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어떻게 우리 얼굴을 가리게 되었는가
르네 마그리트는 일상적인 사물을 낯설게 만들어 인식의 틀을 전환하는 초현실주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오브제 중 하나는 바로 사과인데, 이 사과는 식욕을 자극하는 대상이나 금기의 상징도 아니고, 사물을 재현하는 방식을 제안하는 정물도 아니다. 마그리트의 사과는 얼굴을 가리거나, 허공에 떠 있거나, 의미 없는 문장과 함께 병치한다. 그는 사과뿐 아니라 그림의 소재가 되는 사물들을 비일상적인 맥락에 낯설고 이질적으로 배치하는데, 이를 우리는 데페이즈망(dépaysement)이라고 부른다.
마그리트의 대표작 <사람의 아들>에서는 남성의 얼굴 자리에 사과가 그려져 있다. 우리는 얼굴 대신에 ‘얼굴을 보지 못하게 가리고 있는 사과’를 보게 된다. 이는 시각적 중심에서 무엇이 보이고 무엇이 가려지는지를 질문하게 만들고, 그 안에서 사과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기보다는, 그것이 놓인 맥락과 관계 속에서 의미를 생성한다. 데페이즈망은 바로 이런 맥락의 전복을 통해 현실에 대한 관성적이고 자동적인 인식을 배제하고, 관객의 감각적 사고를 요구한다. 그 결과 사과는 단순한 과일에서 벗어나,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 ‘현실과 이미지’ 사이의 경계를 질문하는 오브제로 작동한다.
1968년 비틀스는 Apple Records라는 음악 레이블을 만들었다. 이들은 창작의 자율성과 새로운 시각을 상징하는 사과를 로고로 선택하였다. 이들의 사과는 마그리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상적인 이미지에 문화적 의미를 더해 대중음악이라는 산업 안에서 비틀스가 추구했던 비제도적 창작, 실험, 해방이라는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모티프였다.
이 사과는 몇십 년 후 스티브 잡스가 창립한 Apple 와도 접점이 있다. 잡스는 기술 제품에 감성적이고 인간적인 이미지를 부여하고자 하며, 그 출발점으로 '사과'를 선택했다. 이때의 사과는 여러 문화적 연상을 동시에 호출한다. 아담과 이브의 사과와 지식의 상징, 뉴턴과 과학적 혁신, 마그리트와 시각적 전복, 그리고 비틀스와 창의성. 잡스는 이 모든 문화적 기호를 담은 로고를 통해 애플 제품이 단순한 기술적 도구가 아니라, 창조성과 상상력을 위한 플랫폼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초기 애플은 애플 레코즈와의 상표권 분쟁을 벌였지만, 결국 2007년 애플이 Apple이라는 상표 전체를 인수하였다.
스티브 잡스는 Apple 컴퓨터를 책상 위가 아닌 손바닥 안에 담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기능과 감각, 창의성을 하나의 작은 네모 안에 가두어 터치로 반응하는 기계를 만들었고, 그것은 ‘스마트폰’이라 불리며 곧 애플의 상징이 되었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의 삶은, 이전과는 전혀 달랐다. 2007년 애플 1세대 폰이 생겨난 이후 태어난 이들은 손끝으로 화면을 넘기며 사진과 영상을 보는 것이 당연했고, 글자를 누르면 다른 페이지로 넘어가는 하이퍼링크에도 자연스럽게 반응한다. 아기였을 때부터 엄마의 눈을 마주치듯, 스스로 눈을 마주치며 조작한 터치스크린은 그들에게 소통의 일부이자 현실이다. 하지만 누군가와 통화를 하기 위해선 거리로 나가야 했고, 약속이 어긋나면 그저 기다리거나 포기해야 했던 스마트폰 이전의 시절을 살아본 이들에게 그것은 우리가 미처 알고 있지 못했던 금기를 넘어서 새로 맞이한 세계였다. 손바닥만 한 기계 하나가 세상의 창이 되었고, 그 창은 점점 더 현실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자리 잡았다. 스마트폰은 단지 기술이 아니라, 삶의 방식과 시간을 소비하는 법, 감정을 나누는 구조 자체를 바꿔 놓았고, 그 변화는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과 함께 더욱 가속화됐다. 우리는 각자 가상공간에서 만나는 게 익숙해져 갔고, 그 안에서 또 하나 혹은 여러 개의 자아를 구축했다.
가끔은 문화적 상징들이 삶을 예언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예지몽처럼, 오래전에 만들어진 영화나 소설이 소름 끼칠 만큼 지금의 현실을 담고 있는 순간들이 있다. 나에게는 마그리트의 그림 <사람의 아들>이 그렇다. 사람의 얼굴이 사과로 가려진 그 그림은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과 이상하게 닮아있다. 사람들은 이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대신 그 사이에 스마트폰 속 세계를 통해 소통한다. 아이들이 엄마의 얼굴을 올려다보면, 엄마의 얼굴이 아니라 그 얼굴을 가리고 있는 스마트폰을 본다. 마그리트가 사과로 가렸던 얼굴은, 이제 현실 속에서는 스마트폰이라는 사과 로고가 가리고 있는 셈이다. 마그리트는 스마트폰이라는 신문명의 존재 가능성 자체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았고, 손바닥 안의 기계를 통해 전 세계가 연결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사람의 아들>에서 인간의 얼굴 앞에 커다란 사과를 띄워 놓았고, 그 사과는 무엇일까? 그 사과는 단순한 시각적 유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장애물의 모티프다. 낯선 맥락 속에서 익숙한 관계와 의미 체계는 깨지듯이 스마트폰은, 시작은 연결을 목표로 한 재개였지만 어느새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 놓아 때로는 장애물로 작동한다. 우리가 배어문 사과는 우리 삶에 전에 없던 가상의 세계를 여는 '금기를 깬 열쇠'로 작동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스티브 잡스의 사과는 뉴턴의 인식의 혁명보다는 금기를 깬 이브의 사과를 더 닮았고, 마그리트의 <사람의 아들>은 마치 그 사과를 현대 사회에서 스마트폰이 차지한 자리를 미리 형상화한 예언처럼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