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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an 15. 2024

잘 지키는 그녀

[초단편 소설] - 열네 번째 -

늦어서 죄송해요”


시계를 보았다. 10시 32분이었다.  2분 늦었다.


"늦지도 않았는데 왜 늦는다고 했어요?"

“2분도 늦은 거죠. 약속 시간에 늦은 건 실례죠"

“아… 네…”


사실 그는 그녀가 늦게 도착했는지도 몰랐다. 그는 일찌감치 약속 장소에 도착해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가 도착했을 땐 이미 커피가 다 식어있었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시간에 대해 점점 무뎌지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무뎌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고 해야 할까? 사람들이 그가 시간에 무뎌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시간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그렇겠지만 항상 시간에 쫓기듯 살아간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는 항상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모든 일은 데드라인이 있었고 고객과의 미팅부터 해외 출장 기간, 퇴근 시간과 출근 시간 또한 정해있었으며(명목상과 실제가 다른) 출근 전 새벽 수영장 입장과 퇴장 시간까지도. 주말에도 항상 각종 동호회와 스터디 모임과 친구 들과의 약속 그리고 이성과의 소개팅 시간 또한 미리 정해져 있었고 그 시간들을 대부분 어기지 않고 준수하며 살려고 노력했다. 학창 시절(초등학교 때만 빼고, 이사를 많이 다닌 탓에…) 해마다 항상 놓치지 않고 받는 상은 개근상 밖에 없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학교는 무조건 가야 하는 곳이라는 사명 같은 걸 심어준 건 그의 아버지였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새벽같이 일을 나가시는 모습만 보다 보니 그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모양이다. 그런 아버지가 그에게 가르쳐준 게 하나 있다면 ‘등교’와 ‘출근’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명이라는 것이었다. 다 크고 나니 사람들은 그걸 ‘성실’이라고 얘기하더라.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이 ‘성실’이라는 단어가 점점 얄미워지더라.


“나는 성실한데 타인은 왜 나에게 성실하지 않을까?”


지구 반대편에 와서 그가 처음에 겪은 사람들은 그의 시간을 존중해 주지 않았다. 그가 비천해졌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자신보다 많이 가진자들에게는 성실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성실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앗~ 미안, 급한 일이 생겨서, 다음에 보자”

“어쩌나, 오늘은 자재가 없어 일이 안 되겠네 쉬어야겠는데”

“애가 갑자기 가기 싫다고 떼를 쓰네, 다음에 다시 날 잡아서 가자”

“야, 벌써 도착했어? 아하~ 어쩌나 나 갑자기 다른 중요한 일정이 생겨서 많이 늦을 거 같은데… 어쩌지 미안한데 담에 보면 안 될까? 그때 내가 거하게 사께”


그들은 약속 전날 저녁 혹은 당일날 이런저런 이유들로 그와의 약속을 지웠다. 그럼 그는 그날 무얼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당장 다른 약속을 잡기도 애매한 시점이다.


“그래? 뭐 어쩔 수 없지”


그는 거기에 대해 따지고 화를 내고 할 수도 없다. 왜냐 그렇게 해보니 그만 속 좁고 이해심없는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리더라. 그들은 그를 다시 보지 않아도 아쉬울 게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는 한 명이 아쉽다. 홀홀 단신으로 떨어진 낯선 땅에서 의지할 혹은 도움을 구할 누군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았다. 그는 항상 그들을 위해 시간을 비워두었지만 그들은 그를 위해 비워두기로 했던 시간을 서슴없이 다른 것들로 채우려 했다. 그는 일종의 기회비용 같은 존재였다. 기회비용이란 자신에게 무엇이 더 중요한지 생각하고 버려지는 것을 일컫는 경제용어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쓸모가 없는 인간이었다.


한 동안 그 상황들이 그를 너무 힘들게 했다. 그는 약속이 생기면 핸드폰 달력에 표시해 놓고 알람까지 맞춰놓으며 약속 날짜를 기다렸지만 그들은 다른 일이나 약속들이 생기면 그와의 약속은 1순위로 지워버리는 기회비용일 뿐이었다.


그는 시간과 약속을 지키는 게 사람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런 기본적인 예의도 사람에 따라선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불쾌하지만 불쾌할 수 없는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야~ 바닥까지 내려가보니 사람들이 보이더라. 그리고 관계가 정리되더라.”

