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EP 69 (개정판)
"오늘은 이만해요 I’m so tired~" (너무 피곤해요)
"그래도 성조 연습 좀 하셨나 봐요 좀 나아진 느낌인데요"
"Oh~ Are you sure? 기분 좋은 데요 칭찬 들으니 하하"
커피숍 창 밖으로 보이는 바다의 수평선 위에 놓인 웅장한 현수교가 수면에 부서지는 늦은 오후 햇살과 함께 그림처럼 눈 안으로 들어온다. 오늘은 지난주 그녀가 얘기했던 영어 공부를 위한 저녁 일정 때문에 주말 오후에 만나 중국어 과외를 하기로 했다. 밖은 조금씩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자! Let' go~"
"어디 가요?"
"Just follow me" (그냥 따라와요)
그녀가 간 곳은 어느 대학가의 외국인 전용 펍(Pub)이었다. 그곳에는 외국인들이 대부분인 것 같아 보인다. 곳곳엔 몇몇 젊은 한국 여성들이 외국인들과 어울려 맥주를 마시며 대화하는 모습이 보이고 맥주병을 손에 든 채 당구나 다트게임을 즐기는 외국인들도 보인다.
"Hey~ Jessica! How have you been?" (헤이! 제시카! 어떻게 지냈어?)
"Look! James~ what a surprise! How could you be here?"(와우 이게 누구야! 제임스~ 네가 어떻게 여기에?)
"I came back two days ago"(이틀 전에 돌아왔어)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영화에서나 자주 보던 덩치 좋은 근육질의 백인 남자가 그녀를 반기며 그녀를 양쪽 볼에 입맞춤을 한다. 그녀는 그런 인사가 전혀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그녀는 그에게 나를 인사시켜준다. 나는 경직된 표정으로 그가 건넨 손을 잡는다. 백인 남자가 움켜쥐는 손에서 전달되는 강한 악력 때문인지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할 말들이 순간 사라지고 말할 적절한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도슨~ What are you doing? Come on Say something!"(뭐해요? 자~뭐라 말 좀 해요)
"아~ I'm Dawson, nice to meet you, I'm a her student"(도슨이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전 그녀의 학생입니다)
"Oh~ Nice to meet you too, I’m James. Jessica! You brought your student here, Wow awesome!"(오 만나서 반가워 난 제임스야. 제시카! 너 학생을 데려왔어 여기에, 와우 대단한데!)
백인은 자신의 학생을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 뭐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놀란다.
‘뭐지 저 표정은? 학생은 출입금지인가?’
좀처럼 낯설고 어색한 분위기에 몸과 마음이 위축된다. 제시카와 백인 남성은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스킨쉽을 하는 모습이 나와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녀가 말한 영어공부는 외국인들과의 실전 대화 연습이었던 모양이다. 한국인과의 영어와는 차원이 다르다. 모국어를 영어로 사용하는 자들의 영어는 그 느낌부터가 다르다. 그 느낌 속에 녹아있는 영어를 내가 아는 영어로 캐취 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Do you keep in touch with Jason?"(아직 제이슨과 연락해?)
"Oh~ Please don't mention him again"(오~그의 얘기는 다신 하지 말아줄래)
내가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어 보인다. 그렇게 그들은 한참을 대화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다. 대화가 속도가 붙기 시작하자 난 그들의 대화가 토익의 리스닝 컨프리핸션(Listening comprehension)처럼 들린다. 좀처럼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난 홀로 펍 안을 둘러본다. 거기에는 능숙한 영어를 쓰는 한국 여성들이 백인 남성들 사이에서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이따금씩 입술이나 볼에 자연스럽게 키스를 한다. 또 다른 옆에서는 한국 여성이 맥주병을 손에 든 채 거구의 흑인 남성의 목에 올라앉아 말을 타듯 이리저리 펍을 휘젓고 다닌다. 나는 지금 미국 라스베거스 어느 바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교실에서 자신 있게 내뱉던 영어는 여기선 웬일인지 목구멍 깊숙이 숨어버렸다.
왜일까? 과거 중국어를 공부할 때와는 전혀 다른 이 느낌은 단지 서양과 동양의 차이 때문일까? 아니면 스스로가 만들어낸 우월과 열등의 지위 때문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금 저 백인 남성들의 모습이 과거 내가 중국에서 중국인들 사이에서 있을 때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한류가 중국을 휩쓸고 있을 때 그 기류를 등에 업고 그들의 관심과 환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저 백인들도 영어라는 모국어와 미국 우월주의 사상이 스며든 화려한 할리우드 영화에 열광하는 우리들의 환대와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런 배경은 특히 이성에게는 더 효과가 있어 보인다.
경제적으로 우월했던 나라는 열등한 나라의 성을 지배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역사적으로 유럽은 대항해 시대를 거치면서 서양 남성들의 유전자를 전 세계로 퍼뜨렸고, 과거 우리의 선조들도 몽고와 왜나라(일본)등 침략 등으로 우리 부녀자들을 볼모로 혹은 희생양으로 내어주어야 했다. 힘과 돈이 여성을 무한 소유하고 지배하는 논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현대에 와서도 그것은 형태만 바뀌었을 뿐 크게 다르지 않다. 국경을 초월한 사랑이라면 아름답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안타까운 비극이다. 우리는 우월한 국가의 돈과 기술 그리고 문화를 흡수하기 위해 웃음을 팔고 때론 몸도 팔 수 있다. 물론 과거와는 다르게 자의(自意)에 의해서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도 우월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다른 민족과 피가 섞이면서 더욱 우월한 유전자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과거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우월한 민족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아시아의 초강대국으로 급성장하지 않았던가.
지금 여기에는 그런 우월해지고 싶은 한국인들과 그들 때문에 우월해 보이는 외국인들이 서로 뒤섞여 무언가를 기브엔 테이크(Give&Take) 하고 있다. 난 그 어느 쪽도 속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