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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데이트

평범한 남자 EP 18 (개정판)

by 글짓는 목수

"야~ 몸매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정말이야!"

"아… 글쎄, 요즘은 소개팅 별로 관심 없어, 그리고 네가 괜찮다는 얘가 뻔하지 뭐"


귀덕이는 꼬치 친구 중에서 그나마 제일 잘 나가는 녀석이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시절엔 비만 돼지였는데, 자라면서 젖살이 빠지더니 조금씩 사람으로 변신을 했다. 마늘을 많이 먹은 건가? 높은 연봉에 이름 있는 금융회사 간판 때문인지... 주변에서 여자들 소개해준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 역시 남자는 사회 나와선 명함이 중요하다.


그는 자칭 소개팅 전문가다. 여자를 많이 만나다 보니 친구들은 그의 소개팅 스토리에 관심이 많다. 녀석은 수없이 많은 여자를 쳐낸 나름 부러운 차도남이다. 나의 첫 소개팅도 그의 코칭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예상치 못한 천재지변으로 새드엔딩이 되었지만 말이다.


"야~ 친구끼리 이러기냐? 그냥 한 번 만나서 밥 한 끼 먹고 와, 그래도 걔가 나름 우리 회사 퀸카야 "

"아~ 귀찮은데… 그럼 일단 연락처 줘봐, 시간 날 때 연락해 볼게"

"그래~ 꼭 이다, 알았지?"


'부익부 빈익빈' 남녀의 만남 시장도 자본주의 경제논리가 적용된다. 가진 자들만 계속 만난다. 한국이 1부 1 처제였으니 망정이지 1부 다처제였으면 어쩔뻔했는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지 못하고 쓸쓸히 죽어갈 수컷들이 넘쳐날 것이다.


유전 다녀 무전 무녀(有錢多女 無錢無女)'라는 말은 왜 안 생겨났나 모르겠다. 어쨌든 차도남이랑 차도녀를 둘이 붙여놓으면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질 거 같아 보인다. 그렇게 둘의 소개팅은 성사되었다. 모처럼 오떡이와 영화관 나들이를 왔다. 조금씩 남들 하는 연애를 배워간다.


"야~ 정말이야? 둘이 만나면 재미있겠는걸"

"그렇지? 나도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너무 궁금하단 말이야"

"차도녀랑 차도남의 만남이라? 나중에 결과 나오면 나도 알려줘!"

"그래 알았어! 어! 우리 순서다~ 영화표 사 올게"


티켓박스 모니터에 나의 순번표가 떴다. 나는 공포영화를 좋아한다. 그녀도 좋아한다. 공포영화는 혼자 보면 극도의 공포를 느낄 수 있지만 남녀가 같이 보면 짜릿함도 같이 느낄 수 있다. 남남(男男)이 보는 건 비추다.


"여기요! 두두 두둑~ 20개 맞죠? 티켓 2장 주세요"

"아~~ 예! 잠시만요~"


가방 뒷주머니에서 소주병 뚜껑이 와르르 쏟아졌다. 카운터 여직원은 당황한 표정으로 서둘러 뚜껑의 개수를 세어본다. 주변에 티켓팅 하는 다른 손님들과 카운터 직원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아~네 손님! 20개가 맞네요. 무료 이벤트 티켓 2장 여기 있습니다. 환불이나 교환은 안됩니다"


내가 병뚜껑 20개를 다시 환불 할리 만무하다. 나는 티켓을 받아 들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그녀는 확장된 동공과 반쯤 벌어진 입으로 나를 쳐다본다.


"너~ 참 대단하다. 스크루지 나셨네"

"영화는 돈 주고 보는 거 아니야~ 알겠나? 내가 얼마나 힘들게 모았는데... 자 가자!"

"어쩐지 술 마실때 병뚜껑은 왜 챙기는가 했더니...니가 왜 여자 친구가 없었는지 알만하다. 정말… 쯧쯧"


그녀는 나의 그런 모습에 충격인지 감탄인지 모를 반응을 보인다. 난 그녀의 그런 모습이 더 재미있다. 난 그렇게 그녀가 예측하기 힘든 상황들로 그녀의 머릿속을 채워가고 있었다. 그녀도 극본없는 나와의 만남이 지겹진 않은듯하다. 남녀는 평등하다. 그녀도 나에게 당황스런 상황을 안겨주는건 마찬가지다.


