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EP 42 (개정판)
"띵띵띠리리 띵띵 띵"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소파 위에 가로누운 채 잠들어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애벌레가 몸을 말듯 공기와의 접촉 면적을 줄여 열 손실을 최소화한 채 이불 없이 간밤의 차가운 거실 공기를 견뎌냈다.
온 몸이 뻐근하다. 베개 없이 옆으로 꺾인 목을 추스른다. 중국의 아파트 거실 바닥은 타일이나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차가운 한기가 그대로 올라온다. 여름은 시원하지만 겨울은 슬리퍼 없이는 생활이 힘들다. 다리를 바닥으로 내린다.
“앗 차거!”
차가운 타일 바닥과 접촉한 발바닥을 통해 냉기가 온 몸을 엄습한다. 서둘러 슬리퍼를 찾는다. 부엌으로 향한다. 물통을 들어 목구멍으로 부어 넣는다.
"아~ 목이야, 왜 내가 거실 소파에서 자고 있는 거야 "
뻐근한 목을 부여잡고 바라본 현관 입구에 그녀의 하이힐이 보인다. 그녀는 아직 내 방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일단 욕실로 향했다. 세수와 양치를 마치고 내 방문 앞에 섰다.
"喂~ 你还睡吗??"(저기~ 자니?)
인기척이 없다. 출근을 해야 하는데 옷이 나의 방안에 있다. 들어가야 한다. 문이 잠기지 않았다. 문고리를 살며시 돌린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안을 드려다 본다. 그녀가 보인다. 하얀 이불 밖으로 더 하얀 다리 하나가 빠져나와 있다. 그리고 어디서 많이 본 반바지가 보인다. 내 반바지다. 그녀의 옷과 수건은 그리고 브레지어는 옷걸이에 걸려있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킨다. 까치발을 한 채 조용히 옷장으로 걸어간다. 옷장을 열어 옷을 꺼낸다. 옆에 걸려있던 다른 옷걸이가 달려오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탁’ 마루바닥과 부딪치며 둔탁한 소리를 낸다.
"啊~~ 你已经起床了?"(아~~ 벌써 일어났어?)
그녀가 그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난 몰래 들킨 좀도둑 마냥 그 자리에 굳은 채 서서 고개만 돌려 그녀를 본다. 그녀는 이불을 걷고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는 어디서 찾았는지 목이 늘어난 나의 흰 티셔츠를 입고 있다.
"对了~你该上班了吧"(맞다~ 너 회사 가야지)
"是"(응)
난 주간이고 그녀는 야간이다. 2교대 근무인가? 그녀는 미안하다며 좀 더 자고 나갈 테니까 먼저 출근하라며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그녀와 맞이하는 두 번째 아침은 처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장소만 호텔에서 내 집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리고 다시 까치발로 조용히 내방을 벗어나는 내 모습을 나도 이해할 수 없다.
‘여긴 분명 내 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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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도착해서 서랍 속에 숨겨뒀던 그 날의 비용 품의 서류들을 다시 꺼냈다. 서류와 리타오 과장을 번갈아 쳐다본다. 참고 있던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냉정을 잃지 말아야 한다며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나는 냉정과 열정 사이 그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나는 리과장을 다시 건물 옥상으로 불러내었다. 담배를 꺼내 입에 물자 그는 라이터를 꺼내 나에게 불을 붙여주려한다. 난 손사레를 치며 스스로 불을 붙인다. 그도 담배를 꺼내 문다.
"立科长, 我还是给总经理报告好了,这都是我的责任我应该求饶"(리 과장~ 아무래도 보고하는 게 낫겠네, 다 내 잘못이니 내가 직접 보고하고 용서를 받는 게 낫겠어)
내 말은 들은 그는 예상치 못했는지 말을 잃은 채 다리를 떨며 연거푸 담배를 빨아댄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항상 적이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역습의 성공 관건이다. 그도 내가 카미가제 전술을 사용할 줄을 몰랐을 것이다. 내가 죽을지언정 너희들도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결재 서류를 들고 부총경리실로 들어갔다.
"副总~我有话跟您说"(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부총경리님)
"有什么事而你亲自拿着批件来找我?"(무슨 일이길래 직접 결재서류까지 들고?)
