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EP 20 (개정판)
나에게는 특별한 애완동물이 있다.
하지만 내 것이 아니다. 다른 누군가의 애완동물을 대신 길러주는 것을 직업으로 가지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사육사는 동물이 좋아된 직업일 것이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번다, 수의사 또한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면서 보람 느끼고 생계를 유지하지만 좋아하지도 않고 돈도 벌지 못한다면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하물며 그것이 만약 내가 싫어하는 동물이라면 이건 고문과 다름없다.
난 매일 아침 고문을 당한다. 사장에게는 경영자보다는 덕후로서 갖추어야 할 소양(素養)이 더 많아 보인다. 문제는 그 덕후가 해야 할 취미 생활을 다른 이들이 관리해 준다는 것이다.
그중 한 가지가 사장의 애완동물이다. 본사 건물 곳곳에는 사장의 애완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그는 포유류보단 파충류를 선호한다. 여러 가지 종류의 뱀과 도마뱀이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같이 생활한다. 그것들은 각기 자기만의 어항이 아닌 파충항이라고 해야 하나? 유리로 된 공간에서 서식하며 360도 회전하는 CCTV 렌즈 같은 눈으로 매일 직원들의 근무태도를 감시하고 있다.
“와~ 이게 다 뭐예요? 이런 도마뱀도 있어요? 정말 신기하게 생겼네”
파충류 동물원을 방불케 한다. 본사에 오는 다른 사업소 직원이나 외부 손님들은 업무 혹은 공무로 방문했다가 무료로 파충류 동물원을 관람하고 돌아간다. 회사 주변에 있는 다른 회사에서도 소문을 듣고 업무나 다른 용무를 핑계 삼아 구경을 오는 이도 있을 정도이다.
문제는 이 녀석들을 관리하는 사람은 사육사가 아닌 본사의 각 부서별 막내 남자 사원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나 또한 그중의 하나이다. 나는 그중에서도 사장이 가장 총애하는 이구아나를 관리하는 영예로운 고문이 주어졌다. 덕분에 난 매일 아침 사장실에 여비서 다음으로 들어가는 직원이다.
그 녀석의 이름은 '티라노'이다. 내가 지었다. 나와 녀석만 알고 있는 녀석의 이름이다. 전략기획실로 발령 후 몇 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희택씨~ 업무 인수인계할 게 있어"
"예? 어떤 건인 가요"
"따라와 볼래"
상한씨가 나를 사장실로 향했다. 사장은 퇴근하고 없다. 사장실을 들어가면 정면에 손님을 응접 하는 소파가 있고 좌측에 사장의 집무 테이블이 있다. 정면은 모두 통 유리로 되어 있어 회사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좌측 책장에는 있어야 할 책은 없고 한눈에 봐도 값비싸 보이는 RC(Remote Control) 자동차, 헬리콥터, 비행기들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그리고 사장 자리에서 가장 잘 보이는 정면에 유리로 된 커다란 어항 같은 것이 놓여 있다. 그 안에서는 등을 돌린 채 눈알만 돌려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있는 작은 아기 공룡 한 마리가 있다. 절대 둘리를 떠올리면 안 된다.
"희택 씨, 이 녀석이 사장님의 총애를 받고 있는 이구아나야, 이제 그대가 돌봐야 할 거 같네."
"예?! 제… 제가요?"
"도다리가 희택씨에게 넘기래~, 희택씨가 이제 우리 부서 막내잖아 지호씨랑 내가 번갈아 가면서 했었는데 이젠 희택씨가 해야지 않겠어, 이제 부서 업무도 적응되고 했잖아"
난 그때 녀석이 이구아나란 것을 처음 알았다. TV 속 [동물의 세계]에서나 볼 줄 알았던 파충류를 바로 눈앞에서 보게 될 줄 몰랐다. 더군다나 그걸 내가 키워야 한다는 믿기지 않는 말까지 듣고 있는 나는 멘털이 붕괴되고 있다.
