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생긴 일 ep11
“Do you believe in God too?”(당신도 신을 믿어요?)
“Yes, I do.”(응, 나도 믿지)
“If so, what do you pray for?”(그럼 당신은 무슨 기도를 해요?)
“I pray all I think and do is the same as the intention of the God”(나는 내가 생각하고 행하는 일이 신이 뜻과 같기를 기도해)
“… ”
카렉은 그 남자와 바투르 화산을 내려오면서 그와 나눈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대부분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행복과 안녕을 기도하는 것이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고 신앙을 가지는 이유이다.
카렉 또한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신께 무언가 간절한 소망을 바라고 있었다. 기복신앙이다. 복을 달라는 것이다. 신은 인간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행복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으며 모든 이가 행복을 기원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고개 숙여 기도한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행복이란 대부분 욕망을 대변하는 것이다.
“What do you mean?”(그게 무슨 말이지?)
"Well… if you can feel happiness without you pray for the things you want, that’s the real happiness that God gives you.”(음… 네가 지금 기도하는 것들 말고 전혀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고 행할 때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행복과 환희를 느낀다면 그게 아마 신이 너에게 준 진정한 행복의 길이 아닐까?)
카렉은 그 남자가 하는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 남자는 나름 카렉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한 것 같았지만 그건 사실 말로 설명하긴 아주 어려운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들어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욕망을 통해 얻는 행복은 누구나 비슷하게 느끼지만 욕망이 아닌 다른 것으로부터 얻은 행복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 남자가 말하고자 하는 행복은 경험해 보지 않은 자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남자는 그 행복은 신의 뜻에 부합하는 생각과 행동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라 말했다.
“If you feel happiness with the changes of someone and something visible only, it’ll bring the pain and unhappiness again and again.”(누군가의 변화를 통해 혹은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얻음으로 행복을 찾는다면 그건 또다시 고통과 불행을 가져올 수밖에 없어.)
관계와 물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들은 항상 이것들 사이에서 행복과 불행을 반복한다. 관계와 물질의 공통점은 시간이 갈수록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관계에 대한 기대는 항상 실망을 낳고 실망은 미움으로 변질된다. 물질은 항상 부족함과 결핍을 느끼게 하고 더 새롭고 편리하고 화려한 것을 찾게 만든다.
“Just feel the happiness and the thanks from the relationship and things you have.”
(네가 지금 가진 것과 관계 속에서 행복과 감사를 느껴봐)
그는 현재의 관계와 현재의 소유에서 행복을 찾지 못한다면 미래는 항상 불행으로 나가게 된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그 행복과 감사의 기운은 다른 이들에게 전염된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핍과 부족함에서 오는 불행만을 느끼며 살기에 그것들이 전염되어 세상은 불행으로 향해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How can I feel that in the situation I don’t have anything and any good relationship?”(가진 것도 없고 고통만 주는 관계 속에서 그걸 어떻게 느낄 수가 있지?)
“Well… before a moment, I have prayed let me know what that is. hahaha”(음… 나도 아까 일출을 보면서 그걸 좀 알려달라고 기도했어 하하하)
“하하하”
그 남자는 뭔가 다 아는 것처럼 얘기하다가도 결국 김새는 결말로 결국 한바탕 웃음으로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카렉은 여태껏 수없이 트레킹 가이드를 했지만 이런 관광객은 처음이었다고 했다.
매번 똑같은 길을 오르고 내리며 생김새와 피부색만 달랐을 뿐 마치 교과서에 나오는 비슷한 다이얼로그만 반복하는 관광객들은 누가 누구였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그런데 그 남자는 아마도 절대 잊히지 않을 거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到底是什么男生啊,我也想跟他聊一下。 真是”(도대체 어떤 남자길래, 나도 그 남자랑 대화 한 번 해보고 싶네 정말)
“Now we are here just starting to climb the Mt. Batur.” (자 여기서부터 바투르화산 등반 시작이야)
“Ok~ let go”(오케이 출발!)
우리는 달빛 아래 어둠이 짙게 드리운 바투르 화산의 산기슭의 마을 공터에 차를 주차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직 산길이 시작되지 않은 완만한 콘크리트 오르막을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Karek, Is this that guy who you talked about?”(카렉, 혹시 이 남자 아니야?)
