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생긴 일 ep10
“Do you know why only Bali island is Hindu in Indonesia?”(왜 발리만 힌두교이지?)
“Well… I don’t know about it”(음… 글쎄… 나도 그건 잘…)
그 남자가 카렉에게 물었다. 신기한 건 인도네시아의 다른 모든 섬은 대부분 이슬람교이지만 유일하게 발리섬에만 힌두교가 성행하고 발전했다. 발리의 힌두교는 인도인들이 와서 전파된 힌두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오래전부터 이곳의 원주민들은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힌두교가 성행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Bali Hindu and India Hindu?”(발리 힌두교와 인도의 힌두교가 가장 다른 건 뭐지?)
“We are all equal in God, but I don’t think India’s Hindu is not.”(우리는 모두가 신 앞에 평등해, 인도의 힌두교는 그렇지 않지)
발리의 힌두교에는 카스트 제도가 없다. 인도의 힌두교는 태어나면서 귀천이 따로 정해져 있지만 이곳은 신 앞에 계급이 없다. 가장 꼭대기에 브라만이라는 제사장이 신과 인간들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 가장 아래는 불가촉천민이 있다. 같은 인간임에도 누군가는 인간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Really? It’s so impressive. It's similar to Christianity.”(그래? 정말 신기하구나. 그러고 보니 서양의 기독교도 좀 비슷한 거 같네)
“What’s that mean?”(그게 무슨 말이야?)
그 남자는 카렉에겐 생소한 기독교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고 했다. 신과 연결된 하나의 교황 아래 그의 수도사들에 의해서 신과 연결되던 기독교는 개인도 신과 연결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나면서 가톨릭과 개신교 두 갈래로 나누어졌다고 말했다.
“Wow, Is that so? It’s very interesting. We have some place at home for praying for God every single day. That’s why we are connected with God every single day ”(그래? 우아 신기하네. 우리는 대부분 자기 집 안에 신께 기도를 드리는 곳을 마련해서 매일 기도를 해. 우리는 매일 신과 연결되지.)
“Oh I see”(그렇구나)
대부분의 발리인들은 자신의 가정에 신을 모시는 사당 혹은 탑 같은 공간이 존재했다. 매일 그들은 그곳에서 신께 올리는 갖가지 각자에게 의미 있는 재물들을 놓아두고 기도를 드렸다.
“If so, What do you pray for everyday?”(그럼 넌 매일 무엇을 위해 기도하니)
어둠 속에서 그 남자가 카렉에게 물었다. 카렉은 가족의 평안과 건강을 위해 매일 기도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기도가 그렇지만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은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그는 또다시 물었다.
“So, is your family good?”(그래, 그럼 너의 가족은 안녕하니?)
“Well… Actually my first kid is sick.”(음… 사실 요즘 큰 애가 좀 아파)
“Oh, really? I’m so sorry to hear that”(그렇구나 미안 내가 괜한 걸 물어봤나?)
“It’s Ok, that’s why I pray more than usual for my kid”(괜찮아, 그래서 요즘 아이를 위해 더 많이 기도를 하게 돼)
“….”
그 남자는 무슨 말을 하려는 듯했지만 이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정상으로 다가갈수록 산길은 점점 더 가파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남자의 숨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었다.
카렉은 그 남자가 점점 궁금해졌지만 그가 거칠게 내쉬는 숨소리에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의 템포에 맞춰서 속도를 조절해 가며 산을 올랐다. 어둠과 적막이 가득한 숲 속엔 그의 거친 숨소리만 가득했다.
“What about resting for a while here?”(잠시 쉬었다 갈까?)
“That’s Good idea” (그래 좋은 생각이야. 후우)
그때였다. 밑에서 두 개의 불빛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불빛 뒤의 얼굴이 드러날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였다.
“@!$!%$!%$” (이제 올라가는 거야?)
“#!$%#!!$!” (응 좀 늦었어)
“!%@#?” (누구?)
“ %$@#&#” (오늘 같이 트래킹 하는 손님)
“#$” (1명?!)
“@!$” (응)
앳된 모습의 여자 아이들이었다. 카렉의 이웃사촌이었다. 그녀의 옆집에 사는 쌍둥이 자매라며 그 남자에게 소개해 줬다. 카렉은 그들만의 언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두 자매는 각자 커다란 백팩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날 아침 산 정상에서 산을 오른 관광객들의 아침 식사를 위한 식자재를 가득 짊어지고 올라가는 것이었다. 카렉과 그 남자는 다시 산 정상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어둠 속에 2개의 랜턴 불빛은 4개로 변했다. 남자는 둘이 쌍둥이인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 둘이 쌍둥이라고 하자 손전등을 들어 둘의 얼굴을 확인했다.
“Do you guys know that we are all twins?” (너 아니 우린 모두 쌍둥이라는 걸?)
그가 갑자기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쌍둥이라는 생뚱맞은 말을 했다고 했다. 이해하기 힘든 황당한 말이었지만 그는 꽤나 진지한 태도로 말을 했기에 카렉과 쌍둥이 자매는 별다른 대꾸 없이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살다 보면 가끔씩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들이 있다. 아주 이상적이며 그럴듯한 상상 속 얘기지만 그런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혹은 들뜨게 만들곤 한다. 하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그런 것들을 금세 잊어버리고 다시 복잡한 세상 속에서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말들만 받아들이고 늘어놓으면 살아간다.
