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의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아마도 자신의 현재 현금적 자산가치가 얼마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통장 잔고에 있는 현금과 현금성 자산(주식, 펀드, 채권등) 그리고 자동차, 집과 건물, 부지등의 비유동자산의 현재 시세를 고려해서 자신의 총체적인 자산의 현금적 가치가 얼마인지 대략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갑부들은 나의 글을 읽을 일도 없을 것이며 자신이 얼마를 가지고 있는지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부단히 그 자산을 늘리는데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올라가는 자산의 가치만큼 자신의 존재감도 올라간다. 이건 우리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속에 머물기 때문에 절대 간과하고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약 이것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고 살아간다면 당신은 세상의 무시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이것에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당신은 자신을 무시하고 살아가는 자가 될 것이다.
How much are you?
무엇이 우선인가 (인본 vs 자본)
인간은 돈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에 동의하는가. 만약 동의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내 글을 읽어내려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돈(화폐)이 인간을 위해 탄생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엇이 무엇을 위해 존재(탄생)했는가를 따져보면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할지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주객이 전도된 모순된 세상에 살고 있다. 겉으로는 인본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자본을 지향한다. 인간이 모순된 이유이다.
돈, 정확히 말하자면 화폐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것이지만 이제는 화폐(의 증식)를 위해 인간이 존재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의 달러 자본(화폐총량)만 보더라도 1920년 40억 달러에서 2020년 기준 약 20조 달러로 증식했다. 자본이 5,000배가 증가했다. (ChatGPT 참조)
The total amount of dollar money in the United States increased by about 5000 times in the 100 years
물론 그만큼 인간의 편의도 증가했다. 하지만 행복은 어떤가? 편의가 행복을 가져다 줄거라 생각해서 발명한 화폐 아니던가 하지만 행복은 5,000배 증가했는가? 내가 의구심이 드는 건 자본의 총량이 이렇게 증가해도 물질의 가치, 즉 물가는 항상 낮게 유지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로 다시 예를 들면 물가는 과거 100년 기준(1923년~2023년) 대비 29.4배 증가했다. (ChatGPT 참조) 화폐가 5000배로 증식하는 동안 물가는 고작 30배도 증가하지 않았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는 물가 인상에는 민감하지만 화폐 증량에는 둔감하다.
자본의 증가 속도 대비 물가의 상승 속도 차이가 너무 크지 않은가? 이 말은 돈이라는 것은 실물에 상관없이 허구(인간이 만든)에 의해서 증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가는 인간이 현실(실물세계)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최소 비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데 물가와 상관없이 물건을 사고 파는데 기준이 되는 돈(화폐)은 이것과 상관없이 증식한다. 인간은 돈에 가치를 부여했지만 돈은 스스로 가치를 증식하고 그 돈은 현실에 관여하고 간섭한다. 이걸 좀 확대 해석 하면 허구가 현실을 움직인다(좌지우지)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젠 과거처럼 인간의 노동을 통해서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부가 늘어나는 경제 시스템에서 크게 변화가 되었다. 아이러니하지만 여전히 실물 경제를 지탱하는 노동력이 없으면 자본은 계속 증식을 할 수 없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오프라인(현실) 세계에서 탄생한 부가가치(생성된 자본)는 온라인(허구)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4차 산업혁명 -> 5차 산업혁명
그리고 이제 많은 이들이 이 불편한 진실을 깨달았고 자신의 노동 가치를 더 많은 사람에게서 동시 다발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방식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노동을 통해 당장의 돈이 아닌 영향력을 가지려 한다. 과거엔 학업과 사업의 성공을 통해서만 가능했던 것에서 또 다른 새로운 영역이 생겨났다. 일반인들도 새로운 가치와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고 표현함으로써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불특정 다수를 위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그리고 이 영향력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져나간다. 일반인이 영향력을 가지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을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 아닌 AI이다. 5차 산업혁명 시대에 생겨난 아주 큰 변화 중 하나이다.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떠돈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이제 옛말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나의 개인적인 견해가 가미된 것이긴 하지만 4차와 5차의 가장 큰 차이점은, 4차의 디지털과 자동화 인공지능(AI)의 기술적인 발전에 인간의 감성이 더해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4차는 이성적 논리적 기술적인 접근과 발전에 포커싱되었다면 이제는 그것에 감성적 인간적 창의적인 것의 융합과 연결이 필요해진 시대이다.