"아~ 무겁다. 그만 내리라~"

"좀 참아라~ 남자가 돼갖고 엄살은~"

"피 안 통한다"


그녀의 다리는 상당히 길다. 영화관의 좌석 간의 간격은 그녀의 다리에 적합하지 않다. 그 불합리한 간격 때문에 영화관에서 불이 꺼지면 그녀의 다리는 슬그머니 나의 허벅지에 올라탄다.

처음 그녀와의 영화 관람 때가 기억난다. 영화가 중반을 지나 하이라이트로 흘러가고 있을 때였다.


"희택아~ 나 다리가 아파서 그런데 다리 좀 올려도 돼?"

"그래 뭐~"


난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난 그저 앞쪽 빈자리 의자 팔걸이에 올리겠지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조용히 내 귀에 속삭이고는 몸을 반쯤 비틀더니 왼쪽 다리를 내 오른쪽 허벅지 위에 올리는 것이 아닌가?


'헉~ 뭐지?'


등산으로 단련된 그녀의 허벅지가 쫙 달라붙는 청바지 덕분에 더욱 탄력 있어 보인다. 그녀의 종아리는 나의 사타구니 사이를 통과해 세탁기에서 갓나온 젖은 빨래처럼 널려있다.


그녀는 그제야 몸이 편해졌는지 영화에 집중한다. 나는 정반대다. 그 이후에 영화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랫도리가 뜨거워진다. 시선은 정면을 향해 있지만 나의 모든 감각은 그곳으로 자유낙하 중이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다리에 쥐가 나는 것도 참아내며 흥분과 찌릿함을 동시에 감상했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을 일어나지 않던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던 그녀의 표정이 아직 잊히질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 내 차례다"

"야~ 그러기냐? 다리도 짧으면서"

"공평하게 하프타임 넘어갔으니 내 차례지"


그녀는 불만 섞인 표정으로 자기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 허벅지에 근력으로 나의 허벅지를 짓누른다. 조르기에 돌입했다. 빠져나가야 한다. 지체되면 하체 불구가 될지도 모른다. 영화관이 다리 씨름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역부족이다. 일단 살고 봐야 된다.


"나 오줌 마렵다. 좀 치워 바바. 나가게!"

"너 일부러 그러는 거 아냐, 도망가려고?"

"진짜다. 믿어도!"


그제야 그녀는 뱀처럼 꽈리를 틀어 죄던 그녀의 허벅지를 풀어준다.


"휴~~"

"빨리 갔다 와~"


난 조용히 일어나 관객들의 다리 사이를 피해 가며 통로를 빠져나가고 있다. 그런데 오랫동안 조르기에 시달린 나의 다리에 순간 힘이 빠진다.


"털썩!"


앉아 버렸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아닌 다른 여자의 무릎 위에 다소곳이 내려앉았다. 동공이 확장된 그 여자의 눈은 나와 마주쳤고, “얼음 땡” 놀이라도 하듯 입으로 가져가던 팝콘 몇 조각을 든 그녀의 손은 일시 정지 상태로 얼어있다. 그 옆에 낯선 남자의 살기(殺氣) 가득한 눈빛이 느껴진다. 멀리서 그녀는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한숨을 쉬어 보인다.


"앗! 죄... 죄송합니다."

"당신 뭐야~ 미쳤어 어딜 앉아? 저리 안 비켜!"


헐레벌떡 다시 일어서 급히 영화관을 빠져나갔다. 영화관은 더 이상 영화를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처음에는 흥분과 긴장 때문에 지금은 조르기의 고통으로, 영화는 집에서 불법 다운로드로 보는 것이 약간의 죄책감은 있을지언정 몸은 편하다. 아니면 몰래 혼자 보러 가는 것도 좋다. 그런데 그러면 두 번 보게 될 수도 있다.


우리의 데이트는 다이내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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