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또 다른 이유
[초단편 소설] - 열두 번째 이야기 -
"너희들은 내가 왜 글을 쓰는지 아니?"
"?"
"!"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너희들은 내가 글 쓰고 있다는 거 알잖아"
"...."
모두 당황한 표정들이다. 느닷없는 질문에 할 말을 잃은 표정들이다. 모임의 목적과 의도와는 전혀 다른 질문이지만 모두가 그가 질문 뒤에 불어닥칠 어떤 폭풍우 같은 것들을 예감하고 있는 듯했다.
"난 어둠 속 악마가 되고 싶지 않아서 쓰는 거야"
"네?!"
"..."
다들 조금씩 예상을 했지만 예상보다 강한 시작에 두 눈이 동그레 지며 남자를 쳐다봤다.
"난 글을 쓰면서 어둠을 밀어내고 내 안에 꿈틀거리려는 악을 밖으로 떨어져 나가게 하려는 거야"
"..."
"형님! 또 갑자기 무슨 말이세요? 자자! 그만하시고 찬양하시죠"
다들 지난주 목사의 말씀과 찬양 그리고 기도로 채워져야 할 시간이었다. 그 남자로 인해 엉뚱한 곳으로 빠져나가려는 분위기를 눈치챈 목자는 그를 제지하려는 뉘앙스의 말을 꺼낸다.
"목자, 미안한데 오늘은 내 말을 끊지 말고 조금만 들어줄 수 있을까?"
"그게 형, 우리는 무슨 얘기를 하시려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목장 모임 땐 목장 모임에 맞는 얘기를..."
"알고 있어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정해진 형식과 절차가 있다는 거... 네가 목자로서 지켜야 할... 그리고 교회의 방침과 목사님이 알려준 지침이 있다는 걸..."
"하지만 다들 정해진 형식과 절차만 따르다가 지쳐가고 있는 거 같지 않니? 서로 진정한 공감이 없는 겉도는 말만 반복하는 거 같지 않아? 삶을 나누고 서로의 아픔과 기쁨을 얘기하며 서로가 하나님과 예수의 모습을 닮아가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우린 어느 순간부터 마치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 사회 직장인들 혹은 학교 가는 학생처럼 변해가고 있는 거 같지 않아? 여긴 직장이나 학교가 아니잖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
"우린 직장과 학교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곳에 모인 거 아닐까?"
목자와 목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나머지 목원들도 눈치를 살피며 나와 목자를 번갈아 보며 눈알을 돌렸다.
"나도 너희들이 너희들 안에 있는 어둠과 악을 떨쳐버릴 수 있는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
"..."
"관계에서 서로를 향한 기도(중보기도)도 중요하지만 관계를 회복하려는 실질적인 노력, 즉 액션도 있어야 해, 그리고 그 액션에는 타이밍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 상처가 덧나고 있는데 계속 놔두면 곪아버리거든. 스스로 자연적으로 아물 수 있는 상처도 있지만 상처의 골이 깊어 스스로 아물지 못하는 상처도 있잖아? 이건 그때그때 치료를 하지 않으면 문제가 커지지. 상처가 자신을 집어삼킬 수도 있거든. 관계도 그런 거야. 다들 기도하다 보면 또 시간이 흐르다 보면 자연스레 아물거라 생각하지, 과연 그럴까? 우리는 그 상처의 깊이를 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해. 시간(Time)이 해결할 수 있는 상처가 있고 시기(Timing)를 맞춰야 해결할 수 있는 상처가 있다고 생각해"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기도가 전부가 되어버린 자들의 모습은 모든 것을 신에게 의지하려 한다. 신은 스스로 움직이는 자에게만 도움을 준다. 어느 순간부터 서로가 자신의 어둠과 악을 서로에게 뿜어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스타크래프트의 히드라처럼 서로에게 침(악)을 뱉어 대는 것 같았다. 그건 스스로가 그 어둠과 악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 안에서 끊임없이 자라나는 어둠 속에 자신을 감추고 빛을 집어삼키며 있었다.
