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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초시현 Feb 03. 2020

에티오피아에 학교를 건축하다.

Future Green School in Ethiopia!

건축 기금을 마련하다.


또다시 떠돌이

2015년 7월에 시작하여 2018년 2월쯤 마친 자전거 전국일주는 총 600만 원이라는 미미한 성과로 끝났다. 여행을 다닌 일수가 828일이니 계산해보면 하루에 만 원이 채 안 되는 금액이 모인 것이었다. 고된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도착해서 아늑한 집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해결하지 못한 1400만 원이 있어서 그걸 해결하기 위해 집에 돌아온 지 며칠 안 돼서 옷 몇 벌을 캐리어에 챙겨 또다시 집을 떠났다. 정말 떠나기 싫었는데 그러지 않을 방법이 있나, 그저 이게 내 운명인가 보다 생각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두 번째 떠돌이 생활이 시작됐다.


청주 SK에서 안전대원으로 근무했을 때


노동의 고단함

일자리는 네이버 밴드 어플을 통해서 현장, 건설 관련 키워드로 검색해서 구했고 그렇게 해서 하루에 벌 수 있었던 금액은 7~11만 원 남짓이었다. 잔업까지 하면 20만 원가량이 찍힐 때도 있었다. 그래서 대여섯 달이면 1400만 원을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고 짐작했다. 그런데 현장 상황은 내 마음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오히려 하늘이 내 앞길을 차단해버린 듯한 듯 계속해서 브레이크가 잡혔다. 일을 얼마 하지도 않았는데 팀의 공사기간이 끝나서 팀이 해체된 것만 두 번이고, 속해있던 팀의 리더가 보안 관련 실수를 해서 팀이 현장에서 즉시 퇴출되기도 했고, 현장 안전대원으로 일하는데 같은 회사 안전 대원이 현장 작업자에게 업체 경고를 안 주고 봐줄 테니 금품을 달라고 하다가 적발돼서 회사 전체가 날아갈 위기에 처하기도 하는 등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악재들이 겹쳤다. 하는 수 없이 평택 고덕 삼성반도체 p-pjt, 아산 탕정 삼성디스플레이 7라인, 이천 하이닉스 m14 그리고 청주 하이닉스 m15 등.. 현장을 계속해서 옮겨 다녔다. 같은 현장에서 재입사를 할 수도 있었지만, 퇴사 후 재입사까지 걸리는 기간이 최소 2주, 길면 한 달이라서 그냥 현장을 옮기기로 하고 옮겨다닌 것이었다. 


현장을 옮겨 다닐 때마다 지출이 꽤나 많았다. 새로운 숙소까지 이동하는 교통비부터, 입사 전까지 하루 세 번 나갔던 식비, 생필품 구매비용 등.. 특히 식비가 제일 많이 나갔는데 시커먼 남정네들이 고작 1~2주간 밥을 지어먹으려고 밥솥이나 반찬, 식재료를 살 리가 있나, 일주일 넘게 배달음식만 주야장천 시켜먹었다. 그렇게 되다 보니 다들 살이 뒤룩뒤룩 쪘고, 지출도 많았다. 


닭장 같은 숙소에서 넘쳐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했는지 숙소 사람들은 삼시세끼 술을 들이부었다. 정신이 나가버린 건지 나중엔 "어이 김 회장~" "그래 이 회장~" 이러면서 미친 소리를 하기 시작했고, 아무도 안 물어본 인생 이야기, 사업 이야기로 남들에게 훈계질을 했다. 자기가 여자를 어떻게 꼬셔서 잠자리를 가졌다는 둥, 고향에서 주먹으로 이름 좀 날렸다는 둥 몰상식하고 더러운 무용담의 향연이었다. 결국 자기들끼리 기싸움을 하게 됐는데 결과는 치고받고 싸우다가 싸움에서 져서 집으로 돌아간 패잔병이 발생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 후 입사가 허가되면 출입증을 받고 일을 하러 갔고, 팀이 빠그라지면 현장을 옮기며 또 몇 주간 대기하면서 아재들의 뻘짓거리를 보고 그랬다. 나는 그저 돈도 제대로 못 벌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만 하고, 속으로 아저씨들 욕이나 하는 완벽한 떠돌이었다.



