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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동미 Mar 22. 2020

칼 세이건 '코스모스' 리뷰...3장을 중심으로

케플러의 제3의 법칙

<코스모스>에서 칼 세이건은 행성의 우아한 움직임을 곧잘 음악에 비유해서 설명한다. 2장은 ‘우주 생명의 푸가’, 3장은 ‘지상과 천상의 하모니’라고 이름 붙였다. 2장에서 세이건은 생명의 진화를 푸가를 빗댄다. 푸가는 “하나의 성부(聲部)가 주제를 나타내면 다른 성부가 그것을 모방하면서 대위법에 따라 좇아가는 악곡 형식”을 뜻한다. 조상들에게 생명의 형태를 물려받지만 어느 순간 진화라는 변곡점을 맞기도 하는 점을 은유하기 위해서다. 세이건은 이에 대해 "우주 생물이 들려줄 음악은 외로운 풀피릿소리가 아니라 푸가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우주 음악에서 화음과 불협화음이 교차하는 다성부 대위법 양식의 둔주곡을 기대한다. 10억 개의 성부로 이루어진 은하 생명의 푸가를 듣는다면, 지구의 생물학자들은 그 화려함과 장엄함에 정신을 잃고 말 것이다."(67)라고 설명한다. 반면 3장에서 말하는 하모니는 '케플러의 제3법칙'을 의미한다. 3장에서부터 본격적인 천체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정말 재밌다. 그리고 어떤 면에선 뭉클하기까지 하다.


천체와 관련해 세 가지 법칙을 세운 케플러는 인류 마지막 점성술학자이자 최초의 천문학자이다. 그가 별을 관찰하고 세운 법칙은 다음과 같다.


제1법칙. 행성은 타원 궤도를 따라 움직이고 태양은 그 타원의 초점에 있다.

제2법칙. 행성과 태양을 결하는 동경은 같은 시간 동안에 같은 넓이를 휩쓴다.

제3법칙. 행성의 주기(행성이 궤도를 한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를 제곱한 것은 행성과 태양 사이의 평균 거리를 세제곱한 것에 비례한다. 즉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일수록 더 천천히 움직이되, 그 관계가 수학 공식 P2=a3을 정확하게 따른다.


P는 행성의 공전 주기를 1년 단위로 표시한 것이고, a는 태양에서 행성까지의 평균 거리를 '천문단위'로 잰 값이다. 천문단위란 지구와 태양 사이의 평균 거리를 1로 지정한 거리 측정 단위로, 약 1억4960만km다. 케플러는 성실하게 별을 관찰해서 이같은 경험 법칙을 찾아냈다. 태양에 가까울 수록 더 빨리 돈다는 사실을 알아낸 그는 자기력과 만유인력의 법칙까지 예견했다고 한다. 점성술학자인 그가 관찰한 것들만을 바탕으로 과학 법칙을 찾아낸 것은 당대의 의식에 맞서는 행위였으며 곧 신비주의를 배제하는 과학의 탄생 순간이기도 하다.


세이건은 케플러에 대해서 성실히 설명한 뒤에 '케플러의 제3법칙'을 설명하는 장에서 왜 '하모니'를 빗대었는지 덧붙인다. 세이건에 따르면 “(케플러는) 행성 운동에서 볼 수 있는 질서와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을 기술할 수 있는 수학적 공식의 존재, 게다가 음악에서의 화성음 등을 '조화'라는 개념 속에 포함시켰다. 사실 음의 조화에 대한 생각은 피타고라스 때부터 우리와 함께해 온 개념이었는데, 케플러는 음의 높낮이에 행성 간 거리를 대응시켜 '행성 구들의 조화' 역시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조화의 한몫을 담당케 했다.”(p.142)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

세이건과 케플러는 우주를 관찰하고 왜 음악을 떠올렸을까. 우주를 말할 때 인용되는 음악은 실제로 많은 것들을 설명한다. 홈을 따라 돌면서 진동을 반복하는 축음기는 실제로 행성의 움직임과 많이 닮아있는데, 행성 또한 큰 궤도(공전)를 그리지만 미세하게 진동(자전)하는 길을 가지고 있다. 축음기는 알다시피 뾰족한 바늘이 홈을 따라 궤도를 따라 돌면 공기 중으로 소리가 퍼지는 현상을 원리로 한다. 우리가 떠올리는 동판 LP 대신에 또띠아에다가 궤도를 새겨 넣고 바늘을 갖다대면 음악이 흘러나온다.(참고: Limited edition tortilla vinyl) 진동과 길만 있으면 그곳에는 반드시 음악이 있다. 커다란 바늘이 있다면 우리는 태양계가 그리는 궤도를 따라 흘러나오는 하모니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매질이 있어야 하겠지만)