보이지 않는 상품은 없는 것이다. (노출과 광고)
과거에는 제조를 통한 대량 생산으로 다수에게 쓰임 받음으로써 부가가치를 늘리는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온라인 세계에서 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두는 자가 그 영향력을 가져가고 전자의 대량 생산자들은 그들의 영향력을 이용해 그것들을 판매한다. 이제 상품은 넘쳐나는 세상이다. 이젠 상품을 만드는 것보다 상품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들에게 노출시키느냐가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바닷속 조개 안에 있는 진주는 불순물이고 땅 속 깊숙이 묻혀있는 다이아몬드는 딱딱한 돌멩이일 뿐이다. 노출되지 않은 보석은 아무것도 아니다.
a pearl in a shell deep in the sea
물질은 소비되지 않으면 자본이 증식될 수 없고 소비를 더 많이 더 빨리 일으키기 위해선 더 많은 이들이 이것을 보고 듣게 만들어야 한다. 과거엔 이 역할을 방송사와 언론사가 점유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SNS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 영향력이 돈이 되는 건 보석을 노출(발견)하는 권한을 가졌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의 시선을 잡아두는 자,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타인의 시간을 소유하는 자가 자본을 증식시킨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시선과 시간을 잡아두려면 인간의 본성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이로운 것(감동, 공감)이든 해로운 것(중독, 자극)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안타깝지만 인간은 나쁜 것에 더 쉽게 현혹되는 편이다.
어쨌든 사람들에게 더 많은 시간 노출되어 자본 증식에 기여한 대가는 자본 창출(생산 노동) 보다 더 큰 대가를 얻는다. 그래서 언제나 몸으로 행동(노동)하는 자는 머리로 사고(정신)하는 자에게 종속된다.
돈의 흐름 : 자격과 권위 -> 이해와 공감
이런 사람을 우린 흔히 인플루언서라고 한다. 인플루언서는 실물을 생산하지 않지만 자본을 증식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자본이 그곳으로 흘러간다. 과거 이 역할을 방송과 언론이 독점했지만 이제 개인(인플루언서)과 각종 수많은 플랫폼으로 분산되었다. 한 간에는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비전문가들이 영향력을 가지면 사회가 위태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건 맞는 말도 아니고 틀린 말도 아니다. 참과 거짓을 단정할 수 없다. 인플루언서가 되는 길은 그리 쉬운 길이 아니다. 오랜 시간 덕업일치를 지속해 이룬 결과이므로 그들도 나름의 전문가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전문가보다 더 전문가일 가능성도 있다. 이제 전문가를 전문가가 공인하는 시스템과 전문가를 대중이 공인하는 시스템 두 가지가 함께 작동한다. 언제나 기득권(권력자)과 전문가(지식계층)는 사회와 공익을 걱정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려 한다.
이제는 전문가와 권위자가 돈은 버는 시대는 저물어갈 것이다. 이제 AI보다 뛰어난 전문가는 없다. 전문성이 권위를 부여하던 인간 사회는 이제 인간의 전문성이 너무도 취약하고 불완전함이 조금씩 증명되고 있다. 이젠 누가 더 많은 이들로부터 공감과 이해를 끌어내느냐, 즉 사람들의 시선(눈과 귀)을 잡아두냐의 문제이다. 시간은 돈이다. 사람들의 시간을 더 오랫동안 자신에게 잡아두는 자가 자본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긴다. 이해와 공감이든 유혹과 중독이든 상관없다. 돈은 이 둘을 차별하지 않는다.
영향력의 두 가지 모습 (선한 그리고 악한)
만약 누군가가 인본을 지향하다 덤으로 자본까지 얻었다면 그건 아주 이상적인 케이스일 것이다. (다만 그 이후 마음이 변해 인본을 내팽개치지만 않는다면…) 하지만 자본을 지향하는 마음이 자본을 얻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고 지향하는 일반적인 삶이다. 하지만 가장 위험한 것은 자본을 지향하는 마음이 덤으로 인본을 얻었을 때이다. 돈을 좇는 자가 인기까지 얻으면 세상은 위험천만해진다. 인본은 사라지고 자본만 남게 된다.
욕망은 돈이 된다.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자극적이고 편리하고 중독적인 것은 영향력이 크다. 쉽게 빠져들고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 그래서 이것은 돈이 된다. 세상에 마약, 술담배, 매춘, 포르노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다. 우리는 중독되면 그것에 돈을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흡연자에게 담뱃값은 생계비에 포함된다. 필수재이다. 중독은 끊임없이 지속적 자본유입이 되는 곳이다. 생리대 회사가 망하지 않듯이 담배회사도 망하지 않는다. 한 번 발들이면 오래도록 충성하며 돈을 갖다 바친다. 국가의 세수에 이것이 빠지지 않는 이유이다.
