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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Oct 17. 2022

첫 문장과 첫인상은 같다

[첫 문장의 힘] 샌드라 거스

"첫 문장과 첫인상은 같다"

                                         - 글짓는 목수 - 


  책과 사람의 인연은 기묘하게 닮아있다. 당신이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당신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당신이 처음 접하는 책과 만나는 사람이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성품을 가진 사람인지는 크게 중요치 않다는 것이다. 두 번째 만남과 다음 페이지 읽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첫 문장과 첫인상이 주는 첫 느낌이기 때문이다.


 서점을 가득 메운 수많은 책들과 나를 둘러싼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이 제한된 시간을 어디에 쏟아부을지 선택하고 집중해야 한다. 그 선택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첫 문장과 첫인상이다. 물론 여기서 당신이 학업과 목적에 의해서 읽어야만 하는 책 혹은 직장과 학연, 지연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유지해야 하는 인간관계는 배제하고 말하는 것이다. 첫 문장에서 뭔가 느낌이 오지 않으면 우리는 책장을 덮어버린다. 소개팅에서 좋지 않은 첫인상은 두 번째 만남을 허락하지 않는다. 기회와 시간은 그리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Write great beginnings

"요즘 독자는 처음 몇 장을 참을성 있게 읽으며 무언가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 책 속 인용문 -


 요즘 독자들의 인내심은 예전 같지 않다. 볼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수많은 영상과 이미지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런데 텍스트를 그것도 지루함까지 견뎌가면 읽어줄 독자는 정말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훅'은 1화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1화에서 세게 못 때린다면 떡밥이라도 날리고 5화 안에서 훅을 줘야 한다"


                                                          - [웹소설 작가 서바이벌 가이드] 중에서 -


 이전에 웹소설을 쓰면서 도움을 받고자 읽었던 [웹소설 작가 서바이벌 가이드] (서평 참조)가 기억난다. 그때 그 책을 읽으며 왜 내 소설이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지 않는지를 잘 깨달았다. 소설도 결국 대중의 니즈와 구미에 맞아야만 선택받을 수 있다. 대중은 그 니즈와 구미가 맞는지 확인하는데 많은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최대한 빨리 독자의 목덜미를 붙들어 멜 수 있는 미끼를 던져야 한다. 그 미끼는 남다른 캐릭터 혹은 이색적인 배경 혹은 설정 아니면 자극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냥 무미건조한 서두는 독자가 책이 담고있는 심오한 것들을 드려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만든다. 아무런 부가적인 정보 없이 처음 만나는 책과 사람을 판단하는 방법은 겉에 드러난 시각적 정보밖에 없다. 짧은 시간 안에 독자 혹은 이성의 시선을 사로잡아야만 한다. 강렬한 무언가가 없다면 그 책과 그 사람은 나의 삶에서 아무런 흔적을 남길 수 없다.


책도 외모지상주의


나는 책을 좋아한다. 호주에 온 이후 시드니 곳곳의 도서관을 수도 없이 들락거렸다. 이곳에서 서점 찾기는 어려워도 도서관은 도처에 많다. 물론 아직 영어 원서로 독서를 하진 않는다. 안 그래도 난독증이 있는 나에게 외국어로 책을 읽는 것은 독서가 아니라 고문에 가깝다. 나 또한 재미가 없는 독서를 견딜 여유와 인내심은 없다. 호주에서 발간되는 책들은 표지나 속지나 모두 한국인이 보면 어디 8,90년대 뒷골목 리어카에서나 팔던 삼류 소설집 같은 느낌이다. 책 표지나 속지에 성의가 없어 보일 정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한국의 책이 책 표지와 속지에 기울이는 공이 얼마나 남 다른지는 이곳의 책을 보면서 새삼 깨닫게 된다. 한국처럼 이렇게 과도하게 책을 포장하는 곳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호주의 책들

 사실 우리는 책을 읽기 위해 사는 것이지 관상용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물론 개중에 책을 실내장식을 위해 사시는 분도 없지 않을 꺼라 생각된다.) 책은 읽는 것이지 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책 또한 하나의 상품으로 고객 즉 독자에게 픽을 당하려면 일단 화려하고 눈에 띄어야만 한다. 일단 팔리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양서를 고르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일 수 있다. 책 표지와 제목이 솔깃하고 그럴듯해서 혹은 첫 페이지의 유혹에 넘어가서 읽어 내려간 책이 갈수록 그 흡입력이나 내용의 질이 떨어지는 경험을 적지 않게 했다. 하지만 뭐 출판사 입장에서 나에게 그 책을 구매하고 거기까지 끌고 간 것만으로 성공적인 마케팅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출판사는 독자에게 뭘 남기느냐 보다 독자에게 뭘 얻어가느냐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책은 일단 겉표지로 한번 그리고 책의 초반부에서 또 한 번 독자 소비자를 위한 공략이 이루어진다. 


처음과 마지막은 같아야만...


 호주에 온 이후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책을 읽고 삶을 돌아보며 글을 쓰면서 여러 변화를 겪었다. 그러면서 나만의 글쓰기 패턴이 생겨났다. 그중 하나가 처음과 마지막을 연결시키는 작법이다. 물론 모든 경우가 다 그렇진 않지만 특히 독후감이나 칼럼을 쓸 때는 이러한 경우가 자주 드러난다. 처음에 책이나 내가 생각하는 주제에 대한 가장 인상 깊은 책 속 문구나 나의 생각 혹은 질문을 던진다. 때론 대화문을 통해 상황을 묘사하기도 한다. 거기서 던진 주제에 대한 나의 생각과 삶 속에서의 경험 그리고 책 속의 내용을 뒤섞는다. 그러다 보면 생각지 못했던 또 다른 생각들이 피어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와 생각을 도출해 낸다.   


