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몸, 빵의 온기
새벽이면 빵집에서 피어오르는 고소한 냄새. 아직 해가 뜨기 전, 잠자던 거리를 따뜻하게 깨워주는 버터향. 빵 냄새는 말보다 빠르다. 그것은 언어 이전의 감각이고, 감정 이전의 기억이다. 이 작고 소박한 음식은 미술작품 속에서도 특별한 존재다. 단지 먹는 것을 넘어, 그것은 사랑, 돌봄, 생명, 결핍, 나눔, 그리고 기억의 은유가 되었다. 빵은 수천 년 동안 화가들의 소재가 되었다. 때로는 예수의 몸이 되었고, 때로는 배고픔 자체였으며, 어떤 때는 부유한 식탁 위에 조용히 올라와있기도 했다. 이번 화에서는 예수의 몸이 된 빵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가톨릭 미술 속 빵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성체이며, 약속이며, 상처받은 몸이다. 2023년 겨울 난 두 딸과 함께 밀라노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러 갔었다. 다빈치는 1495년부터 1498년까지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식당 벽에 이 그림을 그렸다. 일반적인 프레스코 기법이 아닌, 건조한 벽 위에 오일과 템페라를 혼합해 실험적인 방식으로 그린 것이 특징이다.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수도원 건물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림이 그려진 벽은 두터운 모래주머니와 보호벽 덕분에 무너지지 않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비록 불에 타지는 않았지만, 그림은 훼손이 많이 되어 수차례 복원 작업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한 번에 작품을 관람하러 들어가는 인원수도 철저하게 관리하고, 벽에 옷이라도 스치면 경보가 울렸다. 그렇게 후손들의 노력에 의해 보존된 작품은 실제로 보니 사진 이미지로 봤을 때보다 훨씬 따뜻했다. 지금은 다 빈치의 붓터치는 20% 정도밖에 되지 않을 거라고 전해지지만, 원본의 숭고함에 경건해졌다. 이 작품의 작품 제목은 '최후의 만찬'이지만, 눈을 씻고 봐도 식탁 위에 만찬의 흔적은 없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며 자신의 몸을 제자들에게 나눠주신 이 만찬은 성찬의 전례의 시초가 되었는데, 빵마저 드믄드믄 몇 개 놓여있지도 않다. 이는 마치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나는 생명의 빵이다'는 예수의 말씀대로 빵은 단순한 음식 그 이상으로, 예수 자신을 상징한다. 육체의 배고픔을 채우는 동시에 영적 허기를 채워주는 존재라는 메시지다. 소박한 빵 몇 개가 품고 있는 사랑과 나눔, 그 온기가 바로 만찬이다.
딸들과 나는 그날 오전에 나빌리 Navigli 운하에 들려 구경을 하고 맛있는 점심을 두둑이 먹은 후 <최후의 만찬>을 보러 갔다. 예약한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하는 바람에, 우리는 수도원 앞에서 대기를 해야 했다. 심심해진 나는 드로잉북을 꺼내 우리가 앉아있던 수도원 앞 광장의 보도블록을 그렸다. 수많은 발걸음에 반질반질해진 블록들이 세월에 흔적을 색으로 품고 있는 것이 순간 마치 정원처럼 화려해 보였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어떤 이탈리아 아저씨가 와서 말을 걸었다. 이탈리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나를 위해 영어로 열심히 설명하던 그 아저씨는, 자기를 그 지역의 화가로 소개했다. 항상 그렇다. 여행 가서 그림을 그리려고 드로잉북만 펴면, 누군가가 와서 말을 건다, 아니 방해를 한다.
