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을 듣다가...
더 이상 숨기지 않을 거야, 난 빛나고 있어 내가 이 땅에 올 때 가졌던 그 모습으로
나의 시간이야. 두려움은 없어. 거짓도 없어.
금빛으로 환하게 빛날 거야
우리가 태어날 때 주어진 모습 그대로
Oh, I'm done hidin' now I'm shinin' like I'm born to be
Oh, our time, no fear, no lies
Gonna be, gonna be golden
That's who we're born to be.
– [Golden] 가사 중에서 –
삶이 내게 준 모습과 생(生)이 내게 준 모습은 같은가?
삶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강요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요구와 강요에 맞춰 삶을 살아야 한다. 그 요구와 강요에 길들여지면 보상이 돌아온다. 그렇게 채찍과 보상에 길들여져 세상이 던져준 삶에 나를 끼워 맞춰서 살아간다. 많은 역할과 책임 속에서 '나'를 잊어간다. 원래부터 나라는 존재가 없었던 것처럼 잊고 세상이 만들어 준 가면들을 쓰고 삶을 살아간다. 그 가면은 어느 순간 자신의 모습이 되어버린다. 태어날 때 내게 타고난 모습은 사라지고 세상에 내가 아닌 다른 것들만 남기고 사라진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만 남긴 채...
‘Golden’이 빌보드 차트를 석권했다.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중독성 있는 리듬과 음률의 출처를 몰랐다. 입 소문에 영화 [K-pop 데몬헌터스]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왜 이 음악이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내 마음도 사로 잡았다.
우리의 뇌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스토리를 오래도록 기억한다. 그리고 그 스토리의 뼈대에 걸맞은 이미지의 살과 음악의 숨(영혼)을 불어넣으면 그 기억은 편도체를 더욱 자극해 더욱 오래도록 기억된다. 그리고 그 음악을 듣거나 이미지를 보는 순간 편도체가 반응하며 해마 속에 깊숙이 잠재된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과거 오래된 추억의 노래 음률을 들으면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 그 음률을 따라 노래를 부르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과 같다. 나도 모르게 [골든]의 가사를 계속 흥얼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제는 가사를 음미한다. 나이가 들면 좋은 노래는 반드시 그 가사가 좋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음률이 영혼을 감동시킨다면 가사는 깨달음을 준다고 해야 할까? [골든]의 노래 가사와 [K-Pop 데몬헌터스]의 스토리가 아주 잘 어울린다. 가사와 스토리가 내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뒤섞이며 글이 스며 나온다.
빛과 어둠 사이
헌트릭스 메인 보컬인 루미(Rumi)는 몸에 어두운 지하세계의 패턴을 가지고 있다. 다른 멤버들도 어둡고 아프고 힘든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가 어둠을 가지고 있다. 이 어둠은 어둠을 먹고 커져간다. 우리는 이 어둠을 가리고 싶다.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으며 자신만의 비밀로 간직하며 더 깊은 어둠 속에 꽁꽁 숨겨둔다. 하지만 어둠은 어둠 속에서 더욱더 번식하고 커져감을 알지 못한다. 사자 보이즈의 멤버인 진우는 이런 어둠을 어둠 속에서 키워가는 존재로 등장한다. 루미와 진우 모두 어둠을 가진 존재지만 누군가는 어둠을 금빛으로 바꾸려 하고 누군가는 어둠을 더 깊은 어둠으로 물들인다.
"개츠비는 초록 불빛을 믿었다. 해가 갈수록 우리 앞에서 물러나는 환희의 미래를 믿었다"
-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중에서 -
얼마 전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독서 모임을 가졌다. 개츠비가 밤이 찾아들면 항상 바라보는 초록 불빛의 의미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개츠비에게 초록 불빛은 희망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거라는 간절한 믿음과 희망를 꿈꾸게 하는 불빛이었다. 파티 때마다 화려한 조명을 밝히는 자신의 저택은 사람들로 발디딜 틈 없이 붐볐지만 개츠비는 오로지 강 건너 멀리서 희미하지만 꺼지지 않는 초록 불빛만을 바라보며 희망을 키워간다. 그는 비록 어둠 속에서 살아왔지만 그것을 견디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희미하지만 꺼지지 않는 한 줄기 빛 때문이었다.