"누군가에게 뭘 원하고 바라기 전에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뭘 해줄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지 않을까? 불평과 불만을 찾아내기보다 긍정과 배움과 감사할 것이 무엇일까를 더 생각하고 찾아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 거지? 그러면서 예수님, 하나님~을 외친다면 그들이 들어주겠니? 내가 만약 신이라면 꼴도 보기도 싫을 거 같은데... 안 그렇니?"
"...."
나는 잠시 말을 끊었고 잠시 동안 적막이 흘렀다. 나를 빤히 쳐다보던 시선은 어느샌가 방바닥을 향해 있었다. 나는 순간 미안한 감정이 들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난 너희들도 너희 안에 있는 어둠과 악을 너희 밖으로 떨쳐버리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게 무엇이 되었든 상관없지만, 난 그럴 때면 그냥 미친 듯이 써~ 그래서 내 글들이 좀 어둡고 부정적이고 비관적이긴 하지만 그건 내가 밝아지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너희들이 나의 글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진 모르겠지만 어두운 글을 쓴다고 어두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거야.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어두운 과거와 죄를 고백하는 간증과 고해성사도 그런 거랑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 우리는 우리 안에 빛과 어둠을 모두 가지고 있어. 어둠이 강해지려 하면 우리는 그 어둠을 밖으로 몰아내야 하지. 그런데 그게 생각만 하고 기도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 말로 글로 혹은 행동으로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어 실천해야 그것들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거야. 그럼 내 안에 빛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거지"
다들 다시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봤다.
"형님...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글쎄 난 그걸 지금 너희들과 상의했음 해"
"어제 다른 목원이랑 그런 얘기를 하다가 흥분해서 화가 나더라고 그것 때문에 밤에 잠이 안 오더라"
그는 서로가 모두 익숙해져 이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관계 속에서 간절함과 절박함이 사라지니 나태함과 권태 속에서 부정적인 감정들만 샘솟고 그것을 서로에게 뿌려대는 것 같았다. 그 또한 그 꿈틀거리는 것이 목자에게 튀어나온 것이었다. 어둠은 어둠을, 악은 악을 낳는 법이다. 부정적인 말로 서로를 비난하고 헐뜯는 말은 결국 돌고 돌아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 어둠을 밖으로 몰아내야 하지만 우리는 그 어둠과 친숙해져 다른 이들을 그 어둠 속으로 끌어들인다.
"우리 감사일기를 쓰자, 짧게라도 매일 3가지씩 올리는 걸로, 우리가 이제 매너리즘에 빠진 거 같아, 서로의 존재에 대한 감사를 모르는 거 같아. 매일 톡방에 3가지 이상 올리지 않으면 벌금 아니면 다음 목장 모임에서 간식을 준비해 오던지 하는 그런 벌칙을 정하는 거야"
"음... 그거 괜찮네요"
"저도 찬성이에요"
과거 사도 바울도 고린도교회를 찾아 믿고 있는 자들의 신앙을 다잡으려 노력했다. 믿음은 계속 시험에 들게 된다. 믿음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도 미움과 어둠이 자라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미움과 어둠은 마치 논밭에서 자라는 잡초와 같다. 곡식이 자라야 할 땅에 잡초가 무성해져 곡식을 말라죽이게 된다. 김매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이다. 씨만 뿌린다고 열매가 맺히진 않는다.
남자는 VIP(Very Important Person : 새 신자)에게 집중한다며 VIP 때문에 갈등의 골이 깊어가고 있는 목장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VIP의 영혼구혼보다 더 중요한 건 현재의 식구들의 마음과 서로 간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무너진 신뢰와 미움이 싹트는 곳에 VIP를 데려온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구원하려기 전에 우리 스스로를 먼저 구원해야 한다. 배에 구멍이 났는데 사람을 더 태우면 더 빨리 가라앉을 뿐이다.
"나부터 얘기할게, 어제 S에게 화를 냈지만 잘 참아준 S에게 너무 감사해, 그리고 이 자리에서 나의 의견을 꺽지 않고 들어주고 배려해 주는 목자목녀에게 감사해, 그리고 이렇게 용기 내어 모두들에게 나의 생각을 꺼내주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
"..."
다들 눈가에 촉촉이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 모두가 감사의 글을 써서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감사할 일들이 계속 더해지지 시작했다.
목장에는 고통과 권태가 사라지고 다시 신뢰와 기쁨이 찾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