중세시기 유럽에는 문맹이 많았다. 성경은 라틴어로만 기록되어 있었고,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교회는 시각 예술을 통해 성경 이야기를 전달했다. 벽화, 스테인드글라스, 제단화는 "읽는 그림책"의 역할을 하며, 그림으로 복음을 전했다. 미술작품을 보며 그 감동을 통해 말씀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을 경험할 수 있었다. 미술은 말씀을 '보게' 했고, 보는 것은 믿음으로 이어졌다. 나도 멋진 성당에 가서 미사를 보면 나의 믿음이 더 크게 느껴지는데, 그 옛날 외부 자극이 그렇게 없던 시절에 성당에서 그런 자극과 감동을 받았다면 훨씬 마음의 울림이 더 컸을 것 같다. 가톨릭 교회는 미술이 지닌 힘을 일찍이 알고 있었다. 말은 사라지지만, 이미지는 머리에 남고, 시각 언어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 감성의 영역을 건드린다.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는 스페인 황금시대의 대표 화가이자, 궁정 초상화가로 유명했다. 우리에겐 그의 작품 <시녀들 Las Meninas>이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세비야에서 활동하던 20대 무렵, 성화를 몇 작품 그렸는데, 그중 대표작이 바로 〈성 안토니우스와 성 바울 수도자 San Antonio Abad y San Pablo, primer ermitaño〉다. 벨라스케스를 비롯한 당대의 대가들이 성화를 그린 건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다. 예술가들은 성화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 신에 대한 경외, 그리고 예술의 목적을 탐색했다. 〈성 안토니우스와 성 바울 수도자〉에서는 중세 미술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복합 시공간 구성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사실 두 수도자가 만나는 순간을 담은 한 장면같이 보이지만, 그 배경 속에는 까마귀가 성 바울에게 빵을 가져다주는 기적의 순간이 겹쳐져 있다. 성 바울이 동굴에서 은둔하고 지내는 동안 매일 같은 시각 까마귀가 빵 반조각을 가져다주었는데, 그는 그것으로 배를 채우고 살았다. 그런데 그날은 두 수도자들의 만나있는 자리에 까마귀가 온전한 빵 한 조각을 가져다준 것이다. 빵은 단순한 생존 식량이 아니라, 신학적으로는 예수의 몸을 뜻하는 성체이자 하느님의 돌봄을 상징한다. 두 수도자가 고개를 들고 그 빵을 바라보는 모습은, 단순히 배고픔을 채워줄 양식을 향한 것이 아니라 영적 만남과 나눔의 순간을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신앙의 여정을 압축한 다섯 장면이 한 장면에 그려져 있는데, 두 수도자들이 예수의 몸을 시각화한 빵을 나눠 받는 장면은 순서 상으로 네 번째다. 첫 장면은 ①성 안토니우스가 성바울을 만나러 가기 위해 길을 묻고 있고, 이어 ②사티르의 유혹을 물리치고 깊은 광야로 들어선다. ③바위틈에 이르러 그는 성 바울의 동굴 문을 두드리고, ④마침내 마주한 바울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온 빵을 나눈다. 그러나 바로 그 뒤, 우리는 ⑤성 바울의 임종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안토니우스는 시신 곁에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다.
이 작품에 나온 다섯 가지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놓았을 때, 네 번째 순서에 두 수도자 위로, 한 덩이의 빵이 허공에서 등장하는 것은 “신적 개입”을 시각화하고 있다. 사람의 시간과 영적시간이 교차하는 구도는 십자가의 형상이다. 성찬례의 메타포이자, 나눔의 순간이 영적으로 확장되어 구원을 상징한다.
벨라스케스의 작품에 담긴 '까마귀가 물고 온 빵'은 하늘에서 내려주는 신의 몸이며, 그리스도의 현존을 시각언어로 재현하고 있다.
얼마 전에 가족들과 프랑스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딸은 말했다. "프랑스는 영성체도 더 맛있는 거 같아" 나는 그 말이 참 듣기 좋았다. 정말 더 맛있어서가 아니라, 영성체를 빵으로 생각하는 아이의 마음이 오히려 더 진정성 있고 감각적으로 들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말씀은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 생선으로 오천명이 배불리 먹고도 12 광주리나 남았다는 그 성경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제발 그 이야기가 사실이길 바랐다. 상상만으로도 너무 아름답고, 그런 기적이 있는 세상에 살고 싶었다. 벨라스케스도 그런 세상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