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책을 읽으며 싸우고 배우는 중입니다

자본주의 - EBS 자본주의 제작팀

by 사리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책을 읽는 엄마로 거듭날 결심을 했다. 엄마와는 상관없이 책을 좋아하는 아이라서 태만했던 걸까. 작심삼일을 반복하며 봄, 여름 두 계절 동안 겨우 10권을 완독 했다. 육아서 3권과 소설책 7권이 전부였다. 책과 쌓은 담이 너무 높아서 책에 닿는 게 쉽지 않았다. 일 년에 30권의 육아서를 읽자며 덤볐다가 와닿지 않아 덮어버리는 책이 한두 권이 아니다. 30권은 손에 잡았을 텐데 공감하며 마지막 장을 덮은 책이 3권뿐인 거 보면 확실히 책 고르는 감은 바닥에 붙어있다. 쉽게 가자고 소설책으로 눈길을 돌렸지만, 박경리의 토지나 톨스토이의 문학이 아닌 가볍게 읽고 넘기는 소설들을 읽자니 성에 차지 않는다.

그러던 가을, 동네 엄마들이 하는 독서모임에 참여하게 됐고, 처음 책이 칼비테의 자녀 교육법이라는 책이었다. 역시나 어렵고 칼비테의 행동과 방식이 이해되지 않는 것 투성이다. 처음 참여하는 책이니 어떻게든 읽어보자며 혼자 구시렁거리며 읽다가, 같이 모임 하는 지인에게 투덜거리는 심정으로 이야기를 꺼내자 책과 싸울 수 있는 것도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는 답을 들었다. 우문현답.


무언가 부족한 걸 채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책을 찾는다. 공감하고 위로받고 치유하는 것도 책 읽기로 가능하다. 성장하고 발전하고 싶은 사람들도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전자의 책 읽기라면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책은 그만 읽고 다른 책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후자라면? 나는 배우고자 책을 펼쳤다가 나와 의견이 다르면 책을 덮어버렸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도, 다름을 설득하는 자세로 읽지도 못했다. 내가 맞아서 그랬다면 줏대라도 있지, 그것도 아니었다.

다르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 상대가 작가라는 이유로 내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나를 믿지 못했다. 그리고 점점 쭈그라드는 나를 만나기 싫어 더 이상 용기를 내지 못하고 외면했다. 나와 작가에게 얼마나 어리석은 우를 범하는 책 읽기를 했단 말인가. 지인의 대답은 말라비틀어진 내 책자존감에 내리는 단비이자 따스한 햇살이었다. 지면을 통해 에디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책의 내용에, 작가의 이야기에 반문하고 이의를 재기하며 토론하는, 싸우는 책 읽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올 해부터 경제도서를 읽는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은행에서 16년 동안 전산을 했지만 경제책을 제대로 봐 본 적이 없다는 자격지심과 경제관념이라고는 개미 눈곱만큼도 없는 소비습관을 뜯어고치고 싶은 이유가 앞섰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책을 읽다 보면 돈을 벌 거 같은 막연한 바람으로 경제 도서를 읽고 싶다는 지인들의 말에 날름 손을 들었다.


읽은 책, 읽는 책, 읽을 책


마침 경제도서모임을 지난 1년간 진행했던 지인의 주도하에 시작한 첫 책은 부자의 그릇이었다. 일본 최고의 경제금융 교육 전문가 이즈미 마사토가 쓴 경제경영 교양서로 40만 명의 선택을 받은 베스트셀러다. 돈을 다루는 능력을 키우는 법이라는 부제를 담은 이 책은 결론이 좀 황당하지만 소설만이 가진 비현실성임을 감안하면 경제입문책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두 번째로 읽은 책은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이하 자본주의)라는 책으로 2012년에 EBS에서 5부작으로 방영했던 프로그램을 활자로 만든 게 이 책이다. 자본주의 방송은 대한민국방송대상 대상, 국무총리 표창 등 10여 개의 상을 수상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꽤 두꺼운 책이지만 방송에 나왔던 화면과 전문가들의 인터뷰가 적절하게 섞이며 딱딱하지 않고 티브이를 보는 것처럼 잘 쓰인 책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나를 도발하며 싸우는 책 읽기를 하게 만든 책이다.


결국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돈으로 굴러가는 사회'가 아니라 '돈을 창조하는 사회'라고 해야 보다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가장 핵심에 바로 '은행'이라는 존재가 있다. 은행이 있기 때문에 돈의 양이 늘어나고, 따라서 물가가 오른다.
물가가 오르는 근본적인 원인은 소비가 늘어나기 때문도 아니고, 기업들이 더 많은 이익을 취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은행 때문이며, 은행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자본주의 시스템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초반부터 은행에 대해 매우 공격적인 자세를 취한다. 한때 몸 담았다 싫어서 떠난 곳이지만, 내 신랑도 내가 까야지 남이 까면 불편한 법이다.

이 챕터를 읽고 드는 의문을 적어본 게 아래의 내용이다. 이와 같은 내용들을 경제도서모임 밴드에 인증과 함께 올리고 인스타그램에도 기록했다.

은행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왜 이 책은 은행을 부정적 뉘앙스로 이야기하는 걸까?
은행업을 처음 만든 사람에게 엄지 척이 되는데..
은행업은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생겨난 자본주의의 선물 아닐까?
사용하는 사람들이 현명한 소비자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빛공해와 환경오염의 탓을 에디슨의 전기발명 탓으로 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은행의 탄생을 봐야 하는 거 아닐까??