익명의 거액 후원자

그러다가 1300만 원이 모이고 700만 원만 더 벌면 되었을 때였다, 서울에 계신 한 사업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여행 초기부터 월 5만 원씩 무려 3년간이나 꾸준하게 후원해주신 분이었다. 통화로 지금 일을 해서 모자란 건축비를 모으고 있는 건 아는데, 얼마가 더 부족하냐고 여쭤보셨다. 그래서 현재 1300만 원이 준비되었고 앞으로 700만 원을 더 벌면 학교 건축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한 가지 부탁을 하시며 700만 원을 곧바로 계좌로 보내주셨다. 그 부탁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그로써 자신이 교만해지기 시작하면 결과적으로 하나님에게 영광을 못 돌리게 되고, 지옥 가기 딱 좋은 일을 한 게 된 것이기 때문에 철저히 익명처리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700만 원이라는 거액의 후원이 한 번에 후원계좌로 꽂혔다. 한순간에 2000만 원이 준비된 것이었다. 순간 당황스럽기도 했고 어안이 벙벙했다. 마치 하늘이 '이젠 해도 된다'라고 오케이 사인을 준 것만 같았다. 이제 후원기금을 NGO단체에 전달하고 학교가 지어지는 걸 보게 되는, 꿈의 실현이 눈앞에 다가온 것일까?



에티오피아에 학교를 건축하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네요. 여행은 잘 다니고 있어요?"

"여행은 마친 지 꽤 됐고요, 학교 건축비가 부족해서 일을 하다가 이번에 거액의 후원을 받으면서 2천만 원이 다 모여서요. 건축을 시작하려고 전화드렸습니다."

"그렇군요! 난 우리 시현 형제가 분명 해낼 줄 알았어요. 내가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고 이야기했죠? 역시 큰 그릇은 천천히 차오르는 법이에요. 수고가 많았어요. 앞으로도 정말 귀히 쓰임 받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ㅇㅇㅇ 단체 대표 계좌로 송금하겠습니다. 건축은 언제쯤 시작될까요?"

"일단 단체 현지 조사팀이 에티오피아에 가서 부지를 선정하면 시작이 될 거예요. 걱정 마세요."

"예 목사님 잘 부탁드립니다."


(시간이 지난 뒤 재통화.)


"건축 시작은 언제 되나요? 그리고 노파심에 여쭤보는데 이번에 진행하는 학교, 다섯 칸으로 구성된 학교 맞죠?"

"일단 돈은 현지로 보냈어요. 근데 지금 시현 형제가 뭔가 잘 이해를 못하는 게 있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조금 안타까워요."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시죠?"

"설명을 해드리면, 시현 형제 생각이랑 현지 사정이랑은 많이 달라요. 그 돈으로 사실상 아프리카에서 할 수 있는 게 그렇게 많지가 않아요. 학교 건물은커녕, 2천만 원이면 사실 그냥 바닥에 기초공사 조금 하고 벽돌 조금 쌓다가 마는 금액이에요. 아무리 현지라고 해도 자재비용도 꽤 많이 들어가고 운송비도 만만치 않거든요. 그런 사정을 우리 시현 형제가 알아야 해요. 다른 성도들 보면 그래도 7~8천, 아니면 1억 정도로 시작하거든요. 그래야 학교가 올라가요. 2천만 원 가지고는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기초만 다진다고 보면 되는 거예요. 이해가 좀 되셨나요? 그래서 나는 우리 시현 형제가 지금 에티오피아에서 몇 억짜리 공사로 학교를 3층으로 올리고 있는 게 있는데, 그쪽에다가 시현 형제의 모금액 2천만 원을 사용했으면 해요. 여러 개 어정쩡하게 하다가 실패하는 것보다 하나라도 잘 올리는 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 아니겠어요?"

"잠시만요,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정말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목사님께서 여행 출발 전에 분명히 5칸짜리 학교 2천만 원에 지을 수 있다고, 교무실, 실습실, 교실 3개로 이루어진 학교 건축과 운영을 담당해주신다면서요. 그렇게 약속하셨기에 제가 여행을 출발한 거고, 사람들한테 목사님 말씀하신 내용을 토대로 프로젝트 기획해서 사람들을 설득해서 모금을 한 겁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런데 이제 와서 이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아.. 그렇긴 한데, 그게 우리 시현 형제가 현실을 봐야 해요. 그래서 나는 우리 시현 형제가 이러한 현지 사정을 생각해보고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내가 설명해주잖아요. 그 돈으로는 어려움이 많다고요."