보통 부총경리의 결재는 중국 직원들이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고 나서 서류가 다시 나에게로 오면 내가 총경리 결재를 받는 식이다. 표면적으로는 언어와 소통상의 문제이지만 보고 상 쌍방 측(한국과 중국)에 하지 못할 말들을 그들끼린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건은 내가 직접 들고 들어갔다.
"那天晚上我跟立科长去了KTV.我用您的公司卡花了不少的招待费用,这都是我的责任,请批准"(그날 밤, 리 과장과 KTV에 갔습니다. 부총경리님 법인카드로 적지 않은 접대비를 지출했습니다. 제가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결재를 부탁드립니다.)
"恩... 不少啊。这不可我来批准的,我听总经理的决定吧"(음... 비용이 적지 않군. 이 건은 내가 결정할 사안이 아닌 듯한데... 총경리님의 의사결정에 맡기겠네)
그는 책임 소재에서 벗어나려는 듯, 결재서류를 다시 나에게 내밀며 총경리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부총경리의 이전 비용 결재 건으로 차후 과다 비용 결재에 대해선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는 경고가 있었던 터라 그도 이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는 총경리가 승인한다면 자신도 별다른 이견 없이 결재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다.
"똑똑똑"
"들어와"
"무슨 일이야? 월말도 아닌데 무슨 결재 건이 있어?"
그는 내가 들고 있는 결재 서류를 보고는 한마디 던진다. 사업 진행이 중단된 상태니 비용 결재라고 해봐야 월말에 올라오는 회사 고정비(전기, 수도, 사무실 임대료, 직원 급여 등)가 전부인 상황이라 결재서류를 들고 있는 나를 보고는 의아한 듯 물어온다.
"상의 드릴 일이 있습니다"
"뭔데 이리 심각한 표정이야?"
난 그 날 있었던 일에 대해 장총경리에게 사실대로 보고했다. 다만 그녀가 알려줬다는 사실과 그녀와 있었던 일은 배제하고 그 날 일을 설명했다. 나로 인해 벌어진 일이니 책임지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 참~ 신입사원 부장 달아줬더니 꽤나 부장 행세를 하는 구만 "
"예?!"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담배를 꺼내 한쪽 입가로 비켜 물고는 고개를 들어 연기를 뿜어낸다.
"차라리 잘됐다. 명분도 생겼고 이번 기회에 한 방 날리지 뭐"
"예?! 무슨 말입니까?"
그는 이 일을 계기로 전쟁을 선포할 생각인 것 같아 보인다. 그는 저번 비용 건과 연결시켜 이번 일의 책임을 공동책임으로 묶어가려는 것이다. 그는 부총경리와 리 과장을 불러드렸고 그들에게도 책임을 물었다.
부총경리에게는 법인카드 관리의 책임을, 리과장에게는 회사 정책에 반하는 상사 보필의 책임을 얹혀서 각각 1개월 감봉 처분을 내렸고 난 3개월의 감봉 처분이 내려졌다. 그리고 그 사실은 회사 게시판에 대문짝만 하게 붙여졌다. 사무실에는 한동안 공포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 누구도 다시는 회사 돈을 쓸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물론 나에게는 큰 타격은 없었다. 어차피 중국에서 받는 명목상의 급여는 크지 않았고 한국 급여에서 감봉된 만큼 보전(保全)해주는 것으로 총경리가 한국 본사와 협의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부총경리도 결국 태평양그룹 소속으로 그다지 영향이 없을 거라는 것쯤은 예상된다. 결국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리타오과장이었다. 그는 혈혈단신으로 합자회사 소속으로 입사했다. 그는 본대의 지원 없이 나홀로 싸우는 형국이다. 그는 중국의 태평양그룹도 한국의 DB중공업 그 어느 쪽도 속하지 않은 무소속 용병이었다.
그에게 1개월의 감봉은 적지 않은 타격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작전 실패 후 중방 측(태평양그룹)의 후속 지원이 없었던 탓이었을까? 일주일 정도 지난 후 그는 사표를 던지고 자리를 떠났다.
구조조정의 첫 희생양은 예상에 없던 리과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 후속 업무는 영업을 맡고 있던 북방 사나이 린주임에게로 옮겨갔다.
인생을 살다 보면 힘들지만 정면 돌파가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