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강원도로 아이의 아토피와 알레르기를 뿌리 뽑고 가겠다는 일념하에 내려왔다. 이곳 강원도에서 아이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즉 나의 엄마아빠와 함께 육아를 시작했다.
엄마는 삼시세끼 아빠와 나의 식사를 준비하고, 나는 삼시세끼 아이의 이유식을 준비한다. 먹고 치우고 하기도 바쁜 와중에 아이를 보아야 하니 우리의 체력은 딱 이틀 만에 방전이 되었다. 나름 분업을 해서 엄마는 어른 식사담당, 아빠는 집안일담당, 나는 이유식담당인데 이 담당제도가 아이케어와 함께 이루어져야 하니 셋이라도 버겁다. 결국 우리는 회의를 했고 우리의 모든 식사는 외식으로 결정했다. 우리의 식사는 차로 나가 읍내에서 조리된 음식으로 사 왔다. 그리고 나는 시판이유식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하는 6개월부터 지금 9개월이 된 시점까지 나는 시판이유식을 시도한 적이 없다. 엄마가 정성스레 만들어주는 이유식을 먹이고 싶었고 또 알레르기케어식을 하는 깔끔한 시판이유식업체도 찾기 힘들었다. 그런데 하루 한 끼도 아니고 두 끼도 아닌 세끼를 먹어야 하는 9개월, 후기이유식에 들어가니 나는 두 손 두 발을 들었다. 그리고 시판이유식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유와 계란에 알레르기가 있어 예민한 아이라 알레르기케어식이 필요했다. 그리고 아토피가 있어 먹거리나 환경이 중요한 아이이기에 이것저것 꼼꼼히 따져보았다. 그중 플라스틱이 아닌 유리병에 이유식을 담아내며 알레르기케어식을 하는 회사를 선택했다. 이미 엄마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자자한 회사라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의 첫 시판이유식을 구입했다. 이유식은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식사시간이 되었을 때 레인지에 1분 정도 돌려냈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는 아이를 빙 둘러싸고 아이가 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우리의 걱정과는 다르게 아이는 아기새처럼 입을 쩌억쩌억 힘껏 벌린다. 유리병에 꽉 차게 담겨있던 이유식이 금방 바닥을 드러낸다. 다 먹은 아이는 곧이어 빈병까지 먹을 기세다. 피부에 발갛게 올라오는 것 하나 없이 이유식을 다 먹고 빙그레 웃어주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놓인다. 빙그레 웃는 아이를 보고 우리 엄마도 한소리 거든다.
"이유식은 앞으로 여기 걸로 사 먹여. 나도 내 새끼가 이유식 만드느라 고생하는 거 싫어."
이유식을 사 먹이기까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나의 결론은 행복한 엄마가 있어야 행복한 아이가 있다. 앞으로 이유식 만드는 엄마의 시간을 아이와 눈 맞추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데에 더욱 쏟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