"목사님, 죄송한데 환불해주시죠, 진행 못 하겠습니다. 분명 목사님께서 2천만 원으로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셔서 제가 모금을 진행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게 정말 이해가 안 되고 배신감도 듭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다른 학교에 돈 보태는 형식으로는 절대로 진행할 수 없습니다. 건축비 보태주신 분들은 모두 저의 프로젝트 모금을 통해서 다섯 칸짜리 학교를 지어주려고 후원한 것이지, 다른 학교 건축비에 보태기만 하고 끝내려고 후원한 게 아니거든요. 그리고 중요한 건 약속을 어기고 마음대로 진행하려고 하셨으니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하겠습니다. 환불해주시죠."

"그런데 그게 이미 현지 송금까지 된 거라서 어떡하죠?"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요. 이제 와서 말씀 바꾸신 건 목사님 잘못인데. 다시 받으셔서 제 프로젝트 전용 계좌로 보내셔야죠. 계좌번호 보내드리겠습니다."

"예.. 알겠어요. 그리로 환불해드릴게요."


(2천만 원 전액 환불되었다.)


"시현 형제, 일단 돈은 다 보냈어요. 원화와 현지 돈을 바꾸는 과정에서 수수료가 30만 원 정도 들었는데 그건 단체에서 시현 형제를 생각해서 단체 쪽에서 지불하기로 했으니 확인해보세요."

"예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나한테 상의도 없이 맘대로 다른 학교에 돈 넣으려다가 수수료 물게 된 거면서 마치 선심 쓰듯 이야기하다니. 배신감에 주먹을 꽉 말아주었다. 후.... 정말 열불이 났다. 난 이제 어떡하나, 2천만 원으로 학교를 지을 수 있다는 말만 믿고 후원금을 조성한 건데, 그래서 '아프리카에 학교 짓는 18살의 자전거 전국일주'프로젝트를 2년 반 동안 진행했던 건데. 결국 학교를 지을 2천만 원은 생겼으나 그 돈으로 학교를 지어준다던 NGO가 사라지는 불상사가 발생해서 너무나도 분했고, 사람들에게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나 싶기도 했고, 앞이 막막했다. 이때 심적으로 즈엉말 고생을 많이 했다.


드림스드림(DreamsDream)과 함께

2천만 원으로 학교를 지어줄 NGO를 다시 찾아야 했다. 혹여나 정해진 예산으로 지을 수 없다면 어떡하나 노심초사하는 심정이었다. 휴대폰을 쥔 채로 깊은 고민을 하다가, 구글에 '2천만 원으로 학교 건축'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했다. 그러자 '드림스 드림 - 가난한 나라에 100개 학교 짓기'라는 사이트가 곧바로 눈에 바로 들어왔다. 들어가 보니 후원금 중 60% 이상을 운영비로 사용하는 여느 NGO들과는 다르게 후원금의 100%를 개발도상국 학교 건축에만 사용하고, 단체를 운영하면서 필요한 운영비는 회원들의 재능기부로 100% 대체해서 운영비가 0원. 운영비가 단 한 푼도 들어가지 않고 후원금은 100% 사람들을 돕는 비용에만 사용되도록 운영하고 있는 NGO였다. 거기에다가 1개의 학교를 건축할 때 딱 2천만 원으로 건축하고 있었기에 가지고 있는 예산과도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그래, 여기다' 싶은 생각에 NGO 드림스드림에 문을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학교 건축에 관심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대표님과 통화를 할 수 있을까요?"

"제가 드림스드림 대표 임채종입니다."

"그러시군요 대표님, 반갑습니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학교를 짓고 싶은 청년입니다."


그분과 통화를 하면서 2년 반 동안 여행을 다니며 2천만 원을 모금한 것과 드림스드림에 전화하게 된 과정을 이야기했다. 그 뒤로 몇 번의 통화가 더 오고 갔고, 결국 2018년 5월 17일, 드림스드림 이사회에서 에티오피아 학교 짓기(한화 2천만 원)가 결정됐고 2018년 5월 23일, 학교 짓기 대금 2천만 원을 송금했다. 드디어 학교 건축이 시작되었다.