카렉은 그 남자의 말을 듣고 있으면 자신이 마치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느낌이 싫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카렉과 쌍둥이 자매는 한동안 그의 말을 들으며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Wow, I got the top finally” (와~ 드디어 정상이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 아직 세상은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 카렉은 그 남자에게 일출을 보기 가장 좋은 자리를 안내하고 아침을 준비하러 산 위에 만들어진 움막 같은 텐트 속으로 들어갔다.
조촐한 아침이 준비되고 움막 밖으로 나왔을 때는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안개가 몰려오고 있었다. 바투르 산(Mt Batur, 1,717m) 앞 호수를 가운데 두고 뒤에 우뚝 솟은 맞은편 산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순간 바람을 타고 몰아치는 안개가 산을 뒤덮으며 남자의 형체가 희미해졌다. 어느새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에 휩싸여 버렸다. 바로 코 앞도 보이지가 않았다.
산 정상에 있던 관광객들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서 모두 각자의 랜턴 불빛을 밝혔다. 안갯속에 랜턴 불빛이 산란하며 하늘로 뻗어가는 진귀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멀리 맞은편 산 뒤로 조금씩 붉은빛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안개에 덮인 하늘은 떠오른 태양 빛을 받아 붉게 번지기 시작했다. 안개 때문에 그 윤곽이 뚜렷하지 않았다. 붉은빛이 안갯 속 산란하며 하늘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태양이 산 위로 올라올수록 더욱 붉게 물들었다. 사람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탄성은 일반적인 바투르 산의 일출을 볼 때 나오는 그 탄성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감격과 감동의 탄성이 아닌 놀라움과 경악의 탄성이었다. 카렉은 수도 없이 이 산을 올랐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고 했다. 어느새 하늘이 피바다가 되었다. 그때였다.
“피리리리” (바흐의 칸타타 : Cantata BWV 147)
어디선가 피리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북쪽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그 바람이 안개를 다시 남쪽으로 몰아내고 있었다. 그때 카렉의 눈앞에 눈부신 태양 빛을 막아선 그 남자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작고 긴 막대기 같은 것이 입에 닿아 있는 실루엣이었다. 거기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잠시 뒤 핏빛으로 물들었던 하늘은 사라지고 하늘의 푸른빛과 태양의 노란빛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또 한 번 탄성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 탄성은 카렉이 이곳에 올라올 때마다 일출을 보는 관광객들이 하는 감격의 탄성이었다.
“Hey, have some this” (이것 좀 드세요)
“Wow, thanks”(와우! 고마워)
“It’s so weird today”(오늘 정말 신기하네요)
“what weird?”(뭐가 신기해?)
“Because it’s first time to see this scene”(나도 이런 광경은 처음이라서요)
“Is that so..”(그렇구나…)
“I’m sorry that you can’t see the clear and beautiful sunrise of Mt Batur.”(안타깝네요 바투르산의 화려하고 선명한 일출을 보지 못해서요)
“It’s ok, It’s more meaningful. Because nobody can see this kind of sunrise.”(괜찮아, 여태껏 아무도 보지 못한 이런 일출을 맞이한 게 더 의미 있는걸 뭐)
그의 반응은 남달랐다. 그래서 카렉은 그 남자가 이상했지만 더 이상한 건 그런 이상함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거북하거나 불편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Is not that mountain alive?” (저 앞에 산은 죽은화산인가?)
“No, it’s an inactive volcano” (예, 그것은 활화산이 아니에요)
“Then, What about the mountain behind of that mountain?” (저 산 뒤에 있는 산은?)
그가 손가락으로 멀리 앞에 우뚝 솟은 아방산(Mt Abang, 2,152m)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는 어떻게 알았는지 그 아방산 뒤에 있는 발리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인 아궁산(Mt Agung, 3,031m)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는 세 개의 산이 일렬로 서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It’s rarely can be seen in this world, isn’t it?”(이 세상에서 정말 보기 드물지 이런 건…)
3개의 화산이 일직선 상에 서 있는 곳을 찾아보긴 어렵다. 그리고 더욱이 활화산 가운데 죽은화산이 있는 건 더욱더 희귀하다. 카렉은 모두가 일출의 아름다운 광경에 탄성을 내지르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과는 달리 생뚱맞은 지질학적 질문을 던지는 그가 이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산을 내려가기 전에 그가 했던 마지막 말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고.
“Don’t you think that inactive mountain is like us? Three can be connected to be one if that mountain is alive. (가운데 죽은 산이 마치 우리 모습 같지 않아? 저게 타올라야 세 개가 연결되는데 말이야 후훗.)
“…”
카렉은 그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는 아쉬움을 품은 듯한 표정이 아직도 계속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나는 그때 한 남자가 떠올랐다. 그 남자가 그 남자일 거란 확신이 들었다.
“Karek, Could you bring me to Mt Batur too?” (카렉, 나도 바투르 산에 데려다줄 수 있겠니?)
나도 가보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나는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