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만의 주말 특근

평범한 남자 EP 32 (개정판)

by 글짓는 목수

"아~ 머리야"


깨질듯한 두통이 밀려온다. 전날 맥주와 빠이주를 번갈아 마셨던 게 문제다. 사실 싸구려 빠이주만 아니라면 빠이주는 숙취가 적은 편이다. 특유의 방귀 냄새같은 향과 목이 타들어가는 고통만 빼면 말이다.


다행히 오늘은 토요일이다.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직원들은 토요일과 일요일은 물론이거니와 평일도 3~4시가 되면 업무가 종료되고 퇴근한다.


사업 진행이 중단된 상황이니 이렇다 할 할 업무가 없다. 회사 입장에서는 주말 특근비까지 들여가며 직원들을 출근시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全部张~您喝太多了吧?安全到家了吗?]

(전 부장님~ 술 너무 많이 마시셨죠? 집엔 잘 들어가셨어요?)


침대 옆 서랍 탁자 위로 손을 뻗어 더듬거리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간밤에 문자 메시지가 들어와 있다. 장주임이다. 새벽 12시가 넘은 시간이다. 회식은 10시쯤 끝난 걸로 기억한다.


"뭐 실수 한 건 아니겠지?"


또 하나의 메시지가 보인다


[部长~您今天好帅哟! 我很高兴和你在一起工作,周末过得愉快~!]

(부장님 오늘 너무 멋있었어요! 부장님과 같이 일하게 되어 너무 기뻐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리셉션 담당인 쑨메이다. 그녀는 매일 아침 내 책상을 청소하고 모닝 커피에 책상 위에 작은 꽃병까지 가져다 놓았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란다. 사무실 잡무가 그녀의 일이긴 하지만, 총경리나 부총경리실의 청소나 차 심부름 등은 그렇다 하더라도 부장인 나한테까진 그럴 필요가 없는데 부담스럽다. 더욱이 한국에서 일개 말단 사원이었던 내가 받기는 너무 부담스러운 서비스이다. 그녀의 적잖은 사심이 섞여있는 것 같아 더욱 부담스럽다. 지끈지끈한 머리를 일으켜 세워 거실로 향했다. 넓디넓은 거실은 살림살이가 거의 없어 휑하게 느껴진다. 냉장고를 열어 물통을 들어 컵도 없이 벌컥벌컥 들이켰다. 숙취로 인한 갈증이 조금 해소되는 듯하다.


욕실로 걸음을 옮기며 거실 바닥에 옷을 하나씩 벗어 던졌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술기운이 조금 사라진다. 하지만 쓰린 속은 뭔가를 집어넣지 않으면 달래기 힘들어 보였다. 집안에는 찾아봐도 먹을게 없다. 양주에 온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 제대로 장을 보지 않았다. 방바닥에 널부러진 옷을 다시 그대로 주섬주섬 챙겨 입고 집 밖을 나섰다.


근처에 입구가 따로 없는 노점도 아니고 가게도 아닌 구조의 음식점 앞에 놓여있는 간이 테이블에 앉았다.


"您来点什么?" (뭐 드시겠어요?)

"来一碗混沌面和两个茶叶蛋还有一个油条就好了"(훈뚠면 한 그룻이랑 찻잎으로 삶은 계란 2개 그리고 꽈배기 1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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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뚠면(馄饨面) , 찻잎계란(茶叶蛋), 요우티아오油条)

쓰린 속을 훈뚠 국물로 달래로 계란을 까먹고 있으니 옛날 중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대학가 앞 허름한 식당에서 10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배부르게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주말이지만 특별히 할 일이 없다. 그냥 집에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총경리가 지시한 회사 지출내역 자료를 정리하려면 시간이 적지 않게 들 것 같아 주말 동안 좀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회사로 향했다.


따로 챙겨놓은 사무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텅 빈 사무실은 적막이 흐르고 있다. 탕비실로 가서 커피를 한잔 타서 자리에 앉았다. 책상엔 재무담당 부사수인 샤오웬이 가져다 놓은 지출내역 서류파일이 한가득 쌓여있다.


"휴~ 회사 설립한지도 얼마 안 되는데... 무슨 지출내역이 이렇게 많은 거야"


난 푸념 섞인 한마디를 내뱉었다. 하루 이틀 안에 정리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본사처럼 ERP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면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지출 내역을 일일이 날짜별 항목별로 일목 요연하게 정리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엑셀에 수식까지 넣어 그래프도 만들어 한눈에 보이게 하려 했는데 그것까지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한국인은 업무 특성상 상사가 급히 지시한 업무는 2~3일 이상 끌면 능력 없는 직원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변명은 내가 능력이 없다는 걸 상사에게 확인시켜주는 것 일뿐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데드라인은 지켜야 하는 것이 능력 있는 회사원의 필수 덕목이다. 그게 만약 임원이나 경영진이 지시한 일이라면 두 말할 것도 없다.