일자 순으로 정리한 학교 건축 과정

[18년 6월 14일] 건축지가 에티오피아 '관과' 지역으로 선정됐고, 관과 시청에 건축허가서를 신청했다. 다만 관과 지역에 종족 분쟁이 생겨서 도로가 봉쇄되었고, 도로 봉쇄가 해소되면 허가서를 받아서 착공에 들어가기로 했다. 


[18년 7월 26일] 약 2개월 만에 종족 분쟁으로 봉쇄되어있던 길이 뚫려서 건축허가서를 받아왔다. 학교 이름은 현지 측에서 원하는 'Future Green School'로 명명되었고, 착공에 들어갔다.



[18년 7월 27일] 현지 건축담당 허달무 선생님으로부터 전달받은 사진자료. 에티오피아 관과 학교 부지와 터파기 작업이 진행되는 모습이다. 건축이 차질 없이 잘 진행되고 있었다. 



[18년 8월 23일] 8월 초에 건축기술자 모친상으로 인해 건축이 한동안 중단되었다. 20일엔 철근이 도착해서 벽면 기둥을 설치하기 위해 기술자들이 철근 성형작업을 했고, 이틀 정도 양생 과정을 거치고 22일부터 바닥공사(돌을 깨 넣는 작업)와 더불어 블록을 쌓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다행히 23일, 기초공사가 마무리되었고, 이때까지 콘크리트 블록(벽돌)이 도착하지 않아 조적 작업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벽돌이 도착하는 대로 현재의 인력 두배(20명 정도)가 투입되어 조적 작업을 시작하여 1주일 안에 벽면을 올릴 예정이라고 전달받았다.



[18년 8월 24일] 시멘트 벽면의 기둥 처리를 위한 철근 작업이 완료되었고, 시멘트 블록이 도착하여 월요일부터 20여 명의 기술자를 포함한 인부들이 벽면 조적 작업을 시작했다. 날씨에 특별한 영향이 없다면 일주일 내로 벽면 블록 쌓는 작업이 완료될 것이며, 바닥 마무리 작업도 함께 진행될 예정이었고 이후엔 지붕작업, 페인트 작업 순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건축지의 변경

[18년 10월 5일] 에티오피아 관과 지역 학교 건축이 현지 사정으로 진행이 어렵게 되어 에티오피아 하래로사 학교 짓기로 변경되었다. 에티오피아 현지에서 3주 전에 이 문제가 발생했으며 10/2에 드림스 드림 측이 현지팀으로부터 보고를 받았고, 10/4 드림스 드림 임시이사회에서 의결이 통과되었다. 


안건: 드림스 드림 34호 에티오피아 관과 학교 짓기를 에티오피아 하래로사 학교 짓기로 변경 (예산은 2천만 원으로 동일함, 설계도는 아래 사진과 같음) 


변경 사유는 이러했다. 오로모 지역 관과학교가 20%의 건축공정이 진행될 즈음에 관과 타운 교육청에서 건립 장소를 공립학교 부지로 변경해야 한다며 이의를 제기하여 사실상 건축 중단의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었다. 건축허가는 이미 관과 시청 및 상급기관청에서 받아놓은 상황이었는데, 뒷돈을 바라고 그러는 것인지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교육청의 생떼 부리기 식 반대로 인해 향후 하래로사 교회나 단체로의 소유권 이양마저 어려운 상황으로 예측되었기에 관과에서의 학교 설립을 중단하고, 딜라시 내부에서 새로운 학교 설립 장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대체 건축 희망 지역인 하래로사는 딜라시의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매우 낙후되고, 농업 생산 기반 중심의 발전이 미미한 지역이었다. 딜라시가 교육열이 높고, 종합대학이 들어선 만큼 교육도시로서의 성격을 갖춘 반면, 하로래사는 발전이 더디고, 교육 시설 또한 매우 부족한 곳이며 유치원 교육을 실시하는 교육시설이 전무했다. 관과학교 짓는 초기에 과정에서 폭동으로 길이 막혀서 건축이 늦게 진행되었는데 이런 일이 또 생기게 되어서 안타깝기는 하지만, 하늘의 뜻이 있어서 이런 거겠지 생각하고는 새로운 땅을 위해 기도했다.



