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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피리

발리에서 생긴 일 ep21

by 글짓는 목수

“Wow, It’s so delicious, isn’t it Peter?”(와 너무 맛있다. 그렇지 않아요? 자! 피터님 아~ 해보세요)

“Yes. It tastes good. Thanks but I can eat by myself. haha ”(네 맛있네요, 하하 제가 알아서 먹을게요 하하)


우리는 우부드 숙소 근처의 한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바비굴링(Babi Guling: 통돼지구이) 요리가 유명한 한 레스토랑이었다. 카렉이 추천한 음식점이었다. 말 그대로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한 발리 특유의 향과 맛이 어우러진 요리였다. 웬웬은 피터 옆에 붙어서 마치 신혼여행 온 커플처럼 행동했다. 음식까지 떠먹여 주려다 거절을 당하자. 어색해진 포크를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카렉을 바라보며 말했다.

“Karek, what about our schedule tomorrow?”(카렉, 내일은 우리 일정이 어떻게 돼?)

“Well… we should do some sightseeing in Ubud tomorrow?”(음… 내일은 우부두 관광을 좀 해야겠지?)

“Peter, let’s join with us.”(피터님도 내일 저희랑 같이 가실 거죠?)

“I’m bit worry what if I disturb your guys travel.”(제가 괜히 여러분들 여행에 끼어서 불편하지 끼치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Not at all, We need a man of trust for our safety, and we have extra seat in our car as well.”(전혀 그렇지 않아요, 이렇게 듬직한 남자 한 분 있어야 저희도 좋죠 그리고 또 차량에 자리도 남는데요 뭘)

“Is that right? I'm ok but is it alright, Peiyun?”(그런가요? 저야 괜찮지만 페이윈님은 괜찮으시겠어요?)

“I’m Ok”(뭐… 저도 괜찮아요)

“Ok Good, I’ll be with you guys”(좋아요, 그럼 저도 같이 가죠)


그는 돌연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내가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테이블의 대각선 맞은편에 앉아 나와 시선을 자주 맞추었다. 입은 웬웬과 대화를 하고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나에게 말을 하는 듯했다. 대화 없이 계속 마주치는 시선은 감정을 품게 마련이다.


그 감정은 또한 어디로 어떻게 변하게 될지 모르는 애매모호한 감정이다. 이런 감정이 나쁘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편하지도 않다. 하지만 내가 이곳 발리에 여행을 온 이유는 그런 감정 소모에서 벗어나 편안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신은 결코 나에게 감정이 스며들지 않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으려나 보다. 우린 식사 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웬웬이 던지는 이야기는 대부분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판단과 평가 그리고 단순한 느낌에 관한 것들이었다. 별생각 없이 듣고 대답할 수 있다. 그래서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그런데 시간은 잘 간다.


“雯雯, 时间不早了,我们回宾馆吧,我很累。”(웬웬, 늦었다. 이제 그만 숙소로 돌아가자 피곤하다)

“哎呀,还不到8点了呀,再呆会儿走吧”(야 아직 8시도 안 됐어 좀 만 더 있다가 가자)

“What you guys talking about? Haha, Peiyun, you go back to hotel?”(무슨 얘기를 나누시는지 하하하, 페이윈님 가시려고요?)


피터는 중국말을 못 알아듣지만 눈치는 빨라 보였다.


“Yes, I’m bit tired. 那我先回宾馆了 Karek, 拜托雯雯了”(네, 좀 피곤해서요, 그럼 나 먼저 들어갈게. 카렉, 웬웬을 좀 부탁해)

“你一个人回宾馆没事吗?”(그래, 혼자 갈 수 있겠어?)

“看地图离这不远,我走一走消化消化吧”(뭐 여기서 별로 안 멀던데, 천천히 소화 좀 시키면서 걸어가면 돼)


나는 먼저 레스토랑을 빠져나왔다. 우부드 시내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도로가를 따라 걸었다. 화려한 조명들과 음악 그리고 각종 코를 자극하는 음식 냄새들로 가득하다. 오픈된 레스토랑에선 국적을 알 수 없는 다양한 언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거리에는 차량의 소음들이 뒤섞여 어지럽다. 나는 그 사이 좁은 인도 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 비좁은 보도블록 위에는 헐벗은 가난이 즐비했다.


