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EP 53 (개정판)
"그래? 그게 사실이란 말이야?"
장총경리에게 양주 조선소와 태평양그룹의 상황을 얘기하니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되묻는다. 정보의 출처를 묻는 그에게 과거 술자리를 통해 태평양그룹과 양주 조선소 직원들과 친분을 좀 쌓아두고 있었다고 둘러댔다.
"오~ 정말이야? 또 언제 그런 정보원들을 심어놓은 거야? 대단한데.. 수고했어"
그는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나의 놀라운 정보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난 양주 조선소 총경리와의 비공식적인 술자리를 제안했다. 이미 그녀를 통해 대략 알아둔 공장 시공업체의 뇌물액을 그에게 흘렸고 술자리에서 상황을 보고 우리도 상응하는 뇌물을 미끼로 합자회사 종료 합의 의사를 얻어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양주 조선소 총경리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이런 제안은 거절하기 힘든 유혹일 수 있다. 명분과 실리를 모두 취하는 것이다. 공장 착공 뿐 아니라 이미 삼킨 뇌물을 토해내는 것도 싫은 상황 아닌가?
총경리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고민에 빠진다.
"오케이~ 나쁘지 않네, 일단 본사 사장에게 보고하고 승인을 받고 진행도록 하자"
"예 알겠습니다."
본사의 승인이 하루 만에 떨어졌다.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다. 제안했던 금액이 철수 비용 치고는 상당히 저렴했던 모양이다. 본사도 현재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어 투자금을 최대한 빨리 회수해야 하는 상황과 잘 맞아떨어졌다.
나는 비공식적인 술자리를 위해 다른 직원들 몰래 양주 조선소와 연락을 취했다.
"我是扬州东方亚太的全喜宅部长,能不能跟总经理通话?”(양주 DB중공업 전희택 부장입니다. 동줘 총경리와 통화가 가능할까요?)
"무슨 일로 그러시죠?"
중국어로 물었는데, 한국어로 대답한다. 낯익은 목소리다. 그 여비서가 분명해 보인다. 나의 중국어가 우습게 들린 걸까? 아니면 자신의 한국어 실력을 자랑하고 싶은 걸까? 자존심에 살짝 스크래치가 나는 기분을 들키지 않으려 차분하게 한국말로 대답했다.
"저희 총경리님께서 동줘 총경리님과 저녁 식사 자리를 가지고 싶다고 하셔서요"
"네~ 지금 총경리님께서 자리에 안 계셔서 돌아오시면 전해드리고 회신드리겠습니다. 연락처를 하나 남겨주시겠습니까?"
나는 나의 핸드폰 번호를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고 일방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통보했다.
그들이 통보한 장소는 예상했던대로 최고급 식당이다. 식당 입구에 도착한 총경리와 나는 예약자 이름인 양주 조선소 총경리의 이름이 나오기가 부르기가 무섭게 식당 안 깊숙한 곳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고급 카펫이 깔린 미로 같은 복도를 지나 나타난 룸은 여태껏 본적 없는 고급스러움이 넘쳐흐른다.
"짱개들~ 참~ 돈 많은 가봐"
그들은 아직 도착 전이다. 총경리는 담배를 하나 물어 피고는 불편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나는 룸 안 곳곳을 두리번거린다. 벽에 걸린 그림 속의 동물인지 괴물인지 알 수 없는 형상은 나를 기분 나쁘게 째려본다.
"噢~你们已经来了"(오~ 먼저 오셨군요)
"예 또 뵙겠습니다. 총경리님 이렇게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要是成为一家人,吃一顿饭是非要不可嘛"(뭐 식구가 되려면 밥은 한 끼 해야죠 하하하)
동줘총경리와 그의 여비서 둘만 나타났다. 이건 무슨 한중 1:1 정상회담장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양측 정상과 통역만 참석한 만찬은 비공개다. 그래서 통역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때론 국가기밀까지도
"来!来! 为了庆祝张总成为一家人,干杯!"(자! 자! 이제 한 식구가 된 걸 축하하며 건배!)
"감사합니다. 총경리님"
산해진미들이 원탁 위에 깔리기도 전에 빠 이주(白酒:빼갈)가 오고 간다. 최고급 빠이주다. 중국에는 수많은 빠이주가 있지만 크게 마오타이(茅台)와 우량에(五粮液) 두 종류의 최고급 빠이주가 존재한다. 오늘은 그중 우량에가 술상에 올랐다. 싸게는 몇 십만 원에서 몇백몇천만원을 호가한다. 중국에서 국빈이나 VIP 손님을 맞을 때 나오는 중국 대표 빠이주이다.