우리 모두는 비록 어둠을 가졌지만 세상이 어둠이길 원치 않는다. 어둠은 사라질 수 없지만 어둠이 세상을 덮어버리고 빛을 없애버리면 암흑의 우주가 되어버린다. 빛이 없는 블랙홀처럼 깊은 어둠 속에서는 그 어떤 희망도 보이지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어둠 속에서도 계속 빛을 끄집어내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안톤 체호프는 소설과 희곡을 통해 캐릭터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게 엄청난 치유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로버트 그린 [인간 본성의 법칙] 중에서 -
우리는 어둠과 맞서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지만 한 가지 공통된 점이라면 그 어둠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인간이 왜 표현하는 동물인가는 이와 연관이 깊다. 인간은 표현함으로써 정화되고 치유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수다를 떨고 나면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안정이 찾아드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는가? 대화는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감정의 표현이자 해소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화는 항상 그 대상을 필요로 한다. 혼자서 할 수 없다. 스스로 정화되고 치유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그걸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심리 상담사와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영화 속 주인공들은 음악이라는 예술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한다. 음악 속에서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고 자신 안에 갇혀서 자신을 조종하려는 어둠을 빛으로 밀어내고 금빛으로 스스로를 빛나게 한다. 예술은 우리 안에 어둠을 밖으로 밀어내고 내 안에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예술이 인류 역사 속에 절대 사라질 수 없는 이유이다. 문화 예술을 억압한다면 그 사회가 병들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술은 어둠과 고통 속에 있는 자들에게 빛을 잃지 않도록 해주는 역할을 한다.
숙명과 소명
우리가 왜 각자의 예술을 하지 못하는 것인가? 그건 우리가 각자의 소명(That’s who we’re born to be)을 가지고 태어났음에도 삶(세상)이 던져주고 쥐어준 숙명에 가로막혀 그것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숙명을 내던질 수도 없다. 그건 삶을 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국가와 사회를 떠나서 살 수가 없는 존재이다. 적어도 지금 세상에서는. 그럼 우리는 이 숙명을 따르면서 소명을 찾아가야 한다. 그럼 숙명이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는 두 개의 삶을 살았지, 둘 다를 연기 했어, 하지만 나는 나의 자리를 찾지 못했어”
“I live two lives, tried to play both sides. But I couldn’t find my own place”
– [Golden] 가사 중에서 –
삶이 나를 짓밟고 억누르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삶이 너무 가혹하고 고통스럽고 힘든 처지에 놓인 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명의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그럼 어둠 속에 갇혀버리기 때문이다. 가혹한 삶의 현실과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환경 속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 것은 그 태도가 삶을 변화시킬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은 이와 연관이 깊다. 우리는 무언가 의지할 곳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건 인간이 나약한 존재이고 나를 믿어주고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가상의) 존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저를 믿으세요”
“고객님이 왕입니다”
“당신이 주인입니다.”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습니다”
모두가 이런 말을 한다. 그런 자들의 말은 의도와 목적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나를 수단과 대상으로 생각하는 자들의 말들에 너무 오래도록 상처받고 배신당해 왔다. 그래서 우리는 무해한 존재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왜 반려동물을 많이 키우는가? 그들은 나를 수단과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무해하기 때문 아니던가?
우리가 사는 물질문명사회는 우리에게 육체의 편의와 쾌락을 가져왔는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영혼은 더 상처받고 외롭게 되었다. 우리 안에 자신을 찾는 것은 더 힘든 환경 속에 살고 있다. 너무 많은 역할과 책임들 속에서 나를 찾지 못하고 역할이 가져다주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며 상처받고 상처주고 배신하고 배신당한다. 그것이 운명이라 생각하고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모두가 나를 길들여지지 않는 문제아라고 비난했지. 하지만 이제 난 제약 없는 무대 위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
Called a problem child’ cause I got too wild. But now that’s how I’m getting paid boundless on the stage.” – [Golden] 가사 중에서 -
나를 세상에 드러내는 과정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그 과정 또한 시련과 고통이 뒤따를 것이다. 세상에 길들여지는 것도 시련과 고통이며 나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럼 길들여져서 잊힐 것인가 아니면 드러내고 기억될 것인가? 내 안에 것을 꿈꾸지 않으면 내 밖의 삶이 나를 영원히 가둬버릴 것이다.
“우리는 열심히 꿈꿔왔고, 여기까지 왔어, 이제 믿을 거야!”
We dreamin’ hard, we came so far, now I believe.
– [Golden] 가사 중에서 -
당신도 빛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