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폭에 담긴 이야기

카페의 두 얼굴

by 수지리

카페는 두 가지 얼굴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을 연결하는 사교의 무대이자 낭만과 추억이 쌓이는 따뜻한 공간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도시 속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고독과 고립을 드러내는 차가운 무대다. 나는 카페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한편으로는 좋아하지 않는다. 이 설명할 수 없는 문장의 오류는 카페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의 관계들에서부터 비롯되는 것 같다. 언젠가 방송에 가수 이미주가 나와서 인터뷰하는 중에 자기는 약속이 있을 때 항상 나가기 전 마지막 순간까지 가기가 싫어 약속을 취소할까 고민한다고 했다. 하지만, 또 나가면 재밌으니까 나간다고 말했고, 나가면 재밌게 놀고 들어온다고 했다. 묘하게 이해가 가는 그녀의 마음은 나의 기분과 비슷한 것 같다. 언제부턴가 한국 엄마들에게 유치원부터 시작되는 반모임은 사회생활이 되었다. 브런치 카페에 나가 아메리카노와 브런치 메뉴를 시켜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막상 대화할 땐 내 마음과 모두 같아 동병상련의 동질감을 느끼며 신이 나 대화를 나누고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다른 공허함에 젖어든다. 그 자리에서 나눈 수많은 대화들이 비교와 부러움의 화살이 되어 되돌아온다. 나는 과연 잘하고 있는지, 지금 저 사람들이 가진 것들이 나는 왜 없는지 이내 괴로워지고 우울해지기도 한다.


프랑스 화가 에드가르 드가(1834-1917)의 〈압생트〉(1876)에는 술잔 앞에 앉아 무표정한 여인은 군중 속에서도 혼자 고립된 듯 보인다. 압생트는 당시 카페에서 자주 판매하던 주류의 일종이다. 드가에게 카페는 화려한 도시의 표면이 아니라, 그 속에서 외로움에 잠긴 개인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여인 뒤 벽면에 걸린 거울에 비친 반영인데도 마치 그림자처럼 짙게 드리워져있다. 이런 기법을 통해 드가는 이 여인의 고립되어 있는 심정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Edgar_Degas_-_In_a_Café_-_Google_Art_Project_2.jpg 압생트, 에드가르 드가, 1875년~1876년, 오르세미술관

프랑스 화가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1864-1901)도 카페를 즐겨 그렸는데, 이는 그의 삶과 예술이 모두 당시 몽마르트르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몽마르트르는 값싼 집세와 자유로운 분위기로 예술가, 무희, 작가, 보헤미안이 많이 사는 동네였고, 카페와 카바레는 그들의 일상과 교류의 중심지였다. 로트렉은 그곳에서 생활하며 관찰자이자 기록자로서 주변 인물과 풍경을 화폭에 옮겼다. 1889년 개업한 물랑루즈는 몽마르트르 문화의 상징적 무대였고, 로트렉은 이곳의 단골이자 포스터 작업을 맡은 화가였다. 그는 공연 홍보를 위한 인쇄 포스터를 통해 대중예술의 영역에 발을 들였고, 자신의 그림과 드로잉 속에서는 무희, 관객, 예술가가 함께 음료를 즐기며 대화를 나누는 공간을 담아냈다. 로트렉 작품에 등장하는 카페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사교와 고독, 유흥과 피로가 교차하는 도시적 무대였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의 〈르 물랑루즈〉(1892~95)에서도 그는 화려한 사교의 장을 그리고 있는데, 사실 이 장면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선이 왠지 즐겁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 장면에 완벽하게 어울리지 못하고 소외된 느낌을 주기도 하며, 어느 부분에서는 살짝 그 향략적 모습을 비판적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Henri_de_Toulouse-Lautrec_-_At_the_Moulin_Rouge_-_1928.610_-_Art_Institute_of_Chicago.jpg 르 물랑루즈에서, 로트렉, 1892-1895, 시카고 미술관


그런가 하면 또 다른 프랑스 화가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1876)에서는 카페의 따뜻한 얼굴을 보여준다. 야외 카페 정원에서 춤추고 대화하는 사람들 속에 빛과 웃음이 가득하다. 르누아르는 카페를 공동체적 삶과 낭만의 상징으로 재현했다.

Auguste_Renoir_-_Dance_at_Le_Moulin_de_la_Galette_-_Google_Art_Project.jpg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르느아르, 1876, 오르세미술관


이렇듯 카페는 언제나 양면성을 품은 공간이었다. 한쪽에서는 도시인의 교류와 유흥, 자유로운 대화가 펼쳐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고독과 소외, 대상화된 시선이 잠복해 있다. 이 모순된 감각을 한 폭에 담긴 작품은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폴리 베르제르의 바〉(1882)이다. 이 그림은 파리의 폴리 베르제르라는 바를 배경으로 한다. 그림의 중앙에는 무표정한 바텐더가 서 있고, 그녀 앞에는 술과 과일, 꽃이 놓여 있다. 뒤편은 거대한 거울이 있는데, 거울 속에는 화려한 샹들리에와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리고 동사에 이 그림을 바라보는 관객들도 그 거울 속 공간으로 자동으로 초대된다. 그런데 거울에 비친 여성의 뒷모습은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정면 모습과 어긋나 있어, 그녀가 손님과 대화하는 장면이 실제 공간을 왜곡하고 비틀고 있다. 이 미묘한 시각적 오류는 관객들로 하여금 거울 속 공간을 한번 더 바라보고 생각하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_Un_Bar_aux_Folies-Bergère__by_Édouard_Manet_(1882).jpg 폴리 베르제르의 바. 마네, 1882, 코톨드 갤러리

마네는 이 거울을 통해 카페의 양면성을 모두 포착한다. 정면의 여성은 조용하게 군중의 일부이자 그 군중의 중심축이 된다. 그 중심축은 바로 시선의 불안정성이다. 여성은 정면을 향해 있지만, 그녀의 눈길이 정확히 누구를 보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이 관람객인 ‘우리’ 일 수도 있고, 거울 속에 비친 군중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녀를 바라보는 동시에, 거울에 반사된 군중과 유흥의 장면을 함께 보게 된다. 이처럼 애매하게 오가는 시선 속에서 관람객은 양가적 의미를 가지를 두 층위의 경험을 동시에 한다. 화려한 군중의 소비와 고독한 개인의 고립이라는, 카페가 지닌 양가적 의미가 거울을 매개로 교차하는 것이다.


-3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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