“Wow, right, that’s him. Do you know him?” (와~ 맞아! 그 남자네, 이 남자 알아?)
“Welll… yes I think so, hahah” (음… 그런 거 같은데 하하)
나는 핸프폰 사진첩 뒤져서 그의 사진을 찾아서 카렉에게 보여줬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공항에서 아이에게 초콜릿을 주며 아이처럼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었다.
“We just take a rest for a while here? And from here, it’s gonna be a little bit harder.”(우리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갈까? 이제부터 조금 힘들 거야)
우리는 숲이 우거진 산길 초입에 도착해서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갑자기 또 한 명의 다른 남자가 가파른 산을 오르는 모습이 머릿속에 오버랩되고 있었다.
나와 마리는 그 모습을 지켜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는 무대(무의식) 뒤 그리고 마리는 객석(꿈속)에서…
---- [드라마 속(토마스) 속으로]----
“헉헉~ 헉헉~"
토마스는 오랜만에 산에 올랐다. 자유인이 되었다. 실업자는 자유인의 또 다른 말이다. 실업과 자유가 서로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오랜 시간 쉬지 않고 달려온 사람일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배낭을 챙겨 집 앞에 산에 올랐다. 모두가 일터로 나가기 위해 잠에서 깨어날 평일의 아침 산으로 향하는 기분이 야릇하다. 세상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 조용한 새벽의 거리를 걸어 산을 올라가는 초입에 접어들었다.
간단한 체조와 스트레칭으로 온몸의 근육을 깨운다. 정신은 잠에서 깨어났지만 몸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온몸이 찌뿌둥하다. 뭉쳐있던 근육들이 늘어지면서 찌릿한 통증이 온몸을 엄습한다. 얕은 신음이 연거푸 터져 나왔다.
토마스는 새벽 숲 속의 고요함을 좋아했다. 옅은 안개가 숲 속 바닥에 깔렸다. 늦가을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폐 속으로 스며들었다. 조금씩 속도를 올리며 올라가는 동안 뜨거워진 몸에서 내뿜는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차가운 숲 속의 공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벌컥벌컥"
산 중턱까지 올라왔다. 뜨거워진 몸을 진화하기 위해 수분을 공급한다. 산은 노력의 대가로 조금씩 세상 밑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나뭇가지들 사이로 멀리 보이는 강줄기와 그 강과 맞닿은 드넓은 바다가 밝아오는 하늘 아래에 펼쳐진다.
몸의 열기가 식으며 흘렸던 땀들이 체온까지 뺐어가려 할 때쯤 다시 몸을 움직였다. 이른 새벽 인기척 없는 산속에서 한참 동안을 홀로 걸었다. 마침내 처음으로 멀리 어렴풋이 사람의 형체가 보인다. 중년과 노년의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 남성이 바위에 걸터앉아 올라오는 토마스를 내려다보고 있다. 토마스는 그 남성의 옆을 스쳐 올라간다.
“哎哟, 一大早这年轻人真够勤快啊”(아이고~ 젊은 친구가 새벽부터 참 부지런하네)
"没什么呢 老爷” (별거 아닙니다. 어르신)
그는 스쳐 올라가는 토마스를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쳐다봤다. 토마스는 그의 칭찬 섞인 말에 힘을 얻었는지 한층 더 속도를 올려 산을 올라갔다. 가파른 경사길에 접어들었다. 거친 숨을 내쉬며 가파른 경사를 쉬지 않고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갔다.
"악~!"
결국 욕심이 화를 불렀다. 깔딱 고개를 채 다 오르기도 전에 다리에서 경련이 온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다리를 부여잡는다. 형용할 수 없는 통증이 다리에서 온몸으로 엄습한다. 더 큰 통증이 밀려올까 온 얼굴을 찌푸린 채 꼼짝없이 그 자리에 앉아 동상처럼 멈췄다.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좀 전의 그 중년과 노년 사이의 남성이 거북이처럼 천천히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지 등산 스틱에 힘을 실어 올라오는 모습이었다.
“小伙子, 你没事吗?”(젊은이, 괜찮아요?)
