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말, 무더운 여름이 사그라들고 강원도 인제의 공기는 점차 선선해진다. 한낮에는 26도까지 올라가지만 밤이 되면 22도까지 기온이 떨어져 서울과 비교할 수 없이 선선한 밤이 찾아온다. 집을 둘러싸고 앞과 옆 뒤 할 것 없이 온통 나무와 산이다. 새벽에는 지저귀는 새소리와 아직 사그라들지 않은 여름의 매미소리가 아침을 깨운다. 새벽녘에 눈을 뜨고 창문을 열면 푸르른 높은 산맥의 사이사이에 안개가 끼어 흩날리는 풍경이 절경이다.
이곳에서 부모님과 함께하는 육아라니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낭만적인 이곳 강원도 인제의 부모님 댁에서 9개월 차에 접어든 이제 막 10 킬로그램이 된 우람하고도 그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가진 아들을 본다는 것은 장소만 바뀌었을 뿐 그 난이도는 좀처럼 줄지 않는다. 아이의 기상시간은 새벽 5시. 종달새반이다. 서너 시간을 놀다가 다시 오전낮잠에 들어가긴 하지만 그 서너 시간이 왜 이리 시작하기 힘든 시간인지 눈꺼풀이 무겁다. 하루의 육아가 시작되면 새로운 물건, 새로운 가구를 하나하나 만져보고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를 따라다니기 바쁘다. 그러다 마당에 돗자리를 펼치니 가만히 주위를 살피다가 이내 돗자리는 성에 차지 않는지 돗자리밖으로 기어가 잔디를 모조리 뽑아먹을 기세다. 아이의 외할아버지는 아이를 반나절 간 함께 지켜보더니 잠시도 쉬지 않는 진정한 에너자이저라며 사그라들지 않는 에너자이저 건전지 광고모델로 내보내야 할 것 같다며 농담을 건네신다. 아이의 외할머니는 아침점심저녁 삼시 세끼를 차리시며 틈틈이 육아를 도와주시다가 몸살이 난 것 같다고 몸을 불태우시고는 방으로 들어가신다. 아이를 따라다니다 아이보다 내가 먼저 지쳐버려 서울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직장 그만두고 오빠도 강원도로 같이 내려오자며 실없는 소리를 한다.
불태웠던 육아의 휴식시간인 아이의 낮잠시간, 짧지만 그 시간이 너무나 조용하여 흘러가는 물소리, 지저귀는 새소리, 매미소리가 온전히 귀에 박혀 들린다. 그 시간에는 커피 한잔을 내려 머그컵에 담아 손에 들고 앞마당으로 나간다. 시원한 비줄기가 쏟아져 내린 이후의 신선한 공기와 커피 향이 섞인 인제의 앞마당에 나와 있자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내려오길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