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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Sep 27. 2022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

[시점의 힘] 샌드라 거스

"모든 시점에는 친밀감과 정보 사이의 거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 책 속 인용문 -


"저는 엄마의 사랑이 그리... 웠..."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입술이 떨려온다. 떨리는 입술을 따라 목소리까지 떨리기 시작한다. 나는 떨림을 멈추려 입술을 깨물었다. 도저히 청중을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나는 발등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과거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다시 초점이 돌아왔을 땐, 발등으로 눈물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 눈물 방울이 마치 10년 동안의 나의 아픔을 씻어내는 것만 같았다. 정적이 흐르던 예배당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나는 다시 용기 내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1인칭 주인공 시점]


"저는 엄마의 사랑이 그리... 웠..."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북받치는 감정으로 점점 더 떨려오는 자신의 목소리에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지그시 입술을 깨무는 것으로 입을 닫았다. 청중을 바라보던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아래로 향해 있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청중의 표정은 안쓰러움과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에 대한 기대감이 교차하며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미동도 없이 잠시 생각에 잠긴듯한 모습으로 한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짝짝짝" 잠시 뒤 정적을 깨는 박수소리가 예배당 곳곳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박수소리가 힘이 되었을까?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흠뻑 젖은 그녀의 눈과 붉게 상기된 얼굴이 그녀가 아픈 과거의 시간을 되뇌고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녀는 힘겹게 다문 입을 떼고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3인칭 전지적 시점]


"저는 엄마의 사랑이 그리... 웠..." 소녀는 말을 멈췄다. 소녀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 상태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예배당의 청중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잠시 뒤 소녀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소녀의 눈은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소녀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3인칭 관찰자 시점]


"저는 엄마의 사랑이 그리... 웠..."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북받치는 감정이 그녀가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갈 수 없게 만들었다. 자꾸만 떨리는 아랫입술을 윗니로 지그시 깨물었다. 그녀는 청중을 바라보는 게 부담스러워 고개를 떨구었다.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이윽고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고 과거 10년간의 기억들이 마치 흐려진 흑백 브라운관 안에서 빠르게 재생되고 있었다. 시야가 다시 선명해졌을 땐, 발등으로 떨어지고 있는 눈물이 보였다. 반짝이는 검은 구두코에 부딪쳐 사방으로 부서지는 눈물은 마치 과거의 아픔도 같이 부서뜨리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예배당 곳곳에서 들려오는 박수 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남은 상처까지 지워내려 말을 이었다.                                 

                               

                [3인칭 제한적 혹은 깊은 시점]


  같은 장면을 여러 가지 시점으로 나누어 묘사해 보았다. 어떤 것이 가장 마음에 드는가? 소설을 쓸 때면 항상 이 시점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어떤 시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독자들이 느끼는 그 상황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내 글이 작품이 되는 법 [시점의 힘]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 (1인칭 주인공 시점)


  1인칭 시점은 화자와 주인공이 동일 인물이다. '나' 대변되는 주인공은 작가이기도 하고 독자이기도 하다. 그만큼 작가나 독자나 그 인물 속 깊이 몰입될 수 있다. 소설을 쓰고 읽어 내려가는 동안 그 주인공 속으로 가장 빨리 그리고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되는 시점이다. 나라는 단어가 계속 작가와 독자의 뇌리에 주입되면서 주인공과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만약 독자가 그와 비슷한 상황이나 경험이 있다면 그 몰입과 감정이입은 더욱 극대화될 것이다. 나 또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소설을 쓰며 몰입할 때는 이게 나인지 헷갈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만큼 감정이입이 되기 쉽다는 말이다.


"신인 작가들은 다른 어떤 시점보다 1인칭 시점으로 쓰고 이 시점을 유지하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한다. 오직 하나의 '나'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시점 위반이 많이 발생하지 않는다"


                                                       - 책 속 인용문 -


   내가 처음 처음 쓴 소설도 1인칭 주인공 시점이었다. 신인 작가들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이유는 소설 속 '나'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과정 속에서 글이 뿜어져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전적 소설이나 자서전 그리고 회상록이 대부분 1인칭 시점으로 쓰인다. 자전적 소설은 저자의 전기와 허구가 뒤섞여 만들어지지만 그 경계를 구분 짓는 것이 모호하다. 그리고 사실과 기억은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을 시간을 먹고 기억을 변형시키기 때문이다.


   1인칭 시점은 '나'라는 존재에 작가와 독자가 깊이 이입되어 주인공의 눈과 귀로만 세상을 볼 수밖에 없다는 단점이 있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관점이 되어 버린다. 물론 소설 중 다른 인물들이 주인공에게 성장과 변화에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다른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주인공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물론 돌아 돌아서 간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상당히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다. 친밀하면 사리분별이 힘들어질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옳고 그름의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처럼... 비록 그 안에서 영혼의 치유와 공감은 얻을지라도...


신이 되어 바라보면 (전지적 시점)


  '신'이 되어 세상을 내려다본다면 어떨까? 세상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다 알고 있다. 그 말은 독자와 작가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모든 일들에 대해 다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순서와 중요도는 작가가 정하기 나름일 뿐이다. 화자는 신의 목소리로 주인공과 다른 인물들의 겉과 내면을 모두 드러낼 수 있다.


"전지적 시점을 선택한다면 독자와 많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한편, 인물과의 친밀감은 포기해야 한다."

