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화 Oct 24. 2019

나는 이혼가정의 자녀이다

난 괜찮지 않다. 그래서 괜찮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거미줄 쳐진 창고 같은 내 마음의 방. 수많은 방 중에서 그동안 아무도 보여주지 않았던 방을 막상 똑똑히 마주하려고 하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내가 그 방을 열려고 하는 이유는 이제는 그 방을 무시하지 못할 것 같아서이다. 무시해도 괜찮을 줄 알았던 시간들을 보냈지만, 이상하게 결국은 다시 그 방 앞에서는 난 한 발자국도 더 나가지 못하는 무력하고 슬픈 아이가 되어버린다. 마주해야 그 앞에서 서럽게 울든, 화를 내며 문을 걷어차든 뭐든 할 것 같아서이다. 이제는 그만 그 비밀의 방을 활짝 열어보고 싶다.


나는 이혼가정의 자녀이다.

엄마와 아빠가 있지만 늘 없는 아이처럼 부모님의 자리가 그리웠고,

부모님 앞에서는 내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허수아비 아이가 되었다.


난 괜찮지 않다. 그래서 괜찮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난 상처 받았고 그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하지만 상처를 치유받고 싶다.

치유받는 방법을 몰라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답답한 마음만이라도 해소하고 싶어서.


어렸을 적 기억이 많이 없다. 마치 지우고 싶은 기억이었는지. 내가 6살이었을 때, 부모님은 이혼했다. 그 길로 나와 내 동생은 할머니 댁에서 보내졌고,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다행히도 따뜻한 할머니와 할아버지 품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지낼 수 있었다. 그나마 내가 사랑이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은 두 분이 주신 사랑 덕분이라고 할 만큼 우리의 버팀목이었다. 그래서 항상 감사하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다니던 중에 나와 내 동생은 시골 할머니 품을 떠나 도시에 살고 있던 아빠랑 같이 살게 되었다. 그런데 아빠의 곁엔 새엄마라고 하는 낯선 분과 내 동생보다 어린 아이가 함께였다. 나에겐 엄마도, 동생도 갑작스럽게 생긴 것이다. 너무나도 어색한 조합으로 우린 살게 되었다. 나는 잘 지내려고 싫은 티를 내지 않았다. 사랑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동생은 그렇지 않았다. 동생은 새엄마의 아이와 또래라 그런지 자주 싸우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새엄마에겐 우리의 존재가 누엣 가시였고 다투는 날들이 많았다. 당연히 아빠와 새엄마의 사이도 평온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새엄마도 어린 나이였다.  갑작스럽게 바뀐 환경에 새엄마도 버거웠던 것 같다. 결국 우린 함께 살지 못했고, 아빠는 그 이후로 두 집 살림을 하기 시작했다.


한 동네 가까운 거리에 집 두 개를 두고 아빠는 왔다 갔다 하면서 우리를 챙겨줬다. 아빠와는 아침을 함께 먹었고 가끔 저녁을 같이 먹었던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집은 늘 텅 비어 있었다. 그러다 겨울이 되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농사를 마치고 도시로 와서 우리와 함께 지내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겨울을 많이 기다렸고, 겨울이 따뜻했던 것 같다. 나머지 계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난 고등학생이 되자 집과 학교가 가까웠지만 공부를 핑계로 기숙사에 들어갔다. 이상하게 집에서 동생과 같이 있는 생활이 숨이 막혔다. 늘 나에게는 엄마의 역할이 요구되었다. 고등학생으로만 살고 싶은데. 그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동생은 홀로 그 집에서 있게 되는 날이 많아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기숙사에 간 선택을 후회한다. 그 당시부터 동생이 방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공부에 집중할 때에는 현실을 잊을 수 있었고, 좋은 성적을 낼 때마다 어른들이 좋아하는 모습이 좋았기 때문이다. 공부로라도 나를 인정받고 싶었다. 그러다 서울로 대학교를 가게 되었다. 서울로 대학교를 가게 되면서부터는 줄 곧 서울 생활을 했기 때문에 정말 집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주말에 가끔 집에 내려가면 동생을 마주하긴 했는데 어쩐지 동생이 낯선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동생이 일찍 결혼을 하게 되면서 뜸하게 가다가 더 이상 집을 가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홀로 살기를 하다가 2년 전 결혼을 해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그 사이 동생은 이혼을 해서 싱글로 살고 있고, 아빠는 두 번째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해서 다른 분과 함께 살고 있다. 그동안 우리 가족 사이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한 지붕에 살고 있지 않을 때 일어났던 일이라 그런지 크게 와 닿지 않는 현실로 느껴졌다. 가끔 얼굴을 보고, 기본적으로 주고받는 연락을 통해 우리가 가족이라는 것을 확인하며 살았다.


엄마 또한 오래전 재혼을 해서 살고 있다. 엄마와는 초등학교 때 몇 번 만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자유롭게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먹고사는 게 바빠서 그런지 1년에 한 번 만나기 어렵다.


이렇게 지금의 상황을 보면 난 엄마와 아빠 둘 다 잘 만나고 있고, 연락도 자주 하며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 가끔 나도 모르게 울컥할 때가 있다. 엄마와 아빠한테 묻고 싶은 것들이 많다. 왜 이혼을 해야 했는지, 이혼할 때 우리를 생각은 했는지, 우리가 어떤 생각으로 힘들어했을지 아는지 말이다.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 그게 계속 마음을 짓누른다. 자꾸만 튀어나오는데 막상 마주해서 물어볼 자신이 없다.


엄마와 아빠가 필요했던 순간들, 빈자리가 느껴지는 때는 사는 동안 생각보다 많았다. 그럴 때마다 속상하고, 억울하고, 원망스러웠다. 성인이 된 후 부모님을 연민하는 마음이 생기긴 했지만, 곪아진 상처가 깨끗하게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상처를 보지 않으면 된다고 다 나은 척 웃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가끔 찬바람이 불 때 상처가 쓰라릴 때가 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낫지 않은 상처를 인지하게 된다. 이제는 정말 더 이상 아프지 않게 상처를 치료하고 싶다.

 

그러다 문득 그 순간을 자꾸만 누르려고 하지 말고 당당히 꺼내놓자고 생각했다. 그러면 좀 더 내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내 인생을 더 아껴줄 수 있지 않을까. 부모님이 이혼하던 6살 때로 다시 돌아가 그동안에 나에게 있었던 일들을, 슬픔들을, 원망들을, 그리움들을 꺼내놓고 싶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던 나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다.


두려운 비밀의 방을 이제부터 열어보고자 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