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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를 지나며

발리에서 생긴 일 ep19

by 글짓는 목수

----- [ 드라마 속으로 (마리) ] -----


“피리피리리리” (광야를 지나며)


교회 예배당에 플루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예배당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마리의 플루트 연주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피아노 반주와 함께 울려 퍼지는 플루트의 음률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었다.


“짝짝짝”

“짝짝짝”


그녀의 플루트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의 박수가 울려 퍼졌다. 어떤 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기도 했다. 연주가 끝나자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강단에서 내려와 예배당의 한구석 빈자리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


“저희 교회에 이런 보배스럽고 어여쁜 플루트 연주자가 있는 줄 몰랐네요. 아마리 양이었습니다. 오늘 이 한 명의 어린양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로 결단하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아직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실 걸로 압니다. 저희 교회 최권사님의 조카딸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유학을 왔다고 하네요 다들 따뜻한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윽고 강단으로 올라온 목사가 그녀를 소개했다. 플루트를 부는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아 보였다. 예배당에 앉아있는 많은 사람들의 귀와 눈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사실 이런 무대에 서는 걸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 하지만 호주에 온 이후 이모의 계속되는 교회 출석 권유에 시달렸다. 호주에 온 뒤로 이모의 집에서 함께 생활을 하며 1년 동안 그녀의 권유 섞인 잔소리가 이어졌고 더 이상은 피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마리는 결국 주일마다 그녀를 따라 교회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예배에만 참석하는 선데이 크리스천으로 지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교회에 나가니 이젠 세례를 받아야 된다는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그게 또 1년이 이어졌다.


“이모, 알았어요. 세례 받을게요 받으면 되잖아요, 하지만 더 이상은 바라지 마세요”

“그래 잘 생각했어, 이제 나도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구나 흑흑흑”

“이모, 제발 그런 말 좀 마세요, 오래오래 사셔야죠”

“마리야, 죽고 사는 건 나의 뜻대로 되는 게 아니야, 주님이 결정하시는 거지”

“아놔, 또 그 소리예요? 이제 그만 좀…”

“이제 너에게도 하나님이 역사하실께다. 그리고 또 너를 통해서 다른 누군가에게 역사하시겠지”

“으으으 하아… 제발 그만 좀...”


마리는 귀를 막는 시늉을 하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리의 이모는 적지 않은 연세에다 오랜 기간 만성 신부전증으로 몸이 좋지 않았다. 그런 몸으로 매일 새벽기도에 나가며 마리가 신앙의 길로 들어서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런 모습을 매일 옆에서 지켜보는 마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교회에 나갈 때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교회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 하나쯤 들어주는 게 뭐 어렵겠는가?


“마리야, 엄마가 말했지? 큰 이모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그러니까 큰 이모 속 썩이지 말고 말 잘 들어, 네가 옆에서 좀 잘 돌봐드려야 돼, 알겠지?”

“아~ 알았다니까 정말, 귀에 못 박히겠다 그만 좀 해”


마리는 익히 엄마에게 들어서 이모의 힘들 과거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모에게만큼은 더 이상 마음 아픈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했다. 황소고집도 저리 가라던 마리가 그래도 이모 말만큼은 군말 없이 듣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모는 마리 엄마의 5형제자매 중 둘째였다. 첫째는 아들이었는데 둘째인 이모와 성별이 다른 이란성쌍둥이였다. 마리 엄마는 막내였는데 큰 오라버니를 본 적도 없었다. 그건 어린 시절 그 쌍둥이 남매가 동네에서 공놀이를 하다가 이모가 찬 공이 도로가로 굴러가서 그걸 가지러 도로에 뛰어든 첫째는 교통사고로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 그날 이후부터 이모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저 년이 큰 아들을 잡아먹었어, 저 몹쓸 년!”


이모는 죄인이 되었다. 가족들의 냉대와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녀는 결국 고등학교 때 집을 나갔다.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결국엔 부산의 한 부두가 근처의 외국인 바에서 바텐더로 일을 했고 거기서 만난 호주 백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 남자는 호주에서 철광석을 실어 나르는 벌크선의 일등항해사였다. 그는 정기적으로 한국으로 드나드는 철광석 운반선을 타고 올 때마다 그녀를 만나 사랑을 나누었고 아이까지 생겼다.


