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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Sep 11. 2024

사랑(모든 것)과 사랑(하나) 사이

[불안의 서] 페르난두 페소아 -스물네 번째- (부제 : 페소아의 사랑)

“모든 연애편지는 바보 같다.

아니 연애편지가 아니리라

바보 같지 않다면,

 

나도 한 때는 연애편지를 쓰곤 했지,

남들처럼,

바보처럼”

 

- 알바루 드 캄푸스, 1935년 10월 12일 -


연애편지를 써 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에게 편지로 사랑을 고백하는 건 소심하지만 진실되다. 말로 하는 고백은 용기 있지만 상황에 따라 진실되지 않을 수도 있다. 편지를 쓰는 동안 우리는 그 상대와의 기억 속에 머문다. 그래서 사랑 편지를 쓸 때만큼 감성적인 글쓰기가 없다.


상대를 앞에 두고 사랑을 말하기보다 상대를 떠올리며 쓰는 것이 더 진실되고 진심일 수 있는 건 눈앞에 보이는 상대의 눈빛과 표정과 몸짓의 변화 그리고 목소리의 떨림과 높낮이에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 안에 떠오른 상대의 아름다운 모습만을 떠올리며 그 감정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지를 쓰면 상대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 쓰는 동안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상대를 더 사랑스럽게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사랑은 현실에서 비롯되었지만 상상으로 커져간다. 그 상상을 글로 옮기는 과정은 사랑을 증폭시킨다.


페소아는 편지로 사랑을 전했다. 그의 연인 오펠리아도 편지로 그 사랑에 답했다. 비록 둘은 사람들이 말하는 현실적인 사랑을 이루진 못했지만 둘은 서로를 평생 잊지 못하며 영원히 사랑했다. 그 사랑의 흔적은 둘 사이에 오고 간 편지에 남아 있다. 둘이 세상을 떠나고 그 편지가 세상에 드러나고 그 사랑은 영원해졌다.

리스본에서 만난 복수(複數)의 화신 Fernando Pessoa in Nha Trang




페소아의 연인 - 오펠리아 케이로즈(Ofelia Queiroz 1900~1991)

 

페소아는 한 여인과 오랜 시간 연애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는 자신의 본명이 아닌 다른 이름(알바로 드 캄푸스)으로 그녀에게 편지를 전하곤 했다. 물론 그녀는 그가 페소아인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또 다른 수많은 페소아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유일한 여성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이상했지만 흥미로웠다.

Ofelia Queiroz (1900~1991)

그녀는 페소아의 이명 놀이의 대상이었다. 마치 어린 남녀 아이가 놀이터에서 엄마 아빠가 되어 소꿉놀이를 하듯이 둘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둘 만의 상상 속 세계에서 사랑을 속삭였다. 누가 보면 다 큰 성인이 바보처럼 유치한 사랑을 하는 것처럼 보였을 수 있다. 하지만 둘은 그것이 세상의 시선과 구속과 제약에서 벗어나 가장 순수하게 사랑하는 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페소아가 만들어 가는 이상적인 문학 세계 속에서 함께 숨 쉬며 그 안에 갇혀 버렸다. 그녀는 점점 그에게 빠져들었고 평생 그를 잊지 못하며 살았다. 그녀는 다시 살아도 페소아처럼 사랑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사랑하는 법을 알려준 남자는 그가 유일했다. 이상적인 사랑을 알려준 남자였다. 하지만 이상적인 사랑은 현실에 존재할 수 없다.

페소아와 오펠리아

“오펠리아, 너를 많이 좋아해, 정말로 많이. 너의 타고난 성격을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를 거야. 만약 내가 결혼을 한다면 너 말고는 생각할 수 없어. 이제 남은 문제는 결혼, 가정(혹은 그걸 어떻게 부르든지 간에) 같은 것들이 내가 생각하는 삶과 맞느냐겠지. 난 회의적이야.”


