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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화 Oct 31. 2019

바람난 남편이 우리 아빠였다

부모의 이혼사유를 제대로 알기까지

부모님의 이혼 사유를 정확히 알기까지 꽤 기간이 걸렸다.

어렸을 때는 할머니가 자주 엄마를 탓하고는 했다. 모질게 자식을 버리고 갔다고 했다. 할머니는 종종 엄마가 외가 쪽만 신경을 많이 쓰는 데다가, 외가 쪽 간섭이 심해서 부부 사이가 틀어졌다고 했다. 그게 결국 이 사단(?)이 나게 했다면서. 그래서 나는 엄마가 우리를 버리고 간 걸로 대략적인 부모님의 이혼사유를 추측하며 지냈다. 동시에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자라났다.


"무슨 상황이 있어도 자식을 버리고 가면 안 되지. 엄마라면"

할머니의 영향 때문인지 그런 마음이 당연하게 어린 나이인 나에게도 들었던 것 같다. 무슨 이유라도 엄마라면 자식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결과로 우리가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엄마를 미워하는 것도 그렇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특히나 할머니가 엄마를 안 좋게 이야기할 때는 듣기가 싫었다. 속상해서 그러시는 걸 알면서도 할머니의 넋두리를 끝까지 들어주지는 못했다. 나를 버리고 간 엄마지만, 할머니가 내 엄마를 형편없게 말하는 것은 내 존재 또한 형편없어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더 쓰렸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할머니는 엄마가 이혼할 때 나를 키우겠다며 돈을 받아갔는데(아마 위자료 같다) 나를 다시 돌려보내서 괘씸하다고 했다. 그 말에 정말 신기하게 싹 잊혔던 기억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엄마랑 단둘이 짧게 같이 살았던 시간이 있었다. 잊고 있었는데 기억이 났다. 엄마는 완전히 우리를 무시하고 인연을 끊은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엄마를 만났을 때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빠의 외도로 부부 사이에 금이 갔고, 엄마의 회유도 있었지만 아빠는 결국 이혼을 택했다는 것이다. 나도 결혼을 해서 살아보니 더 잘 알 것 같다. 부부 사이에 이혼이라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이 되기도 하지만 결단을 하기까지는 큰 결심과 계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 사이에서도 뭔가의 큰일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나는 우리 아빠의 바람인지는 꿈에도 생각을 못 했던 것 같다.


우리가 할머니랑 살 때 아빠 옆에 간간히 보이던 젊은 아줌마, 그리고 어느새 같이 보이던 작은 아이.

왜 나는 의심을 하지 못 했을까? 아니 믿지를 않았을까? 판단하기엔 어려서 그랬을까?

결론적으로 이혼 귀책사유가 분명한 사람은 아빠였다. 엄마는 황당하게 그 일을 마주하게 된 입장이었다.


 그런데 나는 엄마랑 사는 것이 아니라 아빠랑 살고 있다.
이 지옥을 만든 원인이 함께 살고 있는 아빠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바람난 배우자가 우리 아빠라니.
어른이라고 해서 대단하지도 않고, 삶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사실대로 말해주지 않았던 할머니가 미운 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연세가 드시고 약해진 할머니는 나에게 엄마가 참 착했다면서, 보고 싶다며 말을 자주 하곤 했다. 그리고 아빠가 복을 찼다면서 그때 잘못한 거라며 한탄하기도 하신다. 이제는 솔직하게 말해주는 할머니가 고맙다.


부모님의 이혼사유를 안다고 해서 이혼가정 자녀의 아픈 상처가 치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굳이 그 이유를 몰라도 된다며 숨기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

때로는 그 정확한 이유가 너무나 궁금할 때가 있다. 나는 그랬다.


제대로 알면 자식들이 부모를 미워하게 될까 봐 걱정하지만 실상 그렇지도 않았다.

부모가 잘못했다고 해서, 나를 버리고 갔다고 해서 마음대로 미워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미워하는 마음과 보고 싶은 마음이 혼잡하게 들어서 괴로웠다. 이런 감정은 나뿐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부모의 이혼 사유를 명확하게 알고 나면, 그때부터는 자녀들이 현실을 스스로 풀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작을 끊어주었으니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되니까, 더 이상 시작을 몰라 방황하지 않아도 되니 조금 답답함이 풀어졌다.


어느 누구의 잘못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실 그 자체와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동안 엄마, 아빠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편지로 쓰듯이 말하듯이 씁니다.


아빠.

나는 지난날 아빠의 선택 때문에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채로 컸어. 평소엔 괜찮다가도 어느 날은 너무 속상해. 그런데 그래도 우리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키워줘서 또 고마운 마음이 들어. 말도 안 되는 이 간격 때문에 때론 너무 혼란스러워서 아빠 앞에서는 난 마냥 어린아이가 되지 못했던 것 같아.


아빠를 맘껏 미워할 수 없어서 일까. '아빠도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었겠지' 그런 마음을 먹어봐도 나는 아빠가 완전히 용서가 잘 안돼. 나는 아빠가 우리한테 사과를 했으면 좋겠어.


부모와 자식 사이에 사과라니 웃기지?


나도 처음엔 그냥 덮어버리고 살자고 '내 부모 잘못 들추는 게 뭐 좋은 일인가' 했는데 아닌 것 같아.

마음이 전혀 나아지지 않아. 아빠를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를 때가 있어.


"아빠만 아니었다면, 아빠가 그런 선택만 하지 않았다면"
"아빠가 그 상황에서 우리를 더 사랑했더라면"



그런 원망의 마음이 자꾸만 올라와.

상처가 아빠의 사과로 회복될까?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런데 나는 언제라도 아빠가 우리에게 진심 어리게 사과해주면 정말 고마울 것 같아.

그러면 아주 약간 남아있는 아빠를 미워하는 마음을 버릴 수 있을 것 같아. 홀가분하게.

'아빠한테 사과를 받는다면 아빠를 다 용서할 수 있겠지?'라는 기대로 난 오늘도 아빠를 사랑해.


아빠.

언젠가 밤하늘이 깊은 날.

우리에게 "아빠 때문에 많이 외롭고 아팠지? 미안해" 그렇게 한마디만 해줘요. 그거면 될 것 같아.

아빠.

그런 날이 오길 기다릴게.




  ***   부모님이 이혼하던 6살 때부터로 돌아가 그동안에 나에게 있었던 일들을, 슬픔들을, 원망들을, 그리움들을 꺼내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말로 하지 못했던 말들을 글로나마 풀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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