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사과, 그리고 에로티시즘
이브, 백설공주, 세잔에 이어 뉴턴의 사과, 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애플까지 서구 시각문화에서 사과는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상징하는 복합적인 기호로 등장해 왔다. 이 글에서는 이브의 사과와 뉴턴의 사과, 그리고 파리스의 사과에 대해 다뤄보려고 한다. 이 세 개의 사과는 지식과 금지, 감각과 이성, 쾌락과 규범, 판단과 갈등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읽을 수 있다.
사실 성경에서 말하는 선악과는 영어로 “the frui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이라 표현되며 엄밀히 얘기하면 사과는 아니다. 이 열매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인간이 선과 악을 구분하는 자각을 갖게 하는 상징적 오브제다. 신의 명령이라는 질서를 어기는 접촉이며, 외부 세계를 감각을 통해 안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다. 손으로 쥐고, 입에 닿는 감각, 치아로 껍질을 뚫는 순간, 외부의 것이 내부로 들어오는 이 과정은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니라 ‘넘어서는 것’이다.
이 행위는 조르주 바타이유가 정의한 에로티시즘 개념과 긴밀히 연결된다. 바타이유는 에로티시즘을 “삶의 경계를 파괴하려는 의식적인 행위”라고 말한다. 즉, 에로티시즘은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금지를 전제로 그 경계를 넘으려는 의식적 충동이다. 이브의 사과를 베어 먹는 순간은 바로 그 금지와 감각이 충돌하는 자리이며, 감각이 질서를 침범하는 퍼포먼스로 볼 수 있다. 에로티시즘은 흔히 성적인 욕망과 동일시되지만, 본질적으로는 금지를 인식한 후에도 그것에 다가가려는 감각적 접근을 의미한다. 욕망이 금지된 대상을 향할 때, 그리고 감각적으로 넘어서려 할 때, 그 순간이 에로틱해지는 것이다. 이브의 사과를 베어 먹는 행동은 신의 법을 이해한 뒤에도 그것을 어기려는 시도이자, 쾌락을 통해 금기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행위이기 때문에 바로 에로티시즘의 핵심이다.
이와 대조되는 상징으로 뉴턴의 사과가 있다.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떠올렸다는 유명한 이야기는, 실제 과학적 발견이 일어난 사건의 사실적인 고증이라기보다 깨달음의 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신화화된 장면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이때의 사과는 금지된 열매가 아니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자연을 비로소 이해하게 해주는 단서이자 계시다. 인간이 신의 질서로 이해하던 세계를 자연의 원리로 설명하기 시작한, 결정적인 전환점을 함축하고 있다. 이전까지의 세계는 신의 의지로 구성된 구조였다. 뉴턴의 사고는 그 구조를 감각적으로 경험하면서도, 이성적으로 이해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뉴턴은 기존의 신학적 세계 해석이라는 상징 질서를 자각한 채, 그것을 관찰과 법칙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대체하려 했다. 뉴턴의 사과는 감각을 통해 질서를 다시 쓰는 지적 사건이며, 과학이라는 새로운 감각 세계를 여는 문이라는 점에서 에로티시즘과 연결성을 갖는다.
그런가 하면, 파리스의 황금사과는 선택과 욕망이 결합된 상징적 도구다. 그리스 신화에서 파리스는 세 여신 중 누구에게 사과를 줄지 결정해야 한다. 헤라는 권력, 아테나는 지혜와 전쟁의 승리를, 아프로디테는 인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헬레나를 주겠다고 한다. 파리스는 결국 아프로디테를 선택하고, 헬레나를 데려오면서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다. 이 선택은 결국 누구에게 끌리는가, 누구를 갖고 싶은가라는 감정과 맞닿아 있다. 그 점에서 파리스의 사과는 감각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 순간이며, 에로티시즘과 연결되는 지점이 된다. 사과는 세 여신 사이의 경쟁과 욕망의 시각적 오브제이며, 누구에게 줄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의 긴장감이 응축된 상징이다. 결국 이 사과는, 감각적 끌림이 어떻게 세계의 흐름을 바꾸는가를 보여준다.
위 두 작품은 피터 파울 루벤스의 작품이다. 첫 번째 그림에서는 파리스가 오른쪽에 앉아 있고, 사과를 들고 여신들을 바라보고 있다. 루벤스는 여신들의 뒷모습을 그렸고, 여신들은 파리스의 판단의 대상이라는 점이 강조되어 있다. 작품은 선택의 순간 이전의 시간을 재현한 것 같은 느낌을 주며, 파리스는 아직 누구에게 사과를 줄지 모르는 것 같은 표정이다. 반면 두 번째 그림에서는 여신들의 앞모습이 그려져 있고, 파리스는 왼쪽에서 사과를 손에 들고 여신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이미 파리스는 누구에게 사과를 줄지 결정을 한 것 같아 보이며, 사과를 전해주는 바로 그 순간을 재현하고 있다. 바로 그 결정적 순간에는, 결정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은 설명 가능한 인과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관념을 깨고, 감각적 끌림이 결정과 세계의 변화를 유도한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