결국 그녀는 그를 따라 호주행을 결심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결혼식을 올리고 가정을 꾸렸다. 그즈음 이모는 가족들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그때서야 가족들은 서로의 생사를 확인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다. 딸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정상적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스스로 호흡을 하지 못했다. 얼마 못 가 아이가 죽어 버렸다. 그 이후로 아이는 다시 생기지 않았다. 남편은 뱃사람이었기에 집에 있는 날이 많지 않았다. 아이가 죽은 뒤로는 더 많은 시간을 세계 각지를 떠돌며 다녔다. 낯선 호주 땅에서 홀로 지독한 외로움을 견뎌야 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어느 날 남편이 탄 배가 해적들에게 피랍되어 남편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렇게 남편의 생사도 확인할 수 없는 시간이 계속되었고 결국 국가에서도 그를 사망으로 처리했다. 그때 이모부의 장례를 위해 마리의 엄마와 다른 형제들은 호주로 건너가 이모와 10년 만에 처음으로 상봉했다. 장례식장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그 눈물은 이모부의 죽음을 슬퍼하는 눈물이었다기보다는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난 기쁨과 그녀에 대한 연민 그리고 떨어져 살아온 시간이 만든 회한이 섞인 것이었다. 그녀는 선사와 국가로부터 적지 않은 보험금과 위로금을 받았고 그 돈은 호주에서 홀로 생활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의 큰돈이었다.


남편이 죽고 그녀에게 심각한 우울증이 찾아들었다. 그때부터 그녀가 유일하게 의지했던 것이 신앙의 길이었다. 그때부터 매일 교회를 나가며 기도하는 삶을 이어갔다. 그리고 마리가 어느 날 그녀에게 나타났고 이모는 마리가 과거 죽은 딸아이를 대신해서 온 존재로 여겼다. 그래서 마리를 친딸처럼 아끼고 사랑으로 대했다. 그런 이모의 사정을 하는 마리는 한 마리의 순한 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세례를 받고 나면 간증을 해야 해”

“그게 뭐예요?”

“사람들 앞에 나가서 얘기하는 거지”

“뭘요?”

“네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소감을 사람들과 나누는 거지”

“아~놔! 싫어요. 제가 왜 그걸 해야 돼요. 이모, 세례만 받으면 된다고 했잖아요?”


마리는 아무 생각 없이 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세례를 받고 나니 사람들 앞에서 간증을 해야 한다고 했다. 마리는 하고 싶지도 않고 할 말도 없었다. 그건 도저히 못하겠다고 했다. 이모는 세례를 받은 감격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모두에게 큰 귀감이 될 거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그것이 교회의 룰이라고 마리에게 얘기했다.


하지만 마리는 아무런 감격도 감동도 없었다. 그저 병들고 홀로 된 이모가 불쌍해서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한 것이었지 그것이 다른 성도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영광이나 성령이 임한 기쁨 때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리는 그런 것에는 일도 관심이 없었다.


“그럼 플루트 연주라도 하면 어떻겠니?”


마리는 도저히 사람들 앞에 서서 간증은 도저히 못하겠다고 하니 이모가 그럼 플루트 연주로 대신하면 어떻겠냐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렇게 교회 예배당에서 플루트를 연주했다. 그리고 연주곡은 아무래도 찬양곡 중에서 선택을 해야만 했다. 사실 마리는 1년간 교회에 다니면서 기억나는 것이라곤 찬양 밖에 없었다. 음악을 사랑하고 즐기는 그녀에겐 성경 속에 구절들이나 목사의 설교보다는 찬양에서 들려오는 떨림과 울림만 기억에 남았다. 마리는 글과 말보다는 음률(소리)에 반응했다. 음률 위에서만 느끼고 감화하는 아이였다.


♩ ♬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 있네 ♪ ♫


그중 [광야를 지나며]라는 곡이 기억에 남았다. 홀로 학교 연습실에서 가끔씩 그 곡을 연주했었다. 그때마다 그 노래 악보와 가사를 보면서 자신의 지나온 시간들이 떠올렸다.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적잖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때마다 홀로 눈물을 흘렸다. 한국을 떠나오면서 다시 울지 않겠다고 했는데… 울지 않고 버티는 시간이 더 힘들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힘들 때마다 이 노래를 연주하며 홀로 눈물을 훔치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가슴속에 답답함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연주가 끝나고 예배당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보내는 모습을 보니 자신만 느끼는 것은 아닌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 사람들이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리야, 힘들고 지쳐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면 뭐든 견뎌낼 수 있단다.”


마리는 처음 호주에 와서 힘들어할 때, 이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누구나 이런 광야의 시간을 겪는다. 이모도 그랬고 마리도 그런 시간을 겪고 있었다. 이모는 40년이라는 시간을 광야를 떠돌아다닌 모세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흔들린 자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믿음을 지킨 두 사람과 그들의 자녀만이 새로운 세상을 맞이했다고 했다. 이모는 그 두 사람이 마치 자신과 마리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마리는 가나안 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자신이 광야를 지나고 있다는 건 확실한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광야를 지나며]라는 찬양을 들을 때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다.


그리고 그녀의 플루트 연주는 예배당에 앉은 사람들의 눈물을 훔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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