- 1929년 9월 29일 편지 [페르난두 페소아와 오펠리아 케이로즈 – 모든 연애편지들] 중에서 -


오펠리아는 죽는 날까지 페소아와의 모든 연애편지를 간직하고 있었고 그것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 연애편지는 그녀가 죽고 나서 최근(2013)에서야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녀는 페소아에게서 받은 엄청난 분량의 편지(544 페이지)를 모두 고이 간직하며 평생 그를 추억하며 살았다. 그녀는 그 편지 속 은밀한 사랑 이야기가 대중에게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페소아가 죽고 난 후(1935) 그의 문학 작품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포르투갈의 문학계에 파란을 일으키면서 그의 삶에 대한 관심 또한 증폭되었다. 그의 일생에 유일한 연인이었던 오펠리아와의 관계 또한 그 중 하나였다.


그녀는 살아생전 대중들로부터 그 연애편지의 공개를 끊임없이 요구받았다. 결국 자신이 죽고 나서야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대중의 호기심에 의해 페소아와의 연애가 공개되었다. 인간은 타인의 비밀을 훔쳐보고 싶은 관음증을 참지 못한다. 그것이 유명인이면 더욱 그렇다. 물론 나 또한 페소아의 글을 읽으며 페소아의 사랑은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계속 커져갔다.


한 남자의 문학 세계에서 이성(異性)의 존재, 특히 진정성 있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깨닫게 해 준 여성은 무의식의 내면에 각인되어 문학 세계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문학은 삶은 대변한다. 삶에서 사랑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연애편지를 읽으며 상상하다.


둘은 12살(띠동갑)이라는 나이 차이 때문이었을까? 둘은 부모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연애를 이어간다. 오펠리아는 그와 대화하고 글을 주고받으며 정신적으로 점점 그에게 빠져든다. 그 정신적 사랑을 육체적으로 전환한 것은 다름 아닌 페소아였다. 문학적(이상세계)으로 아주 완벽해 보이는 그였지만 현실에서 그의 사랑의 몸짓은 아주 서툴고 갑작스러웠다.

Pessoa  & Ofelia

“열정에 차서, 미친 사람처럼… 키스했어요”


어느 날 정전이 된 사무실에 남겨진 두 사람, 그리고 어둠 속에서 갑자기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사랑 고백을 하는 한 남자, 어느 정도 호감은 있었지만 아직은 어색한 사이였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사랑 고백이었다. 그녀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그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그의 팔이 순식간에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그리고 눈앞을 가린 그의 얼굴, 그리고 첫 키스. 이 모든 건 예상치 못했고 피해 갈 수 없었다.


그 순간은 서로에게 평생 동안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던 모양이다. 그때의 상황이 그들의 편지 속에서 전해진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지적이고 차분하기만 하던 그가 순간 미친 사람처럼 자신에게 달려들어 키스를 했을 때 그가 비로소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지금으로 치면 반전 매력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그녀는 그에게 더 깊이 빠져들었다.


페소아 또한 그녀 모르게 그녀에게 미친 듯이 빠져들었다. 처음에 오펠리아는 그가 미친놈처럼 다가오는 것에 당황했지만 나중엔 자신이 그에게 미쳐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사랑은 미쳐야만 한다는 진리를 서로에게 일깨워 주었다. 둘은 한동안 낭만적인 사랑을 이어간다. 하지만 페소아는 그 낭만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과거 썼던 독후감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 [고전과 낭만 사이] 정신에서 육체로 이어진 낭만적인 사랑은 영원할 수 없다.

리스본 거리를 걷는 페소아

“낭만적 사랑이란 영혼과 상상력이 만든 옷이며 우연히 나타난 사람에게 입혀놓고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옷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옷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는 우리가 만든 이상적인 의상이 해어지고, 그 아래로 우리가 옷을 입힌 사람의 진짜 육신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낭만적인 사랑이란 환멸에 이르는 길이다.”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중에서 -


페소아는 항상 낭만적인 것들을 갈망했지만 언제나 모든 것은 고전적인 것들로 돌아가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페소아의 평생은 아마도 이 낭만과 고전 사이에서의 방황이 아니었을까? 그가 가진 느낌은 낭만을 쫓았지만 생각(사고)은 항상 고전으로 향해 있었다.


