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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그린 라이트

평범한 남자 EP 65 (개정판)

by 글짓는 목수

"아이구~ 우리 잘생긴 형님들 아는 웨이터 있슴미꺼?"

"박카스요!"

"오~ 삶에 활력 박카스! 야! 박카스 남자 손님 세분 내려가신다~"


웨이터는 무전기에 대고 고객 영접 지령을 날린다. 동구는 어디서 알았는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웨이터 이름을 날린다. 녀석은 이미 우리 몰래 사전 답사를 다녀온 모양이다. 동구는 내가 자꾸 캐묻는 통에 그냥 회사 형님들이랑 한 번 온 적이 있다며 우쭐댄다.


타원형 계단을 따라내려가니 우리가 내려오는 걸 올려다보는 한 청년이 보인다. 하드왁스로 세팅된 노란 머리에 곱상하면서 양아치틱한 느낌이 개그맨 누군가를 닮아있다.


"역시 내 직감은 틀리지 않아. 내 형님 올 줄 알았지~ 오늘도 룸으로?"

"응~ 오늘 물 괜찮아요?"

"오~ 오늘 죽이죠~ 대목 아입미꺼~ 여긴 친구분들?"

"응, 잘 부탁해요"

"여부가 있습니까 오늘 내가 책임지고 화끈하게 숨도 못 쉬도록 부킹 넣어드릴께예"


나는 숨은 쉬고 싶다. 부킹은 횟수가 중요한 게 아니다. 술만 축내며 나가는 여자가 대부분인 나이트 부킹에선 제대로 된 한 방이 중요하다. 룸으로 안내한 그는 호주머니에서 박카스를 꺼내 뚜껑을 하나씩 따서 우리에게 건넨다. 그가 왜 '박카스'인지 이제 알겠다.


"젊은 날의 선택! 박카스! 오늘도 행님들 파이팅하시죠!"


'동아제약'에서 협찬을 받나보다. 뒤이어 들어온 웨이터가 시바스리갈 12년 산 뚜껑을 따더니 스트레이트 잔에 따라 우리에게 건넨다. 동구는 웨이터에게 양주 한 잔을 따라주며 만 원짜리 몇 장을 호주머니에 찔러준다. 웨이터는 강력한 윙크로 사인을 보내며 문밖으로 사라진다.


"야! 니 우리 몰래 잘 놀고 댕기네"

"아냐~ 그냥 한 두 번 온 거뿐야"

"수상한데…"


말 끝나기가 무섭게 여자 셋이 박카스의 등에 떠밀려 방 안으로 들어온다.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들이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떠밀려온 여자가 룸안에 앉아있는 우리들을 한 번 쓰윽 훓어보고는 뒤에 따라오던 둘을 다시 문 밖으로 밀어낸다.


"야야~ 나가자! 나가, 상태 아냐. 완전 아저씨다"


다 들린다. 좀 작게 얘기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녀들이 나가고 박카스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 다시 한번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문을 닫고 사라진다. 순간 당황한 우리들은 왜 돈 주고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에잇! 난 노래나 한 곡 해야겠다"


♩ ♪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


내가 마이크를 들어 목청을 높이기 시작하니 재득도 마이크를 집어 들고 같이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서른의 청춘과 외로운 가을이 노래 가사와 함께 더욱더 깊어가고 있다. 그 선율과 가사에 조금씩 심취 해갈쯤이었다.


"행님들! 오래 기다리셨죠!"


박카스는 양손에 한 명씩 두 여자의 손목을 감아쥐고는 도살장 끌고 오는 소처럼 룸 안으로 데리고 들어 온다. 여자 둘은 무게 중심을 뒤로 실은 채 못 이긴 척 들어온다. 동구는 리모컨을 들어 재빨리 노래방 반주를 잘라버린다. 박카스는 동구와 나의 옆자리로 여자를 한 명씩 밀어 넣고는 금새 사라진다. 얼핏 보기에 우리보다는 나이가 있어 보이는 삼십 대 초중반의 여성이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두 분이 일행?"

"아뇨 두 명 더 있어요 지금 스테이지에"

"같이 한 잔 하시죠 맥주 아님 양주 아님 섞어?"


