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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서 가장 근본적인 가치

[북앤콘텐츠페어] '민음사' 북토크에서...

by 글짓는 목수

"저는 이렇게 사람들의 시선을 보고 말할 때가 더 말을 자연스럽게 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요? 저는 카메라 렌즈 앞에서 말하는 게 더 자연스럽고 잘 되는 것 같아요."


대상이 필요한 말과 대상이 필요 없는 말의 차이라고 할까? 사람과 시선을 마주치며 말하는 것과 혼자서 카메라 렌즈를 보면서 말하는 능력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 실제의 대상을 앞에 두고 이야기하는 것은 오프라인의 소통 능력이고 실제 대상이 없지만 있는 것처럼 말할 수 있는 것은 온라인의 소통 능력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온오프라인이 중첩된 세상이다. 둘 다 중요한 능력이 되었다. 전자는 과거나 현재 모두 그랬고 후자는 온라인 시대에 좀 더 각광받는 능력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좁은 방에서 카메라 렌즈 앞에 앉아 달변가가 되어 불특정 다수에게 말하고 있다. 혼잣말의 달인이다. 일인 유튜버와 인플루언서는 이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혼잣말을 재미있게 하며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스토리를 구사하는 사람이 각광을 받는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사람을 끌어당긴다. 그런 자들의 말은 Ai와는 달리 시선과 몸짓이 있고 그 만의 고유한 억양과 뉘앙스가 함께 섞여있는 복합적인 지녔다. 이 능력이 어쩌면 개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유한 능력이 아닐까?


강연장 앞에 앉은 두 편집자는 서로 다른 말하기 능력을 부러워했다. 둘은 궁합이 잘 맞다. 온오프라인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 조합이었다.

[민음사] 박혜진, 김민경 편집자 북토크


해운대 벡스코에서 열린 북앤컨텐츠페어에서 열린 [민음사] 출판사의 북토크에 참석했다. 두 명의 출판사 편집자가 진행하는 책 소개 강연장이었다. 유명 출간 작가의 북토크와는 달리 테이블을 놓고 앉아서 이야기하는 형식의 무대 위에서 하는 강연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이제는 출판사도 자체적으로 브랜딩과 홍보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작가와 작품에 의존하던 출판사가 아닌 출판사 자체가 브랜드가 되어간다. 그럼 출판사가 작품과 작가에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상호작용이다. 과거에는 작품이 출판사를 띄워주었다면 이제는 출판가사 작품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실존의 무경계], 장르의 경계를 허물다 그로테스크 - 박정현 작가님과 함께

“책이 대부분 미스터리 추리 쪽인 것 같네요”

“여기 출판사는 철학적인 책이 주를 이루고 있네요.”

"여행 에세이만 쓰시나 봐요."


전시회장에는 여러 개성 있는 소형 출판사와 독립 서점 그리고 일인 출판사(작가)들이 참여해 각자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작가 개성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제는 출판사와 서점도 개성을 가지기 시작했다. 물론 출판사와 서점이 작가와 개성이 잘 맞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개성에 작품성과 대중성이 더해지면 명작이 된다.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소형 출판사와 지역 서점들은 그런 자신 만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시대가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문화출판 더하다]

민음사의 두 편집자는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것 같아 보였다. ‘민음사 tv’라는 유튜브와 인스타를 운영하고 있다. 요즘은 유능한 편집자의 몸값이 세다. 편집도 예술이다. 훌륭한 창작자는 많지만 훌륭한 편집자는 드물다. 그건 모두가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편집자는 누군가를 빛나게 해주는 존재이다. 창작자와 주인공 뒤에서 묵묵히 일을 하며 원석을 보석으로 만드는 존재이다.


창작보다 편집?!


하지만 이제는 이런 편집자들도 스스로 빛을 내려한다. 창작자의 작품을 이용해서 자신을 빛낼 수도 있다. 너무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이다. 대중은 이런 콘텐츠 홍수 속에서 길라잡이가 되어줄 사람을 원하는 듯하다. 홍수 속에 뭐가 좋고 나쁘고 나에게 이롭고 해로운지 모르겠다. 맞춤형 서비스가 필요하다. 그걸 알려주고 조언해 줄 길잡이가 필요하다. 홍수 속에서 휩쓸려 가는 나를 잡아줄 장대를 들이밀어줄 사람을 찾게 된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큐레이터’라고 말한다. 이런 큐레이터는 특정한 자격을 가진 사람이라기보다는 오랜 시간 문학이나 예술 분야를 탐독하고 감상하며 스스로 쌓아온 지식과 정보를 통해 얻은 통찰을 자신만의 개성과 언어로 스토리를 만드는 자들이다. 이 스토리도 일종의 창작이지만 이건 2차 창작이라고 볼 수 있다. 원작에서 영감과 스토리를 가져와서 자기 것에 버무린 것이기 때문이다. 넓게 보면 각색의 범주에 들어갈 수도 있겠다.