“啊~ 腿好像抽筋了”(아 네… 다리에 쥐가 난 거 같아요)
“哎呀,看一下”(아이고 어디 봅시다)
"아~~ 악"
그는 등산 스틱을 한쪽에 내려놓고 쥐가 난 토마스의 한쪽 다리의 들어 올리더니 무릎을 펴고 발목을 토마스의 몸 쪽으로 밀어 근육을 당겼다. 순간 다시 한번 큰 고통이 밀려오더니 이내 사라졌다.
“这小伙子,你太贪心了吧”(젊은 친구가 너무 욕심을 부렸구먼)
“谢谢您”(아.. 악. 고맙습니다)
“你知道吗,走到底比走快更重要”(빨리 가는 것보다 끝까지 가는 게 중요해요)
“明白了”(네...)
“边走边看看周边的风景和天空变得如何,这样走过去也不迟了”(주변에 변해가는 잎사귀도 보고 하늘도 좀 바라보고 왔던 길도 한 번 되돌아보고 그렇게 가도 늦지 않아요")
"..."
잠시 뒤 통증이 사라졌다, 그는 토마스의 옆에 앉아 가방 안을 주섬 거린다. 새빨간 사과를 꺼내 토마스에게 건네고는 자신도 한 입 베어 문다. 그를 따라 베어 문 사과는 좀 전의 통증을 잊게 하는 달콤한 과즙을 내어준다. 어린 시절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나면 간호사가 건네주던 달콤한 사탕 같은 느낌이다.
“休息好了吧,那我们再上路吧”(자~ 이제 쉬었으니 다시 길을 가야지)
그때부터 토마스는 정상까지 그의 속도에 맞춰 그와 함께 동행을 했다. 같이 산을 오르며 대화가 이어졌다. 그 중년의 아저씨는 얼마 전까지 몸속의 암덩이와 힘겨운 사투를 이겨내고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대기업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며 회사와 함께 성장하며 회사의 임원 자리까지 올랐다고 했다. 회사의 사세가 확장되며 자신도 회사와 함께 커져가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밤낮도 국내외도 가리지 않고 회사를 위해 일했다고 한다. 회사는 그에 합당한 승진과 더 많은 급여로 그의 노력에 보답했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한 희생은 물질로 채워지는 듯 보였지만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떴을 때 병상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자신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깨달았다고 했다.
“到了山顶就看的很清亮了 没想到天气这么好,是不是?”(산 위에 올라오니 정말 잘 보이네요, 날씨가 이렇게 좋은지 몰랐네요. 그렇죠?)
“是。这山下什么都看的不清晰,在灰尘里什么都看不见。如今都看不到这样的天气了 可惜。” (그러네요, 이젠 산 아래에선 청명한 날씨를 볼 수 없지, 먼지 속에 덮여서 제대로 보이지 않아, 이런 날씨를 볼 수가 없지, 안타까워 정말.)
토마스는 그와 산 정상에 서서 세상을 내려다봤다. 세상이 미세먼지 안에 갇혀 있는 것이 보였다. 무거 운 먼지가 땅 아래로 가라앉아 먼지 위에 드러난 청명한 하늘과 뚜렷한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먼지 위의 세상은 너무도 맑고 깨끗했다. 사람들은 모두 저 먼지 안에 갇혀서 한 치 앞만 보고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덧 태양은 자신의 몸을 다 드러내어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태양 빛을 받은 그의 얼굴엔 평안한 미소가 퍼지고 있다. 그 표정은 여태껏 그가 직장에서 보아온 그 어떤 동료나 상사들에게서도 볼 수 없는 그런 표정이었다.
“我往那边下去. 小伙子, 下山小心吧 别太着急,如你知道方向慢走也无所谓”(난 이제 이쪽으로 내려가야 네, 젊은이! 조심히 내려가요. 서두르지 말고 더디 가도 방향만 잃지 않으면 된다네)
“好的,先生,您慢走,谢谢”(예 조심히 내려가세요! 아저씨, 감사합니다.)
그는 한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눈에서 멀어져 갔다. 토마스는 한참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삼십 년이 넘는 삶 속에서 여태껏 속도를 늦추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