장총경리도 술이라면 지지 않는 양반인데... 원정경기에다 현지 술까지는 당해내기 힘든 모양이다. 빈 속에 도수가 50도에 육박하는 독한 술을 연거푸 들이켜고는 위가 쓰라린지 표정이 일그러지며 윗배를 쓰다듬는다.
"张总~你不会这么快喝醉了吧? 呵呵呵" (장총경리 벌써 술이 되신 거 아니죠? 하하하)
"아닙니다. 이.. 정도야 으읍!"
"是吗? 那再来一杯!"(그래요? 그럼 자자 한잔 더!)
그의 말과는 달리 기습해 올라오는 딸꾹질에 전세는 뒤집힌 듯 보인다. 그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는 말로 첫 라운드 종료를 선언한다. 나도 그를 따라 화장실로 향한다. 장총경리는 화장실 칸막이 구역질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괜찮으십니까? 총경리님?"
“어 괜찮아 신경쓰지마”
잠시 뒤 장총경리는 화장실 칸막이 문을 열고 나온다. 불그레한 얼굴색과 초점이 풀린듯한 표정이 그가 술을 마신 건지 술이 그를 마신 건지 알 수 없다.
"아~놔~ 난 아무래도 소주 체질인가 봐 허허"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는 그를 뒤에서 쳐다보며 서있는 나는 갑자기 술의 탄생 배경이 궁금해진다. 인간이 즐겁게 흥을 돋우고 행복하기 위해 발명된 것이 아녔던가? 누군가가 누구를 해하려고 이용하는 것이 술이 되어버린 이 상황이 이해하기 힘들다. 기호 식품인 술을 억지로 마시면서까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 알량한 수컷들의 자존심인가. 우리는 그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술이 독이 될 때가지 마시며 자신을 사지(死地)로 몰아가고 있는 것 같다. 정신을 가다듬은 총경리는 다시 경기장으로 입장하고 두 번째 라운드가 시작된다.
"张总!我们抽一支吧"(장총경리 담배 한대 피우시죠)
"아 예 그러시죠“
동줘총경리는 붉은색 담배갑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는 원탁의 회전 테이블에 올려놓고 장총경리쪽으로 돌린다. "중화(中华)" 담배도 최고급 담배다. 한 갑에 100위안 정도 하지 않을까? 나도 한 번도 피워보지 못한 담배다. 둘은 그렇게 고급담배를 입에 물고 연기를 뿜어낸다. 통역하기에 정신 없던 나와 그녀는 그 틈을 타서 테이블 위에 놓인 음료를 마시며 목을 축인다.
"对了!张总你找到什么答案的吗?"(그래 장총경리 무슨 대안이라도 찾았어요?)
"아 그게..."
장총경리는 동줘총결리의 옆에 앉은 여비서의 눈치를 살핀다.
"你不用管这女孩儿,她已经是属于我的了 哈哈"(이 아이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완전히 내 꺼니까 하하하)
그는 두툼한 곰발바닥 같은 손을 그녀의 가냘픈 어깨에 얹히고는 그녀를 끌어당긴다. 여비서는 담배연기에 입을 가리고는 마지못해 끌려가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녀는 그 순간에도 통역은 놓치지 않는다. 정말 프로패셔널하다. 돈이 정말 위대하긴 위대한가 보다. 프로는 결국 돈을 쫓는 존재가 아니던가?
"사실 공장 착공은 좀 힘들 거 같습니다. 현재 업황이나 시국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쌍방이 공장 착공에 그 큰 돈을 투자하는 것은 여러모로 서로에게 도움될 게 없을 것 같습니다."
"所以呢?"(그래서?)
"총경리님만 저희에게 힘을 좀 실어주신다면 합자를 잠시 해산하고 시기를 호전되었을 때 양사가 다시 사업을 도모함이 어떨까 해서요"
"我为什么帮你们的呀?"(내가 왜 당신들에게 힘이 되어줘야 하지요?)
"만약 총경리님께 저희의 제안을 받아주신다면, 그에 상응하는 섭섭치 않은 대가를 회사 대 회사가 아닌 개인적으로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안에 비공식으로 제가 이미 저희 본사와 협의를 완료해 놓은 상황입니다. 총경리님만 확답을 주신다면 바로 진행도록 하겠습니다."