“1 dollar 1 dollar, Give me money, money”(1달러 1달러, 돈 돈)


맨발에 반바지만 입은 어린아이들이 헐벗은 몸으로 손에는 작은 바구니를 들고 나를 졸졸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 바구니에는 허접한 부채들이 있었고 아이들은 그걸 나에게 흔들어 보이며 돈을 요구했다. 며칠을 굶었는지… 갈비뼈의 개수를 다 샐 수 있을 정도로 앙상한 몸이었다.


나는 호주머니와 지갑을 뒤졌다. 얼마 되지 않는 인도네시아 지폐와 동전을 그들에게 주고 부채를 받았다. Made in China이다. 중국에서 왔는데 중국 제품을 인도네시아에서 샀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라더니 틀리지 않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은 돈을 받았는지 신이 난 모습으로 어디론가 뛰어갔다. 그가 사라지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여러 명의 헐벗은 아이들이 나에게 달려왔다. 더 이상 줄 돈이 없었다.


“give me money, give me money” (돈 주세요 돈 주세요)

“Sorry I don’t have money anymore.” (미안 이제 더 이상 돈이 없어)


돈이 없다고 했지만 아이들은 계속 나를 따라왔다. 나는 차량이 지나다니는 도로와 상가 사이의 좁은 길 위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버렸다. 낭패다. 도움의 손길을 한 번 주었다가 졸지에 내가 곤경에 처해 버렸다.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Hey kids, come on here! Here the money for you.” (얘들아 이리로 와 여기 돈 있어)


그때였다. 멀리서 한 남자가 손에 지폐를 들고 아이들을 향해 흔들어 보이고 있었다. 그 남자는 다름 아닌 공항에서 만났던 바로 그 남자였다. 또다시 마주쳤다. 아이들은 그가 손에 흔들고 있는 지폐를 보고는 일제히 그곳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이번엔 그 남자를 둘러싸고 돈을 구걸했다.


남자는 윙크로 나에게 신호를 보내더니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라고 손짓했다. 나는 그가 너무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와 대화를 나누거나 할 그럴 상황이 아닌 듯했다. 그 남자는 어느새 수많은 아이들에 둘러싸여 지폐를 한 장씩 나눠주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카메라로 찍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감사함과 아쉬움을 뒤로한 채 멀어졌다.


[Thank you for your help again. You look rich. You carry so many bills with you, You didn't take out all those bills on purpose because of me, did you? I don’t know how to repay this favor. I leave my number, please contact me if you can. I’ll make it up to you, Phone : 12345678 ]


(P.S. This photo is the reward for photo you sent to me last time on the beach.)


[또다시 이렇게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자 이신가 봐요. 그렇게 많은 지폐를 가지고 다니시고, 그렇데 설마 그 많은 지폐를 저를 구해주시려고 일부러 쓰신 건 아니시죠? 어떻게 이 도움에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제 번호를 남길 께요. 연락 주세요 그 돈은 제가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폰번호:12345678]


(P.S. 이 사진은 저번에 당신이 해변에서 저를 찍어주신 거에 대한 보답입니다.)


나는 핸드폰으로 그에게 감사의 이메일을 써서 보냈다. 구걸하는 아이들에 둘러싸여 있던 모습을 찍은 사진도 함께 첨부해서 전송했다. 전화번호를 남길까 말까 적잖이 고민했지만 이제 이건 분명 우연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이 계속되길 기다릴 수만은 없다. 우연은 인연을 이어주는 다리이지만 이 다리를 건너는 건 내가 직접 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먼저 다가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나에게 호기심과 신비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호기심과 신비감에 호감이라는 감정이 덧씌워지고 있었다. 그건 그동안 그와 마주칠 때마다 그가 보여줬던 행동이 반감이 아닌 호감을 끌어낼 수밖에 없는 행동들이었기 때문이다.