이동진 평론가

이것이 대중들과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고 감성과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으면 창작자 보다 더 큰 파급력과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이런 능력은 보통 오랜 경력을 가진 편집자 혹은 평론가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하고 많은 작품을 읽고 보고 다루는 직업이니 만큼 다양한 시선과 생각이 융합된 뇌를 가졌을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삶이 형성한 고유한 개성과 버무려져서 새로운 무언가가 탄생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아무리 많은 작품을 읽고 보고 감상해도 그로 인해 생긴 고유한 생각과 발상을 자신 만의 언어(말과 글 혹은 예술)로 표현할 수 없다면 그저 그 작품에 대한 고리타분한 해설자 수준에 그칠 뿐이다. 그건 그저 창작자의 창작 의도나 줄거리 혹은 시대적 배경과 사실 같은 것들만 늘어놓는 재미없고 지겨운 교수님 강의랑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학점을 따고 시험을 치기 위해 그런 강연장과 북토크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일단 흥미와 재미가 있어야 한다. 여가 시간이다. 즐기는 시간에 자기 자랑이나 설교 혹은 수업을 듣고 싶은 사람은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자신의 이야기를 창작하는 것과 타인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보통 타인의 이야기를 소개할 때는 고전이나 외서를 선택하기 마련이다. 이 날 [민음사]의 두 편집자는 고전(위대한 개츠비, 싯다르타, 이반일리치의 죽음, 변신)과 외서(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동생)만 소개했다. 국내의 살아있는 작가의 책은 없었다. 아마도 대형 출판사의 작가 편향성이나 공정성의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고전과 외서가 가장 무난한 선택이었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고전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부담 없이 소개할 수 있는 작품이다. 고전을 추천하고 욕 들어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민음사] 북토크

만약 같은 국가 같은 언어권에 속해 있는 특히 살아있는 작가의 이야기를 논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왜냐 작가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산 자는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다. 작가의 창작 의도와 생각을 왜곡했다는 것을 바로 반박당 할 수 있는 명백한 산 증인이 있다. 아니 당사자가 있다. 당사자가 뭐라고 하면 그냥 ‘네’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스콧 피츠제럴드, 헤르만 헤세, 톨스토이 그리고 카프카가 다시 부활해서 그렇게 반박할 가능성은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 때문인지 유명한 고전 작가들 중에는 죽어서 생명력을 가지는 작가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고전 작가들에게 ‘죽음’의 의미가 남다른 것일까….


작품과 작가의 분리!?


사실 작가는 자신의 손을 떠난 작품에 대해서는 왈가불가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비록 작가가 작품을 만들긴 했지만 퇴고가 끝나고 자신의 손을 떠난 작품은 이제 독자들의 머릿속에서 재창조되고 변형되면서 퍼져나가는 것이 이야기의 근본 속성이다. 신이 세상을 창조했지만 계속 세상에 관여하는 것과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 개념이라고 해야 할까.


난 개인적으로 작가가 작품 속에 담고 있는 자신의 생각을 유지시키고 관철시키겠다는 것은 집착이고 아집이라 생각한다. 문학과 예술은 궁극적인 목적은 독자와 감상자로 하여금 자신의 것을 들여다보게 하는 창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 작가의 생각과 의도를 주입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원작은 새로운 창작을 만드는 원천이지만 사실 원작도 알고 보면 다른 원작의 재창작이다. 우리는 우리가 읽고 보고 느낀 것을 통해서 그 안에서 또 다른 인물과 배경과 느낌을 입혀서 다른 스토리를 만드는 것일 뿐이다.


물론 이건 문학이나 철학과 같은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이야기에만 해당한다. 과학이나 수학처럼 이미 증명된 것을 다시 화제와 논란거리로 삼을 수 없다. 과학과 수학은 풀린 것에는 더 이상 의문과 호기심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언어로 만들어진 예술은 끊임없이 변형되고 재창조된다. 글은 숫자와 달리 모호함이라는 개성을 가진 덕분에 우리의 상상력과 창의력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모든 인류 학문의 시작은 철학에서 시작했다. 철학은 언어(말과 글)로 표현한다.

[까짓 거 하고 싶은 것 하자] 여행 작가 두희(김동연)님의 1st 출간

듣고 말하고 읽고 쓰기 (LSRW)


문학과 철학을 혼자 읽고 혼자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공론의 장에서 함께 나누고 이야기하면 할수록 그 영향력과 파급력은 커지고 기억은 더욱 오래간다. 구전된다. 소크라테스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서 성인(聖人)의 경지에 도달했다. 성경이 전 세계의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가장 많이 읽힌 이야기다. 사람들 입에 계속 오르내리며 화젯거리가 되고 그것이 글로 옮겨지면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재창조되고 재해석되는 스토리가 되었다. 그 과정 속에는 많은 편집자와 평론가들이 있었을 것이다. 버리고 잘라내고 덧붙이고 하는 수많은 작업을 통해서 지금의 성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신의 말씀이지만 인간이 편집했다.


논란이든 화제이든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려야 널리 퍼진다. 물론 그 이야기가 인간의 근본적인 무언가를 담고 있어야만 고전이 된다. 단순히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일시적인 것은 잠시 주목받는 유행이고 금세 잊힌다. 한국인은 이런 것에 특화되어 있다. 우린 그걸 냄비근성이라고 비하적으로 표현한다.


결국 무언가 우리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기억되려면 나의 입에서 자주 언급되고 그것을 듣는 사람들도 그것에 감화되어 그들의 입에서도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스토리여야 한다. 이 과정은 사람과 사람이 언어로 소통하면서 이뤄지는 것이며 인간은 이 과정 속에서 더 많은 정보와 생각의 확장을 이루고 그들만의 유대감과 소속감을 만들어낸다. 지금은 이 소통과 교류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 시대이며 이것에 능숙한 사람이 어쩌면 인간으로서 가장 근본적인 가치를 잃지 않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언어를 통해 서로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것이다.


2025.8.22 부산 벡스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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