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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7년, 삶을 풀다

브런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작가의 꿈

by 글짓는 목수

"브런치 작가 글짓는 목수입니다"


얼마 전 도서 전시회에 참석했다. 전시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여러 소형 출판사와 서점 그리고 작가들에게 명함까지 돌려가며 나를 알렸다. 그들의 부스 테이블에 전시되어 있는 책들을 둘러보며 그들과 이런저런 환담을 나누었다. 서로의 공감대를 찾아가는 대화가 이어지고 흥미를 유발하는 책들을 구매했다. 독서와 글쓰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다. 나의 브런치 글쓰기의 시작도 독후감이었다. 책이 대화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나는 우연히 만난 낯선 이와 공감대 찾아가는 대화를 좋아한다. 이건 내가 적잖은 시간 국내외를 불문하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이방인으로 살아오면서 터득한 삶의 기술 중 하나였다.

도서전 구매도서들

브런치 7년, 바뀐 것은…


나의 브런치 글쓰기의 시작은 해외 이주 노동자의 삶과 함께였다. 온라인 브런치 작가로서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7년의 시간은 나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책과 새로운 관계가 온라인상에 기록되기 시작하면서 지난 40년간 딱딱하게 굳어가던 나의 뇌를 깨부수기 시작했다. 딱딱해진 외부 피질이 부서지고 다시 새로운 피질이 자라나는 시간이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는 헤세의 글귀가 지금 나에겐 진리를 말로 들리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말은 진실에 가깝다. 세상은 급격하게 변해가지만 사람이 그 속도에 맞춰 변하는 것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그건 내가 항상 익숙한 환경과 사물과 관계 속에서만 머물기 때문이다. 그건 또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다. 삶은 정착이고 정착은 익숙함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익숙해져야 능숙해지고 능숙함은 효율을 올리고 효율이 성과를 만들어 발전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경제 발전은 부를 가져다준다. 모두가 부자가 되고 싶다.

우리는 익숙한 삶을 반복하며 자신의 삶에 전문가가 되어간다. 각자의 직업과 각자가 속한 집단 속에서 전문가가 된다.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건 삶을 살아내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삶은 돈을 필요로 하고 돈은 전문성을 갖춘 인기 있는 자들에게 모여드는 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항상 전문직을 선호하는 이유 아니던가? 누구나 잘 살고 싶다.


작가라는 전문직?!


작가도 전문직일까? 나는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다. 전업 작가의 길이 전문직이라고. 작가가 전문직이라면 글은 전문가의 전유물인가? 아니다. 글은 만인이 공유하는 것이다. 누구나 글을 읽고 쓸 수 있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쓸 수 있다. 그러므로 글은 전문가만의 기술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글은 누구에게나 예술이 될 수는 있다. 예술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을 표현하는 영역이다. 전문가는 삶을 유용하게 잘 살아내는 방법들을 가르쳐주지만 예술가는 삶을 바라보는 즉, 관조하는 법을 알려준다. 글은 가장 기본적이고 접근성이 좋은 서민 예술의 수단이다.


문학이다. 전문가들도 글을 쓰지만 그들의 글은 학문에 가깝다. 학문은 문학의 거름이 되긴 하지만 문학을 학문이라 일컫지 않는다. 문학은 명확한 선을 그을 수 없다. 경계와 계층이 없다. 문학은 규명되지 않은 다양한 삶을 담고 있다. 작가는 삶을 쓰는 자들이다. 삶을 살지만 삶에 어눌한 글쟁이들이 쓰는 글이 바로 문학인 것이다. 그들은 삶을 사는 시간보다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은 탓에 삶에서 조금 동떨어져 있다. 때문에 작가들은 언제나 현실과 이상 사이 고뇌의 늪에 빠져 있다. 그 고뇌가 글 속에서 피어나면서 문학이 된다.


"글쓰기는 나를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포장을 벗겨내는 과정이다."


브런치의 시작은 나의 삶에 대한 기록이었다. 삶에 대한 변형된 기억과 상상의 기록이다. 기록의 시작은 일기이다. 나는 브런치를 시작하기 전부터 일기를 썼다. 그 일기는 정제되지 않은 난잡한 것들이었다. 보여줄 수 없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기록들이다. 그 기록들은 아무도 모르는 비공개의 공간 속에 잠자고 있다. 글을 정제하는 법을 가르쳐 준 곳이 브런치였다.


