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온도를 느낄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나는 엄마가 많았다. 어이가 없게 이게 무슨 말인가.
아빠는 두 번째 결혼을 하기 위해서 엄마와 이혼을 했다. 하지만 두 번째 결혼도 그렇게 평탄하지 않았다. 두 번째 결혼도 결국 이혼으로 끝이 났다. 그러고 나서 지금의 세 번째 결혼이 있기까지 중간중간 엄마가 될지도 모르는 아줌마들이 몇 명 지나갔다.
만난 적은 없지만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로만 들었던 아줌마도 있었고, 내 동생 또래의 여자아이 한 명이 있는 아줌마도 있었다. 여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자주 사줬던 친절했던 아줌마였다. 그리고 두 명의 새엄마가 있었다.
첫 번째 새엄마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잦은 마찰이 있었고, 결국은 따로 살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의 믿음(?)을 사지 못한 분이었다. 우리보다 늘 자기 자식이 먼저였고, 아빠가 우리에게 쏟는 관심을 자로 재듯 냉정하게 평가하는 분이었다. 그래서 난 첫 번째 새엄마에게서 기대했던 따스함을 느끼기 힘들었고, 나중에는 그분이 우리와 같이 아빠만 바라보는 한 명의 아이 같게 느껴졌다.
두 번째 새엄마는 내가 성인이 되고 한참 지나서 지금의 남편과 결혼 이야기를 할 때 만난 분이라 크게 감정이 없다. 자주 만날 수도 없을뿐더러 우리에게 개입할 여지도 없기 때문에 크게 마음의 동요가 없는 분이다. 그렇다고 두 번째 새엄마가 생긴다고 할 때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비비 꼬여버린 가족 족보(?)가 지긋지긋하기도 했고, 집에 또 낯선 사람이 들어온다는 것에 예민했기 때문이다. 그분이 와서 집안 분위기가 어떻게 바뀔지 걱정도 되기도 했다. 하지만 홀로 나이만 먹어가는 아빠를 보는 것은 뭔가 안쓰럽기도 했고, 아빠의 인생을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스펙터클한 아빠의 과거가 지나가는 동안 가장 괴로웠던 것은 주변에서 새로운 아줌마들이 나타날 때마다
"엄마라고 불러야지"라며 나에게 강요할 때이다.
"엄마라고 불러야지"
엄마라고 잘 불러본 적도 없어서 입 밖으로 꺼내기도 서툰데 갑자기 엄마가 될 사람이라고 소개해준 사람에게 엄마라고 부르라니. 정말 곤욕스러웠다. 어린 나이였는데도 본능적으로 알았다. '엄마'라는 존재의 온도를.
'엄마'라고 생각되는 따스함이 느껴지지 않는데, 그런 사랑을 그 사람에게서 받아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 말이 나오냐고. 엄마라고 부르라고 하는 사람들이 원망스러웠다. 정작 아빠는 나에게 한 번도 엄마라고 부르라고 강요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내심 바라는 것 같았다. 오히려 주변 친적들이 나에게 압박을 주었다.
엄마라고 불러야지 새엄마가 너한테 정을 더 줄 거라고.
엄마라고 불러야지 새엄마가 빨리 이 가족에 적응을 할 거라고.
엄마라고 부르면서 잘 따라야 네가 사랑받을 거라고.
"엄마라고 불러야지"라는 말에는 이 말들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을 나도 안다. 해맑게 '엄마엄마'하며 따르면 어느 누가 웃는 얼굴에 침을 뱉겠냐만은 그게 그렇게 쉽게 되지 않았다.
"엄마"라는 말이 그렇게 값없게 부르는 말이었나.
어린아이라고 해서 쉽게 나올 줄 알았나.
당시 어른들이 미웠다.
나라고 "엄마"라고 부르고 싶지 않을까.
살면서 "엄마"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많았는데.
나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너무 많았는데.
하지만 그렇게 쉽게 부르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나는 그게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
어른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놓았으면서, 살갑게 굴지 않는다고 오히려 나무라기만 하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음의 준비와 시간이 필요했다.
그 아줌마가 우리에게 엄마가 되어줄 사람인지 확신이 필요했다.
새엄마가 엄마가 되기까지 그 벽을 녹여줄 만큼 따뜻한 사람이길 바랬다. 내가 생각하는 엄마라는 온도를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그 모든 게 자연스럽게 되길 바랬다. 이런 시간을 기다려주지 못하는 어른들이 미웠다.
*** 부모님이 이혼하던 6살 때부터로 돌아가 그동안에 나에게 있었던 일들을, 슬픔들을, 원망들을, 그리움들을 꺼내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말로 하지 못했던 말들을 글로나마 풀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