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EP 51 (개정판)
회의실에는 마치 올림픽 주 경기장 트랙을 길게 늘여놓은 듯한 테이블이 놓여있다. 유리로 둘러싸인 회의실 창 밖으로 조선소 야드가 한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두 개의 육상 도크(Dock: 배를 바다로 진수[进水]시키는 공간으로 배가 완공되면 바닷물을 유입시켜 배를 해상에 띄우는 공간)와 야드와 가까운 강 위에 거대한 플로팅 도크(floating Dock: 육상의 공간 부족으로 해상에서 배를 제작 진수시킬 수 있도록 만든 구조물)가 하나 떠 있다.
중국은 한국과는 다르게 해안가에만 조선소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양자강(长江)을 따라서 강 하류 지역에도 대규모의 조선소들이 모여있다. 수심과 강폭이 한국의 강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깊고 넓다 보니 대형 선박들이 드나들기에 무리가 없다.
양주 조선소는 육상 도크 하나에서만 배가 건조 중이다. VLCC(Very Large Crude Carrier)급 컨테이너선 한 척이 그 웅장한 위용을 드러내고 막바지 작업이 한 창인 듯 보인다. 육상의 야드에는 데크 하우스(Deck house)를 비롯한 몇 가지 대형 선박 블록들이 제작 중이지만 전체적으로 야드 공간이 많이 비어있다.
"예상대로 야드가 많이 비어 있구만"
"예 그렇네요, 저기 소형 블록도 내작 중인걸 보니 내부 캐파(capacity)도 채우기 힘든 상황 같은데요"
"그래~ 이런 상황에서 무슨 데크하우스를 외작(외주제작)하겠어?"
나와 총경리가 창 밖을 쳐다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작은 소리로 대화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부총경리는 답답한지 나에게 묻는다.
"你们俩在说什么呢?"(무슨 얘기들이세요?)
"啊~ 船厂建得很好 哈哈"(아 네 야드가 잘 만들어졌네요 하하)
잠시 뒤 양주 조선소 총경리가 들어왔다. 진한 눈썹에 부리부리한 인상이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한다. 적지 않은 체구에 남산만 한 배가 허리띠를 삼켜버렸다. 순간 저 괴물 같은 인간이 침대 위에서 춘옌의 몸을 짓누르는 모습을 상상하니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애써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표정을 정리한다. 그의 뒤를 직급을 알 수 없는 중년의 간부 2명과 비서로 보이는 미모의 여성이 따라 들어온다. 나와 총경리는 협력회사의 레벨에 맞게 그들에게 목례를 하고 서로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한다.
"你们站在那儿干嘛,请坐!"(다들 서서 뭐하세요 자자 앉으시죠)
"처음 뵙겠습니다. 양주 DB중공업 장대한 총경리입니다."
그의 말을 통역하려 하자, 그 미모의 여성이 양주 조선소 총경리를 향해 통역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녀의 통역은 자연스럽다. 한국말을 한 번에 정확히 알아들은 것으로 보아 조선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我已听说过你的名字,我是扬州造船总经理董卓,这位是副总郭汜,那位是生产部长李傕,她是我的秘书"(예 얘기는 들었어요, 나 양주 조선소 총경리 동줘입니다. 여기는 부총경리 꿔스이고 이쪽은 생산본부장 이줴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제 비서이고요)
그녀의 한국어 발음으로 보아 조선족은 아닌 듯하다. 약간 어색한 발음과는 달리 통역에는 한 치의 실수도 없어 보인다. 그녀 덕분에 내가 한결 수월하다. 양방향 통역을 다 맡으면 정말 쉴 틈이 없다. 그녀와 눈이 마주칠 때면 이내 시선을 피해버린다.
"你们有什么事儿找我呢? 听说工厂还没开工?...嗯嗯"(그래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나요? 듣기로 공장 착공이 지연 중이라던데... 으흠)
동줘총경리는 약간은 못마땅한 듯한 헛기침을 하며 묻는다. 장총경리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공장 건설에 앞서 양주 조선소의 향후 5년간의 수주잔량 자료를 받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동줘총경리는 언짢은 듯한 목소리로 그 자료를 자신들이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냐고 반박한다.
"要做生意,先做工厂才对嘛!"(사업을 하러 왔으면 공장부터 지어야 할 것이 아니요!)
반대편 테이블 끝에 앉은 생산 본부장인 자가 따지듯이 물어온다. 장총경리는 글로벌 경제 위기 속의 조선업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장황한 강의를 시작한다. 덕분에 나의 머리와 입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전에 얘기를 해줬으면 관련 중국어 용어들을 공부를 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생각나지 않는 전문용어들은 그냥 내 맘대로 비슷하게 의미가 통하는 단어로 바꾸어 통역한다. 내 앞에 앉은 미모의 그 여비서는 가끔씩 입가에 미소를 짓는 모습이 나의 주먹구구식 통역을 눈치챈 모양이다.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동시통역 대학원을 나온 것도 아니며 그랬다면 여기서 이러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라 스스로를 위안한다.
"那你说怎么办?"(그래서 어쩌자는 것이요?)
"所以我们想先确认贵公司的订货余额然后开工"(그래서 귀사의 수주잔량을 확인하고 착공에 들어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那你的意思是我们没有活儿就让你们建工厂,是吗?"(그럼 우리가 일감도 없는데 공장을 지으라고 한단 말이요? 어험!)
"没有那个意思"(그런 뜻이 아니라)
동총경리는 기분이 나쁜 듯 미간을 찌푸리며 앞에 놓여있는 찻잔을 들어 식어버린 차를 한 숨에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다른 바쁜 스케줄이 있다는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회의실을 나가버린다. 그 뒤를 놓칠세라 그 여비서와 생산본부장이 재빠르게 그를 따른다.
"您别胡说就拿来答案,别浪费我的时间,您在中国没做过生意吗?真没有眼力"(애매하게 둘러대지 말고 대안을 가져와요! 이렇게 왈가불가 시간 낭비하지 말고요, 참! 중국에서 사업 안 해봤나?... 눈치가 없구먼...)
말이 없던 양주 조선소 부총경리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던지며 회의실에서 사라진다. 난 그 마지막 말을 총경리에게 통역하면서 그 중국어 어감 속에 포함된 미묘한 의미들을 한국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게 못내 아쉽다. 부총경리는 회의 내내 아무 말도 않고 앉아서 양주 조선소 총경리와 간부들의 눈치만 살피는 것이 우리 편인지 적인지 알 수가 없다.
"董卓总经理不太喜话说得多"(동줘 총경리님은 말 많은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 말을 왜 지금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회의는 말을 하려고 모인 것이지 뭘 하러 모였단 말인가? 뭔가 다른 뜻이 있어 보인다. 양주 조선소의 중역들의 행동에 적지 않은 충격을 먹은 모양인지 장총경리는 돌아오는 내내 차 안에서 담배를 피워대며 골돌하게 생각에 잠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