"이 소리들의 화음으로 인간은 영원을 한 시간 안에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케플러가 '소리들의 화음'이라 한 설명한 이유는 행성마다 그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 대응되는 음이 있다고 생각해서다. 케플러는 행성들에 당시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대응시켰는데 각 행성이 이루는 조화 속에서 지구의 음정은 파와 미였다. 파(fa)와 미(mi). 케플러는 지구의 음정이 기근(Famine)과 비슷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세이건은 케플러의 주장에 대해 "지구는 끊임없이 파와 미를 웅얼거리니 라틴어로 '파민famine', 즉 굶주림'을 연상케 한다면서 이 서글픈 단어 하나로 지구를 제대로 묘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라고 말한다. 이어 세이건은 케플러가 30년전쟁 중에 군사들이 옮긴 전염병으로 부인과 아들을 잃었다고 설명하면서 그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했다. 케플러 본인은 교리에 대해 강경하게 주장을 펼쳤다는 이유로 루터파로 파문당하고 난민 신세가 됐으며, 케플러의 어머니는 마녀사냥으로 처형되었다.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시련이었을 것이다.


우주의 공전과 자전. 그 궤도가 그려내는 소리. 그리고 그것이 지시하는 서글픈 현실은 현대의 우리에게도 울림을 준다. 케플러가 겪었던 고통과 비슷한 고통을 현대의 누군가는 겪고 있다. 바이러스가 팬데믹으로 유행하며, 여전히 뜬소문과 차별은 약자를 향한다.




덧1. 세이건의 기근(Famine) 해설을 좀 더 쉽게 알기 위해서는 프리드리히 키틀러가 쓴 『축음기, 영화기, 타자기』 속 축음기 챕터의 일독을 권합니다. 피타고라스는 짧은 현일수록 진동수가 커지고 높은 음이 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랜드 피아노를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피아노의 뚜껑을 열어 보면 오른손으로 치는 높은 음의 현은 짧고 낮은 음의 현은 길죠. 줄의 길이가 반이 되면 음의 진동수가 2배로 커진다는 걸 발견한 피타고라스 학파는 현의 길이에 따른 주파수 값을 곱하고 나누는 방식으로 도레미파솔로 불리는 기본음계를 완성했다고 합니다. 음정이란 천상의 화음이거나 마법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결국 주파수, 물리학이 전부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덧2. 침소봉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작은 것들을 모아서 나의 세계를 만드는 글쓰기에 대해서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기근(famine) 구절을 읽을 때 손아람 작가가 경향신문에 연재 중인 '다리를 걷다 떠오른 생각'(https://bit.ly/2n8jx77)을 떠올렸습니다. 손 작가는 양화대교 편에서 자이언티의 노래 '양화대교'를 이야기하는데, 양화대교가 자이언티의 아버지 나이쯤 되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젊은이들의 공간인 홍대로 이어지는 다리인 양화대교가 사실은 한강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다리임을 지적하는 데 자이언티의 아버지를 소환하는 건 썩 괜찮은 시선입니다. 작고 작은 디테일들을 모아 세상을 바라보는 글을 만들고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글쓰는 사람의 소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덧3. 몇 달 전 친구들과 느슨하게 모여서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축음기, 영화, 타자기』를 읽었습니다. 이 악명높은 이론가도 기기묘묘한 작은 사례들을 모아 자신만의 이론을 쭉쭉 펼쳐나갑니다. 예를 들면, 축음기를 만든 에디슨의 청력이 나빴다던지, 릴케가 축음기에 집착해서 두개골에 난 홈에 축음기 바늘을 갖다대면 어떤 소리가 날지 몹시 궁금해했다던지.


덧4. 코스모스 리뷰 전편을 올려놓고 몇 개월만에야 다음 편을 올립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미 써놓고 부족함이 느껴져서 업로드하진 않았습니다. 다시 읽고, 못다쓴 문장을 덧대고, 세이건의 책을 재독한 뒤에야 글을 일단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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