낭만은 상상이 만들어낸 것이고 그 낭만 속은 언제나 환희와 쾌락과 기쁨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인간은 낭만 속에서 현실의 무시하고 살 수만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페소아가 평생을 실명과 이명 사이를 오고 간 사실만 봐도 그가 이 두 세계의 끈을 모두 놓을 수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펠리아는 페소아에게 낭만으로 다가와 고전으로 넘어가야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페소아는 낭만과 고전 사이를 살아야만 하는 존재였다. 오펠리아는 고전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비록 낭만으로 시작된 사랑이지만 고전으로 결실을 맺어야 하는 것이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당대의 보통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페소아가 보여준 낭만적인 사랑에 기존에 교제하던 포르투갈의 전형적인 남성들의 구애를 모두 뿌리치고 그를 선택했다. 그녀는 그 낭만이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결과로 이어지길 바랐다. 하지만 낭만과 고전을 모두 가지는 건 욕심이었을까? 지금으로 치면 자유연애로 시작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일구고 자녀를 키우는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여성의 삶을 원했다. 그것이야 말로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고 여기며 살아온 여성이었다.

페소아와 오펠리아의 연애편지

하지만 페소아에게 그런 삶은 자신의 존재를 부인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는 고전으로 완전히 넘어가 버리면 더 이상 낭만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글은 언제나 낭만에서 고전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머물고 있었다. 그가 더 이상 낭만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낭만과 고전을 연결해야 하는 자신의 (문학적) 소명의 길을 따를 수 없음을 의미했다.


“내 인생 전부는 나의 문학 작품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어, 좋든 싫든, 그게 뭐가 됐건, 뭐가 될 수 있건 간에 (…) 그 나머지는 모두 내게 이차적인 문제들이야. (…) 내 작품들을 완성해 내기 위해서는 고요, 그리고 일종의 고립을 필요로 해.”


- 1929년 9월 29일 편지 [페르난두 페소아와 오펠리아 케이로즈 – 모든 연애편지들] 중에서 -


페소아는 더 이상 그녀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오펠리아는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둔 채 홀로 살아간다. 그러다 우연히 페소아의 사진을 발견하게 된 오펠리아, 다시 둘 사이의 편지가 오고 간다.

페소아의 사진 (오른쪽)

페소아는 그의 이명인 ‘알바루 드 캄푸스’의 이름을 빌려 오펠리아에게 편지를 쓴다. 페소아란 인간은 쓰레기 같은 남자이고 상종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며 자신이 자신을 깎아내리며 그녀에게 페소아를 잊어버리라는 권유의 편지를 전달한다. 하지만 오펠리아는 그런 페소아를 얄밉게 여기면서도 그의 이명 놀이에 대응하며 ‘캄푸스’ 같은 쓰레기 같은 놈이랑 놀아나지 말라며 페소아를 설득한다. 그렇게 다시 둘의 연애편지가 오고 가지만 그 편지 놀이는 그리 길지 않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 사랑은 지나갔어.”


페소아는 그녀에게 편지에서 고백한다. 사랑의 시작도 편지의 고백이었고 사랑의 끝도 편지의 고백이었다. 그에게 이성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준 건 오펠리아였지만 페소아는 오펠리아를 통해 스스로 사랑하는 법을 깨달았다. 왜냐 페소아는 느낌으로 사랑을 배웠지만 그녀와 연애하며 생각으로 사랑하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어떤 사람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이다. 이는 우리가 만든 개념이므로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중에서 -


오펠리아는 페소아가 죽고 3년이 지나서야 주변의 불편한 시선과 끈질긴 요구에 결혼을 하지만 결혼 후에도 자신 스스로 페소아만을 사랑했다고 말했을 정도로 평생 동안 그를 마음속에 품고 살았다. 페소아는 그녀를 통해 스스로 모든 것을 사랑하는 법을 깨달았지만 그녀는 그를 통해 오직 단 하나만의 사랑만을 품고 살아야만 했다.


페소아에게 사랑은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이었고 오펠리아에게 사랑은 오직 그 하나뿐이었다.


 Finish revising the 24th book report of [The Book of disquiet] in Nha T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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