                                                                         - 책 속 인용문 -


  모든 것을 다 마음껏 드러낼 수 있기에 거침이 없다. 순서와 전개에만 신경을 잘 쓰면 완벽한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방대한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주인공을 비롯해 여러 인물들이 펼치는 내용을 장소와 시간을 옮겨가며 서사해 낼 수 있다. 장면 속에 반드시 주인공이 있어야만 하는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마치 성경(Bible)과 같은 스토리라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방대한 내용과 넓고 깊이 있는 메시지를 마음껏 전달할 수 있다. 다이내믹하고 의미심장하지만 문제는 재미가 없다. 우리는 성경을 일컬어 소설 같다고 얘기하지 않는 이유가 이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경 또한 인물과 서사를 통해 이어지는 스토리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을 읽고 그 속의 각각의 단편적인 스토리와 그것을 통해 드러내는 의미 있는 문구들로 삶의 진리나 깨달음을 얻긴 하지만 그 인물 속의 내면 깊이 이입되어 공감하고 감동받는 것은 아니다. 깨달음을 주는 글과 감동을 주는 글은 다를 수밖에 없다.


  신이 되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지만 친밀감과는 멀어진다. 그렇기 때문일까 우리에게 신은 숭배의 대상일 될 순 있어도 친구가 될 수가 없는 것은...  



겉만 보면 답답하지만 겉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면... (3인칭 관찰자 시점)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다양한 표정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다. 물론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그 다양하던 표정들은 점점 하나같이 굳어가고 행동들도 마치 로봇처럼 변해가는 것 같지만 그 속에서도 미묘한 차이가 존재하긴 하다. 다만 갈수록 그 미묘한 차이를 찾아내기 힘들어질 뿐이다.


  그 힘듦 속에서도 그 차이점을 찾아내고 표현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대단한 일일 것이다.

보이고 들리는 것만으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정말이지 엄청난 관찰력과 묘사력 그리고 구성 능력을 지녀야만 할 것이다.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건 마치 '동물의 세계'를 보는 것과도 같다. 자연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카메라가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극적이고 의미 있는 장면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카메라는 다 보여주지만 내면을 감추고 글로서 외면만을 보여주면서 화자의 생각과 의도까지 집어넣는다는 것은 나로서는 거의 불가능하지 싶다. 그건 나뿐만은 아닌 듯하다.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소설을 쓰는 사람을 찾아보긴 쉽지 않다. 스토리 전개와 플롯 및 인물 구성만으로도 벅찬 작가에게 표현의 제한까지 락을 걸어버리면 이건 너무나 가혹한 처사이지 않은가?


  뛰어난 외면의 관찰로 읽어내는 심리와 내면의 상태는 결국 겉과 안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어렵지만 그 과정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만약 이것을 잘 표현해 내는 작가라면 아마 세상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야를 지닌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뭐 어쨌든 독자를 답답하지 않게 하면서 책을 계속 읽어 내려가게 하려면 이 방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짬짜면이 탄생한 것이다. (3인칭 제한적 혹은 깊은 시점)


  소설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읽기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럼 읽히게 하려면 독자의 구미에 맞게 써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읽히지 않는 소설은 소설로서 그 생명력이 없다는 것이다. 소설은 그 시대와 문화를 반영하는 산물이다. 읽히지 않는 소설(물론 마케팅이나 홍보의 그늘에 가려진 소설들도 많지만)은 그것을 반영하지 못했고 짬뽕과 짜장면 둘 다 맛보고 싶은 독자의 마음을 외면한 것일 수 있다.


  1인칭은 깊이 빠져들지만 제한적이고 대중적이지 않다. 주인공의 생각과 삶에 공감하는 자들만이 빠져들 수 있다. 즉 마니아 층이 형성될 수 있는 이야기란 말이다. 3인칭 제한적 혹은 깊은 시점은 1인칭의 주인공 혹은 2~3명의 주요 인물을 집중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 화자는 3인칭으로 등장인물을 호칭하면서 그들의 내면을 직(깊은) 간접(제한)적으로 들락거릴 수 있다. 주인공의 입장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의 입장과 상황 그리고 그들의 생각까지도 소설 속에 진지하게 담아내야 한다.


  1인칭 시점의 소설은 자아정체성이 아직 완전히 형성되기 이전의 아동, 청소년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은 바로 그 이유에서이다. 아직 자아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아동, 청소년에게 타인에 대한 생각과 삶에 대한 이해는 어려울 수 있다. 물론 아직 적지 않은 어른들도 자아정체성을 못 찾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진정한 문학 소설의 의의는 타자를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는 소설을 통해 타인의 삶을 드려다 보고 내가 현실에서 겪지 못했던 경험과 사건들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세상이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로 변해가는 건, 어쩌면 소설을 읽을 것보다 돈을 벌고 돈을 쓰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대부분 작가로서, 그리고 독자로서 자연스럽다고 느끼고 내 마음에 '맞다'라고 여기는 시점이 있다. 그 시점이 반드시 지금 쓰고 있는 소설에 딱 들어맞는 최적의 시점이라는 법은 없지만 그 시점을 선택한다면 글쓰기가 한층 수월해질 것이다. 반면 마음에 맞지 않는 시점을 선택한다면 집필 과정이 마치 고문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 책 속 인용문 -


  소설을 어떤 시점으로 쓰는가는 중요하다. 하지만 작가마다 다를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시점이든 간에 독자의 공감과 감동을 끌어낼 수 있는냐없느냐이다. 소설은 논리적으로 혹은 합리적으로 따져서 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생각과 삶과 무의식이 복합적으로 하모니를 이루며 술술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작가가 어떤 표현 방법으로 쓸 때 거침없이 전개되는가가 관건이다. 자신과 맞지 않은 방식으로 글을 써 내려가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도 없다. 거침없이 써 내려가는 글, 그것이 바로 작가가 꾸밈없이 자신을 표현하는 과정이다.


 "글은 자신을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싸고 있던 포장을 벗겨내는 과정이다."   


                                                                                     - 글 짓는 목수 -

  나도 이제 또 다른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당신은 어떤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가?

Point of view -Sandra Gert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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