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 목수 Jan 02. 2024

사랑과 미움 사이

[초단편 소설] - 열세 번째 -

머리를 묶었다.


거울 앞에서 서서 한참 동안 자신의 긴 생머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한 손을 늘어진 머리카락 끝으로 가져간다.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빙빙 꼬는 자신을 모습을 드려다 보기를 한참... 무언가를 결심한 듯 두 손을 들어 늘어뜨린 머리카락을 목선을 따라 쓸어 올렸다. 그리고 한 손으로 긴 머리칼을 움켜쥐고는 다른 한 손으로 머릿결을 빗질하듯 잔머리 하나 없이 모든 머리카락을 쓸어 모았다. 멱살 잡힌 머리칼은 머리 위에서 손목을 따라 여러 번 회전하며 동그란 똥이 되었다. 화장대 위에 놓인 검은 머리끈으로 그 똥을 동여매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표정 없이 바라봤다.




나는 몰랐다. 자신이 항상 그 남자 앞에서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는지를... 그런데 그 남자가 그걸 알려주었다. 직접 알려주진 않았다. 간접적이었지만 그 무엇보다 직접적이었다. 아니 엄밀히 얘기하면 이건 내가 스스로 알아챘고 또 스스로 놀랐고 스스로 실망했다. 그건 마치 자신까지 속일 정도로 치밀한 줄 알았던 자신이 그토록 숨기고자 했던 대상에게 들킨 것에 대한 실망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왠지 알 수 없는 끌림에 그 남자가 다니는 교회로 자신도 모르게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전날 마신 술이 아직도 채 깨지도 않았는데, 그 남아있는 숙취를 없애려 따뜻한 꿀물을 마시고 샤워를 하고 온몸에 배어있는 알코올의 흔적을 지워내려 아침부터 야단법석이다. 혹여 그의 옆에 앉게 되지 않을까.


어느 날 정말 그 생각은 현실이 되었다. 예배시간이 늦게 도착한 교회 입구에서 그와 마주쳤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어느 한 집사가 나와 그를 같은 자리로 인도했다. 그때부터 나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텅 빈 우주 공간에 그와 자신 둘 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텅 빈 공간에 있는 그의 작은 움직임과 숨소리만이 유일하게 내가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예배시간 내내 흠칫흠칫 그의 모습을 훔쳐봤다. 그때마다 다행히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자주 눈을 감고 있었고 그때마다 들리지는 않지만 입으로 무언가 오물거리 있었다. 마치 누군가와 대화하듯이 그러다 그가 눈을 뜨려 하면 다시 재빨리 시선을 텅 빈 우주 공간 어디로 옮겼다.


이 끌림은 또 다른 그의 모습에서 생겨났다. 만약 내가 그의 글을 훔쳐보지 않았더라면 생겨나지 않았을 끌림이었다. 항상 이 끌림이라는 것은 우연을 통해 생겨나고 또 그 끌림을 따라가다 보면 그것이 인연이 되곤 한다. 문제는 이 끌림이 쌍방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인연은 운명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의 글 속에서 그가 다니는 교회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이면 교회에서 그를 훔쳐보며 글 속에서 나타나는 그와 현실에서의 나타나는 그를 번갈아가며 지켜봤다. 너무도 달랐다. 글 속의 그와 현실의 그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신비로워졌다. 신비함이란 풀리지 않음에서 오지만 풀고자 함이 또한 인간의 욕망 아니던가. 욕망은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나는 지금 내 앞에서 너털웃음을 짓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슬픔을 보고 있다. 그 슬픔은 과거 자신이 가졌던 것과 비슷했다. 슬픈 공감이다. 이 끌림의 시작은 연민이었다.


그리고 교회에 나가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와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예배가 끝나고 교회의 청년 무리들과 섞여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다. 나도 떨고 있다. 또다시 그가 옆자리에 앉았다. 그 떨림을 들키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반복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무의식에서 생겨난 움직임이기 때문이었다. 의식하면 할수록 생겨나는 무의식의 행동들이 있다. 이건 스스로 제어할 수 없고 또한 인지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걸 알게 해 준 건 다름 아닌 그 남자의 글이었다.


"그녀의 손은 다시 머리로 옮겨가 머리칼을 어루만진다. 그녀의 어색한 행동이 이어졌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글 속에 한 여자가 등장하고 있었다. 그 여자도 자신처럼 머리칼을 만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성격이 달랐다. 그 여자의 행동은 어색함과 난처함이 만들어낸 것이었고 자신의 행동은 설레임과 떨림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같은 행동이지만 품고 있는 감정은 다른 것이었다.


처음에 배경 설명 없이 등장하는 그 여자가 실제인지 가상인지 알 수 없었다. 왜냐 너무도 추상적이고 또 안갯속에 휩싸인 듯한 묘사 속에서만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그 여자의 서사가 곳곳에서 드러나며 안갯속에 숨어있던 모습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처음엔 묘사 속에 등장하는 여자가 혹시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감정을 이입해서 그의 글을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서사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글 속의 여자는 자신과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묘사는 상상을 증폭하지만 서사는 상상과 멀어지게 만든다. 묘사와 서사는 글이 상상과 현실을 오고 가는 방법 같았다. 상상 속에는 내가 있었지만 현실에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


그는 글 속의 여자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글을 읽고 있는 나는 그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글이 계속 이어지면서 그 남자의 짝사랑은 외사랑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도 그와 같은 운명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 속에서 드러나는 그 남자의 간절함이 식어갈수록 자신의 간절함 또한 식어가고 있었다.


남자에게서 미움의 감정이 싹트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뤄지지 않는 사랑은 어느새 미움이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사랑이 빛이었다면 미움은 어둠이다. 빛이 사라지면 어둠이 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의 마음에도 미움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 미움은 시기와 질투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사랑의 설렘을 숨기려 떨리는 눈빛을 감추었지만 제어하지 못한 손은 자신도 모르게 항상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건 사랑의 무의식이었다. 그건 또한 감성이었고 허술함이었다. 지금 거울 앞에는 흐트러짐 하나 없이 묶인 머리칼과 진한 화장 그리고 하얀 살을 드러낸 과감한 노출 그리고 그것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드는 민소매의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내가 서 있다. 이건 미움의 무의식이다. 그리고 이건 이성(性)이고 빈틈없음이다.


그가 글과 현실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갔듯이 지금 나도 그의 앞에서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려 한다. 또 다른 내가 거울 앞에 서 있다.


사랑과 미움 사이에서...





릴스영상

https://www.instagram.com/reel/C1oS_APxMMF/?igsh=MXF5NmoxdjF2a25xbg==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