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我是今天为大家当作一日导游的全喜宅, 请多关照! 哈哈"(오늘 여러분의 부산 투어를 맡게 된 전희택입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하하)
일요일 이른 아침 한 무리의 중국인들과 만났다. 며칠 전 중국의 연태 자회사에서 중국 생산라인의 기술자들이 한국에 단기 파견을 왔다. 현지 생산 제품의 생산효율과 품질을 제고를 위해서는 현장 작업자 개개인의 역량과 기술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연태공장의 현장 작업자들 중 근태와 근속연수를 고려해서 우수한 직원들만 선발해서 본사 공장으로 한 달간 기술 연수과정으로 단기 파견을 보낸 것이다.
당시 중국 현지 조선업계에서는 한국으로 기술 연수를 다녀온 중국 기술자는 몸값이 두배로 뛰어오른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만큼 한국의 조선 기술을 습득하고 체화한 인력은 중국 현지 조선소나 조선기자재 업체에 비싼 돈을 주고 모셔가고 있었다. 그래서 현지의 중국 직원들은 어떻게든 한국으로 출장이나 파견을 가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한국 업체들은 그런 중국 직원들의 연수 후 이탈을 막기 위해 한국 파견 직원에게는 향후 3년간의 동종업계 이직을 하지 못한다는 서약서를 받고 난 후 한국으로 파견을 보내는 것의 거의 관행처럼 행해지고 있었다. 뭐 물론 그걸 다 준수하며 회사를 다니는 중국 직원들이 몇이나 될는지는 모르지만 한국 업체의 입장에서 형식적인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희택아~ 기계사업부에서 중국 직원들 귀국 전에 관광을 좀 시켜주려고 하는데... 마땅한 인원이 없다고 하네 네가 주말에 좀 수고 좀 해야겠다."
안 그래도 그 중국 직원들의 현장 통역으로 몇 번씩 생산 현장에 불려 갔던 나였다. 예상은 했지만 주말까지 반납하고 그들의 일일 관광가이드까지 하라는 건 너무 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일요일 새벽부터 회사로 출근해 회사의 9인승 승합차를 배차해 공장 근처 그들의 숙소 앞으로 갔다.
"喜宅! 你为了我们周末都过来跟我们一起,太谢谢了"(희택 씨! 주말까지 저희를 위해 나와줘서 너무 감사합니다.)
"喜宅!你真棒!"(희택 씨 짱!)
주중에도 퇴근 후 한국에서의 그들의 일상생활의 편의를 돕기 위해 몇 번 찾아왔었다. 그들은 그런 나의 호의를 눈치채고 있었고 공적인 감정을 넘어선 사적인 친분이 더 커져가고있었다.
"那我们出发了!"(자 그럼 출발!)
을숙도 대교
주말의 한산한 공단 도로를 가로질러 부산 시내로 들어간다. 남해와 낙동강이 만나는 을숙도 위를 가로지르는 대교를 지날 때쯤 멀리 해가 조금씩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차는 계속 달려 감천마을이 올려다 보이는 도로를 지난다.
"那边山上为什么有那么多屋子呢?"(저기 산 위에 왜 저렇게 집이 많은 거예요?)
"那个嘛?都是因为你们啊 哈哈哈"(그건 다 당신들 때문이죠 하하)
"咦?! 那是什么意思?"(예?!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감천 마을
난 그들에게 6.25 전쟁 이야기를 꺼냈고 당시 중공군의 투입으로 남쪽으로 도망쳐온 피난민들이 살 곳이 없어 산에 집을 짓고 살면서 만들어진 산비탈 판자촌 역사를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那时候我们中国应该把韩国解放才对"(그때 우리가 한국을 해방시켜 줬어야 했는데...)
"那时我们来从鬼佬救你们"(그러니까 우리는 미제 앞잡이들로부터 너희를 구해주러 온 것이야)
"没错没错" (맞아 맞아)
사상과 이념이라는 건 참 무섭다. 한 인간의 생각과 관점이 이렇게도 다를 수가 있구나 그래서 인류는 끊임없는 전쟁과 분쟁 속에서 자신의 사상과 이익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고 그것이 마치 정의를 실현하는 것인냥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你好! 我是杰西卡"(안녕하세요! 전 제시카입니다.)
"今天为你们再加上了一名美女导游"(내가 오늘 너희들을 위해 미녀 가이드를 한 명 더 추가했어요)
"哇~ 欢迎欢迎"(우아~ 환영합니다.)