"마지막 장면과 거울에 비춘 듯 비슷하다. 어떤 소설에서는 첫 장면이 마지막 장면과 마치 거울에 비춘 듯 닮아 있다"

                                                          - 책 속 인용문 -


 첫 문장(시작=탄생=빙백)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점점 엔트로피가 증가하며 혼돈 속으로 빠져들며 수많은 갈등과 문제들을 낳고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이 모든 혼돈과 갈등과 문제는 그 첫 문장(시작)으로 돌아가서 되짚어 봐야 한다. 시작이 없으면 끝도 없듯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다. 물론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말은 광활하게 어질러진 혼돈의 세상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함을 말한다. 비록 이야기의 시작이 미약해 보였을지라도 마지막이 시작으로 돌아간다면 이야기는 심히 창대해질 수 있다.


1 따르는 자들이 예수께 가로되, "우리의 종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에게 말하여 주옵소서." 2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시작을 발견하였느냐? 그러하기 때문에 너희가 종말을 구하고 있느냐? 보아라! 시작이 있는 곳에 종말이 있을지라. 3 시작에 서있는 자여, 복되도다. 그 자야말로 종말을 알 것이니, 죽음을 맛보지도 아니할 것이라."


                                                                        - [도마 복음 18장] -

 

  과거 예수도 그렇게 얘기했다. 삶의 시작과 끝은 같다야 한다는 사실을... 글(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시작과 끝이 일맥상통해야 함을 의미한다.  소설 속에는 파란만장하고 다이내믹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지만 그 여정은 마지막은 시작으로 귀결되어야 함을 말한다.  처음과 끝이 아무런 연관이 없는 그런 글을 읽고 나면 그 속에서 어떤 재미와 흥미를 느꼈을 수는 있어도 삶의 의미와 진리에 대해서 깨닫는 것은 없다.  그건 마치 지금 우리가 핸드폰 속 짧은 피드 영상을 아무 생각 없이 계속 넘기며 드려다 보고 있는 것과 같다. 볼 때는 그 속에 빠져들지만 다 보고 나면 아무런 생각과 여운도 없이 시간만 훌쩍 지나있다. 무료함으로 시작된 피드 넘기기가 끝나면 다시 무료함이 찾아든다. 웃기지만 이것 또한 시작과 끝이 같다고 볼 수도 있겠다.


삶의 터전이 바뀌고 수많은 새로운 관계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경험했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틀에 박힌 반복된 직장 생활 속에서 제한된 관계 속에서 제한된 세상만을 보며 살았을 것이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하나 공통적으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첫인상과 마지막은 항상 같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은 호감에서 비호감으로 혹은 미움을 남기고 떠났다. 물론 그중에서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예외의 케이스 또한 있었다. 아마 그 몇 안 되는 소중한 관계를 남기기 위해 수많은 어려운 관계를 선사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만큼 시작과 끝이 같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덕 볼 생각?!


왜 관계의 시작과 끝맺음이 이토록 다를까? 그건 아마도 우리는 상대에 대해 첫 만남부터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호감을 통해 상대를 끌어들여 자신이 욕망하는 목적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함이다. 그건 물질적(돈), 지위적(명예) 혹은 감성적(사랑)인 것을 모두 포함한다. 만약 그 과정 속에서 상대가 자신의 계획과 의도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느끼면 관계가 틀어지고 갈등이 빚어진다. 그리고 나의 이해관계에게 부합하지 않거나 방해가 되는 존재라는 확신이 들게 되면 호감은 무관심으로 더 나아가 미움으로 변질된다. 그렇게 시작은 뜻하지 않은 어쩔 수 없는 결말을 맞이한다. 결국 우리는 덕 볼 생각으로 관계를 만들고 지속하는 것이다. 


순수하고 온전한 관계 그리고 글


우리가 처음과 끝이 같기 위해서는 처음의 순수한 탄생의 순간 그 모습을 계속 간직해야 한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수 없이도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이해관계에 집착한 글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한 글은 억지로 써 내려간 티가 날 수 밖에 없다. 식상하다. 하지만 자신의 내면을 순수하고 온전하게 드려다 보면서 써 내려간 글은 진정성과 공감이 묻어난다. 그런 이야기는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고 우리의 마음을 녹아내리게 하는 것이다. 


"소설을 시작하는 첫 장면과 1장, 그리고 1막의 끝맺음에는 좀 더 수고를 들이고 신경을 써야 한다."

                                                                            - 책 속 인용문 -


 당신이 누군가에서 남기려 했던 첫인상을 기억해 보아라. 그 첫인상이 마지막과 같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가? 수고를 들이고 신경을 써야 한다. 관계는 자연스럽게 좋아지고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글도 이리저리 뛰놀다가도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와야 한다. 너무 멀리 가버리면 돌아올 수 없다. 베이스캠프로 다시 돌아와야 여정을 마칠 수 있다. 원점에서 시작해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길을 잃고 헤메이는가? 틀어진 관계가 계속 멀어지고 있는가? 그럼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야할 때이다. 


"첫 문장과 첫인상은 마지막과 같아야 한다."


                                                               - 글짓는 목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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