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EP 67 (개정판)
"It's very hard to communicate with a Chinese in English"(영어로 중국인이랑 커뮤니케이션하는건 너무 어려워)
"Yes, I think so, we need to learn some Chinese if you do business in China"(예, 그렇죠, 우리는 중국에서 비지니스 하려면 중국어를 배워야 해)
"Dawson speaks Chinese very well~"(도슨이 중국어 잘해요~)
"What a surprise! Dawson, do you speak Chinese?"(와우~놀랍네요 도슨 중국말도 해요?
"Yes I do a little"(예 조금)
아침 영어 수업시간이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한 학생(회사 중역쯤으로 되어 보이는)이 영어로 자신이 다녀온 중국 출장 얘기를 꺼낸다. 그때 보현 씨가 내 얘기를 꺼낸다. 영어 선생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관심을 보인다. 그녀도 근래에 중국어에 관심이 많아 따로 공부를 조금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어의 성조(발음에서 4단계 높낮이)랑 한자가 너무 어려워 포기할까 한다며 중국어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고 멋있어 보인다며 나에게 없던 급 관심이 쏟아진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처음으로 영어회화 반의 회식이 있었다. 반에서 나이 있으신 능글능글한 중년의 아저씨들의 계속되는 회식 제안을 그녀도 계속 거절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들은 중소기업의 임원쯤 되어 보인다. 그녀도 학업과 일을 병행하느라 시간을 내기 힘들어 힘들게 성사된 회식이었다.
시내의 한 횟집에 10명 남짓한 다양한 연령대의 동급생이 함께 자리했다. 회사 중역부터 신입사원까지 다양하다. 같은 회사가 아니라면 다 친구이고 아저씨일 뿐이다. 회사에서의 그런 딱딱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신기하게도 이해관계가 섞이지 않은 모임은 영어라는 하나의 공감대만으로도 나이와 직급에 상관없이 편안해질 수 있다.
"제시카~ 캐나다 어디서 공부했어요?"
"예 전 토론토에 좀 있었어요"
"그럼 외국 남자도 사귀어 봤겠네"
"하하 글쎄요. 자 우리 다 같이 건배할까요?
몇몇 아저씨들의 능글맞은 취조 질문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웃음과 재치로 넘겨버린다. 그녀 역시 보통이 아니다. 회사를 대상으로 영어 출강을 자주 다니는 그녀는 이런 상황을 많이 겪어서인지 자신만의 매뉴얼대로 대처해 나간다. 꽤나 효과가 있어 보인다. 형님 아재들은 노련한 영어선생의 임기응변에 재미가 반감했는지 반에 다른 여자에게로 관심을 돌린다. 가끔씩 쇄골과 윗가슴 다 드러난 그녀의 몸을 한 번씩 스캔하려 그녀를 힐끔 거리며 아쉬움을 달랜다.
"도슨은 중국어를 어떻게 배웠어요?"
"아~ 그냥 대학생 때 교환학생으로 중국에 좀 있었어요"
"그랬군요 성조랑 한자가 어렵지 않아요?"
"음... 중국어가 처음에는 어려울 수 있는데 갈수록 쉽고 재미있는 특징이 있는 거 같아요, 일본어랑은 약간 반대 같은 느낌이랄까요?"
"오~ 그래요?"
"그래서 처음에 발음이랑 성조를 잘 잡아주는 게 중요하긴 해요"
"와~ 중국어 선생님 같아요 하하하
"예!? 하하"
그녀는 나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마력이 있다. 그녀의 칭찬에 그 동안 내가 중국어 공부를 해왔던 노하우들을 그녀에게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녀는 흥미에 찬 관심의 눈빛으로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듣고 있다.
"도슨~ 나 중국어 좀 갈쳐줘요!"
"... 맨입으로요? 하하하"
"What do you want?"(뭘 원해요?)
"Well... Let me think about it for a while"(음... 좀 생각해 볼께요)
그녀의 급작스런 제안에 나는 잠시 머뭇한다.
얼마 전 회사에서 나에게 떨어진 사이드 업무가 있었다. 매일 아침 회사 홈페이지 게시판에 국내외 조선업 현황 관련 뉴스 기사를 게재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홈페이지가 한글, 영문, 중문, 일문 네 가지를 지원한다. 나에게 영문과 중문 번역문 게재의 업무가 떨어진 것이다. 안 그래도 해야할 업무가 태산인데 사이드 업무는 줄지 않고 쌓여간다. 중국어도 짜증 나는데 영어까지 너무하다. 이유는 내가 기획팀에서 유일하게 중급 영어회화를 수강한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다.
방법은 두 가지다. 대충 하거나 아니면 시간(야근)으로 때워야 한다. 다만 전자는 욕먹을 각오를 좀 해야 한다. 아니면 당시 결재자의 기분이 좋거나 혹은 많이 피곤하기를 바라야 한다. 팀장 대행인 도다리가 기분이 좋은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그가 피곤할 때 결재를 받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결재 서류를 꼼꼼히 따져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기획실 멤버들은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업무가 시작되고 1~2시간 안에 결재를 받으러 가는 이가 많다. 졸음이 밀려올 땐 글자가 눈에 잘 안 들어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에겐 또 다른 방법이 떠올랐다. 그건 바로 아웃소싱(Out-sourcing)이다.
"그럼 부탁이 하나 있어요!"
"뭔데요 뭔데? 말해봐요"
나는 다른 사람이 들을까 봐 그녀의 귀에다 대고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Ok~ No problem!"(오케이 문제없어요!)
"Really? thank you so much!"(정말요? 감사합니다!)
"그럼 도슨은?"
그 대가로 나는 그녀의 1:1 중국어 과외 선생이 되어야 했다. 평일은 나의 야근과 그녀의 학업으로 힘들고 토요일 오전 시간을 이용하기로 했다. 회사 경영악화로 토요일 특근이 전면 제한되어 토요일 오전을 그녀에게 쏟아 붓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토요일 오전 3시간의 중국어 과외와 매주 5일 5편의 영문 번역 일과 맞트레이드가 성사되었다.
"희택~ 요즘 영어 번역이 물이 올랐나 봐~ 갈수록 속도와 퀄리티가 올라오는 것 같은데…"
"예… 별말씀을요 하하"
"음… 역시 글로벌 인재야 계속 수고해줘!"
도다리는 기사 번역본 결재서류에 사인 후 나에게 건넨다. 나는 매일 아침 국문 조선 기사를 카피해서 그녀의 메일로 날렸고 그녀는 보통 1시간, 늦어도 2시간에 안에 번역된 영문 자료를 보내왔다. 난 국문과 영문 그리고 내가 번역한 중문까지 세 가지 게재문을 도다리에게 결재 받고 홈페이지 게시판에 게재했다. 그녀에게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닌 듯 보였다.
그렇게 난 과중되는 업무를 아웃소싱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