핸드폰에 저장된 그의 사진을 드려다 봤다. 처음 공항에서 아이에게 초콜릿을 건네는 사진부터 좀 전에 아이들에 둘러싸여 돈을 나눠주는 사진 속의 그의 모습까지 모두 아이들과 같이 천진난만 표정이었다. 그리고 발리의 해변 그리고 바투르 화산 위에서 피리를 부는 그의 모습은 신비로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를 만나면 어떨까? 그와 내가 어떤 인연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현실의 인연이 이어지지 않는다 해도 그는 분명 언젠가 나의 이야기 속의 그 어떤 인물로 되살아날 것임은 확실해 보였다. 물론 그가 나의 이야기 속에서 좀 더 생명력 있고 생동감 있는 인물로 되살아 나려면 내가 직접 만나서 경험해 봐야 한다. 그가 나의 삶과 글 속으로 들어오려 한다. 그런데 그가 과연 나를 만나 줄까? 연락이 올지 알 수 없다.

“으에에앵 이에에엥”


그때였다. 어두운 골목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걸음걸이를 멈추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시선을 그 어둠 속으로 옮겼다. 동공이 확장되며 어둠 속에 누군가가 보였다. 그곳에는 한 젊고 야윈 여인이 한쪽 젖가슴을 다 드러내놓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그런데 젖이 나오질 않는 모양이었다. 아기는 나오지 않는 젖을 문 채로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녀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며칠은 굶었는지 광대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얼굴과 초점이 없는 눈은 금방이라도 감길 것 같이 힘이 없어 보였다. 그녀가 앉아 있는 자리 앞에는 좀 전에 아이들이 들고 다니던 부채가 담긴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그 여인은 그 부채를 하나 집어 나를 향해 들어 올렸다. 그 가벼운 부채가 힘겹게 느껴졌다. 나의 지갑에는 이제 지폐와 동전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지갑에는 신용카드가 하나 달랑 있었다. 나는 근처 편의점으로 가서 신용카드로 아기 분유와 각종 식료품들을 사서 가방 가득히 채워 넣었다.


“咦 这是?”(어랏!? 이건)


가방에 식료품들을 넣으려고 가방을 열어 손을 집어넣었을 때였다. 그 안에 기다란 막대기가 손에 집혔다. 그건 바투르 화산을 오를 때 주웠던 대나무 피리였다. 그리고 그 남자가 떠올랐다. 이건 분명 그의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나는 이제 그와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된 것 같았다. 나는 그 피리의 사진을 찍어서 다시 그에게 이 메일을 보냈다.


[This bamboo flute is yours, right? haha] (이 대나무 피리 당신 거 맞죠? ㅋㅋㅋ)


맞다면 그는 나에게 분명 연락을 할 것이다. 그 화산에서 피리를 분 사람은 그 밖에 없다. 그리고 그 피리가 나에게 있다. 그가 아닐 수가 없지 않은가. 그 순간 나는 그를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고민되기 시작했다. 좀처럼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고민하지 나였지만 그는 그런 나를 바꿔놓고 있었다.


“This is for you. Here you are” (당신 거예요 자!)

“으에에엥 이에에엥”


나는 식료품으로 빵빵해진 그 가방을 그 여인에게 건넸다. 아기는 배가 고픈지 계속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여인은 가방 안을 보더니 말없이 옅은 미소를 띠며 나의 팔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시커먼 손에 묻어있던 더러움이 나의 하얀 옷에 묻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피하지 않았다. 나는 젖이 드러난 그녀의 몸을 나의 바람막이 겉 옷으로 덮어 주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옷과 가방도 모두 주고 맨몸으로 돌아왔다. 나의 손에는 그 남자의 피리만 들여 있었다. 나는 그 피리를 입으로 가져다 대었다.


“휘인이 이익”


피리를 불었다. 피리 소리가 어둠 속에 길게 울려 퍼졌다.


“으에에앵…. 뚝”


그러자 어둠 속 아기의 울음소리가 그쳤다.

아기의 표정에 방긋한 미소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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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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