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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Apr 08. 2024

목수 청년과 예술가 할머니

[초단편 소설] - 열여섯 번째 -

“예술만 한 사람들은 독선적인 경향이 있지. 그들은 자신만의 세계에만 너무 오랜 시간 머물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거 같아”


목수 청년은 최근에 알게 된 한 비즈니스를 하는 친구와 예술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 그가 한 말이 계속 뇌리 속에 맴돌았다. 그건 목수 청년의 기존에 생각하던 것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목수 청년은 예술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예술가 할머니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종종 상식 밖의 말과 행동으로 청년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한 것은 노년에 찾아오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하겠지만 너무 경우에 없는 말과 행동은 청년으로 하여금 어떻게 그 상황을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전기세가 많이 나와, 낮인데 불 좀 끄지”


청년이 부엌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불을 꺼버린다. 아무리 낮이지만 빛이 들지 않는 늦은 오후의 부엌은 불빛 없이는 너무 어두웠다. 어둠 속에서 밥을 먹어야 했다.


“세탁기는 왜 1시간이나 돌려!?”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일주일간 모아둔 작업복과 속옷들을 함께 세탁하는데 그것도 못마땅한 듯 한마디 한다. 30분 물세탁만 하라고 하라고 했다.


“에어컨을 왜 틀어!?”


낮 기온이 40도를 넘어가는 날이었다. 하우스 지붕의 열기가 2층 청년의 방에 머물며 방이 찜질방이 되었다. 에어컨을 틀었더니 금세 올라와서 꺼버리고 내려간다. 청년은 밤새 사우나를 하며 잠을 설쳐야 했다. 낮에는 일터에서 밤에는 침대 위에서 밤낮없이 땀을 흘려야 했다. 땀으로 노폐물이 다 빠져나갔는지 몸은 너무 가벼워진 듯하다.


“냉동실에 왜 계속 생수병을 얼려 놓는 거야?”

“어머니, 그거 저 일할 때 더워서 시원하게 마시려고 얼려놓는 거예요”


냉동실은 이미 할머니의 음식들로 가득 찼다. 4개의 냉장고는 모두 먹지 않는 음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몇 달 아니 청년이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부터 있었으니 아마 몇 개월은 된 것들이다. 냉동실에는 몇 년을 묵혔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물이 성에에 뒤덮여 겨울잠을 자고 있다. 이곳은 쓰지도 먹지도 않는 물건과 음식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청년이 이곳에 처음 셰어를 왔을 때 그 오래된 냉동품과 유통기간이 지난 각종 소스들을 버려야지 않냐고 말을 했다가 오히려 왜 그걸 버리냐며 청년에게 호통을 치는 할머니의 모습에 당혹스러웠다 청년은 혹시 할머니가 깜빡 잊어버린 거라 생각하고 알려주었는데 그녀는 오히려 청년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참다 못한 청년이 한마디 했다.


“어머니, 이건 좀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제가 쓸 공간이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아니, 뭐 내가 써야니까 그렇지”

“그럼 이것들을 좀 버리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걸 왜 버렷!? 너나 버려!”


대화가 불가능했다. 이제 더 이상 채워 넣을 공간이 없으니 청년이 이용하는 생수 한 통의 공간마저 가져가려 한다. 불편하면 개인 냉장고를 사란다. 냉장고를 살 꺼면 청년이 룸셰어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그냥 청년이 돈만 내고 없는 존재처럼 살았으면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청년은 그렇게 해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이후 집에서는 잠만 자기 시작했다. 새벽 일찍 나가서 밤늦은 시간 집으로 향했다. 퇴근 후 수영장에서 운동하고 씻고 근처 카페나 도서관을 전전하며 시간을 보내고 늦은 밤 그녀가 잠들면 까치발을 들고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가 잠만 자고 나왔다. 방값도 직접 전달하면 또 핀잔과 잔소리를 들을까 출근하는 새벽에 거실 식탁에 놔두고 메시지를 남겼다.