30센티미터쯤 되는 길이에 갈고리처럼 날카롭게 휘어있는 발톱, 녹색의 피부에 거뭇한 무늬가 온몸 뒤덮고 있다. 아직 이 녀석은 새끼 축에 속한다고 한다. 크면 1.5~2m까지 자란다는 상한씨 말에 나보다 커진 이 공룡을 상상하니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목에는 축 늘어진 넙적한 주머니가 있고, 머리 뒤에서부터 꼬리까지 이어지는 가시 같은 갈기가 날카로워 보인다. 녀석은 낯선 나를 의식했는지 목에 있는 주머니를 연신 흔들어댄다. 내가 싫은 모양이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싫어하는 감정은 다 느껴지나 보다.
“내가 희택씨를 위해 장갑도 준비했지 큭큭”
상한씨는 팔꿈치까지 오는 두꺼운 용접용 가죽 장갑을 어디서 구했는지 그걸 우리 밑에 있는 서랍에서 꺼낸다.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구한 것임을 모를 리가 없다. 누가 저 녀석을 맨 손으로 만질 것인가? 장갑을 꺼냈던 서랍 속에는 녀석을 관리하는데 필요한 도구들과 갖가지 파충류 영양제등이 가득하다.
상한씨는 파충항의 우리의 뚜껑을 열어 녀석을 잡는다. 오른손으로 녀석의 목덜미부터 상체를 움켜잡고 들어 올려 왼팔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곤 녀석이 움직이지 못하게 오른손으로 녀석을 제압하듯 누르고 화장실로 재빨리 이동한다.
"매일 아침에 출근하면 이 녀석 반신욕을 시켜줘야거든, 세면대에 넣고 따뜻한 물을 채워주면 돼"
“이게 목욕도 해요?! 그것도 매일?"
“응. 따뜻한 물에 들어가면 녀석은 좋아서 물속에서 입 벌린 채 눈을 감고 느끼나 봐, 꼭 사람 같다니깐, 가끔 물속에서 똥도 싸! 하하하"
“헐! 근데 도망가면 어떡해요?”
“어떡하긴 좆되는 거지, 도망가면 잡기가 여간 쉽지가 않아. 엄청 빠르거든 그래서 물 온도를 잘 맞춰줘야 해, 물이 너무 차갑거나 혹은 뜨거우면 하면 바로 도망가니까? 물 온도만 잘 맞춰주면 자기가 좋아서 물 안에 가만히 있어”
정말 녀석은 따뜻한 물속에 들어가더니 꿈틀거리며 발버둥 치던 좀 전과는 달리 평온해졌다. 상훈 씨는 다시 나를 데리고 사장실로 들어간다.
"이제 녀석이 반신욕을 하는 동안 희택씨는 우리를 청소하고 먹이를 채워 줘야 해"
"끝이 아녜요? 근데 이걸 매일 해요?"
"응~ 그래야 할걸 아마도 하하하, 뭐~ 희택씨 출장 가거나 부재 시에는 나 아니면 지
호 씨가 대신해야겠지만 말이야"
"아… 예…"
먹이는 매일 아침 사내 구내식당 주방 조리실 아주머니한테 부탁해서 그날 반찬 재료 중 싱싱한 상추나 오이 등의 채소들을 좀 가져다가 주면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먹이 위에 서랍에서 보았던 여러 가지 비타민 및 영양제를 뿌려 준다고 한다. 그리고 먹이는 아침, 저녁으로 두 번씩 주면 된다고 한다.
“캬~~~~~악!!”
여자 화장실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나와 상한씨는 급히 사장실을 뛰어나왔다.
“저… 저기 안에 이구아나! 으어어 엉”
사장 비서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사로 밑으로 기어들어온 이구아나를 발견하고 기겁을 하고 뛰어나왔다. 정면에 스커트 지퍼가 보인다. 그녀는 스커트 치마가 돌아간 줄도 모르고 울면서 손가락을 사시나무 떨 듯 화장실 안을 가리키고 있다.
“아놔! 이 녀석 또 언제 여자 화장실로 기어들어간 거야!”
“이 녀석 수컷인가 본데요”
나와 상한씨는 여자 화장실 입구를 에워싸고 천천히 포위해 들어간다. 장갑을 낀 상한씨가 진입해 포획작전을 실시하고 나는 입구로 도망 나갈지 모를 퇴로를 차단한다.
상한씨는 사로 안 변기 아래에서 녀석과 대면한다. 이구아나는 넓적한 목덜미를 흔들어대며 적의를 표시한다. 상한씨가 녀석을 잡으려 덮쳤지만 결국 놓치고 만다. 녀석은 발이 보이지 않게 뛰어다니다 입구로 빠져나가려는 찰나 나의 손에 잡혔다. 맨손에서 느껴지는 녀석의 피부는 여태껏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이상한 느낌이었다.
