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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동미 Feb 23. 2020

일터는 왜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없는 걸까

천주희의 '회사가 괜찮으면 누가 퇴사해'와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

  2년 6개월, 정확히 968일 동안 한 회사에 다녔다. 신입 공채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회사였다. 동경하던 회사였기에 말로는 시크한 척하더라도 회사와 나를 자기동일시하면서 살았다. 퇴사란 이런 동일시를 하루아침에 끊어내는 과정이었다. 말처럼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겪었던 일인 것 같은데 말이다. 학생의 신분은 시작할 때부터 그 끝이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고학년, 3학년, 입시생 등의 신분이 그런 이별의 예감과 같이다. 일터에서의 연결은 다르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퇴사는 노동자가 계약을 끊어내거나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단절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통과해보니 ‘사표를 던진다’ 혹은 ‘사표를 날린다’ 따위의 표현이 과장된 것임을 알았다. 심적으로 힘들었다. 이직하기 위해서 퇴사를 원한 쪽은 나였지만 힘들었다. 심적인 어려움은 신체로도 이어져서 회사에 퇴사 의사를 밝힌 뒤에 살이 쪽쪽 빠졌다.


  회사의 배려로 깔끔하게 진행되었지만, 퇴사는 아무래도 어려운 과정이었다. 퇴사는 왜 이럴까. 밀레니얼 세대 퇴사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던 나는 다른 이들의 퇴사 사례도 알고 싶었다. 그렇게 천주희 작가의 『회사가 괜찮으면 누가 퇴사해』를 읽었다. 먼저 퇴사를 경험한 구보라씨가 추천해준 책이기도 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1월 청년 실업률은 7.7%에 달한다. 약 33만명의 청년이 일하지 않고 있다. 내가 나고 자란 소도시 인구수만큼 많은 청년이 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청년층의 첫 직장 평균 근속기간은 1년 5.9개월이며 대졸 신입사원이 1년 안에 퇴사하는 비율은 27.7%이다. 천 작가는 사회의 한 경향이 된 ‘청년 퇴사’를 여러 층위로 분석한다. 청년들은 스펙을 갖춰 취업하지만 제대로 된 직무교육을 받지 못하고 눈치로 업무를 익혀야 했다. 젊은 세대의 높은 인권 의식과 달리 나이가 많은 선배와 일하면서 신입 약자로서 일방적으로 혼나야 했고, 믿고 따를 선배가 없어 비전을 찾지 못하기도 했다. 사직서에는 “일신상의 이유”라고 갈음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양한 고통이 숨어있었다.



  “만약 조직에서 누군가 회사를 떠나려고 한다면, 조직을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일, 관계, 환경에 대해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거나 변화의 가능성이 있는 곳인지 아닌지. 말로만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여전히 조직문화를 앞세워 변화하는 건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분명한 사실은 더 이상 변화 가능성이 차단된 곳에는 새로운 사람이 오지도 않을뿐더러 머무르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곳은 이미 고인 물이다. 고인 물에서도 사람도, 그 어떤 생명도 살아갈 수 없다.”(p.86)


  “사회초년생들은 대부분 선배 대신 임원급 상사와 일했고, 직급과 나이에 따른 권력 관계로 인해 일을 배우기보다 던져진 업무를 혼자 배우며 해결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 조직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연차와 역할이 분배되어야 하는데, 청년들이 일터에서 경험하는 모습은 지시하는 자와 그저 수행하는 자만 있는 셈이다. 이러한 경우에 임원이나 상사를 모델로 보고 쫓기에는 간극이 크고, 성장 가능성이 차단되어 있다고 느끼게 된다.”(p.88~89)


  대체로 한국 노동 현장에서는 ‘눈치’와 ‘일머리’가 강조된다. 최근 많은 사랑을 받은 장류진 작가의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도 이런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소설집에 실린 단편 「잘 살겠습니다」는 ‘눈치 없는 동기’인 빛나 언니에 대한 이야기다. 빛나 언니는 출근한 지 이주차에 팀 이동 지원자 모집 메일에 ‘전체 회신’하며 팀에서 이동하고 싶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노출하는 실수를 저질러버렸다. 빛나 언니는 이후 사내에서 ‘전체 회신녀’라고 불린다. 주인공인 ‘나’는 눈치 없는 빛나 언니가 탐탁지 않지만 자신도 같은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는 사실에 간담이 서늘해진다. 빛나 언니의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하지만 일터에서는 매서운 눈으로 누가 실수를 저질렀는지 모두 보고 듣고 있다. 조직원으로 일하는 것이 누가 실수하는지 관찰하고 소문을 내기 위해서는 아닐 텐데 말이다.



  소설집의 표제이기도 한 단편집 「일의 기쁨과 슬픔」은 현금 대신 포인트로 월급을 받게 된 카드회사 직원 ‘거북이알’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찬가지로 주인공 ‘나’가 등장하는데, 중고거래 앱을 개발한 스타트업 회사 말단 사원이다. 스타트업 대표는 매번 새 물건을 뜯지도 않은 채 싼 가격에 내놓는 ‘거북이알’ 회원이 미심쩍어서 젊은 ‘나’에게 돈을 쥐여주며 물건을 사는 척 접근해보라고 지시한다. '거북이알'은 포인트를 현금화하기 위해 물건을 되팔고 있었다. 임금은 현금이 아닌 다른 것으로 제공되어선 안 된다. 이는 법적으로 명시돼있다. 그러나 '거북이알'이 취한 방법은 노조나 노동청에 신고하는 게 아니라 조용히 개인적으로 결하는 방식이었다.


  빛나 언니에겐 없고 ‘거북이알’에게 있었던 생존법은 역시나 눈치다. 그리고 주인공 ‘나’가 10년 뒤에도 빛나 언니가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 걱정하는 이유‘눈치가 없’어서다. 눈치. 눈치가 문제다. 눈치는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하는데 부당함에 맞서는 유연성이도 하고 조직에 소문나지 않게 조용히 개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 능력이도 하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화자가 아니라 빛나 언니, ‘거북이알’, 결혼하자마자 남편이 죽은 지유씨 등 타인인 경우가 많은 건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일터에서 겪는 어려움을 안전한 거리에서 소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주인공 ‘나’들은 빛나 언니가 준 답례떡을 먹거나, 조성진 콘서트 티켓을 끊는 등 일터에서의 불합리를 보고 듣고도 소비주의로 해결하면서 죄의식을 떨쳐내고 있었다. 인물들은 일터의 불합리에 연대하기보다는 에너지를 아껴 워라밸을 지켜나간다. 소설을 읽고 나서 감동하거나 고무되기보다 씁쓸함이 남는 건 이 때문이다. 우선은 눈치로 살아남는 것이 현재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점이 씁쓸하다. 일터는 왜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없는 걸까.




덧1.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됐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동경하던 일을 하게 되어 얼떨떨합니다. 두렵고 떨리지만 신나네요.


덧2. 천주희 작가의 『회사가 괜찮으면 누가 퇴사해』는 한손에 들어오는 크기의 가벼운 책이었습니다.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인데 페이지가 넘어가는 게 아까울 정도로 재밌습니다.


덧3. 오늘 동네 친구 만나서 저녁을 함께 먹었는데, 친구도 이번 달 말에 퇴사한다고 합니다. 1년을 채우지 못해 퇴직금도 받지 못하는데 아쉽지 않냐고 묻자 “1년 채우다간 더 큰 병이 날까 봐 아쉽지 않다”라고 말했습니다. 친구는 위장약 여러 개를 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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