국가가 인본으로만 운영될 수 있다면 당연히 이건 없어져야 할 폐단이지만 국가는 인본과 자본의 균형을 잘 유지해야 하는 사명을 지닌 공동체이다. 국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본 증식에 힘써야 하고 모든 국민의 행복을 위해 인본 강화에 힘써야 한다. 그래서 국가 운영은 기업 운영보다 훨씬 더 어렵다.
The Balance between capitalism and humanism
자본과 인본의 균형
난 이것이 기업가와 자본가들이 절대 정치인이 되지 말아야 할 이유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자본적 가치 기준으로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이 사람 위에 올라서면 인간은 단순히 자본 증식을 위한 존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 말은 그들은 국가를 기업으로 생각하고 운영한다는 말이다. 국가 경제를 위해서라면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희생되더라도 그건 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 인본은 멸종된다.
그렇다고 인본만 앞세워도 문제다. 결국 국가라는 존재도 국제 사회의 경쟁, 즉 양육 강식의 생태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자본적 가치(GDP 국내 총생산)를 올려야만 한다. 그것이 자국민이 타국민의 지배 혹은 종속의 관계에 놓이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자주독립은 정치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경제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경제력이 없는 나라는 언제나 경제대국의 속국(과거 식민지)으로 전락하게 마련이다. 자본이 힘으로 작용하는 곳이 국제 사회이다. 모든 국가들이 자국 우선 주의를 외치는 건 이 때문이다. 어찌 보면 지구 안에 국가라는 보이지 않는 개별의 존재가 탄생 함으로써 인본과 자본 간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강대국의 약소국 식민지배의 원천 경제력
다른 나라에 종속되지 않으려 부단히 자본을 쌓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독립 국가를 유지하는 기본은 국가의 경제력이다. 한 나라를 운영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 안팎으로 균형을 이뤄야 한다. 정치는 뭘 하든 욕을 먹는 이유이다. 욕을 많이 먹냐 적게 먹냐의 차이는 있을 뿐 안 먹을 순 없다. 국가는 언제나 안팎의 상황을 고려해 최적의 선택을 하는 것이지 최고의 선택이란 없다. 어떤 선택이든 누군가에게 직간접적인 자본적 득실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정치는 시간이 지나서 나서 역사가 판단한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 국내외 혹은 지정학적 상황에서 가장 최적의 선택을 가장 많이 한, 즉 절대다수의 국민들을 위한 선택을 많이 정치인에게 위인이라는 영예를 준다.
외계 존재(≒신의 존재)의 필요성
만약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이 국경도 없고 민족도 인종도 없이 동일하다면 인본과 자본 사이에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게 우리가 말하는 하나 된 지구촌의 개념 아닌가. 이것이 가능해질 수 있는 유일한 상황은 지구에 외계의 강력한 존재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럼 지구촌은 하나로 통합되어 외계의 적인지 아군인지 모를 존재에 대응하게 된다.
왜냐? 그 외계의 존재에게 인간이 만든 자본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같은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존재에게는 실존하지 않는 가치(돈, 명예, 권력, 국가등)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돈은 허구이고 허상이며 설명이 불가능하다. 관념 체계가 비슷해야 가능하다. 외계인(신)에게 인간의 개념이 통할 리 없다. 오랜 세월 국제 사회는 자국 우선주의로 서로 경쟁하며 발전하는 시스템으로 인해 발전했고 그 발전(생산과 성장)은 또한 파괴(전쟁과 오염)의 과정이었다. 사는 곳을 파괴해야만 살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 세상은 모순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그걸 알면서도 그걸 멈출 수 없는 존재다.
어쩌면 (알 수 없는 힘을 가진) 외계의 존재가 나타나야 할 시기가 도래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인간들은 무엇이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인지 다시 깨닫게 될지도…
Aliens find it difficult to understand why humans constantly convert their values into capital value
“우리는 자신만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이나 생물을 판단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중략) 현실은 다층적이고 다면적이지만 우리가 이해하는 현실은 부분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미하엘 하우스켈러 [왜 살아야 하는가] 중에서 -
외계의 존재(신)는 인간이 왜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이 자본적 가치로 환산해서 생각하는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우리는 왜 대부분이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건 인간이 만든 시스템(자본주의)이 인간의 관념을 고착시켜 가두어 버린 것이 아닐까?
이건 우리는 언제나 ‘나의 가치가 얼마인가’만 고민할 뿐 ‘나의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인본주의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앞으로 나의 (유일한) 가치가 무엇인가가 나의 가치가 얼마 인가 와 연결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아니 이미 온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