사실 누군가에게 보인다는 것은 꾸밈으로 시작된다. 독서가 지적 허영심에서 시작하듯이 글쓰기도 예쁘게 화장하고 포장하면서 시작한다. 여자들이 예쁘게 화장을 하고 외출하는 것과 같다. 누구나 관심과 사랑에 목마르다. 우리는 그런 관심을 빨리 가지고 싶다. 호감의 시작은 외모이다. 호감은 언제나 시선에서 시작된다. 인간은 시각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글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름답고 서정적이고 따뜻하길 바란다. 누구나 다 그런 글로 시작한다. 하지만 글은 화려함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기가 온다. 계속 쓰게 된다면.


글쓰기는 자신 안에 어둠과 슬픔을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고전이 대부분 비극인 이유이다. 하지만 모두 저마다 조금씩은 자기기만과 위선을 가지고 살아간다. 현대인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필수 능력이기도 하다. 글쓰기가 비즈니스의 영역이라면 글도 자기기만과 위선으로 아름답고 화려할 수 있다. 하지만 글쓰기가 치유와 회복이라면 그것들로부터 멀어진다. 글쓰기가 자기 성찰로 나아가려면 이 과정을 거치게 된다.


브런치가 자기 성찰까지 이끌어주는 플랫폼을 지향하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브런치가 소설부문 공모도 시작한 것을 보면 문학까지도 품으려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자신을 포장하는 글뿐만 아니라 자신을 벗겨내는 글들을 찾고 알려야 함을 의미한다. 사실 글쓰기의 진정한 의미는 후자에서 얻는다.


작가, 계속 쓰는 자


오랜 시간 권위자들에게 독점되어 있던 문학의 세계가 대중에게 인정받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될 수 있을까? 권위자도 한 인간에 불과하다. 권위자는 전문가이다. 그들이 문학도를 꿈꾸고 문학도로서 끊임없이 쓰던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가 되고 권위자가 되면 보는 것이 달라진다. 다른 분야는 잘 모르겠지만 문학은 대중의 모든 삶이 개성 있게 녹아있는 작품을 찾는 것이다. 문학의 영역에 승패란 없다. 호불호만 있을 뿐이다. 권위자와 전문가의 선호가 대중의 삶을 대변하는 것일까? 그들은 더 이상 대중의 삶을 살지 않음에도 말이다. 한국의 문학은 아직도 몇몇 권위자가 그 자격을 부여하는 것으로 작가의 정의하는 듯하다. 등단과 출간을 한 자가 작가의 정의는 아니다. 나는 '계속 쓰는 자'라고 생각한다.

비트코인의 가치가 왜 끝없이 치솟는가? 이건 소수의 누군가가 마음대로 찍어내고 휘두를 수 없는 가치 체계를 가진 화폐이기 때문 아닌가? 이제 희소한 가치는 모든 이에게 연결되어 인정받는 가치이고 일부 소수의 권위자가 그 가치를 훼손하고 조종할 수 없는 것이 되어야 한다. 중앙 공인이 아닌 분산 공인된 가치이다. 나는 아직 공인되지 않았다. 사실 지금까지 공인되지 않은 것이 나에겐 더 큰 힘을 되었다. 브런치에서 수많은 작가들이 출간하고 수상하는 모습들을 지켜봐 왔다. 나 또한 7년간 브런치에서 꾸준히 글을 쓰며 끊임없이 응모와 투고를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행운은 주어지지 않았다. 불운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이 행운이었다. 나에게 계속 쓰게 하는 의지를 불태우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희망과 소망은 간절함을 품고 커져간다는 진리를 깨우치게 해 주었다. 시련과 고난 없이 이뤄내는 모든 것은 그 의미가 금방 퇴색되기 마련이다. 지난한 시간은 이뤄낼 결실의 시간과 비례한다 믿는다. 7년의 시간은 아마도 7년을 더 써내려 갈 필력을 주었음이라 믿게 된다.


글(字)은 수(數)와 달리 답이 없다. 그냥 끝이 없는 풀이 과정만 있을 뿐이다. 그 풀이는 스스로의 삶을 풀어가는 과정이다. 삶은 답이 없지만 모두 각자 자신만의 과정은 있다. 그 과정을 글로 풀어가는 과정 속에 삶의 의미를 알게 된다. 브런치에는 나의 그 풀이 과정이 담겨 있다.


나는 오늘도 삶의 한 가닥을 풀어놓고 있다. 브런치에서...

글짓는 목수 (Carpenwriter) 명함 목수(Carpenwriter) 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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