“뭔 말입미거? 행님”


그는 오랜만에 고향인 한국에 돌아가 만난 친한 지인과 얘기를 나누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을 보는 게 아니더라. 사람은 사람을 보기 전에 그 사람이 가진 것과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 알고 싶어 하더라는 것이다. 그것이 관계를 지속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 기를 쓰고 성공하려고 하는 것이리라. 사람들이 내 곁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려고.


“寧敎我負天下人, 休敎天下人負我”

“내가 천하 사람들을 저버릴지언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  조조 맹덕 -


어린 시절 그의 우상(멘토)들은 삼국지에 모두 있었는데 [멘토를 찾아가는 여정] 조조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가 남긴 말이 인생의 중반부에 새삼스럽게 떠 올랐다. 중국 삼국 통일의 기틀을 다진 그는 지금의 현대인들에겐 뛰어난 전략가이자 사업가의 모토가 되었다. 지금에 와서 그의 말이 왜 그렇게 가슴을 후벼 파듯이 스며들던지…


이런 사람들이 를 대하는 태도는 남녀를 불문했다. 그런 행동이 의도하는 바가 있어서이든 아니면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이든 간에 자신을 언짢게 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그렇다고 약속을 안 하고 사람을 안 만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쉬운 사람은 그였다.


그래서 그는 생각과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 그러니 한결 편안해졌다. 그것이 바로 약속 시간과 장소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미리 생각하고 준비해 놓고 가는 것이었다. 또 언제 어떻게 취소되고 무시될지 모를 약속을 믿지 않기로 했다. 불확실한 현실에서 그가 그리고 그로 인해서 모든 것이 통제될 수 있는 확실한 계획을 하나 준비하고 가는 것이다.


그게 바로 독서였다.  


그는 약속 시간보다 일찍 약속 장소 근처로 가서 읽고 싶었던 책을 읽으며 독서의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미안한데, 제가 오늘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못 나갈 거 같아요 다음에 뵈어요”

“아 그래요? 괜찮으세요? 전 괜찮으니 몸조리 잘하시고 푹 쉬세요”


전화가 울리고 또 약속이 캔슬되었다. 그는 이전과는 다른 차분한 목소리로 상대방을 안부 걱정하는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고 전화를 끊는다. 그리곤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좀 전까지 읽던 책에서 받은 영감을 떠올리며 한 편의 글을 써내려 간다. 약속이 취소되면 그의 새로운 글이 하나 더 탄생한다. 포기는 새로운 탄생을 가져온다. 그렇게 탄생한 글이 마음에 들면 오히려 그 사람이 고마워지더라.




그런데 그녀는 달랐다.


그의 시간을 존중해 줬다. 이곳에 온 이후 그런 배려를 가진 여성을 만나본 적이 없다. 호주에 온 이후 이 약속이라는 것에 대한 의미가 퇴색되어 버린 지 오래다. 약속 시간을 너무 쉽게 여기는 누군가들과 오랜 시간 함께 하다 보니 약속의 사전적 의미를 잊어가고 있을 즈음이었다.


약속을 무엇보다 소중히 하는 사람이 약속을 밥 먹듯 어기는 사람들에게 의지해야 하는 상황 속에 있는 것이 괴로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가 스스로 결정한 것이고 처한 환경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그녀는 세 번의 만남 모두 완벽한 타이밍에 나타났다.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그래서 그는 정확히 그의 시간을 통제할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건 뜻하지 않게 생긴 공백의 시간에서 탄생할 수 있었던 글이 아쉬울 뿐이었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잠시, 독서와 글쓰기 못지않은 흥미로운 대화가 이어졌다. 그녀와 어색한 아이스 브레이킹이 끝나고 그녀와의 폭풍 수다가 이어졌다.


"요즘 어떻게 지내요?”

"네 바쁘게 지내요, 요즘 영상 만들기에 관심이 생겨서요"


그녀도 대세를 따르는 MZ였다. 그는 글로 그녀는 영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비슷한 삶을 산다는 것이 왠지 모를 동질감 같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물론 그는 그녀에게 글을 쓴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저는 결말이 확실한 영화가 좋아요"

"그래요? 난 결말이 열린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녀는 확실한 걸 좋아했고 그는 불확실한 것에 더 매료되었다. 그녀는 J(Judging)이고 그는 P(Perceiving)다. 그녀와 그는 확실히 다른 세계에 머무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자신과 다르지만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주는 대화가 너무 좋았다. 언제나 대화는 서로의 다름으로 인해 충돌하는 시간이 대부분인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지쳐가고 있었던 그였다. 그녀와 영화부터 예술, 신앙 그리고 연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신앙 있고 술담배 안 하고 안정된 직장에 음… 저보다 좀 컸으면 좋겠어요.”

