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한 달 정도를 쓴 것 같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3,000~4,000자씩 꾸준히 소설을 썼다. 처음엔 2000자 정도로 시작한 글은 쓰면서 조금씩 분량을 늘려 지금은 하루에 5,000자 정도는 쓰려고 한다. 뭐 쓰던 소설의 스토리가 막히거나 집중이 안 될 때는 얼마 쓰지도 못하고 노트북을 덮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럴 때면 자괴감이 들곤 했다. 어떻게든 글 쓰는 패턴이라도 유지하려 에세이나 서평이라도 적으려고 했다. 그것도 안되면 일기라도 적었다.
유튜브에서 본 어느 웹 소설 작가의 영상에서 전업작가들이 하루 평균 1만 자씩 적는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하루에 1만 자씩을 적는 게 얼마나 힘든지 써본 사람을 알 수 있다. 정말 전업작가의 길은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그 영상을 보고 난 후 하루 1만 자에 도전했지만 아직은 무리인 것 같다.
나도 글이 잘 써질 때는 미친 듯이 써 내려가다 보면 하루에 7,000~8,000자씩 쓰는 날도 있다. 그렇게 쓰고 나면 머리가 띵하고 멍한 기분이 느껴진다. 오래 앉아 있다 보니 허리도 뻐근하고 글을 쓸 때 들었던 장시간의 헤드폰 음악에 귀까지 멍멍해진다. 좋은 점은 그렇게 쓰고 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이 밀려온다는 것이다. 직장 생활할 때도 이런 성취감은 느껴보지 못했다. 내가 만들어 낸 새로운 이야기에 스스로 감탄하는 그런 모습이랄까? 소설을 쓰다 보면 가끔 내가 창조주가 된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다른 종류의 글과는 달리 인물과 배경, 상황, 사건, 대화 등의 다양한 요소들을 설정하고 그것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고 돌아가는 하나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낸 것이니까 말이다. 스스로도 놀랍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 속에서 각각의 인물들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들의 삶과 생각까지 만들어내야 한다.
"체호프는 소설과 희곡을 통해 캐릭터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게 엄청난 치유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인간 본성의 법칙] 중에서 -
소설을 쓰는 것은 공감 능력을 기르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라고 한다. 러시아 의사이자 소설가인 안톤 체호프는 소설과 희곡을 쓰면서 자신이 증오하던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까지도 용서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자신과 다른 생각과 가치관은 틀린 것이고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혹여 관심을 가지더라도 겉핥기에 불과하다. 진심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그만큼 힘든 것이다.
나 또한 소설을 쓸 때 가장 힘든 것이 설정된 다양한 인물들의 행동과 말을 어떻게 묘사해야 될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그래서 다른 에세이나 서평을 쓸 때보다 생각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 말인즉 나 또한 아직 타인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하다는 뜻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성향의 인물은 과연 어떤 행동을 취할까 하는 고민으로 글이 멈춰 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 그 인물이 되어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가 상상해 본다. 그런 연습이 계속되다 보면 타인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이 발달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설을 쓰려면 여러 인물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인물마다 다른 성격과 가치관, 외모 그 모든 것들을 자신이 소화해 글 속에서 표현해 내려면 자신이 가진 가치관과 생각을 내려놓고 다른 인간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가치관과 생각을 쓰는 건 에세이나 칼럼을 쓸 때 글을 쓰는 방식이다. 물론 에세이와 칼럼도 많은 이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소설의 그것과는 좀 다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허구의 소설 속 다양한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이야기로 녹아내는 소설이 가장 위대한 힘을 가진 글이라고 생각한다.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의 영화나 표도르 도스토옙스키(Fyodor Dostoevskii)의 소설이 힘을 갖는 것은 그 때문이다. 당신도 당신의 어두운 면을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다면 똑같은 힘을 가질 수 있다."
- [인간 본성의 법칙] 중에서 -
에세이와 서평이 자아성찰과 자기 성장을 위한 글이라면 소설은 타인과의 공감과 이해를 위한 글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작가는 글을 쓰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다. 이제 글을 쓰는 습관은 만들어진 것 같다. 이제는 공감 가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이제까진 나를 위한 글을 썼다면 이제는 독자를 위한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픈 소망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