[18년 10월 14일] 드디어 10월 10일부터 에티오피아 하래로사 학교 공사가 시작됐다(드림스 드림 34호) 우선 터 파기와 이전에 구입했던 건축자재들을 옮기는 작업이 진행됐다. 기초공사는 일주일 안에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18년 10월 28일] 드림스드림 34호 에티오피아 하래로사 학교 짓기 공사가 차근차근 잘 진행되는 중이었다. 기초공사 작업과 벽면을 지지하기 위한 기둥 작업을 위해서 철근 작업이 병행되고 있었으나, 우기의 마무리 시즌이라 매일 국지성 폭우가 쏟아져 건축이 빨리 진행되지 못했다.


[18년 11월 7일] 드림스 드림 대표이신 임채종 대표님과 교회에서 만나서 함께 예배를 드렸다. 학교 관련 많은 이야기들을 나눈 시간이었다.



[18년 11월 12일] 10월 말부터 11월 첫째 주까지 터파기와 바닥 기초 작업을 완료했다. 그다음 콘크리트 블록과 시멘트가 도착하여 11월 둘째 주부터 인부들이 대거 투입되어서 벽면 쌓기를 했고, 벽과 벽이 만나는 접점인 기둥을 강화하기 위해 철근을 보강하여 콘크리트를 붓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작업이 끝나게 될 주말부터 지붕을 올리기 위한 기초공사 및 함석지붕을 올리는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여전히 오후에는 비가 많이 내려 오전만 건축이 진행되었다. 그래도 오전에만 건축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사가 예상보다 잘 진행되어서 참 감사할 일이었다.



[18년 11월 27일]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벽면이 완성됨과 동시에 미장(스무딩 작업)과, 함석지붕을 올리기 위한 기초 작업인 목공 작업을 진행했다. 이제 남은 작업은 지붕을 올리고 벽면과 바닥의 미장 마무리 및 페인트 작업, 그리고 전기작업만 남았다. 다행히도 우기가 종료되어 이제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기간이 되었기에 공사기간이 다소 단축될 것으로 예상했다.



[18년 12월 2일] 지붕 공사와 창문 공사가 완료되었다. 아직 외벽의 미장, 페인트, 전기, 천정 공사가 마무리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예상보다 훨씬 빨리 진행되는 중이었다.



[18년 12월 11일] 하래로사 학교(드림스 드림 34호)에 설치될 명판 시안이 나왔다. 현지에서 제작하기 힘들기에 한국에서 주문 제작했다. 사비를 들여 10만 원 안으로 제작을 완료했다.



[18년 12월 26일] 에티오피아 하래로사 학교가 완공되었다. 학교를 짓기를 시작한 지 보름 후에 공사장 가는 길목에서 폭동이 일어나서 학교 짓기가 오랫동안 중단이 되었다. 10월 말에 갑자기 교육청에서 나와서 여기에 짓지 말라고 해서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학교를 짓기 전에 상부기관으로부터 이미 허가를 받았기에 참 난감한 상황이었다. 공사가 이미  20% 이상이 진행이 되었지만 어차피 짓더라도 교육청에 빼앗기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그렇게 해서 찾게 된 곳이 하래로사 지역이다. 11월부터 하래로사에 학교 짓기 공사를 시작하여 2달 만에 학교 짓기 공사를 끝나고 드디어 학교를 완공했다. 17살 때부터 그렇게 바라왔던 꿈이.. 21살에 정말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현실이 됐다. 



[19년 1월 13일] 에티오피아 하로래사 학교 준공예배가 진행됐다. 이 학교는 교회 바로 옆에 건축되었기 때문에 학교 완공으로 인해 교회 신자들까지 함께 기뻐하는 축제의 자리를 가졌고, 드림스드림에 깊이 감사를 표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전달받았다. 학교는 당분간 방과후학교로 운영되며, 정식 개원은 2019년도 9월에 신학년이 시작할 때 아이들을 모집하여 운영될 예정이라고 했다. 이 날부터 시범수업이 진행되었으며, 오후 두 시부터 방과 후 수업을 진행하기로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다.