동구는 어색한 분위기를 쇄신하려 멘트를 날린다. 내 옆에 여자는 나를 아래 위로 한 번 훑어보고는 맥주잔을 들이민다. 짝이 없는 재득은 뻘쭘하게 자기 잔을 채우고는 분위기를 맞춰준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나에게 물어온다. 그녀들은 우리의 나이가 그녀들보다 적당히 많아 보였다면 묻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려 보인다면 검증을 거쳐야 한다. 그녀들이 감당할 수 있는 나이인지 확인해야 한다. 그녀들도 어린애들 비위나 맞추고 재롱잔치 보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이를 확인한 그녀는 사정권 안에 들어온 나이였는지 맥주잔을 비우고는 다시 나에게 빈 잔을 내보인다. 내가 왜 내 돈 주고 이 여자에게 술을 따라줘야 하는 건지 하는 의문이 든다. 여자로 태어난 것이 벼슬인가? 여성의 시간을 돈으로 사는 남성들, 그것을 당연히 여기는 여성들이 있기 때문에 이곳은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룬다. 공급과 수요가 균형을 이루는 곳은 돈이 돈다.


"오! 벌써 시작한 거야?"


뒤늦게 도착한 춘곤은 뛰어왔는지 가쁜 숨을 내쉬며 룸 안의 상황을 스캔한다. 여자들은 당황한 기색을 잠시 보인다. 춘곤은 자기가 사회자라도 된 듯 자기소개를 하고는 자리에 앉아 건배 제의를 한다.


"잘 됐네요~ 우리도 넷 그쪽도 넷인데 같이 합석하시죠"

"음..."

"두 분은 어디에?"


춘곤는 빨리 자신의 파트너를 찾아야겠다는 마음이 앞섰는지 자기만 모르는 사실을 재확인한다.


"오~ 그럼 우리도 스테이지로 나가서 같이 춤춰요!"

"그래요 같이 나가요! 스테이지 분위기도 좀 느끼고"


두 여자는 서로를 잠시 쳐다보더니 수긍의 고갯짓을 나누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화려한 스테이지가 내려다 보인다. 대목답게 스테이지 위는 발 디딜 틈이 없다. 대목에 풀린 돈은 여기로 다 모이나 보다. 먹고 살만해진 서민들의 지갑은 쾌락과 유흥을 쫓는데 주저함 없이 열린다. 우리는 두 여자를 쫓아 나머지 두 일행을 찾아 스테이지를 비집고 들어간다.


♩ ♪ Oh oh oh oh oh oh 2ne1 이야이야 니 옷깃에 묻은 립스틱들 나는 절대로 용서 못해 ♬


스테이지 위에는 2NE1의 [I Don't care]가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열광하며 음악에 맞춰 유행 가사를 따라 부르며 몸을 흔든다. 노래 가사의 내용 때문인지 여자들의 환호성이 남자들을 압도한다. 앞서 가던 그녀 둘은 일행을 만난 모양이다. 나머지 여자에게 귀속말로 상황을 설명하는 듯 보인다. 좀 전까지 열광하며 광적으로 흔들던 그녀들의 몸부림은 절제된 율동으로 변했다. 우리는 둥근 원을 만들어 서로를 의식하며 음악에 몸을 맡긴다.


♩ ♪ cause I don't care e e e e e I don't care e e e e e ♬


"와~우~"


춘곤이 분위기를 띄우려 일행들의 둥근원 가운데로 들어가 격한 몸짓을 선사한다. 녀석은 다년간의 공시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나 보다 음악의 리듬보다 한 템포 빨리 가버린 그의 춤 동작이 여자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뭐 결국 그 덕분에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해 졌다.


"와~ 덥다~"


룸으로 돌아온 일행은 이제 어느 정도 친밀감이 올라온 모양이다. 남녀는 서로의 땀냄새에서 나오는 페로몬 향에 끌리기 마련인다. 거기에 알코올과 음악이 더해지면 그 유혹은 더욱 강해지는 법이다. 남녀가 짝을 이뤄 대화의 시간을 가진다. 이쯤 되면 승자와 패자의 색깔이 갈리기 마련이다.


오늘은 춘곤이 승자인 것 같아 보인다. 춘곤과 옆에 앉은 여성은 서로 눈을 떼지 못한다. 재득과 그 옆에 여자는 서로 각자의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동구는 자신의 파트너와 앞에 서서 듀엣곡을 가사를 주고받으며 커플처럼 부르고 있다. 둘도 적지 않은 호감의 눈빛이다. 내 옆의 여자는 피곤에 쩔은 건지 술에 취한 건지 이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졸고 있다.


♩ ♪ 혹시 니가 다시 돌아올까봐 다른 사랑 절대 못해 남잘 울렸으면 책임져야지 ♬


오늘은 두 개의 그린라이트와 두 개의 레드라이트가 반짝이고 있다.

그렇게 추석 명절의 밤이 술과 음악 그리고 여자와 함께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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