“하하하 조건이 많네요”

“이 정도는 적은 거 아녜요? 저에겐 너무 당연한 것들인데"

"그래요 뭐, 애매모호한 것보다. 연애 상대에 대한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이 있는 게 나을 수도 있겠네요"


그녀는 선하고 아름다운(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모습 그리고 뛰어난 감각(S)까지 지녔음에도 연애가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음... 저보단 연봉은 적어도 괜찮지만 안정된 직장에 뚱뚱하지 않고 피부가 좀 좋았으면 좋겠고 나이는 저보다 적어도 3,4살은 어리고...."


그 순간 그 또한 과거 제 발로 찾은 '결혼정보회사'에서 상담사 직원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랑을 하기 위한 조건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요즘은 솔직함도 개성이기에 이런 자신의 확실한 연애 조건을 드러내길 주저하진 않는다. 예전엔 그런 표현이 자신을 속물로 보지 않을까 걱정해 그냥 '느낌 가는 사람'이라는 아주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말로 이상형을 둘러대곤 했다. 기준이 확고한데도 확고하게 표현하지 않는 것이 겸손이고 예의처럼 여겨졌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기준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 그건 변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그런데 그런 조건들은 사랑하면서 함께 채워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왜 굳이 그런 수고를 감당해야 하죠? 안 그래도 할 것도 많고 힘든 세상에..."


그렇다. 그녀 말이 틀리지 않았다. 사람들 속에서 관계 속에서 지쳐가는 사람들은 적어도 자신의 애인과 배우자만큼은 그런 스트레스를 덜 받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원하는 조건들이 채워진 사람을 만나면 관계에서의 스트레스가 사라질까? 그는 이제 아니라고 확신한다. 조건에 맞는 사람에겐 또다시 다른 조건들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과거 아름다웠던 자신에게 맞는 아름다운 옷을 찾았지만 이제는 자신이 아름답지 않은 몸으로 변해버려 아름다운 것을 입지 못하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럼 또다시 다른 조건을 찾게 된다. 지금 상태에서 자신을 아름답게 보이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그렇게 자신은 계속 아름다움에서 멀어지며 추한 모습으로 변해가지만 계속 아름다워 보이는 것들로 그 추함을 가리려 한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가리려 해도 가릴 수 없게 되어버린다.


내면의 아름다움은 서서히 드러나고 은은하게 스며들지만 외면의 아름다움은 눈에 띄게 드러나고 또 금방 싫증 나게 되더라. 그래서 또 새로운 아름다움의 트렌드를 끊임없이 쫒아야 한다. 다들 똑같이 그러니 아름다움은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는 인기 상품처럼 하나같이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녀가 말한 당연한 조건은 과거의 나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있었다. 이젠 이성에 대해 그다지 미련이 없는 그였지만 그걸 들으며 그때 자신의 앞에 앉아있던 결혼 상담사의 심정이 상상이 되었다. 조건이란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을 긋는 것이고 또한 벽을 세우는 것이다. 조건을 충족하고 만나는 것과 만나면서 조건을 충족해 나가는 것 둘 다 어렵긴 매한가지이다. 뭐가 좋다고 얘기할 수 없다. 이미 답을 정한 사람에게 또 다른 생각은 오답일 뿐이다.


"이성관계는 선을 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게 무슨 말 이에요?"


이성관계는 어찌 보면 선을 넘고 벽을 허물어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 남남으로 살다가 만났다. 서로의 영혼과 육체를 사랑하고 이해하려면 서로의 시공간을 침범하고 내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호감이 생기기도 전에 확실한 조건으로 선을 긋고 벽을 높게 세워버렸으니 서로의 영혼과 육체가 맞닿을 일은 묘연해 보인다. 사이에 선을 긋고 벽을 두고 얘기하면 이건 대화가 아니라 협상이다. 휴전 협정을 하기 위해 만난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럼 제 생각이 틀렸다는 건가요?”

“아니요 제 생각은 이렇다는 거예요 하하하”

“저는 선 넘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렇게 그는 선을 넘은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는 그런 선을 넘는 대화가 너무 의미 있고 흥미로웠다.


그는 과거 선을 긋는 사람이었고 이제는 선은 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선을 지키고

시간도 잘 지키는 그녀가 앉아 있었다.





오디오영상  - 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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