[19년 12월 5일] 오랜만에 하래로사 학교로부터 소식이 도착했다. 프로젝트로 모금하여 지은 Future Green School의 2개 학급과, 학교 옆 교회 건물에 2개 학급을 운영하여 총 4 학급으로 아이들이 교육받고 있고, 편제로는 유치원 초급반 45명, 유치원 중급반 38명, 유치원 졸업반 35명, 초등학교 1학년 31명으로 총 149명이 다니고 있다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턴 주변에 있는 공립학교로 연계되어서 교육받는다고 하니, 참 감사할 따름이었다. 추가로, 일전에 한국에서 제작하여 보낸 명판이 학교 벽에 게시되었다.


[19년 12월 26일] 교육청으로부터 허가를 받게 되어서 학교에서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까지 가르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학교가 세워지는 모습을 보면서

많아봐야 30명쯤 학교에 다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150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교육받고 꿈을 키워나가게 될 줄이야, 정말 상상치도 못한 규모였다. 아직 에티오피아에 한 번도 가보지도 못했지만 그 나라의 교육과 아이들을 위해 보낸 2년 반의 시간은 20년을 살면서 가장 영광스러운 시간이었다고 확신한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잘 놀고, 많이 배우고, 꿈을 펼칠 수 있는 발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도와주고 함께해준 모든 이들과 하나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학교 건축을 위해 후원해주신 분들

thediffere(더디펄) 조우영 조근식 정인 일산큰삼촌 이희훈 이혜빈 이현용 이우진 이연화 이성수 이상혁 

이기호 유용식 오미숙 오마이컴퍼니 여병권 심규원 병현엄마 박흥민 김지영 김상목 김규신 김민웅 권일한 

허진영 지현우 유대경 이소라 B.M.W. 왕희상 지정환 강현숙 고민지 김한나 구광회 이인규 홍훈표 김종신 

김기원 이은지 금화스님 이문식 권영식 김명진 서인규 민경일 커피맘스 영국꽁 배상훈 류성필 이숙란 심교승(탑클래스짐) 최연지 임원철 윤건호 편도현(빅컴퍼니) 김효진 여몽스님 백정섭 최재훈 정유정 문인욱 이후봉 

소미나 최상훈 박미정 허민아 이정규 최봉희 한별 이종문 수빈맘의아이옷장 이명진 장지현 최용성 권오신 

김에녹 이형원 임현숙 한상연 노상태 김승우 허서윤 박윤수 최철환 임재만 박상현 김수아 서하늘 윤지미 

김지훈 김시영 이주찬 박혜경 이찬영 이윤화 김민호 이채성 응답하라포천시 김한솔 황인찬 안효진 전다은 

이규호 최성민 김동희서창 김재영 진경 이윤한 김하림 이정업 권시혁 윤시진 김윤녀 장원준 남동호 손준호 

이동규 박태현 정회언 이선주 이동하 원승환 조승현 김창현 서민수 한일구 이현승 양주현 장주향 노지수 

김형우 채희찬 백승호 한라봉 조건영 백은선 이동길 박복선 이형은 이심덕 이은주 양우석 경일종 이경련 외 익명의 후원자들


장비 및 소모품 지원해주신 분들

김민웅, 하상욱, 손민호, 최현성, 이상혁, 이건호, 정태범, 조승민, 김재영, 견우(노토스C.E.O), 지현우 외 다수


문장 수정과 맞춤법에 도움 주신 분들

권일한, 이세찬, 김하은, 최재훈, 임동준, 임태건, 류현욱, 최진실, 김보경, Yunsung Christina Oh, Hun-hu Choi, 김시영, 박대교 외 다수


그 외...

기프티콘으로 먹을 걸 보내주신 분들, 잘 곳과 씻을 곳, 먹을 것을 제공해주신 수많은 분들이 계셨는데 이건 정말 셀 수 없이 많아서 한 분 한 분 파악조차 못 함에 죄송하고, 또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추가로,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가족들에게 진정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근황

17년도에 여행을 마무리했고, 그 뒤로 포토 스튜디오, 반도체 공장 등 여러 일자리를 옮겨 다니며 근무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책 출간을 하고 싶었고, 원고를 작성했으나 받아주는 출판사가 한 군데도 없어서 크나큰 좌절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다가 19년 2월, 군입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입대를 했어도 책 출간을 못 한 것이 너무나도 서러워서 짬이 날 때마다 이전에 작성한 글을 완전히 갈아엎으면서 글을 새로 쓰다시피 작성했습니다. 결국 20년 3월, 현재 글 작성을 마쳤고 이렇게 여러분들께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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