이렇게 책을 읽다 보니 다음 장이 궁금해졌다. 내 생각이 맞는지 틀린 지 확인하고 싶어 검색도 해보고 다른 책을 찾아보기도 했다. 다른 은행에서 근무했던 지인과 놀러 간 펜션에서 맥주를 마시며 핏대를 올리기도 하고, 며칠 전 만난 직장 후배에게 묻기도 했다. 확실히 같은 업을 했더라도 세대에 따라 업무에 따라 보는 시선이 다른 게 또 신기했다.

기존에 작가라서 무조건 맞다고 나의 무지를 탓하던 포기대신 의문을 가진 반론을 재기하며 책장을 넘기니 재미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는 가전제품이나 자동차를 팔아서 이익을 내지 않습니까? 금융회사, 즉 은행들은 '금융 상품을 팔아서 이익을 내는 회사다'라고 이해하면 쉽습니다. 특히 외국 투자자본들의 국내 은행들에 대한 투자가 가능해지면서 굉장히 열리 위주로 많이 전환이 됐습니다. 특히 대주주들에게 많은 배당을 해주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다 보니까 아무래도 고객들 중심이라기보다는 주주 중심적인 회사로 전환된 것이죠. 우리나라 금융 회사들도 점점 그렇게 영리를 추구하는 성향들이 강해지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 날은 자본주의를 보면서 제일 이해가 안 가서 열폭했던 날이다.

자본주의 책을 보면서 제일 이해할 수 없었던 날.
도대체 이 글을 쓴 사람은 은행을, 은행원을 뭐라고 생각했던 걸까? 은행은 자선사업단체 아니다. 은행의 대부분의 부서는 profit center 다! 수익을 내야 한다는 말이다. 그 말은 은행원 역시 profit을 내야 하는 회사원이라는 말이다. 대부분의 영업점 직원들은 은행이라는 장소에서 근무하는 영업직원이라는 말이다. 당연히 실적을 올려야 하고 할당이 떨어지면 그거를 채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자동차 딜러나 핸드폰 판매원과 결은 같다. 그런데 왜 은행에서 근무한다는 이유로 이렇게 까대는 걸까? 기분 몹시 별로다.
은행에서 판매한 상품에 결함이 있을 경우, 사람들이 핸드폰을 구입하면서 핸드폰 기기에 문제가 생기면, 판매직원이 아닌 제조회사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물론 고지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은행원들은 지탄받아야 마땅하고 초반 파생상품이나 투자상품을 판매하던 때에 그러지 못한 부분이 많았던 것은 인정한다.
내가 무슨 상품을 구매하려고 한다면 충분히 알아보고 감당할 수 있는 소비를 해야 현명한 소비자가 아닐까? 만약 그러지 못했을 경우, 판매자나 생산자 측의 과실이 아닌 내 선택에 의해 손실을 보았다면 그 결과도 감당해야 한다.
저축은행 사태는 나도 심히 안타깝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고 충분히 조사가 이루어져서 책임질 사람이 확실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 연관된 건인지도 투명하게 다 밝혀져야 함.
할 말은 정말 많은데 여기까지..
현명한 소비자가 되자!
일반인들의 은행에 대한 생각이 궁금함


이렇게 책을 읽다 보니 작자와 의견이 상통하는 부분에서는 희열이 느껴졌다. 그리고 넓은 시야로 확장하는 생각이 가능해지고 배우는 점들이 생겨났다.


금융 생활을 좀 더 효과적으로, 또 합리적으로 이뤄서 좀 더 나은 풍요로운 세상을 살기 위해서 개개인에게 필요한 자질이 바로 금융 이해력입니다.
자녀가 부모보다 훨씬 풍족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결국 이는 상황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자녀들이 부끄럽지 않도록 많은 지출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가정 형편에 대해 쉬쉬하며 숨길 필요가 없다. 가계 경제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 금융 교육의 첫걸음인 것이다.
아이들이 교육에 있어서 돈에 대해 너무 터부시 할 필요는 없습니다.
돈이라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금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태도를 가지실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 돈, 당신의 선택입니다.
실제 투자할 나이가 되면 재교육이 필요하며, 여기엔 투자의 위험성에 관한 것도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금융상품 판매자들에게 '제대로 설명해 달라', '모르겠으니 다시 설명해 달라', '이 상품이 얼마나 위험한 상품인지 확실하게 알려 달라'라고 말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바로 그것이 본인의 선택이 가져올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우선시해야 할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한 나라를 정복해 예속시키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칼로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빚으로 하는 것이다. - 존 애덤스


후반부로 가며 소비에 대한 내용에서는 나의 소비를 돌아보며 '성찰'을 하게 되었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나 마르크스의 자본론, 어디선가 들었던 케인스와 하이에크를 좀 더 알게 되었으니 이 또한 책의 이로움이겠다.

그렇게 읽다 보니 마지막 장이 되었고 인생 명언을 만나며 이전과는 다르게 책을 고이 닫았다.

국가를 망하게 하는 첫 번째는 "철학 없는 정치"이다.



오늘도 꾸준히 경제도서 읽기를 하며 싸우고 배우는 중이다.

그나저나 요즘 뉴스에 H지수 관련 ELS가 계속 나오는데 걱정이다. 한동안 꽤 많이 만들어 팔았는데...


며칠 후 잠자리 대화...
나 "자기야, 아까 주차장에서 그 아줌마들 장난 아니더라. 완전 무서웠어. 왜 그런데?"
신랑 "그러니까 싸우고 다니지 마."
지금 내 얘기 중이 아니거든요?
금요일 연재
이전 05화적극적 내향인의 삶