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필요했던 순간들
아빠 아빠보단 엄마가 필요했던 첫 생리를 하던 날
살면서 엄마가 필요했던 적이 많았다. 많은 순간들이 있었지만, 유독 더 빈자리가 느껴질 때가 많았다.
특히나 살면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시작할 때였다. 그게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없는 자연스럽지만 갑작스럽게 오는 성장기의 변화였다.
첫 생리를 할 때, 첫 브래지어를 착용해야 할 때 같은.
처음으로 브래지어를 할 때는 그때 잠깐 같이 지냈던 고모가 이제는 해야 할 것 같다면서 사다 주었다. 착용법을 고모에게서 배워서 학교에 처음 하고 갔을 때 그 느낌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갑갑하고 불편해서 이걸 어떻게 평생 하고 다니나 걱정하면서 두꺼운 옷을 입었을 때는 몰래 후크을 풀어놓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첫 생리를 시작할 때는 당황을 많이 했었다. 정말 그때는 갑작스럽게 왔다. 가족모임으로 친가 가족들이 가득 모여있을 때였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화장실을 가보니 피가 살짝 묻어있었다. 이게 어렴풋이 알고 있던 생리인 건가 머리가 멍했다. 어찌할 줄 몰라서 화장실을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 그런 모습을 이상하게 본 고모가 방으로 나를 불렀다. 그 날 처음으로 생리대를 착용했다.
생리를 시작한 것을 모인 친척들에게 티 나는 게 싫어서 조용히 화장실을 갔고, 무덤덤하게 그 날을 넘겼다. 그렇게 싱겁게 첫 생리를 맞이했다. 그 후 작은엄마네 집에 놀러 간 날 작은엄마가 나를 화장실로 불렀다. 하얀 생리 패드를 보여주면서 착용하는 법을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평소에 작은엄마가 조금 어려웠는데 그 날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감사했다. 그때 생리를 대처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우여곡절도 많았다. 잠을 잘 때 생리가 자꾸 세서 이불이나 옷에 묻으니까 아빠랑 남동생 몰래 빨래를 하느라고 진땀을 빼야 했다. 생리대를 사야 하는데 아빠한테 돈을 달라고 하기가 뭔가 부끄러워서 말이 선뜻 안 떨어져서 거짓말로 용돈이 더 필요하다고 해서 사는 날도 많았다. 벌써 용돈을 다 썼냐고 꾸중을 듣었지만, 생리대 값이 너무 비싸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빠가 있었지만, 아빠에게 이런 것들을 말하기가 부끄럽고 어려웠다. 그래서 자꾸만 아빠 앞에서는 숨기려고 했던 것 같다. 아빠는 모르고 지나간 시간이었다. 내가 어떻게 생리 생활(?)을 했는지, 브래지어는 누가 사주었는지. 그렇게 나는 친적들의 도움으로 그 시간을 보냈다.
내가 커가는 시간 속에 엄마가 곁에 있었다면 이 모든 것들은 자연스러웠을 텐데 슬펐다.
엄마가 먼저 알았다면 내 첫 생리도 축하받을 수 있었겠지?
갑작스럽게 마주한 변화에 덜 당혹스러웠겠지?
오히려 엄마와 둘만의 비밀스러운 추억이 생겼다고 내심 기뻤겠지?
엄마와 함께 보내지 못한 나의 어렸을 적 기억들,
인생에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6살 때부터 성인이 되어 살아가는 지금까지도 처음을 마주하는 인생의 순간들이 많다.
때론 낯설고 무섭다. 나보다 앞서 인생을 살아본 엄마에게 의지하고 싶었다.
그때마다 엄마의 빈자리가 새삼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 부모님이 이혼하던 6살 때부터로 돌아가 그동안에 나에게 있었던 일들을, 슬픔들을, 원망들을, 그리움들을 꺼내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말로 하지 못했던 말들을 글로나마 풀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