"喜宅~你太棒了"(희택~ 정말 멋있어요.)
오늘 특별히 그동안 갈고닦은 그녀의 중국어 실전 연습을 위해 일일투어 보조 가이드로 고용했다. 그녀는 나의 옆자리에 올라타고는 뒤에 앉은 중국인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외워온 자기소개를 중국어로 하고 있다.
"认识你们很高兴"(만나서 반갑습니다.)
"哇~美女! 你中文说得也很好"(우아~ 미녀분이 중국어도 잘하시네요)
"喜宅~是女朋友吗?(희택~ 여자 친구?)
"不不, 他是我的英语老师 哈哈 (아니 아니 내 영어 선생님이예요 하하)
"哦~ 原来如此"(오~ 그렇군)
광안리와 황령산 그리고 광안대교
차는 다시 광안리 해변과 황령산이 보이는 바다 위를 내달린다. 중국 직원들은 연신 카메라를 들어 창밖에 풍경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哇~ 这个汤水很好喝"(오~ 이거 탕 국물이 시원하네요)
"这个是在海运台最出名的鳕鱼汤"(해운대에서 유명한 대구탕입니다)
"噢~很好喝!"(오 맛있어요)
해운대에 도착한 일행은 대구탕(鳕鱼汤)으로 늦은 아침을 해결했다. 다들 시원한 국물이 일품인 대구탕에 만족한 표정이다.
해운대 대구탕
그녀는 중국 직원들의 옆에 앉아 자신이 아는 중국어를 쓸 타이밍을 잡으려 눈치를 보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한 번 내뱉은 중국어로 인해 쏟아지는 중국 직원들의 관심 어린 중국어 답변은 곧 그녀를 고개 숙이게 만들었고 영어로 대화를 이어나가려 해 보지만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의기소침해진다.
"哇~ 好爽啊"(우아~ 시원하다)
"海鷗这么多"(갈매기가 엄청 많네요)
유람선에 오른 중국인들은 엄청난 무리의 갈매기 떼를 향해 새우깡을 던져 준다. 서로 먹으려 싸우는 갈매기들의 몸부림과 울부짖음 속에 유람선은 부산의 해안선을 따라 움직인다. 바다 수면 위의 차가운 기운이 선상으로 올라와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중국인들과 달리 나와 그녀는 배 위에서 그런 그들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아~ 추워!"
그녀는 패딩 재킷의 후드를 머리에 뒤집어쓰고는 나에게 팔짱을 끼며 찰싹 들어붙는다. 잠시 당황했지만 그녀의 온기가 싫지 않아 그냥 있는다.
"도슨은 좋겠다. 중국어도 잘하고 이제 영어까지 잘하게 되면 장난 아니겠는걸요"
"영어는 아직 멀었죠"
"노~ I believe You will be good at English faster than others"(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영어를 잘하게 될 거라고 믿어요)
오륙도와 유람선
유람선은 오륙도를 천천히 돌아 다시 해운대로 돌아간다. 오륙도의 비경을 구경하는 건지 카메라 속의 화면을 구경하는 건지 눈으로 바라보는 시간보다 디지털카메라의 액정을 바라보는 시간이 더 길다. 유람선 관람이 끝나고 일행과 동백섬의 누리마루로 향했다.
그녀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 이곳을 중국어로 설명해 보려 하지만 이내 나의 도움을 요청한다. 중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 국가의 정상들이 모여 회의(APEC)가 개최된 곳이라는 말에 그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자신들이 중국 대표단이라도 된 거 마냥 회의장을 배경으로 회의 참석 인증샷을 찍느라 분주하다.
동백섬 누리마루
누리마루를 벗어나 해운대 백사장으로 들어섰다. 백사장에 가운데 한 무리의 젊은 여성들이 '나 잡아봐라' 놀이를 즐기는지 뛰놀고 있다.
"喜宅~ 韩国女孩儿都怎么这么漂亮?"(희택~ 한국 여자들은 다 왜 이렇게 이뻐?)
"恩..."(글쎄...)
"要是我有韩国女朋友就会很高兴的 哈哈"(나도 한국 여자 친구 있었으면 좋겠다 하하)
"那就现在做韩国女朋友吧~ 哈哈"(그럼 지금 하나 만들어봐~하하)
"别开玩笑"(에이 농담도...)
