지 않으면 글이 생동감을 잃는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부터였다. 아버지는 손에 의수를 달고 다시 공사장 일을 다녔다. 다행히 그는 남다른 목공 실력과 안목이 있었기에 한쪽 손이 없음에도 그를 써주는 곳이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그를 말릴 수 없었다.




그런데 또다시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I should go to see my father right away“(아버지를 보러 가야 해요 당장!)


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버지를 봐야만 했다. 이번에 보지 못하면 영영 그를 볼 수 없을지 몰랐다. 그가 눈을 감기 전에 꼭 봐야 했다. 그때 폴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Come on! Hold my hand!”(자! 내 손을 잡아요)


나는 그의 손을 바라보고 또다시 그의 눈을 바라봤다. 그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고 떨어지는 석양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나와 그가 맞잡은 손 안에서 빛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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