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일상
17세기에 네덜란드는 황금시대라 불릴 만큼 경제, 과학, 문화에서 두드러진 성장을 이룩했다. 이 시기의 미술은 귀족과 성직자 중심의 후원 체계에서 벗어나, 시민 계층의 직접적인 수요에 의해 움직였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정물화(still life) 장르를 유행시켰다. 개신교, 특히 칼뱅주의의 영향으로 성상 숭배를 금지하고, 대신 일상 속에서의 경건함과 절제를 중시했는데, 이로 인해 종교화의 수요는 줄어들고, 그 자리를 소박한 일상을 담은 회화가 대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무역과 식민지 확장을 통해 중산층은 부를 축적하였고, 회화는 교화나 귀족이 아닌 시장 안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되었다. 주문제작에서 자율제작으로 바뀌고, 정물화는 비교적 제작이 빠르고 실용적이며 수요도 높아 인기가 많았다. 또한 정물화는 금속, 유리, 음식 등의 질감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빛의 반사, 색감과 구도를 이용하여 화면을 완성도 있게 구성할 수 있어 깊이 있는 회화적 탐구를 가능하게 했다. 대표 화가로는 윌렘 클래스 헤다, 피터르 클래스, 얀 다비츠 드 헤임 등이 있으며, 그들의 작품은 단순한 사실주의를 넘어 철학적 사유까지 담고 있다. 정물화에 자주 사용된 빵, 레몬, 은잔, 시든 꽃 등의 소재는, 단순 정물이 아니라 삶의 덧없음이나 도덕적 교훈을 암시하는 바니타스(vanitas)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 시기 네덜란드는 북미와 남미에도 식민지를 세우며 무역에 총력을 다했다.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도 17세기 초 도시 확장을 위해 반원형 운하 구조를 채택하여, 무역, 방어, 운송, 배수를 고려한 실용적 계획이었다. 암스테르담에 가면 운하를 운항하는 배들이 많이 있는데, 이 도시 설계 체계는 유비적으로 북미의 뉴암스테르담(현재 뉴욕)과 브라질의 헤시피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뉴암스테르담은 허드슨강과 대서양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맨해튼 섬에 세워졌고, 헤시피는 여러 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삼각주 지역에 있으며, 운하와 방파제를 갖춘 항만 도시로 발전했다. 네덜란드는 이 지역들을 무역과 행정 거점으로 개발하고자 했으며, 헤시피에서는 특히 암스테르담을 모델로 한 운하 도시 설계가 실제로 추진되었다. 하지만 뉴암스테르담은 1664년 영국에 점령되어 뉴욕이 되었고, 헤시피는 포르투갈과 브라질 현지 주민들의 저항으로 1654년에 네덜란드가 철수하면서 실패로 끝났다.
당시 이러한 네덜란드의 식민지 개척과 무역의 성과는 당시 정물화와 풍속화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아래는 얀 스틴의 <더 메리 패밀리>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 보면, 물건 대부분이 식민지 무역망을 통해 유입된 고가 상품이다. 화가는 무역 수익으로 사치하는 가정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얀 스틴이 그린 집의 모습은 항상 물건이 많고 어수선해서 네덜란드에서는 집이 지저분하면 '얀 스틴의 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 작품엔 식탁 위엔 빵이 놓여있지만, 담뱃대, 은수저, 은쟁반, 유리병 등 수입품들이 가득하다.
라익스 미술관에 위의 작품과 함께 얀 스틴의 다른 작품 <빵장수 부부>의 그림도 전시되어 있는데, 이 작품의 경우에는 사치스럽거나 방탕한 모습보다는 소박하고 성실하고 유쾌한 분위기가 도드라진다. <빵장수 부부>에서 빵은 단순한 식량이 아닌 생계와 노동, 가족을 상징한다. 함께 일하는 부부의 모습과 가족의 일상의 단면을 통해 17세기 네덜란드 중산층 가족의 평범한 일상의 한 순간을 포착하였다.
네덜란드 회화에서 빵은 종교적 상징, 경제적 위치, 그리고 때때로는 도덕적 시각적 기호로 기능되었다. <더 메리 패밀리>에서는 흰 빵과 고기와 맥주가 어우러진 가족의 식탁을 통해 향락과 무절제를 풍자하고 있다. 이 장면에서 빵은 여전히 풍요로움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배운다”는 문구와 함께, 풍자와 동시에 도덕적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반면 같은 화가의 작품인 <빵장수 부부>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빵이 재현된다. 여기서 빵은 오히려 성실하고 정직한 노동의 산물이며, 자립적 시민 계층의 윤리적 가치와 경제적 자부심을 상징한다. 따라서 같은 빵이라 하더라도 그 질감, 색, 배치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른 계급과 윤리의 함의를 담는다.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에서 빵은 종교적 상징에서 계급적 지표로 전환된 대표적 시각 코드가 된 셈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몸은 선택된 민족에게 약속된 구원의 예식이지만,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모두를 배불리 먹이려고 나누셨던 그리스도의 사랑이기도 했다는 양가적 함의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윌럼 클라이즈 헤다의 <금잔이 있는 정물화>의 경우에는 <더 메리 패밀리>처럼 당시 완성한 무역 활동으로 수입한 레몬, 굴, 금, 은식기와 빵이 화려하게 놓여있고, 묘사되어 있지만, 이 작품은 묘하게 회색빛으로 절제되어 있다. 정교하게 묘사한 것에 비해 화려하게 꾸미기보다는 오히려 사실 그대로의 모습을 옮겨놓은 듯한 '사진적'느낌을 주는 이 작품은 당시 네덜란드 회화에서 두드러지는 다른 한 단면인 바니타스를 주제로 담아내고 있다. 아무리 고급스럽고 사치로운 것도 생에 있어서는 어차피 직면할 죽음을 앞에 둔 허무한 소재일 뿐이라는 시각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라익스 뮤지엄에서 느낀 것은, 어쩜 저렇게 잘 그렸을까였다. 사진을 찍어서 줌인해서 관찰할 수도 없던 시절, 저 화가들은 어쩜 저렇게 잘 그렸을까? 그리고 저 화가들은 저들의 작품을 그리며, 작품의 메시지와 동일한 생각을 마지막에 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더 메리 패밀리>를 그리고는 "방탕하지 않게 자식에게 모범이 되게 살자"라며 다짐을 하고, <빵장수 부부>를 그리고는 뭔가 열심히 살고, 무엇보다 그 작품을 잘 그려낸 것에 대한 뿌듯함과 자부심이 있었을 거 같고, <금잔이 있는 정물화>를 그리고는 그 작품을 수려하게 그려낸 것에 기쁘지만, 한편에서는 약간 이렇게 까지 그린들 무엇이 달라지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남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가톨릭 종교화에서 풍속화로 바뀌며, 기독교 교리가 더 인간의 생활과 밀접하게 가까워진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