"띵띵"


[部长~昨晚你都没回短信,没事吧?你在干什么呢?周末天气这么好不会在家里呆着的吧? 呵呵] (부장님~ 지난밤에 문자 답장도 없으시고, 괜찮으세요? 지금 뭐하세요? 이렇게 날씨도 좋은 주말 방콕하고 계신 건 아니죠? 하하)


서류 파일을 정리하는 중 장주임에게 또 문자 메시지가 왔다. 답장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술이 떡이 된 사람이 어떻게 답장을 할 수 있었겠는가? 뭐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답장을 한다.


[회사에 있는데… 일 처리할 게 좀 있어서, 답장 늦어서 미안해~]


답장을 보내고 다시 서류 속에 파묻혔다. 문제는 지출 품의서를 수기로 작성한 것을 많다는 것이다. 흘려 쓴 한자를 알아볼 수가 없다. 한자를 알아볼 수 없으니 한글로 번역된 부분이 맞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품의 문서를 워드로 작성하지 않고 양식만 출력해서 수기로 작성하다 보니 한글 번역 글도 수기로 되어있다. 한국인인 나에게 수기로 적힌 중국인의 글자는 상형문자에 가깝다.


"아씌~ 이 글자 뭐야 도대체, 글이야 지렁이야?! 아니 컴퓨터 놔두고 왜 손으로 적는 거야 굳이? 이해가 안 되는 구만, 그리고 이 수기로 적힌 한글은 누가 적은 거지?"

"띵띵"


[不会吧? 周末都在办公室干什么?有什么急事?我帮你忙吗?]

(설마요? 주말까지 사무실에서 뭐해요? 급한 일 있으신 거예요?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답장이 왔다.


[괜찮아, 내가 하면 돼! 주말 잘 보내고 월요일에 봐!]


난 서둘러 답장을 보내고 다시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무실의 적막함이 낯설다. 컴퓨터에 연결된 이어폰을 끼고 한국의 최신 가요 음악을 틀었다. 정리를 좀 하다 발견한 내용이지만 수기로 적힌 지출품의서의 대부분이 개발 담당인 리타오 과장이 결재를 올린 것이다. 난 순간 사건의 단서를 잡은 형사처럼 다른 파일들을 빠르게 훑어보기 시작했다.


“헉! 뭐야~~~!"

전주나이차.jpg 버블 밀크티(珍珠奶茶)

머리 위에서 쩐주나이차(珍珠奶茶:버블 밀크티)가 내려오는 게 아닌가? 난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책상 파티션 앞에는 장주임이 놀란 내 표정이 재밌는지 웃음을 터뜨리며 서 있는 것이 아닌가?


“哈哈哈 部长~不好意思~吓到了吧?这不是故意的" (부장님 죄송해요~ 놀라셨어요? 고의가 아녜요)


웃음을 애써 한 손으로 가리며 미안한 표정으로 바꾸려고 노력한다。 하얀 체크무늬 셔츠에 진한 청바지를 입은 그녀는 3월의 따사로운 봄날 대학교 캠퍼스에 활기를 불어넣는 새내기 같은 화사한 분위기 연출하며 서 있다.


"你怎么在这儿?"(네가 여기 어떻게?)

"我来救您帮忙的 哈哈哈" (제가 부장님 구제해 드리러 왔죠 하하하)


그녀는 내 옆으로 오더니 뭘 하는지 들여다본다. 당황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서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 부장의 위엄을 살려 한마디 해야 하나? 아님 쌓여있는 업무를 도와 달라고 사정을 해야 하나? 빠른 속도로 머리를 회전시킨다.


"那好吧~既然你来了帮点儿忙把 可是你知道周末公司加班不允许的" (그래 그럼~ 기왕 왔으니 좀 도와줘~ 근데 주말 잔업은 회사에서 허락하지 않는건 알고 있지?)

"我知道 部长 您不用担心, 我不会上报周末上班的 哈哈哈"

(알아요 부장님~ 걱정 마세요, 주말 잔업 보고는 안 올릴게요 하하하)


일단 실리를 취하기로 맘먹었다. 난 내가 만든 엑셀 정리 테이블을 보여주며 설명한다. 옆에 붙어 앉은 그녀는 진지한 눈빛으로 내 설명을 들으며 모니터와 나를 번갈아 가며 쳐다본다.