“아이고, 요즘 정말 열심히 사네 새벽부터 늦게까지 그래 그럼, 그렇게 열심히 살아야지”


어느 날 늦은 밤 집으로 들어가는데 우연히 화장실에서 나오던 할머니랑 마주쳤다. 할머니는 더러워진 작업복을 입은 채 누추한 모습으로 들어오는 청년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이 청년에게 전혀 위로나 격려가 되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은 자주 마주치고 대화하고 어울려야 친해지게 마련인데… 자주 마주치고 대화하고 어울리면 계속 멀어지는 그런 사람이 있다. 그럼 사람들의 특징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과 행동이 괴리감을 선사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빨리 알 수 있는 방법은 같이 살아보면 된다. 그렇지 않다면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소모된 시간과 에너지 때문에 더 큰 실망과 상처를 받기도 한다.


“아니, 이제 들어오는 거야? 고생이 많네. 근데 이게 왜 안될까? 설치를 좀 해야는데…”


할머니가 목수 청년을 찾을 때가 있다. 도움이 필요할 때이다. 그것이 보통 집안을 수리하거나 무거운 것들을 옮기거나 할 때이다. 그럴 때면 청년과 마주치려 잠도 자지 않고 거실 소파에 앉아  청년이 오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그리고 문고리가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마치 거실에서 물을 마시러 나온 것처럼 우연을 가장해 청년과 마주친다. 의도를 품은 우연이었다.


“이것 좀 한번 봐볼래요? 내가 뭘 하나 샀는데… 말이야”


아무도 없는 집에 청년이 들으라는 듯이 혼잣말을 했다. 그렇게 운을 띄우고는 다가온다. 그렇게 청년은 집안 곳곳을 수리하고 주말엔 사다리를 타고 지붕까지 올라가 2층방의 방충방까지 설치했다. 마치 집사가 된 듯했다.


“목수도 나처럼 예술하는 사람이랑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뭐”


청년이 입주할 때 직업이 목수라고 했더니 얼굴에 화색을 반겼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 싶었다. 그런데 고마움은 잠시, 또다시 마주치면 잔소리와 핀잔이다. 내용도 레퍼토리도 반복이다. 그녀는 청년에게 부탁할 때와 잔소리를 할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


“와! 화가시네요 할머니”


청년은 처음 이 집에 입주했을 때 할머니를 기억한다. 일반적인 할머니들과는 달리 짙고 너무도 개성 있는 화장과 패션스타일, 누가 봐도 평범한 할머니는 아니었다. 말도 애써 교양 있게 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집 구경을 위해 집안에 들어가고 나서 그녀의 겉모습과 말투가 왜 그런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미술가였다. 집안 곳곳에 놓여 있는 수많은 그림과 조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집안 한쪽에는 커다란 작업실까지 있었다. 청년은 나름 큰 기대를 안고 그 집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청년은 최근 역사 속 유명한 예술가들의 전기를 읽으며 느낀 감동과 흥미로운 사실들을 현실에서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섣부른 기대는 항상 실망을 가져다주기 마련이다. 그녀의 상상 속 그리고 이상 속의 세계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비공개) 현실 속에서 함께 있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의 너무도 예민하고 까칠한 성격 그리고 상대에 대한 배려보다는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인 말과 행동이 상대를 너무 힘들게 만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이 칠순에 그 성격이 변할리 만무하다. 청년은 몇 개월간 할머니와 생활하면서 왜 이 넓은 하우스에 홀로 살 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목수 청년이 오기 전 살았던 청년이 왜 그렇게 쫓겨나듯 집을 떠났는지를 상상해 봤다. 목수 청년은 그 청년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할머니에게 전해 들은 말 밖에 없었는데… 그 말은 모두 그에 대한 험담 밖에 없었다. 그래서 목수 청년은 그 청년과 마주치는 게 껄끄러웠다. 그녀의 험담으로 만들어진 상대에 대한 선입견이 청년이 그에게 다가가기 힘들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서 타인만 비방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 없다는 말을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청년은 자신이 듣고 직접 경험한 것을 확인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청년은 배운 것도 없고 가방 끈도 짧아서 배운 사람들과 교양 있게 행동하는 사람들의 말이 다 맞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왜 셰어생을 딱 한 명만 받는지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전에 살던 청년은 할머니의 신고로 짐도 챙기지 못한 채 경찰에게 붙잡혀 끌려나갔다. 그 누구도 그 청년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사건의 내막은 결국 할머니와 그 청년 둘 밖에 알 수 없었다. 목수 청년이 늦은 시간 집에 돌아왔을 때는 그 청년의 짐이 집 밖에 한가득 내다 버려져 있었다.