‘아~ 이 짓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사육사가 되려고 이 회사에 들어왔던가?'
그날 이후 매일 녀석과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아직 나와 유대감이 없는 녀석이 거세게 저항하는 통에 녀석의 발톱에 긁히고 물리고 때론 화장실에서 탈출한 녀석을 잡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토요일은 물론이거니와 명절이나 연휴가 이어지는 날에는 본사 각 부서 막내 남자 사원들이 하루씩 돌아가며 회사에 출근해 파충류들의 먹이를 챙겨줘야 했다. 그래서 연휴 전에는 각 부서 막내 사원들이 모여 사다리 타기 게임을 한다. 아무래도 연휴 중간보다는 시작과 마지막 날이 그들의 연휴를 덜 망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본사에 입사한 남자 신입 사원들 중에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퇴사한 이들도 있었다. 다행인 것은 이구아나는 그나마 귀여운 편이라는 것이다.
본사 2층에 관리부에는 뱀을 키운다. 알록달록한 무늬의 이름 모를 뱀이 우리 속에서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 있으면 소름이 돋는다. 관리부 막내 남자 사원은 매일 냉동실에 얼려있는 먹이용 흰쥐를 전자레인지에 해동해서 먹이로 준다. 한 번은 그 먹이용 냉동 쥐가 냉장고에서 쏟아져 여직원들이 비명을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또 한 번은 뱀이 우리를 탈출하는 바람에 본사 전 직원이 사무실에 숨어버린 뱀을 찾느라 119 소방대원들이 출동해서 한 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밖에 여러 종류의 신기한 도마뱀들을 보살피느라 남자 사원들은 틈틈이 담당 개체에 대해 공부를 해야 했다.
나 또한 이구아나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티라노'는 나의 세심한 보살핌 속에 그 몸길이가 1미터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제는 한 손으로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 꼬리로 나의 팔을 휘감는 힘 또한 대단하다. 녀석은 이제 나를 자신의 집사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이젠 얌전히 앉아 반신욕을 즐긴다. 아침 일찍 사장실에 오는 다른 사업소 임원들이 화장실에 들렀다가 녀석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
"으악! 이.. 이 놈 공룡이냐? 뭐냐? 왜 이렇게 커? 야야! 이거 좀 치워봐라 손 좀 씻게"
"예! 이구아나입니다, 잠시만요"
“아이고~ 네가 참 고생이 많구나, 애써라!"
화장실에서 티라노와 조우한 임원들은 위로인지 동정인지 모른 말을 던지고는 얼른 녀석을 피해 도망가듯 화장실을 떠난다. 티라노는 자신의 반신욕을 방해한 적을 향해 목덜미의 주머니를 흔들어 댄다.
주말 저녁 오떡이가 요즘 풀 죽은 나를 위로하려 술자리로 불러냈다.
"뭐~ 그딴 회사가 다 있냐! 때려치워라! 때려치워! 네가 무슨 사육사도 아니고"
"때려치우면?! 니가 나 먹여 살릴래?"
"뭐~ 까짓 거 내가 먹여 살리면 되지 어렵니? 그리고 회사가 어디 거기 하나뿐이니?"
"쳇~ 말이라도 고맙다."
오떡이는 내가 한 입에 털어놓은 빈 술잔에 다시 소주를 부어주며 나 대신 씩씩거리며 회사 욕을 대신해 주고 있다. 나를 다독여 주는 그녀의 말이 나를 위로하기보단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꾹꾹 눌러 참아내고 있던 탈출 욕구를 더 자극시키는 듯하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벗어나야겠다.'
회사라는 곳은 결코 일만 하는 곳이 아니다. 내가 받는 연봉 그 안에는 근로계약서에는 명기되어 있지 않은 많은 부가 서비스들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그런 명시되지 않은 부당한 일들을 당연히 해야 한다.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는 과거 절대군주 사회의 군신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듯 보인다. 명칭만 바뀌었을 뿐이다. 과거에는 명예와 대의로 움직였다면 지금은 돈이라는 것으로 우리를 움직인다.
그렇게 나는 원치 않은 티라노의 사육사 아니 집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