"呵呵呵 这位.. 再烟酒烟酒去吧" (허허허 그 사람~ 술 좀 더 합시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밖으로 나선다. 세 번째 라운드는 장소를 옮길 모양이다. 여비서는 두번째 라운드까지만 동행이다. 식당 앞에는 기사가 검은색 아우디 A8 차량의 문을 열고 대기하고 있다. 두 총경리는 뒷좌석에 나란히 앉고 나는 앞에 조수석에 앉는다. 동줘총경리는 차창을 열어 여비서에게 손짓한다. 여비서는 차창 앞으로 다가간다. 그는 여비서에게 귀속말을 몇 마디 건네며 100위안 짜리 지폐를 두 장 건네며 택시를 타고 집에 가라고 한다. 이제부터 통역은 전적으로 나에게 맡겨졌다.
‘저 돈은 내가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잠시 뒤 차가 도착한 곳은 네온사인이 화려한 KTV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마주친 그녀, 춘옌이다. 그녀도 놀랐는지 순간 동공이 확장되는 표정을 확인하자마자 이내 뒷문에서 내리는 동줘총경리의 팔을 부축하며 꾸며낸 듯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准备好了吧?"(준비해놨지?)
"当然啦~快请进~"(물론이죠 어서 들어가셔요~)
"来来~张总今晚不醉不归哦"(자자~ 장총경리랑 끝까지 가봅시다)
심상치 않은 세 번째 라운드가 시작되려 한다. 이미 적진 깊숙이 들어왔고 끝판 대장과의 최후의 결전만 남았다.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입장한 화려한 KTV 룸 안에는 언제와 있었는지 양주 조선소의 생산본부장과 부총경리가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张总~请进!"(어서오세요 장총경리님!)
"欢迎~ 欢迎你成为一家人了 哈哈哈"(환영합니다. 한 식구가 되신걸 하하하)
그 전 양주 조선소 회의실에서와는 사뭇 다른 환대에 어색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자리에는 이미 술과 안주가 세팅되어 있다. 잠시 뒤 실오라기 같은 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룸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춘옌은 그 앞에서 앉아있는 우리를 향해 그 여성들을 하나씩 지명하며 간략한 소개를 한다. 그 소개라는 것이 여성의 이름, 나이, 학력, 외국어 가능여부, 2차 가능 여부등의 내용이었다.
춘옌은 장총경리와 나에게 원하는 여성을 선택하라고 한다. 우리 둘만 빼고 다들 자신들의 파트너를 끼고 앉아있다.
"张总~ 这里的小姐都是在扬州最棒的 哈哈"(장총경리님~ 이래 봬도 여기 아가씩들은 양주에서 최고의 애들이에요 하하하)
"아~ 그렇습니까? 하하하"
장총경리는 1,2차전에서 먹은 술이 과했는지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여자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 취기가 적당히 올라야 성욕도 오르기 마련이지 과도한 알코올은 성욕을 감퇴시킨다. 그냥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여성을 가리키며 손짓한다. 선택 받은 여성은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띠며 그의 곁에 찰싹 붙어 앉는다.
춘옌은 이번엔 나를 쳐다보고는 앞에 서있는 여자들을 가리킨다. 머뭇거리는 나의 모습을 본 그녀는 나를 응시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 옆에선 여자를 지목한다. 선택이 종료되고 연회가 시작된다.
"来来~ 我们一起干杯吧!"(자자~ 그럼 다 같이 건배합니다.)
이미 술이 거나하게 취한 생산본부장의 건배제의를 시작으로 3 라운드 파티가 시작되었다. 음악이 흐르고 술도 흐른다. 수컷들은 암컷들과 섞여 술과 음악에 젖어 서로를 탐닉하기 시작한다. 동줘총경리는 춘옌이 부어주는 술을 마시며 타이트한 원피스에 드러난 그녀의 볼륨 곳곳을 두툼한 곰발바닥 같은 손으로 더듬는다.
나는 내 옆에 앉은 파트너가 아닌 그녀에게 시선이 멈춰있다. 딸 같은 어린 여자들을 품에 끼고 그녀들의 웃음과 몸을 돈으로 사는 그들은 진정한 자본주의의 승리자일까?
지금 이곳 중국이라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위력은 그 어느 자본주의 사회보다 더 강하다. 늦바람이 무섭다는 말이 있다. 뒤늦게 알아버린 돈맛은 그 어떤 유혹보다도 달콤하다. 돈은 칼 마르크스와 마오쩌둥의 사상보다도 더 깊이 그들의 정신 속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