"部长! 您为什么不告诉我你结婚与否?" (부장님~ 왜 결혼했는지 안 했는지 안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

"哈哈哈 你还在好奇那个呀?" (하하하 너 아직 그게 궁금한 거야?)


나는 설명하다 갑자기 물어온 생뚱맞은 질문에 다시 한번 당황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또 멀뚱멀뚱하게 나를 쳐다본다. 이번엔 피해 갈 수 없을 듯 보인다.


"没有, 我还年轻谈起结婚太早了吧?"(안 했지~ 아직 젊은데, 결혼 생각하긴 아직 너무 이른 거 아냐?)

“如有个对象就早点结婚好嘛”(만약 애인이 있으면 빨리 하면 좋잖아요)

“你说的有道理,可在韩国结婚比较晚一些”(네 말이 맞긴 하지, 그런데 한국은 결혼이 늦은 편이야)

“原来如此“(그렇군요)

“那就可以了吧? 那就开始工作吧”(이제 됐지? 그럼 일 시작할까?)

"예 알려주셔서 간사한미다"

"하하하, 간사가 아니고 감사!!"

"예 감사합니다"


그녀와 또 한 바탕 웃음바다를 만들고 일을 시작했다. 그녀가 사다준 밀크티까지 마시고 나니 숙취는 이제 다 사라진 듯 일에 속도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녀는 서류파일 일부를 자신의 자리로 들고 가서 정리하기 시작한다.


다행히 그녀가 한국어를 자판을 칠 줄 알아서 일을 도와주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하나 알게 된 사실은 수기로 적힌 한글이 그녀가 적은 것이었다. 그녀는 리타오 과장이 적어달라고 하는 대로 적어준 것 뿐이라고 한다.


난 리타오 과장의 결재 품의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중문과 한글이 매칭에 어딘가 어색하다. 그녀에게 수기로 적힌 글자를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녀가 한글로 적은 내용과 좀 다른 점이 많다. 중문으로 적힌 내용이 너무 생략되거나 빠진 부분들이 있는 것이다.


그녀도 그걸 확인하고 다소 당황해하는 눈치다. 그녀 말로는 리 과장이 구두로 요청한 내용을 품의서 한글 사유란에 먼저 적어준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 한글이 먼저 적히고 중문이 나중에 적혔다는 말이 아닌가? 내용이 전혀 상이 하진 않지만 의미 해석상 최종결재자가 한글만 봤을 때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을 만한 내용인 것이다.


첨부된 영수증(发票:빠표)도 출처를 알기 힘든 수기로 적힌 간이 영수증이 적지 않다. 물론 중국 특성상 대부분 이런 빠표를 쓰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카드 사용이 일반적인 한국과는 달리 현금결제가 대부분이 이곳은 실체를 알 수 없는 거래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객사 접대, 건설공사 자문비용, 합작사 공장 설계 로열티 등, 공장은 아직 착공도 안 했고 아직 납품하는 고객사도 없는 상황에서 이런 비용들이 어떻게 집행되고 있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다.


구체적인 사용 내역은 리 과장만이 아는 것이다.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张主任~ 你不应该先写韩文翻译给他,知道了吗? 还有从今以后不许手写支付明晰"

(장주임~ 한글을 먼저 적어주는 일이 없어야 돼 알겠어요? 그리고 오늘 이후부터, 수기로 품의서를 올리는 건 허용 안돼요)

"啊 知道了部长~" (예~ 알겠습니다. 부장님)


전생에 수사반장이었나 보다. 의혹이 생기면 집중도가 올라간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품의서를 파고 들어간다.


"部长 您不下班吗?" (부장님~ 퇴근 안 하세요?)


그녀의 발랄하던 표정은 사라지고 어느새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물어본다. 그제야 시계가 이미 오후 4시를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헐!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对不起 对不起 你下班吧” (미안 미안! 퇴근해요)

"我一个人吗?"(저 혼자만요?)

“꼬르륵”


그 때 그녀의 배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 보니 점심도 먹지 않고 일을 했다. 여태껏 말없이 일해준 그녀에게 미안하고 또 고맙다.


"一起下班吧~我们都没吃中饭,真不好意思我请你吃饭吧" (같이 가~ 우리 점심도 못 먹었네, 정말 미안해, 밥 살게)

“哇! 部长好帮!" (야~호~ 부장님 짱!)


시무룩했던 그녀의 표정이 다시 해맑은 아이처럼 바뀌는 건 순간이었다. 상사의 행동과 말 한마디에 부하직원들의 사기를 좌우한다는 것을 이전에는 알 수 없었다.


둘만의 특근은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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