"怎么不行啊?"(왜 안돼?!)
나는 백사장을 노니는 여자 무리들에게 접근했다.
해운대 해변
"저기요!"
"네?!"
"죄송한데... 뭐 한 가지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예?! 뭔데요?"
난 그녀들에게 그럴싸한 핑계를 섞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중국 남자 직원 일행들의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한 이벤트를 진행했다. 미녀들 사이사이에 그들을 끼워 넣고 단체 사진과 각자 한 명씩 팔짱을 끼고 해운대 백사장과 바다를 배경으로 연인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 사진을 한 장씩 찍었다.
나는 촬영감독이 되어 그들에게 이리저리 포즈를 주문했고 그녀들은 한국관광진흥공사 직원을 돕기 위한 국가 홍보대사의 중대한 임무를 띠고 중국 관광객의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다슨~ You're so funny! Amazing!"
그녀는 나의 이런 행동에 적지 않은 당황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나의 어깨와 가슴의 중간쯤을 때리듯이 두드린다.
중국 직원들은 여태껏 보지 못한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나의 특별 이벤트에 아주 흡족해하는 눈치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간다. 부산의 중심인 서면으로 자리를 옮겼다. 차가운 바닷바람에 움츠러들었던 몸엔 뜨근한 국물과 소주가 제격이다. 부산에 온 이상 국밥을 먹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그들을 데리고 국밥집에 자리 잡았다.
"이모! 여기 소주 두병이랑 돼지국밥 7개 주이소!"
부산 돼지국밥
잠시 뒤 여러 가지 밑반찬과 뽀얀 국물에 돼지수육이 가득 담긴 국밥과 소주가 테이블에 올려지고 중국 직원들은 신기한 눈으로 비주얼을 감상하며 사진부터 찍어댄다.
"喜宅~这怎么吃呢?"(희택~ 이거 어떻게 먹어요?)
나는 새우젓과 다대기(양념장), 깍두기 국물 그리고 그 위에 정구지(부추)를 듬뿍 얹히고 밥과 섞이도록 말아서 크게 한 입 넣는다. 그걸 본 중국 직원들은 나를 보며 똑같이 따라 한다.
"哇~这个汤水很好喝"(와~ 이거 국물이 끝내주네요)
"噢~真好吃"(오~ 정말 맛있네요)
"来~来一杯烧酒"(자~ 다들 소주도 한잔 해요)
"도슨~ 운전해야잖아요"
"에이~ 한잔 정도는 괜찮아요 하하"
스산한 가을날 밤 뜨끈한 국밥과 소주가 피곤과 허기에 지친 그들에게 다시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알딸딸한 기분과 회복된 체력으로 관광의 마무리 일정으로 소화할 차례이다. 귀국 전 가족 친지들을 위한 선물을 사기 위해 쇼핑을 시작했다. 각자 나에게 쪽지를 보여주며 거기에 적힌 것들을 다 사야 한다며 나에게 물어온다. 대부분이 한국 화장품이다. 그들의 아내와 여자친구 혹은 친지들의 부탁을 받은게 분명하다. 시내 지하상가의 한 화장품 전문매장을 방문했고 목록에 적힌 물품들을 직원에게 모두 요청했다. 카운터 테이블이 엄청난 양의 화장품 박스로 쌓여간다. 대형 고객이 온 걸 눈치챘는지 어디선가 다소 기품 있어 보이는 여성이 자신이 매니저라며 나에게 다가온다.
서면 지하상가
"고객님~ 한국 여행 오신 분들인가 봐요?"
"아~ 음... 뭐 그런 셈이죠 하하하"
그녀는 나에게 명함을 건네 보이며 다음에 다시 방문해 달라며 고급 남성 화장품 한 세트를 같이 건넨다. 다음부턴 별도의 커미션을 챙겨줄 수도 있다고 제안한다. 나는 제시카를 바라보며 매니저에게 눈치를 주자 여성용 기초화장품 세트도 하나 더 증정한다.
"도슨~! Unbelievable!"
"고객님 계산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다 현금으로 해주세요"
"현금영수증은 어떻게?"
"아~ 네 그건 제 번호 불러드릴게요"
중국 직원들의 손에는 각자 두툼한 현찰 뭉치가 들려있고 자신의 물건값을 계산하고 있다. 그들 덕분에 난 연말정산에 적지 않은 혜택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