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은 왜 빵을 그렸을까 3

식욕, 신성, 그리고 성욕

by 수지리

살바도르 달리는 마른 몸에 우스꽝스러운 콧수염으로 잘 알려져 있는 괴짜 아티스트이다. 시계가 녹아내리고, 사람 몸에 구멍이 뚫려있고, 거대한 입술 모양 소파를 만들고, 사람 몸에 서랍이 열리는 초현실적 작품을 스페인과 미국에서 수도 없이 발표했고, 살아생전에 부자가 되었던 몇 안 되는 대가들 중 하나다. 특히, 그는 츄파춥스 로고를 만든 장본인으로 유명한데, 친구가 로고를 만들어달라는 말에 그 자리에서 냅킨에 쓰윽 그린 것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달리 미술관은 스페인에 세 개, 미국에 한 개 외에도 프랑스, 일본, 체코, 이스라엘에도 있다.


살바도르 달리는 약하고 예민한 아이로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부유하고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일찍이부터 억눌린 감정과 과잉된 상상 사이에서 복잡한 내면을 키워갔다. 어쩌면 우리가 아는 괴짜 같은 그의 모습은 그 시기에 형성되었는지도 모른다. 청년 시절, 그는 당시 최고 석학들의 성지였던 마드리드 학생 기숙사에 머물며 스페인 국민 시인, 희곡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와, 스페인 출신의 영화감독이지만 프랑스에서 더 이름을 많이 알린 20세기 가장 혁신적인 시네아스트 중 한 명인 루이스 브뉴엘을 만난다. 이들은 함께 초현실주의의 초기 선언을 함께했고, 달리는 로르카와 정서적으로 매우 가까운 사이였지만, 성정체성의 차이가 결국 그들을 점차 멀어지게 했다. 달리는 로르카와 헤어진 후 브뉴엘과 함께 충격적인 단편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1929)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그 형식과 상징으로 로르카의 정체성과 출신지인 안달루시아를 빗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달리는 운명의 연인 갈라(Gala)를 만나 열정적이고도 안정적인 예술적 시기를 이어갔다. 그와 달리, 로르카는 달리와의 이별 후 그 슬픔과 충격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스페인 내전 중 억울하게 총살당했고, 달리는 로르카의 죽음 이후에도 둘 사이의 관계를 인정하지도,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는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자신의 넘치는 끼와 재능을 다양한 예술 분야로 넓혀갔다. 말년의 달리는 자신의 고향인 피게레스로 돌아와 버려져 있던 오래된 극장을 직접 설계하고 개조해, 자신의 미술관을 직접 만들었다. 그곳은 그저 일반적인 미술관이 아니다. 달리는 그 안에 자신의 작품과 삶의 무대, 그리고 자신의 무덤까지 함께 설계했다. 결국 그는 스스로를 위한 마지막 무대를 완성한 셈이다. 나는 달리의 고향에 위치한 미술관을 2015년부터 2025년까지 10년의 기간 동안 세 번 방문하였다.

살바도르 달리는 1926년, 스무 살이던 해에 작은 정물화 〈The Basket of Bread〉를 그린다. 정사각형의 캔버스 한가운데, 소박한 바구니 안에 담긴 네 개의 빵 조각이 놓여 있다. 바구니의 질감, 빵 껍질의 질감, 부드러운 그림자까지 마치 과거 17세기 네덜란드의 정물화를 닮아있다. 실제로 프라도 미술관에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스타일과 분위기는 네덜란드의 정물화와 닮았지만, 바니타스의 주제와는 다르다. 이 작품에 그린 빵은 눈앞의 현실을 어떻게 환상 없이 붙잡아 그대로 화폭에 담으려는 재현의 대상이다.


TheBasketofBread.jpg Basket of Bread, Salvador Dalí Museum, St. Petersburg, Florida, Salvador Dalí 1926


그러고 19년이 지난 뒤, 그는 다시 바구니에 담긴 빵을 그린다. 1945년 〈Basket of Bread〉이라는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날, 히틀러가 자살한 바로 다음날 그려졌다. 전쟁은 종식됐지만, 세계는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달리는 알고 있었다. 이 작품에는 두 개의 시간이 동시에 포개져 있다. 하나는 종전의 희미한 안도감,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막바지 전쟁이 남긴 공포와 침묵이다. 달리는 종전 직후 인간이 맞닥뜨린 양가적 감정을 빵 한 조각에 정밀하게 눌러 담았다. 19년 전 작품과 같은 제목의 이 작품은 <Basket of Bread-Rather Death Than Shame>라는 부제가 있다.

BasketofBread.jpg Basket of Bread, Dalí Theatre and Museum, Figueres, Salvador Dalí 1945

두 작품은 닮은 듯 다르다. 얼핏 보면 두 작품 모두 사실적인 기법으로 빵을 묘사하였다. 첫 번째 작품은 확실히 빵을 보이는 대로 열심히 그려내고자 했다. 두 번째 작품도 그렇다.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작품을 다르게 보게 된다'. 그래서 작품의 진짜 의미는 이거야 라고 단정하는 순간, 일반화의 오류 또는 텍스트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이것을 비평에서는 의도적 오류라고 한다. 그렇다면, 살바도르 달리가 네덜란드 화가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몰랐고, 또 전쟁 하루 전날 그림이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우리가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라졌을까? 의도적 오류 (Intentional Fallacy)는 작가의 의도대로 작품을 해석하는 오류다. 하지만 미술사를 공부한 사람이면 모두가 공감할 텐데, 작품은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이해하고 다시 봤을 때 오는 재미가 있다.


‘빵(pão)’은 포르투갈어로 bread를 뜻하며, 라틴어 panis에서 유래했다. 이는 프랑스어 pain, 스페인어 pan, 이탈리아어 pane와 어원이 같으며, 인도유럽어족의 뿌리를 따라가면 ‘먹을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런 언어적 뿌리와 가톨릭의 교리적 상징은 결합하여, 달리에게 빵은 일상적이면서 신성한 것이라는 양가적 함의를 가지고 있는 소재다. 그리고 그는 환유와 병치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이자 신성성을 지닌 빵이 인간의 식욕의 대상이 되는 그 지점에서 식욕을 성욕(libido)과 병치시킨다. 빵은 이제 육체적 욕망의 은유가 된다.

피게레스의 달리 미술관 외벽에 박힌 노란색 빵 모양 장식은 형태가 주는 위트에 그치지 않고, 그의 예술 철학이 응축된 모티프다. 달리는 빵을 ‘식욕과 성욕, 신성함’이 동시에 깃든 오브제로 보았기 때문에, 이는 일상성과 초현실, 육체와 종교가 충돌하거나 만나는 경계에 있는 공통의 기호다. 피게레스의 달리미술관은 자신의 무덤이자 무대이기 때문에 건물의 외벽은 곧 달리의 일부다. 빵은 그 표면의 감각을 상기시켜 주는 패턴이며, 아마 미술관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은 그 패턴을 보며 야릇하고 이상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 느낌이 누군가에 의해 활성화되는 순간 달리의 미술관은 무덤이 아니라 진정한 무대가 된다.


Detail_of_the_wall_decoration_of_Torre_Gorgot_01.jpg 피게레스, 달리 미술관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빵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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