“아니, 그 미친 새끼가 어디 감히 나한테… 하여튼 교양 없고 못 배운 것들이 하는 짓이 뭐 다 그렇지 뭐! 안 그래?”


목수 청년은 표정 없이 할머니의 말을 그냥 들어주었다. 할머니는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 보였다. 들어줄 수 있어도 이젠 공감하긴 힘들었다.


할머니의 대외적인 모습은 달라 보였다. 집에 손님이 오거나 전화를 받을 때는 교양 있는 말과 행동으로 일관했다. 외출을 하거나 외부 사람들을 만나거나 할 때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치장하고 외출을 했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 밖에서는 예술가로 칭송과 존경을 받는 듯 보였다.


“할머니, 요즘은 그림을 안 그리시나 봐요?”

“영감이 와야 그리지. 죄다 짜증 나는 일뿐이고 휴~,  뭐 또 뭐 때가 되면 그려야지, "


청년은 그녀와 살면서 단 한 번도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작업실은 몇 달이 지나도록 청년이 입주했을 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청년은 영감은 마냥 기다리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다 보면 영감이 오는 것은 아닐까. 느낌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다 보면 느낌이 오는 것이다. 목수 청년도 그랬다. 모든 것을 다 머릿속에 집어넣고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단 망치를 들고 못을 박고 톱을 들어 나무를 자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형체를 갖추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다 난관에 부딪치면 또 그것을 해결해 가는 과정이 손기술과 감각이 늘어가는 과정이었다. 그 시간을 견디다 보면 어느새 집이 그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여기 내가 쓰던 주방가위가 쓰고 어디에 뒀어?”

“전 안 썼는데요”

“무슨 소리야! 집에 너랑 나 밖에 없는데 그럼 뭐 귀신이 가져갔어!?”


그녀는 이제 기억이 조금씩 흐려지는 것 같았다. 깜빡하는 것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뭔가가 사라지고 안 보이면 바로 청년을 의심했다. 그러다 다음 날 그 가위가 다시 제자리에 놓여 있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전자레인지엔 항상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음식을 데우고 깜빡하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일들이 청년에게 들키면 그녀는 그 사실이 부끄러운지 말없이 서둘러 방으로 숨어 들어가곤 했다. 이제 그녀가 청년과 마주치는게 껄끄러운듯  보였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청년은 깨달았다. 그녀가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 두려움은 사람들로부터 외면받지 않으려는 두려움이었다. 그 두려움을 들키지 않으려 겉모습(외면)과 채움(소유)과 그림(예술)으로 그 두려움을 가리고 있다는 것을…


목수 청년이 늦게 귀가하기 시작하면서 한 가지 의아스러운 일이 생겼다. 그건 늦은 밤 귀가하는 집 현관 앞 계단에 할로겐 등이 항상 환하게 켜져 있다는 것이었다. 늦은 밤 어둠이 자욱한 적막한 주택가에 오로지 할머니 집 현관등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청년은 또다시 까치발을 들고 현관 안으로 들어왔다.


할머니 방에선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이 들렸다. 할머니는 청년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불을 밝히고 있었다.


청년은 현관 밖에 켜져 있는 할로겐등의 스위치를 끄고 조용히 2층 방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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